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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파치의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1607년 5월 25일)
플로렌스 귀족 출신으로 1566년 플로렌스에서 태어난 카테리나 루크레지아 드 파치 (Caterina Lucrezia de' Pazzi)는 열 살 되던 해의 첫영성체 때에 이미 동정 서원(童貞誓願)을 발하여 수녀회에서 하느님께 헌신할 것을 희망하였다. 부모님의 반대를 극복하고 열여섯 살 되던 해, 그러니까 가르멜 (Karmel)의 위대한 개혁자인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가 죽던 1582년에 플로렌스에 있는 가르멜 수녀회에 들어갔다.
플로렌스에 있는 많은 수녀회 중에서 이 젊은 백작 집안의 딸은 가르멜 수녀회를 선택했는데 그 이유는 이 수녀회의 수녀가 당시에 매일의 성찬식에 있어 가장 드문 특권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바로 이 특권은 이제는 마리아 막달레나(Maria Magdalena von Pazzi)라는 이름을 쓰고 있는 가르멜 수녀회의 이 젊은 수녀의 은총으로 가득 찬 신비로운 일생에 매우 적극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것은 그녀의 완전성에 대한 노력에서뿐 아니라 불쌍한 영혼들에 대한 효과적인 도움에 있어서도 그러했다. 파치의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의 일생에서 그녀에게 주어진 환영은 이때부터 나타나기 시작했고 불쌍한 영혼에 대한 그녀의 헌신적인 사랑이 그들의 해방에 큰 역할을 하기에 이르렀다.
예비 수녀의 기간 중에 가르멜 수녀회의 이 젊은 수녀는 중병을 앓게 되었다. 사람들은 그녀가 회복될 가망이 없다고 생각했으며 그녀는 병상에서 미리 수도 서원(修道誓願)을 치르도록 허락을 받았다. 그녀는 그것을 커다란 기쁨 속에 하느님께 대한 마지막 헌신을 준비하는 자세를 가지고 봉행하였다. 그때 그녀는 처음으로 두 시간 동안 황홀경 속에 빠지게 되었다.
그때부터 40일 동안 계속해서 매일 아침 성체를 받아 모시게 되었다. 이때 그녀의 마음속에는 독특한 방식으로 "사랑받지 못한 사랑(Amore non amato)"에 대한 사랑이 싹텄다. 그것은 그녀에게 있어서 끝없이 사랑하는 하느님과 하느님의 육화(肉化)된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 자신을 뜻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서 파치의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는 죽기까지 지속적으로 탈혼 상태의 신비한 황홀경을 체험하였다. 그 신비한 세계에서 그녀는 빛과 사랑의 바다로 충만되어 있었다. 1585년에서 1590년 사이에 성녀는 육체적 및 정신적인 심한 고통을 겪으며 스스로 정화되었는데 그때 주께서는 그녀에게 "연옥에 있는 불쌍한 영혼들을 위로(per refrigerio dell'anime del Purgatorio) 해야 하는 일에 대해 친히 알려 주셨다.
그녀가 달혼 상태의 황홀경과 환영 속에 있을 때에 말한 내용 들이 그것을 받아 쓰도록 특별히 위임받은 몇몇 수녀들에 의해서 기록되었다. 그 말들은 1960년에서 1966년 기간 중에 처음 원고 그대로 발행되어 오늘날 일곱 권의 책을 이루고 있다." 그 안에는 정신적인 생활에 관한 여러 가지 주제들이 묘사되어 있다. 이 저술의 핵심적 내용들 중에는 삼위 일체와 하느님께서 인간이 되신 것에 대한 신비, 성찬식의 신비, 속죄와 구원의 힘을 지닌 예 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의 신비 그리고 특히 무엇보다도 당시에 종교 개혁가들에 의해서 부정되고 공격을 받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트리엔트 공의회에서 새롭게 가치를 되찾은 연옥의 불쌍한 영혼들이 겪는 내세의 정화의 진리, 그리고 당시에 이 불쌍한 영혼들을 돕기 위해 희생을 봉헌했던 나그네, 순례 교회의 신자들의 이야기가 들어 있다.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가 자신의 황홀경과 환영 속에서 연옥과 불쌍한 영혼들에 대하여 본 많은 것들 중에는 특히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마리아 막달레나의 오빠인 알라만노(Alamanno)가 1587년 6월 14일에 죽었는데 그녀는 어느 날 저녁에 몇몇 동료 수녀들과 함께 수녀원의 정원에서 오락을 하고 있었다. 그때 그녀는 갑자기 경련을 일으키며 여러 번 이렇게 외쳤다. "네, 나는 언제든 그 안을 돌아볼 용의가 있어요!" 이 말의 뜻을 옆에 있던 수녀들은 알 수가 없었지만 그녀는 이 말로써 자신의 수호천사가 연옥으로 통하는 길을 함께 가 보자고 초대하는 것에 대해 응하겠다는 의사를 실제로 밝힌 것이다.
