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눈이 참 많이 내렸습니다. 참 보기가 좋았습니다. 하루종일 그 내리는 눈만 보고 싶었습니다. 하늘에서는 눈이 내립니다. 비도 내립니다. 이슬도 내립니다. 서리도 옵니다. 햇빛도 옵니다. 여러 종류가 내려옵니다.
그래서 이 땅에 놀라운 일들이 벌어집니다. 눈이 내려서 아름답기도 하지만 그 눈으로 인해 미끄러져 다치는 사람도 있고, 그 눈으로 인해 가뭄을 해결하시는 분도 있고 그 눈을 치우느라고 고생하시는 분도 있습니다.
눈뿐만 입니까? 비도 그렇고 햇빛도 그렇고, 이슬도 그렇습니다. 그것들로 인해 세상에는 수많은 일들이 일어납니다. 좋은 일도 일어나고 나쁜 일도 일어납니다. 어찌 자연만 그러하겠습니까?
농부가 뿌린 씨앗도 그러합니다. 무엇을 뿌리는가에 따라서 거두어들이는 것은 가지각색입니다. 하지만 농부만 씨앗을 뿌리지는 않습니다. 우리 모두는 씨앗을 뿌리는 자입니다. 씨앗을 뿌리는 자일뿐 아니라 씨앗이 자라는 밭이기도 합니다.
지금 우리가 보여주고 있는 모습은 우리 속에 자란 씨앗 때문입니다. 여러 씨앗이 내 속에 들어왔기에 지금의 나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 여러분 속에 무슨 씨앗이 자라고 있습니까? '모른다'고요! 그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부터는 우리의 삶에 어떤 씨앗이 뿌려지고 있는지 살펴봅시다. 어떤 씨앗을 뿌려야 할까요? 여러분은 어떤 씨앗이 뿌려지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 나라는 곧 우리가 살아야 할 나라 곧 우리가 살아야 할 삶을 말씀합니다. 우리의 삶은 무엇입니까? 어떤 삶을 살아야하며, 어떻게 삶을 살아야 합니까? 그것은 씨 부리기와 그리고 그 씨앗이 자라나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1.씨앗은 뿌려집니다.
씨앗은 누가 뿌립니까? 특별히 삶의 씨앗은 누가 뿌립니까? 사람이 뿌립니다. 곧 내가 뿌립니다. 모든 씨앗은 내가 뿌립니다. 내가 뿌리지 않고는 절대로 그 씨앗을 뿌릴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사람들은 말합니다. 누구 때문에 나에게 이런 저런 일이 생겼다고 합니다. 정말 그럴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씨가 뿌려지는 곳은 내 마음입니다. 그리고 내 마음은 내가 열고 닫습니다. 그 누구도 내 마음을, 내 마음을 열 수 없습니다. 내가 열지 않는 한---
좋은 씨앗도 있고 나쁜 씨앗도 있습니다. 세상에는 여러 씨앗이 있습니다. 풀씨도 있고, 가시나무 씨도 있고, 독초 씨도 있고, 독버섯 포자도 있습니다. 하지만 사과나무 씨도 있고 볍씨도 있고, 고구마나 감자도 채소 씨앗도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마음 밭에는 많은 씨앗들이 심겨질 수 있습니다. 사랑의 씨앗도 있고, 지혜의 씨앗도 있고, 미움의 씨앗도 있고, 불평과 원망의 씨앗도 있고, 희망의 씨앗도 있고 절망의 씨앗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마음의 밭은 세상의 밭과 마찬가지로 나쁜 것은 잘 자란다는 사실입니다. 세상의 밭은 좋은 씨앗보다 나쁜 씨앗을 잘 자랍니다. 누가 가꾸지 않아도 잘 자랍니다. 풀이 자라는 것을 보십시오. 아카시아 나무 같은 나무들을 보십시오.
미움의 씨앗이 여러분의 마음에 심겨졌을 때 놓아두면 놓아둘수록 잘 자랍니다. 절망의 씨앗도 그렇습니다. 슬픔의 씨앗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좋은 씨앗은 그렇지 않습니다. 희망의 씨앗을 잘 죽습니다. 사랑의 씨앗도 잘 죽습니다.
어떤 경우는 씨앗에서 싹이 나기도 전에 사라져 버립니다. 어떤 경우에는 자라다가 죽어 버립니다. 방해하는 세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경우는 그것을 억누르는 것들이 있어서 자라다가 맙니다. 힘을 잃어버리고 맙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 씨의 비유를 해 주시면서 밭의 비유를 먼저 말씀해 주셨습니다. 뿌리는 씨보다 중요한 것은 밭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특별히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씨앗은 다 좋은 씨앗입니다. 하지만 씨앗이 좋다고 해서 다 잘 자라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씨앗을 뿌려야 합니다. 무슨 씨앗을 뿌려야 합니까? 그것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씨앗을 뿌려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어떻게 씨앗을 주십니까? 말씀으로 주십니다. 자신의 삶으로 주십니다.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내 육신의 말이 아닌, 세상의 말이 아닌 주님의 말
씀을 들어야 합니다. 그 말씀을 통해서 씨앗이 우리 속에 자라나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배를 잘 드려야 합니다.
