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일승법계도 / 해설 김동화
송나라 《高僧傳》을 보면 의상의 속성(俗姓)은 박씨요
신라의 鷄林府 사람이라 한다. 출생연대에 대하여는 620년 설과
625년설이 있고, 출가시기에 대해서는 29세설이 있으나
최근의 고증에 의하면 20세에 출가하고, 80세에 돌아간 듯하다.
그는 선덕여왕 13년경 皇福寺에서 중이 되고, 진덕여왕 4년(650)
원효와 함께 당나라로 공부하러 가는 길에 遼東에서
고구려의 순찰대한테 붙잡혀 실패했고, 그 뒤에 다시 문무왕 원년(661)
海路로 당나라에 가서 智儼三藏의 문하에서 《華嚴經)》을 배웠다.
671년 귀국하고, 676년 왕명으로 浮石寺를 창건하고《화엄경》을 강론하여
우리나라 화엄종의 창시자가 되었다.
그러나 의상은 당나라에 가기 전 원효를 선배로 섬겨 존경하고,
報德화상에게서 《열반경涅槃經》과 《유마경維摩經》을 배웠다 한다.
당나라에 머문 8년간 지엄대사에게서 화엄학을 연구하는 한편
南山 道宣律師와 교유한 일이 있고, 義淨의 세예법(洗穢法)이라는 것도 행했다고 하니,
그에게는 계율을 중심하는 경향이 강했던 것 같다.
《三國遺事》에는 그의 제자로 오진(五塵)· 智通· 表訓· 眞定· 眞藏·
도융(道融)· 良圓· 相源· 能仁· 義寂 10명이 열거되어 있다.
의상은 10산에 머물며 秘法을 전했다는데, 그 10산이란 공산 미리사·
지리산 화엄사· 부석사· 가야산 해인사· 웅주 보원사· 계룡산 갑사·
삭주 화산사· 금정산 범어사· 비슬산 옥천사· 전주 국신사(지금의 귀신사)등이다.
義天의 불서목록에는 의상의 저서로서 《十門看法觀》1권, 《入法界品抄記)》1권,
《小阿彌陀義記》1권, 《화엄일승법계도》 1권 등을 들었으나 현존하는 것은
그 중 《화엄일승법계도》와 《白花道場發願文》이라는 간단한 글 1편뿐이다.
《화엄일승법계도》는 《법계도》·《화엄일승法界圖章》·《화엄법계도》·《일승법계도》·
《법계도장》·《法性圖》·《海印圖》라고도 불리는데, 당나라 유학중에 至相寺에서
《화엄경》종요를 개시한 것으로, 7언 30구 210자의 偈를 54角印圖
모양으로 지은 것이다.
이것은 그 자체만으로 심오한 하나의 의미가 통하는 「게」 (이것을 「法性偈」라고 함)인데,
直觀으로 證得할 수밖에 없는 自證의 내용을
상징하는 표징으로 사용되었다는 것이 특징이다. 의상의 제자로서
공부가 다 된 사람에게만 그의 覺을 인정하는 뜻에서 이를 수여했다 한다.
《백화도량발원문》은 의상이 낙산사 관음굴에서 기도할 때의 발원문인데,
이 300자 미만의 짧은 글에도 의상의 중요한 화엄사상이 담겨져 있어
주목을 끈다. 일반적으로 화엄종에서는 毘盧遮那佛을 본존으로 삼는데,
의상은 비로자나불과 관세음보살이 같은 도량에 住하는 同位主佛이라 하고,
이 발원문에서는 관세음보살이 아미타불을 이마에 모시고 있는 것과 같이
관세음보살을 本師로 하겠다고 한 것이 특이하다.
고려 忠肅王 15년(1328) 해인사에서 體元이 願文을 각 구절마다 나누어서 주석하여
《발원문 略解》 1책을 낸 것이 전한다.
[출처] 화엄일승법계도|작성자 임기영 불교자료 모음
출처 : 봉은사랑
출처 : 가장 행복한 공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