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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미술관서 배운다-유럽편] ⑤ 프랑스 로댕미술관 |
대가의 유물, 미술관 1백년 먹여 살리다 |
기사등록 : 2009-04-21 오후 7:14: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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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3대 미술관인 루브르와 오르세, 퐁피두 센터 내 국립 현대미술관은 시대별로 종합적인 서양미술의 흐름을 소개하고 있다.
이들 미술관은 여러 나라에서 많은 사람이 찾고 있어 문화대국 프랑스의 대표상품으로 취급된다.
명성만큼이나 철저한 관리와 운영으로 일류 미술관의 전형을 보여준다.
‘예술의 도시’ 파리에는 대형 종합미술관 외에 한 작가의 작품만을 모아 전시하는 작지만 알찬 미술관들도 많다.
프랑스가 낳은 세계적인 조각가 로댕의 작품은 물론, 석고 습작, 데생, 생전 소장품 등을 전시해 둔 로댕미술관이 좋은 예다.
종합미술관에서 수많은 작가들의 대작에 휩싸여, 빼곡히 들어선 관람객에 치여 느낄 수 있는 피로감은 적어도 이곳에선 없다.
주제가 한 작가로 한정돼 있어서 그의 생애를 온전히 되짚어 볼 수 있고 천천히 시간을 갖고 작품을 음미할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 생가가 국립미술관으로=나폴레옹의 유해가 안치돼 있어 유명한 파리 앵발리드(Invalides)를 끼고 오른쪽으로 돌면 왼쪽에 커다란 저택이 보인다.
정원 크기만도 5만㎡에 가까운 그야말로 대저택이다.
‘생각하는 사람’의 조각가 오귀스트 로댕(1840∼1917)이 죽기 전까지 10년 동안 살았던 이 집이 국립 로댕미술관이다.
로댕이 비롱 저택(L’hotel Biron)으로 불리는 이곳에서 살기 시작한 것은 1908년부터다.
이미 파리에서 10여㎞ 떨어진 므동(Meudon)이라는 곳에 작업실로 사용하는 집을 사둔 터라 비롱 저택을 작업장으로 사용하지는 않았다.
로댕이 파리 시내의 18세기 건축물 비롱 공작의 저택에 관심을 가진 것은 처음부터 자신의 작품을 전시할 공간으로 사용하기 위해서였다.
로댕은 죽기 한 해 전인 1916년 비롱 저택을 비롯한 그의 모든 작품과 생전에 모아둔 각종 고미술품, 회화 등 소장품 전체를 국가에 기증했다.
프랑스 정부는 로댕 사후 2년이 지난 1919년 8월 국립 로댕미술관이 대중에게 문을 열었다.
작업실로 사용하던 므동의 집은 1947년 로댕미술관으로 개조됐다.
◇방대한 컬렉션=로댕미술관은 개인이 내놓은 작품과 소장품으로 이뤄진 것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방대한 컬렉션을 자랑한다.
로댕의 작품만도 대리석 99점, 청동 450점, 석고 및 찰흙 6천점에 달한다.
앙투안 부르델과 카미유 클로델 등 로댕 생전에 교류하던 다른 유명 작가들의 조각도 200여점이다.
그가 그린 데생과 회화, 판화가 7천점에 이르고, 수집가로서 사들인 회화, 가구 등이 2천점을 넘는다.
로댕이 모은 골동품은 6천400여점으로 이 중 12점은 파리의 로댕박물관에, 120점은 므동에 각각 전시돼 있다.
그의 작품 활동과 관련한 사진이 2만여장 보관돼 있으며, 편지, 낙서장, 공책, 다이어리 등이 6만여점, 정기간행물을 포함한 서적 2만여권 등을 남겼다.
이처럼 방대한 컬렉션을 바탕으로 로댕미술관은 개인 작품 및 소장품을 주제로 한 미술관으로는 유일하게 프랑스 전체 미술관·박물관 중 입장객 순위 10위 내에 든다.
◇정부 보조금 없는 국립미술관=로댕미술관이 또 하나 눈에 띄는 점은 국립미술관이지만 국가의 보조금을 받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로댕미술관의 2007년 총 수입은 468만 유로(약 84억원)로 이 중 티켓 수익(187만 유로·약 33억원)과 각종 판매 수익금(148만 유로·약 26억원)이 대부분을 차지했으며 정부 지원은 없었다.
어떻게 정부 보조 없이 이 정도 규모의 미술관을 운영하는 일이 가능할까.
로댕미술관 클레망스 골드베르제 홍보팀장은 “조각은 다른 미술작품과 달리 원본을 더 찍어 팔 수 있는 장점이 있다”며 “매년 오리지널 작품을 팔고 난 수익이 미술관 운영에 큰 도움을 준다”고 말했다.
그러나 원본 판매는 한 작품 당 12개로 철저히 제한돼 있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
2007년 원본 판매 수익은 60만3천 유로(약 10억원)로 전체 수익의 13%를 차지할 뿐이다.
이 밖에 건물 임대 및 대여료 55만 유로(약 9억8천만원), 사진 저작권 수익이 9만 유로(약 1억6천만원) 등이었다.
각종 책자와 카탈로그, 기념품 등 판매 수익금이 미술관 규모에 비해 많고, 건물을 빌려준 뒤 행사를 유치하는 등의 수익 구조를 잘 살린 결과였다.
로댕이 남긴 것은 건물과 소장품 뿐 아니라 미술관을 적어도 한 세기 이상 먹여살릴 수 있는 가치였다.
물론 이를 잘 관리하고 운영한 후세에도 공은 있다고 할 수 있다.
camus@kwangju.co.kr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