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하얼빈(哈尔滨)(3)
<2024. 05. 19(일)~2024. 05. 22(수)>
3일차 : 2024년 05월 21일(화)
<볼가장원/하얼빈맥주 박물관/731부대 유적지/조린공원/사범대 야시장/소피아 성당>
하얼빈 맥주박물관(哈尔滨啤酒博物馆)
하얼빈 맥주는 중국 최초의 맥주 제조업체로 중국에서도 손꼽히는 맥주이다.
지금은 한국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으며,
하얼빈 맥주 박물관에서는 하얼빈 맥주의 역사와 제조 방법을 볼 수 있다.
또한, 다양한 전시품목과 체험을 할 수 있다.
731부대 유적지(日軍 第731部隊 罪證陳列館)
(아픈 역사가 담긴 731부대 유적지)
1939년 이시이 시로가 창설한 생화학 실험 기지로, 하얼빈 근교에 위치해 있다.
생체실험 대상은 주로 한국, 중국, 러시아, 영국 포로들이었다.
전쟁 기간동안 이곳에서 실험으로 희생된 사람 수는 약 4,000명에 이른다고 한다.
이 부대가 세상에 알려진 것은 1980년대 초 한 일본기자에 의해서이며,
그 이전까지는 의학실험 자료를 건네받는 대가로
이시이 시로의 만행을 면죄한 미국만이 알고 있었던 극비사항에 해당되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당시 일본인들이 어떤 만행을 저질렀는지 한국인, 중국인, 러시아인들을 대상으로
어떤 실험을 자행하였는지 정리되어 있다.
조린공원(兆麟公园)
세계 3대 겨울 축제, 빙등제의 개최지
1906년에 조성한 하얼빈 최초의 공원으로,
초창기에는 하얼빈 공원(哈尔滨公园, 하얼빈 궁위안)이라고 불렀다
공원 조성 후, 항일 영웅으로 칭송받던 이조린(리자오린, 李兆麟) 장군의
유해를 안장하고 장례식을 치뤘으며
지난 1964년부터는 조린(자오린)공원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매해 1월 5일부터 2월 말까지는 빙등제를 개최한다.
이를 보기 위해 많은 관광객들이 방문한다.
한국인에게는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하기 직전,
거사의 밑그림을 그리며 거닐었던 공원으로도 의미가 크다.
공원 안에는 안중근 의사를 기념하여 하얼빈 시정부가 세운 기념비도 있다.
안중근 의사는 생전에 ‘내가 죽거든 시신을 하얼빈 공원에 묻어 두었다가,
조국이 독립하거든 고국으로 옮겨 달라.’라는 유언을 남겼다.
그러나 다롄 근교의 뤼순 감옥에서 처형당한 그는 끝내 이곳에 묻히지 못했다.
소피아 성당(圣索菲亚教堂, Harbin St. Sophia Church)
(하얼빈의 그리스 정교회 성당, 성 소피아 성당)
하얼빈 시내에 있는 소피아 성당은 그리스 정교회 성당으로
53.35미터 높이에 전체 면적이 721평방미터로 주변 극동 지역에서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배전정(拜占庭)양식 건축물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1996년 11월 전국 중점 문물 보호 단위로 선정되었다.
1997년 6월 성당의 내부까지 원래 모습으로 복원했으며,
이때 '하얼빈 건축 예술관'으로 이름을 바꾸면서
현재는 성당 내부에 하얼빈의 역사가 담긴 흑백사진을 전시하고 있다.
4일차 : 2024년 05월 22일(수)
<하얼빈-인천, 귀국>
에필로그
여행의 종점은 없는 것 같다.
하얼빈여행을 하면서 많은 것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역사적으로 우리 영토가 될 수도 있었다는 착각(?)속에 여행을 하였고
안중근 의사의 의거 현장 속에서 슬픈 역사를 볼 수 있었다.
하얼빈의 상당한 지역은 본래 역사적으로 부여에 속하였으며
이를 고구려와 발해가 이어받았다고 한다.
발해가 멸망한 뒤에 생여진이 발해의 옛 땅인
지린성과 헤이룽장성 일대에 정착했는데,
이들 중 훗날 금나라를 세우게 되는 완안부가
이지역의 아청 구에 거점을 두고 있었다고 한다.
이 거점은 훗날 상경 회령부로 격상되어 금나라의 수도 역할을 했으나,
금나라가 중도로 수도를 옮긴 후 금나라가 멸망하면서 잊혀졌다.
본격적으로 도시가 건설된 것은 1898년 러시아가
시베리아 횡단 철도를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연장하는 동청철도를 건설하면서였다.
이 때문에 하얼빈은 러시아의 문화가 많이 남아있는 도시이기도 하였다.
중국 속 러시아 같은 하얼빈에서 중국어를 많이 하기는 하였지만
어설픈 실력을 들어내어
한참 멀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공부가 많이 부족함을 느끼기도 하였으며
같이 동문수학하는 일행들과 교류할 수 있는 계기도 되었다.
동행한 25명(실제 중국어 수강 인원은 20명, 나머지 5명은 동반자)에서
약 2명 정도는 현지 중국인들과
막힘없는 대화가 가능한 실력들을 보유하고 있었다.
중국어 공부에 더욱 매진하여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아울러 체력 증진에도 기속적인 노력을 해야겠다는 다짐을 해보며
무사하게 여행을 마칠 수 있게 됨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다음 여행지를 기약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