사람들은 실존에 매달려 산다. 실존은 긍정이고 현실이다.
그 실존이란 내 손안에 쥐어진 100위안 짜리 인민폐이고
내 입에서 씹히는 김치조각이고 나의 손을 잡고 잠드는 아내이다.
실존이란 현상이고 가시적 그림자이어서 손에 안잡히기도 한다.
그래서 실존은 현실인 동시에 허상이고 내 손가락의 반지이고
터져버린 풍선이다.
누가 알겠는가?
바람의 방향을... 고래가 가는 길을... 남녀가 자고간 잠자리를...
이미 지나간 일들만이 허상이라고 말하지 마라.
내 눈앞에서 나를 녹일 듯한 웃음을 지으며 커피를 음미하던 그녀조차
남의 여자가 되어 망가진 몸매에 눈물글썽이며 살아온 세월을 한탄하는 일도
삶의 현실이 허상이기 때문아니던가?
평생의 삶이 커피잔을 됫박질이나 해오던 무의미함때문에
오늘이라도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으려는 양,
빠져들기만 하는 연못에 실없는 돌멩이만 던져대던 적도 있었다.
그러기에 실존이란 연못바닥에 가라앉은 자갈이다.
건져내어도 아무 쓸모가 없이...
현상에 매달리지 마라.
생일날 받았던 케잌을 언제까지나 먹을 것이며
결혼기념일날 받았던 장미꽃다발이
언제까지나 내 옆에만 있던가?
마시고난 종이커피잔을 우그러뜨리듯
우주에 존재하는 보이지않는 자의 손장난에
우리의 존재는 그모양이 되었다.
가을이면 저 살 곳을 찾아 날아가는 기러기가
차라리 실존이고 현실이다.
그에게는 갈 곳과 머물 곳과 돌아올 곳이 명확하게 있으니
누가 그를 떠도는 자라가 할텐가?
눈물로 중국을 배띄우는 우리들에게 중국은 머물만 한 곳인가?
어릴 적 인구가 3만도 안되는 시골구석에서
돈벌면 서울로 떠나던 이웃사람들을 생각해본다.
그들의 실존을 확인할 만한 귀틀이
서울에는 있었을 게다.
중국은 그만도 못해서 일까?
내리누르는 삶의 중압이 힘들어갈 때
먹구름 뒤에도 태양이 빛난다던 대중가요의 한귀절이
때론 빈정거림으로 와닿는다.
모든 실존은 허상이고 그림자이고
꿈속에서 배불리 먹은 잔칫상이다.
1년 전의, 5년 전의 월급봉투를, 혹은 월급통장을 보았는가?
지금에 와 생각하면 할일없는 삶의 됫박질이다.
이미 시효가 지나버린, 상한 우유처럼
우리의 실존도 그렇게 되어버린다.
허상이 되어버릴 실존에 너무 매달리지 마라.
뒤돌아 보면 '아무 것도 아닌' 모습으로 서있는 내 몰골은
지독히도 보기싫은 삐져나온 코털처럼 보일 지 모른다.
첫댓글 실존하는 것은 허상이다...요즘 저의 화두랍니다....헛되고 헛되니 헛되고 헛되도다...해아래 모든 수고가 헛되며 아침의 이슬같으며 바람같도다..
실존을 허상으로 몰아놓고 결국 강조되는 것은 삶이지 않겠습니까? 헛된 우리 존재를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삶이 더욱 존중되어야 하겠죠. 오늘도 삶의 헛되지 않음을 증명하기 위해서 열심히 삽시다.ㅋ
神马都是浮云~~阿门~~
어쨋거나 현재는 실존이고 지나간 것들은 잔상으로 남는데 그 허상이 현재에 영향을 미치니 실존이라는 건가요? 뭐 어쨋거나 현재도 과거도 중요하지 않다면 남는건 미래인데 현재를 지나지 않고 미래가 오는 법은 없으니 현실을 부정하는 것은 미래까지도 부정하는 것이 되니 너무 우울한 이야기네요. 어느 티비에서 봤나 '용서를 한다해서 과거가 바뀌지 않는다. 단 틀림없이 그 용서로 인해 미래는 바뀔 것이다.' 과거를 돌이켜 봄으로써 미래를 바꿀수 있는데 단지 그게 긍정적으로 작용해야 좋겠죠~ ^^* 허상을 후회로 두지말고, 성찰의 기회로 ~ 모든것이 헛된다면 살아갈 이유가 없을 것 아니에요~ 화이팅입니다
우리네 실존은 허상이 되고, 허상은 실존을 만든다.
허상을 쫓아 실존에서 몸부림치는 우리네 이웃들과 자신에 대한 허탈한 조소인가요?
실존과 허상, 인간이란 이 두 가지 순환적 모순에 빠질 수 밖에 없는 존재가 아닌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