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는 여호와를 기다릴지어다(시 27:1-14)
할렐루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하나님을 믿으십니까?”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에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보다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습니다.
어쩌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이, 정상이고, 믿는 것이 비정상으로 보일 때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전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는 것이 정상적인가요? 안 믿는 것이 정상적인가요?
요한복음 20장을 보면,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지 못한 도마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열두 제자 중의 하나인 디두모라 불리는 도마는, 예수님께서 부활 후 제자들을 처음 찾아 오셨을 때에, 제자들과 함께 있지 않았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고 했지만, 도마는 전혀 믿지 않았습니다. 대신 도마는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고 말했습니다.
그로부터 팔일이 지난 후,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었습니다. 분명히 문들이 다 닫혀 있었는데, 그들 가운데로, 예수님께서 오셔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특별히 도마에게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그때 도마는 손을 내밀어, 예수님의 옆구리에 넣어 보았을까요? 안 넣어보았을까요?
어떻든 도마는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도마에게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닙니다. 보이지 않는 것이 더 많습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을 아주 잘 믿었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 한 사람이 아브라함입니다. 아브라함은 자녀가 없었습니다. 지금도 자녀가 없다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 중에 하나입니다. 아마 가장 힘든 일 중에 하나가, 아닐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당시는 자식이 없다는 것이, 문화적으로 볼 때, 지금 보다 몇 배나 더 힘들고 어려웠는지 모릅니다. 그런데도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셔서,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창 12:1)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 집을 떠나라 하시니, 아브라함은 하나님에게, 그냥 갈 곳도 묻지 않고 떠납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드디어 하나님이 아브라함이 칠십 오세가 되던 해 나타나셔서, 자녀의 축복을 약속하십니다.
“내가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창 13:16)
칠십 오세의 나이는 인간적으로, 육체적으로 자식을 낳을 수 있는 나이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들이 잘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아브라함이 실제로 아들 이삭을 낳은 것은 그로부터 이십 오년 후였습니다. 아주 긴긴 시간이 지난 뒤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자녀를 낳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25년의 세월이 지나갔습니다. 그 25년의 세월 동안 자녀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믿음의 조상이라고 부르는 것이 당연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을 그렇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25년 동안 응답이 없는데도, 정말 하나님을 변함없이 믿을 수 있겠습니까? 아브라함이 하나님에게 자녀를 달라고 떼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먼저 자녀를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마태복음 7:7-8절을 보면,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구하면 반드시 주시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구하기 전에 먼저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찾아오셔서, 먼저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안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말씀도 하셨습니다.
민수기 23:19절을 보면,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하지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하지 않으시랴”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거짓말을 하지 않으신다고 하셨습니다. 말씀하신 것은 반드시 실행하여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25년 동안, 약속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런 하나님을 믿어야 할까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브라함은 변함없이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약속을 25년 동안 이루어주지 않는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응답하지 않는 하나님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 직접 주시겠다고 하신 약속을 지키지 않는 하나님을 끝까지 믿을 수 있겠습니까?
우스 땅에 살면서,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삶을 살았던 욥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늘 좋은 일만 생겨야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우리의 생각대로라면, 그런 사람에게는 나쁜 일은 근접조차 하지 않고, 늘 좋은 일만 생겨야 합니다. 사망의 골짜기, 어둠의 골짜기가 아니라, 늘 푸른 풀밭과 쉴만한 물가에 누워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러나 완전하고, 진실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악한 일은 거들떠보지도 않는 사람이었던 욥에게, 말할 수 없는 고난이 찾아옵니다. 그의 슬하에 아들 일곱과 딸 셋이 있었는데, 하루 아침에 죽고 맙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다 무너졌습니다. 말로 다할 수 없는 고통과 시험 가운데, 사랑하는 아내마저,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온전함을 굳게 지키느냐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고 말합니다.
“아직도 하나님을 믿느냐?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
여러분! 욥이 당한 고통과 시험이 이해가 되십니까? 여러분에게 어떤 고통이 오면, “하나님이 나의 믿음을 시험하시는거야? 축복을 주시기 위하여 고난을 주시는거야”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렇게 생각하시면서, 웃을 수 있겠습니까?
