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계전서 제6권 / 묘갈명(墓碣銘)
형조 참의 김공(金公) 성휘(成輝) 묘갈명 병서(幷序)
공의 휘는 성휘(成輝)이고 자는 입부(立夫)이며 성은 김씨이고 본관은 광주(光州)이다. 가계(家系)는 신라(新羅) 왕자에게서 나왔으며 고려조에 이르러 8대를 연이어 평장사(平章事)를 지냈는데 공은 그 후손이다.
고조의 휘는 국광(國光)이니 좌의정 광산부원군(光山府院君)이며, 증조의 휘는 극수(克羞)이니 충훈부 경력(忠勳府經歷)이며, 조부의 휘는 충윤(忠胤)이니 부호군(副護軍)이며, 부친의 휘는 균(鈞)이니 병절 교위(秉節校尉)이다. 모친 담양 국씨(潭陽鞠氏)는 봉훈랑(奉訓郞) 휘 세인(世仁)의 딸이니 호부 상서(戶部尙書) 휘 유(裕)의 후예이다.
가정(嘉靖) 을미년(1535, 중종30)에 공을 낳으니 유복자(遺腹子)이다. 어려서 학문을 하지 못하고서 집안 살림을 일으켜 거금(巨金)을 모았는데, 임진왜란에 군량미로 내놓으니 조정에서 이를 포상하여 형조 참의를 제수하기에 이르렀다.
공은 이미 부유한 데다가 장수를 누렸으며 이어 화려한 벼슬까지 가지고 오복(五福)을 두루 누린 지 30여 년 만인 숭정(崇禎) 기사년(1629, 인조7)에 본가에서 임종을 맞으니 향년 95세였다. 그 이듬해 경오년 2월에 고산현(高山縣) 장항산(獐項山) 곤좌(坤坐) 간향(艮向) 언덕에 안장하니 선영을 따른 것이다.
공은 성품이 소탈하고 행실이 겸손하였고, 검약한 생활로 풍요로움을 이룩한 후에도 여전히 검소한 생활을 하였다. 노년에 이르러 재물을 여러 자식들에게 모두 나누어 주고 자기는 여생을 살 만큼만 조금 남겨 두었는데 몇 해가 못 되어 또다시 유족하게 되었으니, 그는 재산과 일을 경영하는 데 남들이 미칠 수 없는 바가 많았던 것이다.
나이가 많은데도 기운이 굳세어 아침저녁으로 지팡이를 짚고 전원(田園) 사이를 왕래하는 것으로 일상생활을 삼았다. 자손 내외간 40여 명이 집안에 가득 넘쳐 분양왕(汾陽王)의 경사를 누렸으니, 이는 세상에 보기 드문 일이다.
공의 부인 함양 오씨(咸陽吳氏)는 장사랑(將仕郞) 휘 계홍(繼洪)의 딸이다. 공보다 몇 년 뒤에 태어났고 공보다 61년 앞서 죽었다. 숙부인(淑夫人)에 추증되었는데 공과 같은 묘소에 있다. 1남 2녀를 낳았는데 아들 각(珏)은 일찍 요절하였고, 장녀는 생원 성달선(成達善)에게, 차녀는 신탁(愼逴)에게 출가하였다.
후부인(後夫人) 남씨(南氏)는 본관이 고성(固城)이며 휘 언중(彦中)의 딸이다. 2남을 낳았는데 황(璜)과 진(璡)이다. 각은 5남 2녀를 낳았는데 장남은 정망(廷望)이니 참봉이며, 다음은 정헌(廷憲), 정의(廷儀), 정열(廷說), 정윤(廷尹)이며, 장녀는 성초만(成楚晩)에게 출가하였고, 다음은 어리다.
성달선은 1남 3녀를 낳았는데 아들은 하경(夏慶)이며, 장녀는 장령 이경(李坰)에게, 다음은 영(令) 서운준(徐雲駿)에게, 그다음은 현감 심장세(沈長世)에게 출가하였다. 신탁의 딸은 군수 오세언(吳世彦)에게 출가하였다. 황은 3남 3녀를 낳았는데 장남은 정태(廷泰)이며 나머지는 어리고, 장녀는 민광윤(閔光尹)에게, 다음은 이시재(李時載)에게 출가하였고, 그다음은 어리다.