그리고 나서 그녀는 곧 이 고통에 찬 여행길에 발을 내디뎠는데 그것은 나중에 감동적인 묘사로 기록되었다. 성녀는 수녀원 정원에서 심한 경련 증세에도 불구하고 두 시간 가량을 돌아다니고, 멈추어 서기도 하면서 수호천사가 특별히 그녀에게 주의를 환기시키는 것들을 긴장 속에서 진지한 시선으로 관찰했다. 그러면서 그녀는 자주 손을 비비고 눈앞에 전개되는 것들을 보며 탄식과 경악 속에 얼굴이 창백해지곤 했다. 때때로 그녀는 어떤 짐에 눌린 듯 쓰러지기도 했다. 그녀의 얼굴과 태도에는 공포가 역력히 드러났다. 그녀를 옆에서 보살피던 수녀들은 때때로 그녀가 이렇게 소리치는 것을 분명히 들었다. "아, 얼마나 혹독스러운 고통인가! 자비를! 주여! 자비를 베푸소서! 오, 나의 구세주의 피가 이 불쌍한 영혼들 위에 떨어져서 그들의 고통을 덜어 주시기를! 오, 불쌍한 영혼들이여! 얼마나 가혹한 모습들인가! 그런데도 나는 그대들이 순종하며 고통의 한복판에 있으면서도 만족하 게 참아 내는 모습을 보는구나!"
또 성녀는 이렇게 외쳤다. "오, 나는 이 불쌍하게 고통받는 이들을 이처럼 가까이서 보게 되지 말았어야 하는 건데!" 그러나 그녀는 귀를 기울여야 했고 영신적으로 더욱 깊은 심연을 향해 내려가야만 했다. 몇 걸음 못가 그녀는 다시 멈추어 서서 전신을 부르르 떨었다. "성직자들과 수도자들까지도 이 무서운 곳에 있다니! 아, 나의 하느님, 그들이 고난 속에 있는 것을 더 이상 지켜 볼 수가 없습니다!"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는 성직자들에게 지정된 장소에서 떠난 뒤에, 다시 무지한 까닭에 죄를 지은 사람 들의 영혼이 머무는 곳으로 오게 되었다. 이곳은 조금은 덜 참혹했다. 이곳에서 성녀는 자기 오빠의 영혼을 발견했다. 그녀는 외쳤다. "오, 나의 불쌍한 오빠! 얼마나 무서운 고통 속에 있나요! 하지만 참으셔야 해요. 이러한 고난을 거쳐 영원한 행복의 길로 인도되리라는 것을 오빠는 잘 알고 있을 거예요!" 잠시 후에 성녀는 이렇게 덧붙여 말했다. "나는 알아요. 오빠는 이 무서운 고통을 자진해서 기꺼이 받고 있기 때문에 정말로 불행한 것은 아니지요. 오빠가 아직 세상에 있을 때 오빠는 내 말에 귀를 기울이려고 하지 않았어요. 내가 오빠에게 경고와 충고의 말을 했을 때 오빠는 그냥 흘려 버렸지요. 이제 오빠는 내가 오빠의 말에 귀를 기울이도록 바라고 있는 것처럼 보이시는군요. 내게서 무엇을 바라시나요?" 그는 누이에게 간청해서 추모 미사와 함께 성체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성녀의 여행은 계속되었다. 몇 걸음을 더 가서 그녀는 더욱 불행한 영혼들을 보게 되었다. 그녀는 부르짖었다. "이곳은 정말 무시무시하구나.. 아, 나의 하느님 여기서 이토록 가혹하게 괴로워하는 저 불행한 자들은 대체 누구란 말입니까?" 그녀의 물음에 대답이 주어졌다. 그들은 겉으로 신앙심이 깊은 체하며, 실제로는 위선을 자행한 사람들이었다. 더 나아가서 그녀는 인내하지 못하고 불순종했기 때문에 고통받는 영혼들을 보았다. 그녀가 이 영혼들에 가까이 접근하면서 그녀는 이상한 몸짓을 했다. 그녀는 고개를 땅까지 깊숙이 숙이고 시선은 한 군데에 고정시킨 채 고통스러운 한숨을 내쉬었다.