말할 수 없는 고난을 당하였을 때, 욥은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하나님을 예배하였습니다. 예배 가운데 하나님께 고백하기를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욥 1:21)라고 했습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하나님께 예배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할 수 있겠습니까? 욥은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의 이름에 합당한 찬송과 영광을 돌려 드렸습니다. 그리고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했습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의심하지 말라. 요동하지 말라. 흔들리지 말라”
어려움 가운데 있는 이들을 만나면, 이런 말을 많이 합니다. 그러나 그런 상황과 형편 가운데 있을 때, 정말 의심이 안 들까요? 믿음이 요동하지 않을까요? 믿음이 흔들리지 않을까요?
다윗도 하나님을 참 잘 믿었던 사람 중에 하나였습니다. 다윗에게도 하나님은 보이시지 않는 하나님이셨습니다. 이해되지 않는 하나님이셨습니다. 다윗의 삶을 돌아보면, 하나님은 다윗에게도 보이시지 않으셨습니다. 응답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숨어 계셨습니다. 그 때문에 다윗이 당한 고난과 어려움과 고통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다윗이 늘 하나님을 보고 살았다면, “주의 얼굴을 내게서 숨기지 마십시오”(9절)라고 부르짖었을까요?
8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너희는 내 얼굴을 찾으라 하실 때에 내가 마음으로 주께 말하되 여호와여 내가 주의 얼굴을 찾으리이다 하였나이다” 아멘.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내 얼굴을 찾으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다윗은 열심히 하나님의 얼굴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주의 얼굴을 내게서 숨기지 마십시오”(9절)라고 부르짖고 있습니다. 무슨 일입니까? 하나님의 얼굴을 찾았다는 것입니까? 아니면 못 찾았다는 이야기입니까? 못 찾았다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이 먼저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내 얼굴을 찾으라”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하나님의 얼굴을 찾았습니다. 부지런히 찾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숨으셨습니다.
“찾으라”고 하시고서는, 깊은 곳에 숨으셨습니다.
“기도하면 응답하리라”고 하시고서는, 깊은 곳에 숨어 버리셨습니다.
시편 13:1-2절을 보면,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나를 영원히 잊으시나이까 주의 얼굴을 나에게서 어느 때까지 숨기시겠나이까 나의 영혼이 번민하고 종일토록 마음에 근심하기를 어느 때까지 하오며 내 원수가 나를 치며 자랑하기를 어느 때까지 하리이까”라고 했습니다.
얼마나 힘들고 답답했으면,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를 했겠습니까? 하나님이 숨어 버리셨기에, “밤낮없이 쓰라린 이 마음, 이 아픔을, 언제까지 견뎌야 합니까? 언제까지 원수들이 우쭐대는 꼴을 봐야 합니까?”라고 외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중요한 것은 그와 같은 상황 속에서도 다윗은 하나님께 대한 믿음의 끈을 놓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라는 말로 시작하였지만, 다윗은 “나는 오직 주의 사랑을 의지하였사오니 나의 마음은 주의 구원을 기뻐하리이다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이는 주께서 내게 은덕을 베푸심이로다”(시 13:5-6)라고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깊이 숨어 버리신 하나님이 아직 나타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이 몸은 주의 사랑만을 믿습니다. 이 몸 건져주실 줄 믿고 기뻐합니다. 온갖 은혜 베푸셨으니 하나님께 찬양드립니다”라고 고백합니다.
시편 14:1절에서 다윗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
시편 16:2절에서는 “내가 여호와께 아뢰되 주는 나의 주님이시오니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 하였나이다.”라고 고백합니다.