진은 3남을 낳았는데 정설(廷卨)이고, 나머지는 어리다. 정망은 3남 3녀를 낳았는데 장녀는 이소재(李昭載)에게 출가하였고, 나머지는 어리다. 정헌은 1남 1녀, 정의는 2남, 성초만은 1남, 성하경은 1남 2녀를 낳았다. 이경의 딸은 판관(判官) 신량(申湸)에게 출가하였고 서운준은 1남, 심장세는 2녀, 민광윤은 1남 3녀를 낳았는데 모두 어리다.
명은 다음과 같다.
수를 누리면서도 부를 가지지 못한 자 / 壽而不富者
내 그런 사람을 들어 왔지만 / 吾聞其人
그것을 모두 겸한 자는 / 其或兼焉者
후손이 많지 않다네 / 嗣不兟兟
공은 후하게 누렸으니 / 公惟厚享
실로 그 세 가지를 모두 갖추었네 / 實具其三
귀하지 않다 말하지 마오 / 毋曰未貴
적선(積善)의 경사가 자손에게 미치리라 / 餘慶是覃
<끝>
[註解]
[주01] 분양왕(汾陽王)의 경사 : 분양왕은 당(唐)나라 곽자의(郭子儀)를 말한다. 아들 8명과 사위 7명이 모두 조정의 중신이었던 데에서 유래한 말로, 자손들이 번성하고 출세하였다는 뜻으로 쓰인다.
ⓒ한국고전번역원 | 박완식 (역) | 2000
-------------------------------------------------------------------------------------------------------------------------------------------------------
[原文]
刑曹參議金公墓碣銘 幷序
公諱成輝。字立夫。金姓。光州人也。 系出新羅王子。暨麗朝。仍八葉平章。公其後也。高祖諱國光。左議政光山府院君。曾祖諱克羞。忠勲府經歷。祖諱忠胤。副護軍。考諱鈞。秉節校尉。妣潭陽鞠氏。奉訓郎諱世仁之女。戶部尙書諱裕之裔。嘉靖乙未。生公。是遺腹也。少而失學。治産業鉅萬。壬辰之亂。入補軍餉。朝廷褒賞之。至拜刑曹參議。公旣富而壽。仍帶華御。備享五福餘三十載。以崇禎己巳。考終于家。得年九十有五。越明年庚午二月。葬于高山縣獐項山坤坐艮向之原。從先兆也。公性簡行遜。以約致豐。儉素如一日也。暨晚節。悉散其財。分與諸子。自以尠少。止資餘日。不多歲而復足。其使財營幹。多人所不及者。年高氣健。晨夕。杖屨往來田園間。日以爲常。子姓內外四十餘人。充堂溢宇。有汾陽之慶。世罕覿也。公配咸陽吳氏。將仕郞諱繼洪之女。後公幾年生。先公六十一年而卒。贈淑夫人。與公同塋。生一男二女。男珏。早夭。女適生員成逹善。次適愼逴。後夫人南氏。籍固城。諱彦中之女。生二男。曰璜。曰璡。珏生五男二女。男廷望。參奉。次廷憲,廷儀,廷說,廷尹。女適成楚晚。次幼。成逹善生一男三女。男夏慶。女適掌令李坰。次適令徐雲駿。次適縣監沈長世。愼逴女。適郡守吳世彦。璜生三男三女。男廷泰。餘幼。女適閔光尹。次適李時載。次幼。璡生三男。曰廷卨。餘幼。廷望生三男三女。女長適李昭載。餘幼。廷憲一男一女。廷儀二男。成楚晚一男。成夏慶一男二女。李坰女。適判官申湸。徐雲駿一男。沈長世二女。閔光尹一男三女。竝幼。銘曰。壽而不富者。吾聞其人。其或兼焉者。嗣不兟兟。公惟厚亨。實具其三。毋曰未貴。餘慶是覃。<끝>
ⓒ한국문집총간 | 19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