예배를 통해서 우리가 씨앗을 얻게 됩니다. 예배를 통해서 씨앗을 얻지 못했다면 그는 예배를 드리지 못한 것입니다. 특별히 예배를 통해서 우리는 좋은 씨앗을 얻어야 합니다. 어떤 이는 예배를 통해서 엉뚱하고 잘못된 씨앗을 얻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예배가 주께로 향하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야 하는데 엉뚱하게 세상을 만나고 육신을 만나다 보니 좋은 씨앗을 얻지 못하고 자라서는 아니될 엉뚱한 씨앗이 자라게 됩니다.
2.씨앗은 시간이 걸려서 자랍니다.
'우물에서 숭늉 찾는다'는 속담이 있듯이 씨앗에서 열매를 찾을 수는 없습니다. 오늘 씨앗을 심었다고 해서 곧바로 그 씨앗에서 열매가 열리지 않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나야 싹이 납니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나야 그 싹에서 줄기가 생깁니다.
그리고 또 오랜 시간이 지나야 그 줄기에 잎에 붙고 그 잎을 통해서 꽃이 피고 열매가 맺게 됩니다. 수 십일이 지납니다. 어떤 씨앗은 수 백일이 지나기도 합니다. 그래야 그 씨앗을 통해서 열매를 얻을 수 있습니다.
말씀의 씨앗이 내 안에 심겨졌다고 해서 금방 무슨 일이 생기지는 않습니다. 어제와 오늘이 똑같이 지나갈 수 있습니다. 모레도 역시 똑같이 지나갈 수 있습니다. 그러다가 싹이 나옵니다. 그 싹도 특별하지 않습니다.
약해 보입니다. 그것에 무엇이 생길 것 같지 않습니다. 언제 자라고 언제 그것에 열매가 맺힐지 알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어제와 별로 다를 바 없는 모습으로 삽니다.
아니 내일도 특별히 달라지지 않습니다. 아무런 소망이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농부가 씨를 뿌려놓고 조바심을 내지 않듯이 우리도 그래야 합니다. 예수님이 내 안에 들어왔다면 하나님의 말씀이 내 안에 들어왔다면 우리는 인내해야 합니다.
신앙에서 인내는 정말 중요하고도 또 중요합니다. 인내하지 않고서 신앙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특별히 농부의 특징은 인내입니다. 씨를 심어놓고 인내하지 않는 농부는 없습니다. 농부를 씨를 뿌리고서 가을까지 기다립니다. 그렇기에 열매를 얻을 수 있습니다.
내 안에 뿌려진 씨앗이 자라도록 우리는 기다려야 합니다. 신앙은 하루아침에 절대로 달라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씨앗이 내 안에 있으면 자라게 되어 있습니다. 일상적인 삶이 반복되는 것 같지만 변화가 되어 있습니다.
분명 하나님이 정한 시간이 있습니다. 그 시간이 되면 열매는 맺게 되어 있고 추수하게 됩니다. 우리는 그 날까지 인내해야 합니다.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주저앉아서도 안됩니다. 싹이 조금 시들었다고 농부는 포기하지 않습니다. 줄기가 좀 상처를 입었다고 농부는 그 곡식을 뽑아 버리지 않습니다. 벌레가 좀 먹었다고 그 곡식을 짤라 버리지 않습니다.
계속 인내하며 가꾸어야 합니다. 계속 그 곡식이 자라도록 놓아두어야 합니다. 신앙이 그렇습니다. 신앙은 인내입니다. 어려움이 있다고 포기해선 안됩니다. 누가 뭐라고 한다고 주저 않지 않습니다. 누가 실망한다고 해도 절망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분명 열매 맺는 날이 옵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 날이 오면 주님을 닮은 성도가 됩니다. 새로운 성도가 됩니다. 주님의 뜻에 합당한 성도가 됩니다.
사탄의 어떤 힘도 말릴 수 없는 강력한 성도가 됩니다. 도저히 상상할 수도 없는 모습이 됩니다. 어떻게 사과 씨 하나에서 수 십 년 동안 수 만개의 사과를 상상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인내한 사과나무는 분명 그러한 열매를 맺습니다.
3.무슨 씨앗을 뿌리겠습니까?
우리 율리교회 비전이 무엇입니까? 다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다 가지고 계십니까?