상식적으로 이런 고백이 나오려면, 엄청난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사건이 나와야만 합니다. 그러나 그와 같은 엄청난 간증과 고백이 나온 시편 16:2절의 앞 절인 1절은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지켜 주소서 내가 주께 피하나이다”
참 기가 막힌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지켜 주소서”라고 기도하는 것을 보니, 상황은 하나님이 지금 지켜 주지 않으시는 상황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내가 주께 피하나이다”라고 기도하는 것을 보니, 하나님이 지금 다윗에게서 손을 떼고 계시는 상황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다윗은 “내가 여호와께 아뢰되 주는 나의 주님이시오니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 하였나이다.”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에게 주신 시편 27:2-3절의 말씀을 보면, “악인들이 내 살을 먹으려고 내게로 왔으나 나의 대적들, 나의 원수들인 그들은 실족하여 넘어졌도다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 칠지라도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며 전쟁이 일어나 나를 치려 할지라도 나는 여전히 태연하리로다”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어떤 상황 속에 놓여 있습니까?
“악인들이 내 살을 먹으려고 내게로 왔다.”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을 치고 있다.
9절 말씀을 보면, 다윗이 이 시편을 쓸 때도, 여전히 다윗의 삶은 힘들고 어렵고 곤고하고 답답했던 것이 틀림없습니다.
“주의 얼굴을 내게서 숨기지 마시고 주의 종을 노하여 버리지 마소서 주는 나의 도움이 되셨나이다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시여 나를 버리지 마시고 떠나지 마소서”
그런 힘들고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다윗은 하나님께 대한 믿음의 끈을 놓지 않습니다. 흔들리지도 않습니다. 다윗은 결정적으로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10절)
다윗에게는 그와 같은 확실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다윗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에 대한 이해할 수 없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때문에, 자기가 지금은 이해할 수 없는 고통과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그것 때문에 죽고, 그것 때문에 망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으십니까? 그것 때문에 망하지 않습니다. 믿음의 끈을 놓지 않으면 절대 망하는 법이 없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끈, 사랑의 끈을 놓으면, 그것 때문에 망합니다.
5-6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여호와께서 환난 날에 나를 그의 초막 속에 비밀히 지키시고 그의 장막 은밀한 곳에 나를 숨기시며 높은 바위 위에 두시리로다 이제 내 머리가 나를 둘러싼 내 원수 위에 들리리니 내가 그의 장막에서 즐거운 제사를 드리겠고 노래하며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아멘.
여러분! 무엇을 믿으십니까? 보이는 것은 믿고, 보이지 않는 것은 믿지 못하십니까?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나님이 도마에게만 하신 말씀일까요? 바로 우리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보이는 것은 믿고, 보이지 않는 것은 믿지 못하는 것은 어리석고 미련한 믿음입니다. 그 정도의 믿음은 걸음마 어린이들의 믿음입니다.
오늘은 어버이주일입니다. 걸음마 어린이 믿음이 아니라, 어른 믿음이 되어야 합니다.
“주여,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습니다”(마 8:8)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마 15:27)
“네 믿음이 크도다. 네 믿음대로 되리라. 네 소원대로 되리라”
작은 믿음이면 안됩니다. 보이는 것만 믿는 믿음은 작은 믿음입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히브리서 11:1절을 보면,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라고 했습니다.
믿음은 보는 것을 믿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것이 믿음이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솔직히 말씀드리면, 보이는 것을 안 믿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보이는 것만 믿어서는 안됩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어도 믿었습니다. 고난과 아픔이 있어도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악인들이 다윗의 살을 먹으려고 온다 할지라도, 그는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블레셋 같은 다른 나라들이 쳐들어온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향한 다윗의 믿음에는 변함이 없었습니다.
좋은 일이 있을 때에만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쁜 일이 있을 때에도 변함없이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께 더욱더 감사하는 것이 참된 믿음입니다.
다윗은 믿음의 고백을 들어 보십시오.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악인들이 내 살을 먹으려고 내게로 왔으나 나의 대적들, 나의 원수들인 그들은 실족하여 넘어졌도다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 칠지라도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며 전쟁이 일어나 나를 치려 할지라도 나는 여전히 태연하리로다”(시 27:1-3)
여러분! 저는 아직도 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자녀의 축복을 말씀하신 후, 25년 동안이나 기다리게 하셨는지를 모릅니다. 저는 왜 하나님이 다윗을 그처럼 오랫동안 힘들게 하고, 어렵게 하셨는지를 모릅니다.
