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죄가 없었더라면, 하느님께 대한 신뢰가 끊어지는 일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부모가 자녀들에게 육적인 생명을 주지 않았을 것이고, 그 대신 하느님에 의해 창조된 자녀들의 영혼을 위한 은혜로운 생명의 보유자이며 전달자가 되었을 것이다.
“원초적 은총”이라 부를 수 있는 생명의 이 영적인 흐름이, 자의적으로 하느님의 명령을 거스른 첫 인류의 결정에 의해 영원히 중단되고 말았다. 그 “원초적 결손”으로 표시된 영혼이 세례성사 안에서 새 아담이신 그리스도를 통해 “성별되는 은총”을 받는다. 참으로, 새로운 탄생이 예수님께서 니코데모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일어나는 것이다.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요한 3, 5)
주님의 이 말씀은 정말로 극히 혁명적이다. 왜냐하면 물과 성령으로 새롭게 태어난다는 것이 육신의 생명이나 죽음과는 상관없기 때문이다. 세례성사는 영원한 생명과 관계있다. 달리 말하면, 진정한 하느님의 생명과, 하느님의 사랑과, 하느님께서 인간의 마음속에 거하시는 것과 관계가 있다. 새로 탄생하는 이 은총은 우리 모두가 소망하는 하느님 나라로 가는 첫 관문이다! 바로 여기서부터, 하느님과 사랑하는 자녀 사이의 생명의 흐름이, 교만에 의해 중단된 생명의 흐름이 새롭게 연결될 수 있는 것이다. 나이에 상관없이 인간은 세례성사의 은총에 의해 완전하게 하느님의 자녀가 될 것이고, 그럼으로써 하느님 약속의 상속인이 될 것이다. 세례를 받음으로써 그리스도의 신비체인 교회의 구성원이 되고, 교회를 통해 구원의 온갖 보화에 접근할 수 있다. 그 보화는 특히 성사들을 통해 넘치도록 흘러나온다. 하느님께서 우리에 대한 당신의 열렬한 사랑을 이보다 더 강력하게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이 또 있겠는가?
세례성사를 받음으로써 그 사람의 영혼에서 원죄가 사해진다. 특히 성인 영세자는 그때까지 그가 지은 모든 죄와 그에 따른 벌이 깨끗이 지워진다. 그러면 성삼위 하느님께서 완전히 깨끗해진 그 영혼 안에 거하시게 된다. 그러므로 새 영세자의 가슴에 입 맞추는 행위는 특히나 아름답다. 위대한 성인이며 교회박사인 아빌라의 데레사 성녀는 하느님께서 자신의 영혼에 거하심을 온전히 느끼고 깨닫고는 이렇게 썼다.
“내 영혼의 작은 궁전이 그토록 위대하신 임금님의 처소라는 것을 더 일찍 알았더라면, 그분을 그렇게 자주 혼자 계시게 하지는 않았을 텐데……."
베트남의 공산정권에 의해 구엔 반 투안 추기경(1928-2002년)은 13년 동안 옥살이를 했으며 그중 9년은 독방에서 지냈다. 옥중에서 작은 종이쪽지에 쓴 묵상들이 <희망의 기도 Prayers of Hope>라는 작은 책으로 엮어졌다. 거기서 그는 자신의 영적 자녀들에게 이렇게 썼다. "가끔 여러분의 가슴에 손을 얹고 이렇게 말하십시오. '하느님께서 내 안에 계시다. 내 안에!' 그러면 점점 하느님께서 당신 현존의 기쁨을 여러분이 조금 맛볼 수 있게 하실 겁니다.”
영적인 새 탄생인 세례성사는 당연한 말이지만 평생 오직 한 번만 받을 수 있다. 그리고 지워지지 않는 인호가 그 영혼에 새겨진다!
보통은 주교나 사제나 부제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성사를 행한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창조하신 모든 영혼의 아버지로서 영적 자녀들에게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모든 특권을 주시고자 했기에, 평신도들도, 나아가 다른 신앙을 가진 자라도 아니 무신론자라도 위급할 시에는 세례를 행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교회가 규정한 바대로 행하는 것이다. 즉, 예비자에게 물을 부으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나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당신에게 세례를 줍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하늘에 오르시기 전에 당신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 19-20)
성사적인 세례를 줄 가능성이 없을 때, 당연히 하느님께서는 당신 전능과 자비로써, 자신의 뜻대로 성실하게 행동하는 사람과 선을 원하고 선을 행하는 사람들을 원죄에서 해방하실 수 있고, 그 사람들 안에 거하실 수 있다. “그런 사람들이 세례의 필요성을 알았더라면 분명히 세례를 받고자 했을 것이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1260항)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례성사의 의미를 모든 사람들에게 전하는 일이 왜 중요한지는, 사람들이 하느님의 은총을 알 때만이 세례를 청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례를 받고자 했으나 성사 받기 전에 죽은 사람들에게는 소위 말하는 “화세火洗”(열망세례)를 행할 수 있다. (가톨릭대사전-하느님을 열렬히 사랑하는 자가 상등통회를 하고 성세성사를 받을 지향을 가질 때 그는 성세성사를 받기 전에 이미 의화된다는 교리, 자기 열성으로 자신의 죄를 씻는다 하여 '화세'라 부른다.)
세례를 준비하고 있는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위해 박해를 받고 그리스도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버리면, 그들은 순교자로서 “혈세血洗”(자기 피로써 자신의 죄를 씻음)를 받는다. 그러므로 “세례는 하느님의 가장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선물이다.”라는 나지안즈의 성 그레고리오의 말은 참되다. 세례는 하느님께서 당신 자녀에게 주시는 하느님 사랑의 가장 위대한 표현이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자녀들이 당신 왕국에서 당신과 함께 무엇이든 함께하길 원하시고, 당신 자녀들이 행복하게 되기를 바라신다.
<Triumph of the Heart no. 97>에서
이선영 옮김
오순절에 베드로가 군중에게 말했다.
“회개하십시오. 그리고 저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
여러분의 죄를 용서받으십시오.
그러면 성령을 선물로 받을 것입니다.”
루카 사도는 계속 쓴다.
“베드로의 말을 받아들인 이들은 세례를 받았다.
그리하여 그날에 신자가 삼천 명가량 늘었다.”
(사도 2, 38. 41)
(마리아지 2024년 7•8월호 통권 246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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