곧 그녀는 몹시 충격을 받은 듯이 보였다. 그녀는 연옥에서도 거짓말쟁이들이 정화를 받는 장소에 도달해 있었다. 그들이 겪는 고통은 엄청난 것이었다.
그녀는 다시 심약함과 게으름에 의해서 죄를 지은 자들이 머무는 곳으로 왔다. 조금 더 멀리 가서 그녀는 인색한 자들이 머무는 곳을 발견했고 마침내 음란의 죄를 짓고 그들의 죄를 후회하며 참회는 했지만 충분히 보속하지 못한 자들이 머무는 곳을 발견했다. 여기서 성녀는 자신의 심장이 꽉 죄여 드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이 장소를 아무 말없이 지나쳤다. 그러나 그녀가 이 끔찍한 장소를 떠나면서 주님께 여쭙는 말이 들렸다. "나의 하느 님, 나의 주님이시여, 왜 저로 하여금 이 끔찍한 광경을 보게 하시나이까? 내가 이 불쌍한 영혼들에게 더 많은 동정심을 베풀고 앞으로 그들을 위해 더 많은 기도를 드리라는 뜻이온지요? 아닙니다. 이제 분명히 깨닫겠습니다. 주께서는 저로 하여금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지순(王)하오신 당신을 더욱 잘 인식할 수 있도록 만드시고자 이 일을 원하신 줄 알겠나이다!"
음란한 자들이 고통받는 장소를 떠나서 성녀는 마침내 교만한 자와 명예욕에 사로잡혀 있는 자들의 장소로 오게 되었다. 여기서는 측량할 수 없을 정도의 고통과 전율 속에 흉칙스런 암흑이 온몸을 에워쌌다.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의 말이 들렸다. "오 불쌍한 사람들, 다른 사람들의 위에 군림하려다가 이제 이처럼 끔찍한 암흑 속에서 지내야 하는구나!"
그녀는 이제 살아 있을 때 무한하신 은총의 주님, 우리 하느님께 냉담했거나 무관심하게 지냈던 이들이 머무는 곳에 왔다. 지상에 있을 때 그들은 그들의 창조주이시요, 아버지이시며 구세주이신 하느님께 대한 사랑을 지니지 않았으며, 하느님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결코 알지 못한 사람들의 영혼 이 머무르고 있는 곳을 보았다. 이 불쌍한 영혼들의 고통을 보면서 성녀는 하느님께 대해 속죄하는 사랑의 의무를 다할 것을 마음 깊이 새롭게 다짐하였다.
성녀는 이제 마지막으로 지상에서 별 다른 큰 죄를 범하지는 않았지만 작은 죄들이 쌓인 자들의 영혼이 정화되는 장소에 이르렀다.
성 마리아 막달레나는 두 시간 가량의 여행을 마치고 신비한 탈혼 상태에서 벗어나 제정신을 되찾았다. 그녀는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몹시 피로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한 상태는 연옥의 환영들이 그녀에게 남긴 전율적인 인상으로부터 비롯된 것으로 어느 정도 회복되기까지 여러 날 동안 지속되었다.
그녀는 죽은 오빠의 영혼을 구제하는 길을 생각해 보았다. 그녀가 오빠를 위해 백일곱 번의 미사 성제를 봉헌할 때까지 그가 연옥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면 그것은 참으로 무서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그래서 주께 자기 오빠 대신에 연옥의 형벌을 속죄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끊임없이 기도했다. 연옥의 실상을 보면서 너무나 깊은 충격을 받은 그녀는 수녀원장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원장님, 하느님 자신이 제게 그처럼 무섭게 고통 받는 것을 보여주시지 않았더라면 저는 결코 그 사실을 믿지 않았을 것입니다."
