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극우재단의 자금으로 학술 행사를 하는 것을 반대하는 프랑스 학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기사를
보면서 나는 1995년에 연세대에서 벌어진 아시아연구기금 사태를 떠올렸다.1995년에도 이와 유사한
사건이 연세대에서 발생했는데 결론은 1백억의 자금을 연세대는 받아서 재단을 운영했다는 것이다.
프랑스 학자들, 일본 극우 재단과 싸운다
“전범 사사카와가 세운 일본재단의 후원 거부” 공동성명… 해당 교수 소송당하자 연대 움직임
연세대의 일부 학자들은 물론이고 한국 내의 지식인들은 일본 재단이 한국을 비롯한 세계 유명대학에
자금을 대줄테니 일본과의 교류와 연구를 해달라는 요청을 많이 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세계 유명대학은 일본 재단(1995년 사사카와 재단에서 변경)이 불순한 의도와
석연치않은 연구 조건등을 이유로 모두들 거부했었다.그러나 연세대는 일부 교수들의 반대에도
눈하나 깜빡하지 않고 낼름 자금을 받아서 사용했었다.
우선 사사카와라는 인물을 먼저 살펴보자
사사카와 료이치 (1899-1995 )笹川良一 .
○ 일본 오사카 출신으로 정치를 표방하되 권력을 등에 업고 사업을 크게 한 일본 국수주의 정치가이다
○ 1931년 우익 단체 국수대중당(國粹大衆黨)의 총재가 되는데 이 단체는 일본 국수주의를 표방하며
무솔리니의 숭배자를 표방하며 당원들에게 흑색복을 착용시키는 등 한마디로 나치주의와 같은
골수 일본 극우정치 세력의 표본적인 인물이다.
○ 만주사변이 일어나자 ‘국수 광산’, ‘일본 광업’ 등의 주식을 매점하여 엄청난 부를 모으고
‘국수의용항공대’를 창설하여 ‘1인 1기 1함 격멸주의’라는 구호를 내걸었는데 차후에
이 구호가 ‘카미가제(神風) 특공대’의 창설로 이어진다는 의견도 있었다
○1945년 12월 A급 전범 용의자로 체포, 스가모 형무소에 투옥되었는데 사사카와는
미 통합 참모본부가 맥아더 사령관에게 내린 전범 용의자 체포 명령 중에서
‘초국가주의적, 폭력적 결사 및 애국적 비밀 결사의 주요 인물’로 체포?투옥되었다.
즉 이 사람은 한마디로 일본국수주의를 위해서라면 폭력과 테러도 불사할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 1948년 석방된 사사카와는 감옥에서 <라이프>를 보고 모터 보트 경주가 엄청난 돈이 될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마약,무기 거래의 자금과 예전 국수대중당의 국수주의 부하들을 데리고
1951년 ‘모터 보트 경주법’을 국회에 제출, 그에게 돈으로 매수된 자민당 의원들의 지지로 통과시킨 뒤
‘전국 모터 보트 경주회 연합회’(약칭 ‘전모련’)를 설립해서 회장에 취임한다.
전모련은 경정 사업의 엄청난 자금을 획득하는데 이것이 바로 사사카와가 엄청난 부를 다시금
얻게 되는 기초이자 근간이 되었고 현재 일본 재단 회장인 아들또한 전모련의 족벌체재속에 있었다.
○ 막대한 돈을 가지고 ‘전일본 애국자 단체회의’(약칭 ‘전애회의’)의 고문에 취임한다. ‘전애회의’는
‘국체호지(國體護持)’와 ‘반공 협동 전선’을 2대 강령으로 일본의 재군비,천황제 옹호 주장에
일본 교원노조 탄압 미일반보 조약 강행 개정에 항의하는 학생과 일반시민 테러등의
정치깡패적인 면모와 폭력으로 모든것을 해결할려는 면모를 보여주었다.
○ 표면적으로 각종 단체 회장직에서 물러났지만 그 후에 ‘일본 선박 진흥회’를 중심으로 ‘B&G 재단’ 등 ‘사사카와 그룹’을 구축하여 도박 산업을 기반으로 조성한 방대한 자금에 의해 정·재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지속시켜 나갔는데 설립 당시 1억 3천만 엔이었던 ‘일본 선박 진흥회’의 자산액은 1980년이 되면 무려 1,244억 6천만 엔에 달했는데 한국돈으로 따지면 1조 6천억원이 넘는 자금이었다.
