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에서 온 중국인 성형외과 의료진이 BK동양성형외과 수술방에서 성형수술을 참관 중이다. photo BK동양
서울 강남구 논현동 BK동양성형외과. 코 성형이 한창인 한 수술방에 20여명의 외국인 의사들이 모여있다. 이들은 ‘성형 강국’ 한국의 ‘손맛’을 직접 느끼러 온 중국인 의사. 저마다 비장한 얼굴로 수술 장면을 지켜보고 있다. 수술이 끝난 후 수술방에서 나온 성형외과 의사 창타이핑(常太評·37)씨는 “한국인 의사의 섬세한 손재주에 놀랐다”며 “관심있게 봐둔 의료 기구나 성형 재료는 귀국하면서 사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창씨는 “감을 잃지 않으려면 앞으로도 2~3차례 더 한국 성형외과를 방문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허난(河南)성 저우커우(周口)에서 온 다른 중국인 의사 리춘지에(李春杰·39)씨는 “나는 안과 전문의이기 때문에 성형외과 참관이 끝나면 다른 안과 전문 병원에 가서 참관해 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기술 배우자” 중국의사 참관 행렬
중국 의사들의 참관은 이 병원이 지난 2007년부터 중국의학미용정형협회와 함께 주관해온 프로그램이다. 이 병원 관계자는 “매달 50~60명의 중국인 의료진이 BK동양에서 수술 현장을 참관하고 있으며 지금까지 참관자가 1000여명에 달한다”고 말했다. 참관 의사 한 사람에게서 받는 비용은 1만원. 김병건 BK동양성형외과 원장은 “수익을 기대한 사업이라기보다는 우리보다 의술이 뒤처진 중국에서 의료 사고를 방지하고 양국 의료 교류를 활성화하기 위해 추진한 일종의 ‘의료 외교’인 셈”이라고 말했다. BK측은 “중국인 환자들의 발길도 잦아 작년 한 해 우리 병원을 찾은 외국인 환자 890명 중 중국인 환자 비율이 62%”라며 “외국인 환자들은 공항에서부터 외국어가 가능한 코디네이터가 마중 나가 모셔오며 외국인 전용 병실을 마련해 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구 청담동 영동대로에 위치한 예치과 역시 최근 병원을 찾는 고객 10명 중 한 명은 외국인이다. 예치과 측은 “한류스타들이 우리병원 주 고객이라는 소문이 돌면서 일본·중국인이 많이 찾는다”며 “처음엔 호기심으로 방문했던 일본 여성들이 임플란트 대체 기술인 ‘휴먼브릿지’나 ‘잇몸 성형’ 등 첨단 시술을 받고 블로그 등에 후기를 올리면서 점점 입소문을 타게 됐다”고 말했다.
최근 이 병원에서 심미치아시술을 받은 일본인 남성 환자 지아키씨가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한국 치과 현장 르포’도 화제가 됐다. 지아키씨는 “한국에서 신혼여행 중 아내가 우연히 시술을 받고 만족해 하는 것을 보고 작년 10월에 한국을 2주 동안 방문해 시술을 받았다”며 “평소 가장 자신 없었던 부분이 치아였는데 어서 (일본으로) 돌아가 아내에게 나의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 소감을 밝혔다. 예치과 측은 “의료관광법이 통과된 작년 5월부터 지금까지 해외 환자들이 병원 매출의 12%를 차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전국 1709개 병원, 외국인 환자 유치 등록
우리나라 의료시장의 본격적인 대외개방을 의미하는 ‘메디컬 코리아(Medical Korea·한국 의료관광 브랜드)’ 사업이 2009년 5월 의료법개정(의료법 제27조·외국인환자 유인 및 알선행위 허용)을 기점으로 2년차에 돌입했다. ‘오는 손님’에만 만족해야 했던 데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외국인 환자 유치가 가능해지면서 한국의 의료관광사업이 날개를 달게 된 것이다. 현재까지 보건복지부에 외국인 환자 유치 사업을 할 수 있게 등록을 마친 병원은 전국에 모두 1709곳(3월 31일 기준). 의료관광 주무부서인 보건복지부는 의료사고에 대비해 외국인 환자들을 위한 보험에만 가입돼 있으면 의료관광 신청 병원에 등록증을 교부해주고 있다. 의료관광에 뛰어드는 병원이 늘면서 병원에 외국인 환자들을 연결해주는 유치업자도 우후죽순으로 생기는 등 의료관광 산업은 붐을 일으키는 분위기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작년 한 해 동안 우리나라를 다녀간 외국 환자는 6만201명으로 당초 목표치 5만명보다 1만201명이나 더 다녀갔다. 의료관광 수입은 총 547억원으로 외국인 환자 1인 평균 94만원의 의료비를 지출했다. 문화체육관광부 국제관광과 박기남 사무관은 “해외 환자를 한 명 유치할 경우 이에 따른 취업유발 효과는 0.083명, 생산유발 효과는 700만원으로 생산유발 효과가 105만원에 불과한 일반 관광에 비해 의료관광은 엄청난 고부가가치 산업”이라며 “한국 의료관광은 의료관광 대국인 싱가포르나 인도 등에 비하면 이제 걸음마 수준으로 앞으로 어떻게 유지·발전시키느냐가 과제”라고 말했다.
