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찬효의 야생초 산행-감악산
통신철탑 무성한 산등성 가을 전령의 자태
거창 감악산

살갗을 스치는 바람결이 달라졌다. 아직은 한여름 뙤약볕처럼 내리쬐는 한낮 볕살이지만 끈끈하게 피부를 자극하던 공기와 느낌이 다르니 계절의 변화를 읽을 수 있다. 잦은 태풍과 함께 줄기차게 내리며 쉽게 물러날 것 같지 않던 장마가 잠시 그치자 빼앗겼던 자리를 차지하려는 듯 높고 푸른 가을하늘로 바뀐다. 짙푸른 하늘에서 쏟아지는 햇살을 받으며 누렇게 곡식이 여물고 있다. 고르지 못한 날씨 속에서도 계절을 잊지 않고 성장을 해온 결과다. (사진=쑥방망이)
야생초산행은 여름에서 가을로 바뀌는 계절에 볼 수 있는 야생초를 찾아 경남 서북부 내륙 깊숙이 숨어있는 감악산(紺岳山, 951m)을 찾았다. 감악산은 거창군 남상면과 신원면 사이에 위치하고 있는 산으로 거창군의 안산 역할을 한다. 지대가 높은 거창 고원의 남쪽에 자리한 덕유산과 가야산, 금원산과 기백산, 오도산과 황매산 등 1,000m가 넘는 산들에 파묻힌 산속의 산이다. 감악산은 높은 산들에 둘러싸인 900m대의 상대적으로 낮은 산이지만 조망만큼은 압권이다. 지리산 천왕봉을 비롯하여 원근의 높은 산과 동쪽에 위치한 합천호까지 한 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산 정상은 고원처럼 밋밋한 드넓은 고랭지 채소밭이다. 한 겨울 눈이 쌓이면 채소밭은 고산의 설원처럼 바뀐다. 막힘이 없는 조망에서 알 수 있듯 전파를 멀리까지 보낼 수 있는 감악산 정상에는 방송국을 비롯하여 여러 통신회사의 시설물이 가득하다. 여기 시설물과 고랭지 채소밭을 오르내리는 찻길이 오래전에 뚫려 쉽게 차로 오를 수 있는 곳이다.
야생초 산행은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부는 굳은 날씨 때문에 계획했던 산행을 하지 못하고 연수사입구 약수터에서 시작하고 끝내기로 했다. 길을 따라 연수사에 들렀다가 이곳의 명물인 수령이 600년으로 추정되는 경상남도기념물 제124호로 지정된 은행나무를 구경하고 물맞이 장소로 갔다. 연수사는 약수와 물맞이로 유명한 곳이다. 여기서 떨어지는 물을 맞으면 한여름에도 더위를 타지 않는다는 속설에 따라 예로부터 원근에서 물 맞으러 다녔다고 한다. 이용자의 편의를 위하여 목욕탕처럼 남녀 별실로 만들어 놓은 물맞이 장소가 따로 있다.
등산로는 물맞이 장소 앞을 지나 동쪽으로 난 산길을 따른다. 오래지 않아 길은 울창한 소나무 숲으로 바뀐다. 등산로는 잔나무를 잘라내고 풀까지 베어 걷기에 편안한 길이다. 다른 산처럼 산행 흔적을 남기기 위하여 메달아 놓은 리본이 없어 길을 잃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다만 험하지 않고 멀지 않은 길이니 갈림길이 있으면 오른쪽으로 오르는 길을 택하면 된다.
숲 속에는 최근 잦은 비로 눅눅해진 탓해 이름 모를 버섯들이 즐비하다. 또한 바람에 찢기고 꺾여 채 익지 않은 밤송이와 도토리가 떨어져 뒹굴고 있다. 숲속에서 찾을 수 있는 꽃은 산박하와 같은 꿀풀과의 야생초가 몇 종류 보일 뿐이다.
급격한 경사가 없는 비슷한 풍경의 산길을 따라 오르면 오래지 않아 정상부근에 위치한 시설물이 보이고 곧이어 능선에 이른다.
정상은 동쪽 끝에 위치하고 있어 각종 시설물을 보호하기 위하여 설치한 철망을 따라 돌아가야 한다. 정상으로 가는 짧은 길도 최근에 팔각정을 짓기 위하여 차가 다닐 만큼 넓혀 놓았다.
감악산 정상은 조망이 빼어난 곳이나 비가 내리고 안개가 자욱하여 팔각정에 올라 잠시 주변을 둘러볼 뿐이다. 정상에는 표석이 둘인데 각각 남상과 신원에서 따로 세운 것이다.