다른 기회에 성녀는 연옥에 대해 비슷한 체험을 이야기했다. "나의 하느님, 나는 그처럼 가혹한 일을 목격한 뒤에 연옥의 고통을 가혹하다고 말하기보다는 오히려 열망할 가치가 있는 것으로 봅니다. 연옥의 고통은 불쌍한 영혼들을 말할 수 없는 지복(至福)으로 이끌어 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연옥의 형벌에 관한 한 사람들은 아무리 작은 죄일지라도 경시 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은 파치의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의 일생에 관한 다음의 보고에서 잘 드러나 있다. "그녀가 어느 날 성체 성사를 봉헌하며 기도하고 있을 때 그녀는 수녀회의 한 수녀로 있다가 죽은 수녀의 영혼이 솟아오르는 것을 보았는데, 성녀에게 계시된 바와 같이 그 수녀는 수녀회의 규칙에 명기된 거룩한 성찬식을 여러 번 게을리 했다. 이 수녀는 그 외에는 대체로 수녀회 규칙을 성실하게 따랐고 성덕을 풍성히 베풀며 생활했었다. 그러나 성찬식을 게을리 한 탓으로 그녀는 연옥에 가게 되었던 것이다."
성녀는 또 다른 수녀에 대해서도 보고를 남겼는데 이 수녀는 스스로 생각할 때 아주 경미한 잘못으로 넘겨 버린 다음의 세가지죄 때문에 연옥에서 속죄를 해야만 했다. 그녀는 일요일과 축제일에 불가피한 사정도 없이 몇 번을 여성의 일상적인 일을 하며 그날을 소홀히 보냈다. 그녀는 인간을 두려워하는 약점이 완전히 불식되지 않았기 때문에 수녀원 상황과 각자의 영신적 사정에 대해 거룩한 중재 기도에 의지하면서 수녀원장에게 통지하는 일을 포기해 버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녀는 자기 친척들에 대해 지나친 애착을 보였었다. 이러한 세 가지의 전혀 중요해 보이지 않는 죄로 인해 이 수녀가 아주 심하게 연옥의 고통을 받았다. 하느님께서는 이 수녀가 다른 규칙을 준수했고 그 밖의 일에는 성실했으며 동료 수녀들에 대해서도 너그러운 사랑으로 대했지만 이 수녀가 씻어 내야 할 얼룩진 부분들에 대한 연옥의 형벌을 경감해 주지는 않으셨던 것으로 보여진다.
파치의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는 매일같이 적어도 오십 번씩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그 아들의 보배로운 피를 희생으로 바치는 기도를 일상적인 일로 봉행하였다. 주께서는 어느 날 친히 계시를 내리셨다. 곧 그녀의 이러한 경건한 시련을 통해서 수많은 죄인들이 개심하게 되고 수많은 불쌍한 영혼들이 연옥에서 구제되었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 공로와 희생으로 인하여 사람들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지상의 모든 재화와 비교할 수 없는 가치 를 지닌 선물을 바치고 있다고 전해 주셨다. 지극한 고통 중에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흘리신 피가 확실히 어떤 경이로운 효과를 이룩하는 이 같은 단순하고 사랑에 가득 찬 축복의 통로라면, 성찬식의 제물을 통해 구세주의 십자가 희생은 더욱 진실하고 효과적으로 현실 속에 재현되는 것이다.
1590년 8월 24일에 성녀의 어머니인 마리아 드 파치 결혼 전 성은 부온델몬테 (Buondelmonte) -가 죽었다. 그녀는 고귀한 성품과 깊은 신앙심을 가진 경건한 부인이었다. 성녀는 죽은 자기 어머니의 영혼 또한 마찬가지로 연옥에 있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그녀는 동시에 어머니가 살아 생전에 인간에게 베풀었던 헌신적인 선행으로 인하여 얼마나 큰 기쁨과 지복이 천국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가도 보게 되었다. 1590년 9월 7일, 죽은 지 불과 14일 만에 성녀는 자기 어머니의 영혼이 천국으로 올라가는 것을 보았다. 파치의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는 그동안에 죽은 어머니를 위해 지극한 열성으로 기도와 희생과 보속을 실천했다. 무엇보다도 예수 그리스도의 지극히 보배로우신 보혈의 희생을 바치는 추도 미사의 봉헌에 전심 전력하였다. 1607년에 죽은 이 성녀는 연옥에 있는 불쌍한 영혼들을 돕는 수단으로 교회 이외의 것을 생각할 수 없었다. 당시에 교회는 무엇보다도 트리엔트 공의회에서 연옥 영혼을 돕는 일을 하느님의 뜻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파치의 성녀 마리아 막 달레나는 모범적 행동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임으로써 불쌍한 영혼들을 효과적으로 돕는 데 기여하였다. 이에 대하여는 두 명의 성인이 알려졌다. 곧 성 알퐁소 폰 리구오리(Alfons von Liguori, 1787년 8월 1일 사망)와 성 요셉 베네딕도 코톨레고 (Josef Benedikt Cottolengo, 1842년 4월 30일 사망)는 파치의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에게 크게 영향받은 성인들이다."