"우리는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고
교제를 통해 서로 돌보며
훈련을 통해 교회와 지역사회에 봉사하는 일꾼이 되어
사람들을 그리스도께 인도하여
하늘사람으로 가정과 삶을 행복하게 한다."
왜 이런 비전 선언문을 만들었습니까? 씨앗을 심기 위해서입니다. 왜 비전 선언문을 책갈피로 만들어서 나누어주었습니까? 왜 비전 선언문을 예쁘게 만들어서 나누어주었습니까? 자꾸 읽어보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얼마나 여러분들은 이 비전 선언문을 읽고 있습니까? 얼마나 생각하고 있습니까? 그것이 여러분의 기도 속에 들어와 있습니까? 예배 때마다 하나님을 만나기를 갈망합니까? 성도를 서로 돌보고 있습니까?
훈련을 통해 봉사하는 일꾼이 되고 있습니까? 우리 교회는 수요일과 찬양예배를 통해서 여러분들을 훈련하고 있습니다. 이 훈련을 통해서 봉사하는 일꾼을 성장하여 가고 있습니까? 봉사하는 일꾼 곧 변화를 말합니다. 성숙을 말합니다.
성숙과 변화를 통해서 무엇을 하자는 것입니까? 내가 하늘 사람으로 살아야 합니다. 하늘 사람으로서 행복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내가 행복한 자가 될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그리스도께 인도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들도 하늘 사람으로 행복하게 해야 합니다.
이 비전 선언문을 자꾸 내 마음속에 되새기는 것 곧 씨앗을 뿌리는 것입니다.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난다고 하는 것은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의 씨앗을 내 마음 밭에 뿌리겠다는 약속입니다.
훈련을 한다는 것은 그 씨앗이 자라도록 인내함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열매 맺는 데까지 가겠다고 기다림입니다. 그리고 내가 행복해지고 다른 사람을 행복하도록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것은 열매는 맺는 생활입니다.
우리의 목표는 예수님을 닮아 예수님처럼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그러했듯이 시험을 이기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은 평화의 세계, 가장 아름다운 세계에 이르는 것 곧 하늘나라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어떤 씨앗이 여러분의 마음의 밭에 자라고 있습니까? 미움은 아닙니까? 질투는 아닙니까? 불신은 아닙니까? 절망은 아닙니까? 죄악은 아닙니까? 이러한 씨앗을 누가 준 것입니까? 이런 씨앗은 사탄이 준 씨앗입니다.
이런 씨앗은 우리 마음 밭에서 파헤쳐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약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쫓아야 합니다. 십자가에 못을 박아야 합니다. 그것은 모두가 다 육신에서 왔습니다. 인간의 욕정에서 왔습니다. 주님을 믿지 못하고 따르지 못함에서 왔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의 씨앗이 내 안에서 자라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마음에 사랑의 씨앗이 자라야 합니다. 봉사하겠다는 씨앗이 자라야 합니다. 헌신하겠다는 씨앗이 자라야 합니다.
인내하겠다는 씨앗이 자라야 합니다. 담대하겠다는 씨앗이 자라야 합니다. 정결하게 살겠다는 씨앗이 자라야 합니다. 내가 죽고 주님이 사는 삶을 살겠다는 씨앗이 자라야 합니다. 모든 일을 하나님께 맡기겠다는 삶을 살겠다는 씨앗이 자라야 합니다.
그러면 어느 날 보게 됩니다. 도저히 여러분 속에서 상상할 수도 없는 아름다운 일들이 일어나게 됩니다. 여러분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생명을 얻게 될 것이며, 사랑을 받을 것이며 행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도저히 악한 내게서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일들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 일을 통해서 우리 교회가 상상할 수 없는 놀라운 부흥과 발전이 있게 됩니다. 오늘 내가 씨앗을 잘 받아 심는다면 모든 성도들에게 그러한 날은 속히 오게 됩니다.
그렇게 살기를 원하십니까? 말씀의 씨앗을 주님께로부터 받아서 심으시기 바랍니다. 사탄이 주는 씨앗이 아닌 주님이 준 씨앗을 심으세요. 그러면 겨자씨가 보여준 놀라운 일을 여러분도 보게 됩니다. 그렇게 살기를 원하십니까? 주님이 주시는 씨앗을 심으세요!
첫댓글 주님이 주시는 씨앗을 심기보다는 사탄이 주는 씨았을 심으며 2월을 지내온느낌이들어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사랑하기보다는 미워하며 깜싸 안아 주기보다는 거부하며 살아 왔습니다. 내 마음에 심겨진 가라지들을 하루속히 제거해야 겠는데 모든것이 힘이 듭니다.
인내하지 않고 열매를 기다린 나가 한없이 부끄러워 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