이제 2년차에 돌입한 의료관광의 문제점과 걸림돌은 무엇일까. 박기남 사무관은 한국 의료관광이 직면한 가장 큰 문제점으로 ‘편향성’을 꼽았다. 박 사무관은 “현재 한국 의료관광은 지역적으로는 강남, 분야별로는 성형 쪽에 치우쳐진 불균형 상태”라고 설명했다.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2009년 우리나라를 방문한 해외 환자 중 26.7%인 1만5994명은 서울시 강남구에 있는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진료과목은 내과(20%), 피부·성형외과(13%) 순이었지만 내과 환자에는 한국에 주둔한 미군(4576명)이 포함되어 있어 이들을 제외한 순수 외국인 환자 중에는 성형을 목적으로 방문한 외국인이 가장 많다는 분석이다. 박기남 사무관은 “지역과 진료 종목에서 의료관광 상품편중 현상이 계속된다면 문제다. 외국에 ‘한국`=`성형강국’이라는 인식만 뿌리박히면 싱가포르의 기형 수술처럼 정작 고부가가치를 지닌 선진국형 의료 서비스가 빛을 발할 수 없다”고 말했다.
▲ 스카이라운지를 접수처로 사용하고 있는 강남 예치과. photo 예치과
‘강남·성형’ 편중… 수술비도 천차만별
심혁보 서울 강남구 보건정책추진반 의료관광팀장 역시 “현재 강남에는 강남세브란스, 삼성서울병원 등 대규모 종합병원 여섯 곳과 성형외과, 피부과, 치과 등 2000여개의 병원이 밀집돼 있는데 2000여개의 병원 중 성형외과가 차지하는 비율이 70%나 된다”고 말했다. 심 팀장은 강남구에 외국인 환자들이 몰리는 이유에 대해 “강남구는 외국인들을 위한 시티투어 시스템이 잘 마련돼 있고 선진국형 영어 메뉴판 등 외국인을 위한 다양한 편의가 갖춰져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외국인 환자를 대상으로 한 구체적인 의료 매뉴얼이 없다는 점도 문제다. 올 2월 쌍꺼풀 수술을 받기 위해 한국을 방문한 중국인 웨이나(魏娜·27)씨는 결국 적당한 병원을 찾지 못한 채 관광만 하고 돌아가야 했다. 웨이나씨는 “수술을 받기 위해 여러 곳에서 견적을 받았지만 견적이 150만~400만원으로 천차만별이고 왠지 너무 저렴하면 실패할 것 같은 불안감에 수술을 결정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강남구 의료관광팀 심혁보 팀장은 “병원도 식당처럼 시장가가 명확히 적힌 ‘메뉴판’제로 가야 한다”며 “유치업자에 따라 수수료가 다를 뿐 아니라 방문 전 이메일 또는 구두로만 상담하다보니 투명성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현재 국내 의료관광 사업은 국내 병원, 국내 유치업자, 해외 유치업자, 해외 협력 병원, 환자가 얽혀있는 복잡한 구조다.<도표 참조> 외국인이 국내에서 시술을 받으려면 일단 해외 유치업자를 통해 국내 유치업자에게 인계된 후 병원을 소개받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 경우 국내·외 유치업자들에 대한 이중 수수료가 외국인 환자들에게는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물론 외국인이 인터넷이나 지인 등을 통해 직접 병원을 선택할 경우 수수료가 발생하지 않지만 정보의 신뢰성이 부족하고 숙박시설이나 관광서비스 등 제대로 된 관리를 받기가 힘들다는 단점이 있다. 박기남 사무관은 “아직 ‘커미션(소개비)’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가 많지만 의료관광 체계화를 위해선 제대로 된 유치업자를 육성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사후관리 문제… 해외 거점병원 필요
▲ 부산시와 부산진구가 동북아 성형ㆍ미용 의료관광 허브로 조성할 부전동‘메디컬 스트리트’전경. photo 조선일보 DB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외국인 입원환자의 경우 국내 입원환자의 평균진료비(217만원)보다 세 배나 많은 656만원을 병원비로 지출했다. 하지만 2009년 외국인 입원환자 비율은 전체 외국인 환자의 6.5%에 불과했으며 2008년(11.4%)보다도 감소했다.
국내 병원과 연계된 해외 협력 병원이 부족하기 때문에 외국인들이 사후 관리가 필수적인 큰 수술을 국내에서 받기를 꺼린다는 것이다. 이 역시 우리나라의 의료관광이 피부미용이나 성형에 치중하게 되는 결과를 낳았다. 한국에서의 수술을 포기한 중국인 웨이나씨 역시 “직장에 다니고 있어서 휴가를 받아 수술을 받을 수 있는 여유가 1주일 미만인데 한국에서 수술을 하고 귀국하고 나면 한국 병원과 연계해 사후관리가 가능한 병원을 찾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외국인환자 유치 의료기관들의 모임인 ‘한국글로벌헬스케어협회’ 박인출 회장(예치과 원장)은 “내과 수술이나 라식 수술은 외국인 환자가 귀국 후 사후관리를 잘 받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며 “의료관광사업 활성화를 위해 한국 병원의 해외 거점 병원화 필요성을 느끼고 있으며 국제 경쟁력을 갖춘 한국 병원을 해외에 많이 진출시킬 수 있도록 연계 사업을 추진할 것”이라고 답했다. 이 협회 홍민철 사무총장은 “현재 해외에 진출해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국내 병원이 30~40여개에 불과한 실정”이라며 “국내 브랜드 병원들이 해외에서 성공하기가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한국글로벌헬스케어협회는 이와 관련 6월 30일 국회도서관에서 ‘재외한국병원 협의회’ 창단식을 갖고 해외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인 병원들을 선정해 ‘외국인환자를 위한 2010년 대한민국 명품병원 인증서’를 수여하고 공동해외마케팅에 나설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