1. 야곱 렘(1618년 10월 12일)
"죄 없이 순수하고 밝은 영혼, 죽을 때까지 깨끗하고 슬픔도 없이 세례의 순결한 빛 속에서 어린 아이처럼 헌신적이고 양심적으로 주님을 섬긴 충실한 종, 깊은 고요속에 살다 간 성인," 1546년 보덴 호숫가의 브레겐츠(Bregenz)에서 여관집 주인 아들로 태어난 이 사제에 대해서 전기 작가는 위와 같이 적고 있다.
야곱 렘(Jokob Rem)은 당시 개혁의 과도기를 겪고 있던 마리아 수도회 연합회의 선구적인 발전의 촉진자일 뿐만 아니라, 또한 불쌍한 영혼들의 둘도 없는 벗이었다. 바이에른의 딜링엔 (Dillingen)에 있는 대학에서 그는 인문 교육을 받았다. 그곳에서 그는 신학 연구를 시작했으나-아마도 성 페트루스 카니시우스 (Petrus Canisius)의 영향을 받아 곧 예수회에 들어갔다. 그는 자신의 수련기를 로마에서 성 스타니슬라우스 코스트카(Stanislaus Kostka)와 함께 보냈다. 고향으로 돌아온 후에 야곱 렘은 자신의 신학 연구를 마무리지었고, 1573년 아우크스부르크(Augsburg)에서 사제로 서품되었다. 그 후 그는 딜링엔의 신학교 교감이 되었으며, 나중에 뮌헨의 예수회 대학과 잉골 시(Ingolstadt)의 이냐시우스 대학에서 봉직하였다. 그는 교단 성직자들 중에서 열성적인 영적 지도자로서 그리고 마리아 대학생 연합회 회원의 지도자로서 활발하게 자신의 역량을 발휘했다. 마리아 대학생 연합회는 경건한 열성과 깊은 믿음에서 나오는 진실한 마리아 공경을 통하여 그리고 무엇보다도 대화식의 수업으로 진행되는 "마리아에 관한 대화(Colloquium Marianum)"를 통해서 발전시켰었다. 33년 동안 야곱 렘은 잉골 시에서 대단히 축복받은 활동을 전개했다. 그의 영신적인 지도 아래 무엇보다도 "세 가지 기적의 어머니" 마리아의 상 앞에서 마리아의 상은 로마에 있는 성 마리아 마지오레(S. Maria Maggiore)의 성모상의 모사품인데 예수회 총장인 성 프란츠 보르기아스(Franz Borgias)의 선물이었다 연구를 하는 젊은이들의 종교적인 삶이 마리아께 대한 찬미와 그분의 삶을 본받으려는 노력을 통해서 완전성을 향해 높은 단계로 발전되어 나갔다. "마리아에 관한 대화"에 참가할 수 있는 자격은 더 이상 죄를 짓지 않고 사는 대학생들에 한했다. 무거운 죄를 범한 한 불행한 학생은 그 순간 이후부터는 이 수업에서 쫓겨났고, 참회와 완전한 속죄를 통해 죄가 사해지기까지는 다시 참석하지 못하게끔 되어 있었다. 초자연적인 힘에 의해서 야곱 렘은 마리아 연합회의 구성원들의 영혼의 상태를 아주 먼 곳에서나 혹은 그들이 죽음에 임하고 있는 순간에 알고 들여다볼 수 있었다. 마음속을 들여다보는 것은 물론이고 그는 불쌍한 영혼들과도 접촉이 있었다.