하산은 왔던 길을 되돌아 나와 도로를 따라 내려서야 한다. 시멘트로 포장된 도로변에는 수많은 꽃이 자생하고 있다. 이번 야생초산행은 감악산 정상부 고원에 자생하는 희귀한 야생초를 보기위해서다. 도로 양쪽에는 쑥방망이와 기름나물, 마타리가 한창이다. 주차장처럼 사용하는 헬기장은 야생화전시장 같다. 흙이 드러나 뿌리를 내릴 수 있는 곳이면 야생초가 빈틈없이 자란다. 키가 작은 ‘앉은좁쌀풀’이 점점이 자리한 사이로 막 꽃봉오리를 맺기 시작한 물매화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용담과의 쓴풀과 자주쓴풀, 용담도 군데군데 모여 있으나 아직 철이 일러 꽃을 보기위해서는 더 기다려야 할 것 같다.
‘앉은좁쌀풀’은 현삼과의 풀로 반기생식물이다. 멀쩡하게 생기고 다른 풀과 달라 보이지 않지만 현삼과의 며느리밥풀처럼 다른 식물에 기대어 사는 반더부살이식물다. 사는 곳은 높은 산의 고원지대로 햇볕이 비교적 잘 드는 곳을 좋아한다. 이곳 감악산은 ‘앉은좁쌀풀’의 군락지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많이 자생한다.

헬기장을 지나 작은 오르막을 넘어서면 고랭이 채소밭이 넓게 펼쳐진다. 밭은 대부분 비어 있고 좁은 면적으로만 삼백초와 약모밀 등 약초가 심어져 있다. 채소밭 맞은편 남쪽사면은 최근에 조성한 잣나무 밭이 흡사 초원처럼 펼쳐져 있다. 잣나무 사이로 허리까지 자란 풀이 빈틈없이 뒤덮고 있지만 함께 성장한 야생화가 즐비하다. 마타리와 미역취, 등골나물, 산부추와 오이풀이 풀 위까지 높게 꽃대를 올리고 자란 것들이다. 이들 사이에서 특별하게 비교적 큰 보랏빛 꽃봉오리를 달고 있어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야생화가 ‘솔체꽃’이다.
‘솔체꽃’은 산토끼꽃과의 두해살이풀로 깊은 산에 드물게 자라는 야생화다. 야생화를 찾아나서는 사람이라면 ‘솔체꽃’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우리지역에서 ‘솔체꽃’을 찾기란 쉽지 않다. 아마 주변에서 찾을 수 있는 곳은 감악산이 유일하고 이곳이 자생지의 남방한계로 여겨진다. 비와 바람에 꽃은 많이 상했지만 자주꽃방망이를 만날 수 있었던 것도 감악산이 고산식물의 자생여건에 맞았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하산하는 길이 흙길이 아니고 포장된 도로라서 못 마땅할 것도 같지만 쉬엄쉬엄 수많은 야생초를 관찰하며 내려서는 재미가 크다. 길 양옆은 햇빛이 잘 드는 곳이라 식생 또한 다양하고 풍부하다. 키 작은 물매화와 앉은좁쌀풀은 물론이고 자주쓴풀과 기름나물, 처녀바디와 ‘선이질풀’이 곳곳에 군락을 이루고 있는 모습이 이채롭다. 특히 ‘선이질풀’은 감악산의 높은 곳에서부터 중턱까지 자생하며 늦은 꽃을 피우고 있다. 쥐손이풀과인 ‘선이질풀’은 보통 꽃줄기 끝에 꽃이 두 개씩 달린다. 다른 이질풀 종류와 비교하여 식물체가 곧게 서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감악산 정상으로 이어지는 길가에는 수많은 종류의 야생화가 자생하고 있음에도 구절초를 따로 가꾸어 놓았다. 중요한 것은 도로를 정비하면서 자생지가 훼손되었던 곳에도 어김없이 물매화와 자주쓴풀, 앉은좁쌀풀 등이 자리 잡기 시작했고, 차량이 드나들며 다져졌던 공터에서도 새싹이 돋고 계절에 따라 꽃이 핀다. 자연의 강한 복원력을 관찰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감악산 야생초산행은 가족과 함께 하기 좋은 산이다. 산행이 아니라도 도로를 따라 오르내리며 길가의 야생초를 관찰하며 걷기 좋은 곳이기도 하다. 감악산 회기산행에 걸리는 시간은 3시간 거리는 5km남짓하다.
※찾아가는 길= 88고속도로 거창 IC > 거창읍 김천사거리 > 1084번도로 남상면 무촌리 > 신원면 연수사 방향 > 연수사
(농협경남지역본부 부본부장)
Write : 2010-09-28 00:1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