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 보금자리가 부산 사하구 다대동이다 보니 집 주변에 자리한 아미산을 자주 찾는다. 직장생활을 하다가 휴일이 돼 무료하거나 생업으로 지친 심신을 달래고 싶은 생각이 들 때에는 어김없이 아미산을 찾아 간다.
아미산은 장림동과 다대동에 걸쳐 있는 높이 234미터의 나지막한 산이다. 그래서 언제든지 부담 없이 찾아 오르내릴 수 있다. 산 정상에는 응봉봉수대(鷹峯烽燧臺) 터가 있고 그곳에 모형으로 봉수대를 만들어 둬서 역사의 흔적을 느낄 수 있다.
두루 알다시피 봉수대는 옛날에 나라에 위급한 상황이 발생하거나 외적의 침략 등 변란이 일어났을 때에 그 사실을 낮에는 연기로, 밤에는 횃불로 신호를 보내 중앙으로 알리는 통신시설의 하나다.
응봉봉수대는 낙동강 하구 일대와 몰운대 앞 바다를 한눈에 볼 수 있으며 맑은 날씨엔 거제도 연안과 대마도까지 감시할 수 있는 군사적 요충지였다.
응봉봉수대는 전국 5개 봉수대 가운데 직봉 제2로 기점으로서 여기서 한낮에 올린 봉수는 양산, 경주, 영천, 안동, 단양, 충주, 경기 광주를 거쳐 해가 지기 전에 최종 집결지인 서울 남산봉수대에 도착하는 게 원칙이었다. 전국적으로 총 673개의 봉수대가 있었다.
관할 부산 사하구청에서는 아미산 정상에 역사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기 위해 2010년 1월 1일에 봉수대 모형을 설치한 것이다.
집에서 나서 10여분 걸어 아미산 초입으로 들어서면 마음이 홀가분하고 기분은 산뜻해진다. 아미산으로 들어서는 순간 정신은 맑아지며 생업에서 받은 갖가지 스트레스나 번민거리는 사르르 녹아든다. 그런 까닭에 나는 휴일이 다가오면 차 마시고 밥 먹듯이 아미산을 찾는 게 하나의 버릇으로 굳어 있다.
아미산을 혼자 찾는 경우도 있고 아내와 같이 찾는 경우도 있다. 가끔은 20대 딸 아들과 함께 온 가족 넷이 찾기도 한다. 배낭에 물과 간단한 주전부리 몇 가지 넣고 가면 더없이 좋다. 도시락과 음식 좀 준비해 가서 돗자리 깔고 앉아 푹 쉬다가 오면 마치 소풍 다녀온 느낌이 든다.
아미산에는 참나무, 소나무, 오리나무, 팽나무, 자귀나무 등 우리나라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다양한 나무가 즐비하다. 간혹 나무 사이로 숨바꼭질하는 다람쥐나 청설모를 만날 수 있고 소야곡을 부르며 짝을 찾아 배회하는 꿩이나 산비둘기도 구경할 수 있다. 그래서 산을 찾으면 전혀 지루하거나 무료하지 않다.
산이 낮고 오르내리기가 쉬워서 워낙 자주 찾아 아미산 산행 길은 이제 손금 보듯 훤하다. 좀 과장해서 말하자면 눈을 감고도 정상의 응봉봉수대까지 다녀올 수 있을 정도다.
응봉봉수대에 올라 산바람에 땀을 식힌 뒤에 다대포 바다나 낙동강 하구를 조망하면 가슴이 시원하고 남다른 호연지기(浩然之氣)가 길러진다. 이런 맛에 산을 즐겨 찾지 않나 싶다. 생업현장에서 업무로 스트레스를 받았거나 인간관계 때문에 고민이 생겼을 때에 산 정상에서 강과 바다를 바라보며 골똘히 생각에 잠기거나 목청 돋워 노래를 부르면 십 년 묵은 체중이 내려가듯 고민거리나 스트레스가 말끔하게 풀리는 기분이 든다.
한번은 직장에서 승진 문제로 큰 고민을 안게 됐다. 직장인들은 동료나 후배에게 밀려 승진을 못하면 이만저만 낙심하는 게 아니다. 자존심이 상하는 것은 물론이고 비참해지기까지 한다. 그 스트레스는 상상을 초월한다.
아내에게 승진 문제에 관한 고민을 털어놓으며 같이 아미산을 찾아 해결책이 있는지 돌아보게 됐다. 직장인에게 승진이나 봉급 문제는 누구에게나 커다란 고민거리 내지는 관심거리이니 말이다.