저는 아직도 왜 하나님이 하나님을 의지하고 말씀대로 살려고 하는 신실한 성도들에게 경제적으로 그토록 큰 어려움을 겪게 하시는지를 모릅니다. 설명할 수 없습니다. 핑계하고 둘러 댈 수는 있으나 솔직히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왜 저는 그토록 간절하게 기도하는 부부에게 태를 열어 자식을 주시지 않으시는지를 모릅니다. 왜 그토록 간절하게 올리는 기도에 응답해 주지 않으시고 오랫동안 시간을 끄시는지를 잘 모릅니다. 그것에 대하여 논리적인 설명을 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런데 사랑하는 여러분! 이것은 분명합니다. 아브라함의 고통과 다윗의 어려움은 이해할 수 없으나, 다윗의 믿음과 아브라함의 믿음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 믿음의 결국과 결론에 대해서는,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것은 결국 다윗과 아브라함의 믿음대로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약속하셨습니다. 그 약속이 언제 이루어질지 모릅니다. 그러나 결론은 그 약속을 믿으면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는 자에게는 그 약속이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저는 저와 여러분들의 어려움과 고난에 대하여, 자세하게, 분명하게 설명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습니다. 숨어 계시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잘 이해되지 않습니다.
나쁜 일이 왜 생깁니까? 왜 사고가 일어납니까? 왜 아프고, 왜 다치고, 왜 걱정거리가 생기고, 왜 염려거리가 생깁니까?
하나님이 왜 아브라함에 하신 약속을 25년 동안이나 지키지 않으셨는지, 저는 설명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하나님이 왜 다윗에게, 왜 아브라함에게, 왜 욥에게 그렇게 하셨는지는 알 수 없으나, 때문에 설명할 수 없으나, 결론적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낙심하지 않고, 하나님을 끝까지 신뢰하고, 의지하고, 믿은 아브라함과 다윗을, 승리하게 하신 것을 보면, 하나님이 숨으신 것과 같이, 힘들고 어렵고 답답한 때에도,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다윗을 지켜보고 계셨습니다. 무엇인지 정확하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하나님은 그들 곁에 늘 함께 하셨다는 사실입니다.
다윗은 오늘 시편 마지막 14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는 여호와를 기다릴지어다 강하고 담대하며 여호와를 기다릴지어다.”
하나님을 이해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하나님은 믿음의 대상입니다.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어야 합니다.
하박국 선지자의 외침입니다.
“내가 내 파수하는 곳에 서며 성루에 서리라 그가 내게 무엇이라 말씀하실는지 기다리고 바라보며 나의 질문에 대하여 어떻게 대답하실는지 보리라”(합 2:1)
여호와께서 하박국 선지자에게 대답하셨습니다.
“너는 이 묵시를 기록하여 판에 명백히 새기되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하라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응하리라”(합 2:2-3)
그러면서,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 바로 이것입니다.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합 2:4)
어려운 일을 당할 때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고 기다리는 것 그것이 믿음입니다. 이해하려고 하는 것도 아니고, 설명하려고 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냥 하나님을 믿고, 그 믿음의 끈을 놓지 않고, 기다리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 믿음이 우리의 삶을 결국 승리하게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오직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믿음의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믿음이 크도다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여러분! 하나님이 보이지 않을 때,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이지 않을 때,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 것은, 축복입니다. 축복의 기회입니다. 하나님이 보이시지 않을 때, 이해되지 않을 때에도 다윗처럼, 아브라함처럼, 욥처럼, 끝까지 하나님 믿는 믿음의 끈을 놓지 않아, 다윗처럼, 아브라함처럼, 욥처럼, 믿음의 승리를 낚아채는 믿음의 장부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기도합니다.
주님, 주님만 바라봅니다.
주님의 약속을 믿고 기다립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나아갑니다. 늘 함께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