야곱 렘의 생애에 대한 탁월하고 비판력을 갖춘 전문가이면서 교회와 수도회의 역사 저술가인 부르크하르트 슈나이더(P. Burkhard Schneider SJ. 1976년)는 이 사제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이 시대의 기적에 대한 믿음과 비범한 사건에 대해서 보이는 편파적 시각과 마찬가지로 렘 신부의 생애와 활동에 관한 동시대의 문헌에도 많은 기적이 보고되지 않고 있다. 이러한 기적의 보고는 (사람들이 이 이야기의 역사적인 신빙성에 대해 많은 제한을 두고자 한다면) 사람들에게 조용히 활동하면서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이 수사 신부를 어떤 관점에서 보았는가를 분명히 밝혀 줄 것이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직접 읽을 수 있는 상태를, 이 영혼을 인식하는 것은 확실히 자연스럽게 설명될 수는 없는 일인데, 특별한 것으로 쓰기도 했다. 그 외에도 미래에 일어 날 사건을 미리 예언한 특별한 인물의 개인적인 운명일 뿐 아니라 일반적인 시대 상황이기도 했는데, 아무튼 여기에는 30년 전쟁과 그 이후의 일에 대한 구체적인 '예측'도 들어 있다. 렘 신부와 동시대를 살다 간 사람들 중에 많은 사람들이 보고하는 바에 의하면 그는 연옥에서 고생하는 죽은 이들의 처지에 특별한 관심을 갖고 있었다. 사람들이 그를 '불쌍한 영혼들의 벗'으로서 믿고 있는 것처럼 그는 죽은 이들의 운명에 대해 특별히 정통해 있었으며 이들을 위한 그의 기도가 영험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믿음을 말해 주는 특이한 또 하나의 예는 18세기에 야곱 렘이 죽은 100년이 지난 뒤에 마리아 수업의 참가자들에게 널리 퍼진 동판화에 얽힌 이야기에서 찾을 수가 있다. '세 가지 기적의 어머니' 상 밑에 야곱 렘 신부가 기도석에서 무릎을 끓고 있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그 앞에는 연옥의 불길에 휩싸여 있는 일단의 죽은 영혼들이 기도하는 이 신부에게 손을 내밀고 있는 것이 보이며, 그의 기도에 따라 죽은 이들은 생기를 얻고 연옥의 불길에서 벗어나게 되는 그림이다. 이 그림에서 묘사된 것은 예수회에 속한 시인 야곱 비더만(P. Jakob Bidermann)이 야곱렘 신부의 사후에 지은 격언시 (Epigramm)에서 표현한 내용을 반영한 것이다. 그는 독일 예수회 소속의 가장 중요한 극작가이며, 1596 년에서 1606년 사이에 잉골 시에서 연구를 했는데, 그때 야곱 렘 신부와 친교를 나누게 되었다. 이 동판화는 이 시인이 써 놓은 글에 의해서 나중에 만들어진 것이다. 비더만은 이렇게 썼다.
나의 노래를 야곱에게 바치나니,
그가 흘리는 눈물은 강물처럼 끊임없이 흘러 고통받는 영혼의 주위에서 활활 타오르는 불의 열기를 진정 시키네...
떼지어 몰려와서 환영으로 있는 영혼들이 울면서 항상 탄원하는 바를 그는 들어주었네. 그는 자기 샘을 아낌없이 열고는 눈물의 비를 타는 불길 위에 마음껏 쏟아 부었네. 이제 그는 그들 무리 속에서 터져 나오는 천국의 환호를 듣건만!
그의 눈물은 고갈되고, 남김없이 말라 버리고 말았네! 이제 어느 다른 영혼이 그들의 보호자로 나타나 고통받는 연옥 영혼들을 위해 불길을 진정시키며 그 불길을 낮추어 줄 것인가?
1618년 10월 12일에 죽은 야곱 렘 신부에 대한 추도사가 잉골 시 대학 연감에 실렸는데 당시의 사람들이 그에 대해 일반적으로 확신하는 바를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우리는 올해 한 사람을 천국으로 보냈습니다. 그는 일반적인 견해에 따르면 성인이었으며... 그는 성덕을 높이 쌓은 사람으로서 자신의 겸손함 속에 온갖 진수를 감추고 있었고...' 1645년 교황은 죽은 이 야곱 신부 를 복자품에 올리는 예식을 준비하였다. ... "마리아에 관한 대화" 학교 설립 백주년 기념일 때에 야곱 렘 사제의 성유물(聖遺物)은 예수회원들이 묻히는 잉골 시의 십자가 교회 납골실에 있다가 이제는 '불쌍한 영혼들의 성당'으로 바뀐, 이 사제가 임종 때 쓰던 방으로 옮겨졌다... 1935년에 주교의 교구 예비 심사가 시작된 뒤에 야곱 렘의 유골은 성모 마리아 성당으로 다시 옮겨졌다."
피앗미희님이 카톡으로 보내온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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