아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산 정상 응봉봉수대에 도달해 바다를 응시하며 고민거리를 털어놓았다. 그랬더니 비로소 어렴풋이 해답이 보였다. 아내는 승진에 너무 집착하지 말고 그냥 순리대로 살자고 했다. 평소에 성실하게 직장 일에 임했으면 승진할 것이고 비록 승진에서 누락되더라도 동료에게 양보했다고 생각하며 너무 낙심하지 않고 하던 일에 더욱 매진하자는 결론에 도달했다.
아내의 말에 힘입어 나는 욕심을 내려놓고 마음을 비우자고 다짐했다. 심신이 건강하고 일할 수 있는 든든한 직장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는 마음을 갖게 됐다. 승진문제 따위에는 그야말로 초연하자고 마음을 다부지게 먹었다. 그런 마음을 먹으니 기분이 몹시 홀가분했다. 얼마 뒤에 결과는 뜻하지 않게 승진하게 되는 행운이 뒤따랐다.
사람이 살아가다 보면 이런 저런 크고 작은 고민거리가 생기게 마련이다. 쉽게 해결되는 고민거리가 있고 오래도록 해답이 보이지 않는 고민거리가 있다. 그런 고민거리를 나는 아미산을 오르내리며 찾는다. 동네 앞 아담한 동산인 아미산은 내게 하나의 친구이자 기나긴 삶의 동반자나 마찬가지다.
한편으로 아미산에는 곳곳에 운동기구를 설치해 두었다. 관할 자치단체인 부산 사하구청에서 동네 주민을 위해 간단한 운동기구를 마련해 놓았다. 산에서 동네 사람들과 어울려 맑은 공기 마시며 운동하면 저절로 무병장수(無病長壽)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아미산은 풍광이 빼어난 산은 아니지만 남녀노소 누구나 자주 찾는 우리 동네가 자랑하는 명품 산으로서의 값어치를 지녔다. 집에서 너무도 가까워 한 달음에 갈 수 있는 산이어서 전혀 부담이 없다. 뼈나 관절이 약한 노약자도 쉽게 오르내릴 수 있는 산이어서 산에는 언제나 휴식과 운동을 위한 사람들로 북새통이다.
또한 아미산 자락엔 산딸기나무가 많다. 그래서 봄철엔 산딸기를 따서 먹는 재미도 쏠쏠하다. 어린 시절 시골에서 봄철이 오면 산딸기를 즐겨 따 먹으며 소소한 동심의 즐거움을 누렸던 기억이 떠오른다.
지난봄에도 어김없이 산딸기를 따 먹었다. ‘산딸기’ 동요 “잎새 뒤에 숨어 숨어 익은 산딸기, 지나가던 나그네가 보았습니다, 딸까 말까 망설이다 그냥 갑니다.”를 휘파람으로 부르며 코흘리개 시절의 추억에 젖어 보기도 했다. 가시 돋친 푸른 잎사귀 사이로 붉게 보이는 산딸기는 언제 보아도 눈길을 끌며 내 마음을 사로잡는 보배 같은 야생 열매다.
봄이든 여름이든 가을이든 겨울이든 사시사철 아미산은 내게 휴식과 위안을 준다. 언제든 산을 찾기만 하면 포근하게 안아주고 일상에 지친 마음을 어루만져 준다. 요즘 가수 유진표의 ‘천년지기’란 노래가 유행인데 내게 아미산은 ‘천년지기(千年知己)’나 마찬가지다.
나는 앞으로도 사하구 다대동에 살 것이고 다대동에 사는 이상은 차 마시고 밥 먹듯이 아미산을 찾을 것이다. 아미산을 찾아 평균수명 백세 시대에 건강을 기르고 만수무강(萬壽無疆)의 기초를 다질 것이다. 산에서 오욕칠정(五慾七情)으로 오염된 심신을 다스리면 노후인생을 한층 멋지게 살 수 있으리라.
지금은 생업에 매달려 휴일에만 아미산을 찾지만 나중에 직장에서 정년퇴직하고 나면 날마다 산을 찾아 일상의 행복을 누릴 참이다. 몸과 정신이 건강해지고 기분마저 상큼해지는 아미산 산행은 내게 무릉도원(武陵桃源)으로 안내하는 길잡이 역할을 제대로 한다. 아미산이 있는 사하구 다대동에 둥지를 튼 것은 내 인생 최대의 행운이자 올바른 주거지 선택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