○위에서 보듯 그의 행적은 한마디로 일본 국수주의 사상을 깔고 여우같은 정치적 행보를 통해서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세우고 정치권력을 가지고 막대한 부를 창출한 일본 극우중의 극우파인것이다.
그가 세운 일본 재단은 원래 일본선박진흥회에서 비롯되어서 명칭을 바꾸었는데 사사카와는 이 재단을 비롯한 각종 단체를 설립했는데 이 재단의 임원진들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세력중에는
'새역사를 만드는 모임'이라는 일본 교과서 왜곡의 주범 그룹들이 대거 자리를 맡고 있다.
특히 이 재단들은 하바드나 예일등 유명 대학에 연구 기금을 제공하고 일본의 위상을 높이거나
일본과의 교류를 통해서 친일적인 인사로 만들거나 일본의 역사를 왜곡시키거나 국제사회에서 일본을지지하는 세력으로 삼을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하바드나 예일은 이 재단 자금 거부)
■ 연세대 '아시아 연구기금'
1995년 연세대는 '한일협력기금'이라는 명목으로 일본재단으로 자금을 받을려고 하는데 이 자금이
사사카와의 자금이라는 것을 알고 박영재 역사학과 교수를 중심으로 엄청난 반대를 했다.그런데 이 반대는 그 당시 송자 총장등의 친일 세력등의 말도 안되는 논리에 묻혀서 결국 연세대는 '아시아연구기금'이라는 명목으로 이 자금을 각종 연구 기금으로 학자들에게 나누어주고 연구 및 학술행사를 펼쳤다.
2005년 MBC PD수첩이 아시아 연구 기금의 불순한 의도를 보도했고 1995년에 이어서 2005년에도
연세대 교수협의회에서 반대를 했지만 그 후에도 이 기금은 장소를 바꾸어 운영되었다.
(2008년까지 기금사업운영/홈페이지참조)
연세대 내 아시아연구기금사무실 |
자료출처:오마이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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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DI)국제정책대학원이 일본극우‘사사카와평화재단’에게 연구기금 받아 연구를 진행했는데,순수한 학술지원이라고 판단해 기금을 받았단다.똥인지 된장인지도 모르는 아니 그런 판단도 없으면서 무슨 국제정책을 연구하는 대학원과 관련관계자라고 할수있는가?2013.06.10 리트윗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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굶어도 먹어선 안될돈이다^^"@muwee2001: 일본 극우재단의 자금 지원받는 뉴라이트!! 연세대 '아시아 연구기금',안병직 '토요타 재단',국제정책대학원 '사사카와 평화재단', http://t.co/NvYnEAHv2r"2013.06.02 리트윗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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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극우재단 자금 받는 뉴라이트와 한국교수 :: http://t.co/B34DzOYmHn 일본 극우 정치인 사사카와 료이치와 '일본재단' ■ 연세대 '아시아 연구기금' ■ 뉴라이트 안병직 '토요타 재단' ■ 국제정책대학원 '사사카와 평화재단'2013.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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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T @sookpoet: 이승만 사사카와 료이치(일본재단)와 세계반공연맹을 만들었고 박정희는 이 인간에... http://t.co/AyU7Ot9b2a2013.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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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3wedme: 빌어먹을...日극우재단 자금 받는 뉴라이트와 한국교수 http://t.co/5bi70vMA"일본극우 사사카와 료이치 재단의 자금 받는 친일파들 전부 몰아내야2012.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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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극우의 대명사 사사카와 료이치 재단의 돈으로 운영되는 연세대 (재)아시아연구기금을 해체하라. <안중근의사를 테러리스트라고?> 파시스트 무솔리니,살인마 히틀러를 신으로 모시는 그들의 종 교수들 몰아내라. 연세대 학생들의 미래가 걱정된다.201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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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카와 료이치의 자금으로 만들어진 일본 재단을 두고 순수하게 학술적인 재단이라고 이야기하는 말도 안되는 소리를 지껄이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너희 딸과 누나,그리고 아버지와 형제를 팔아먹은 돈으로 ... http://t.co/MbOoQKya2012.4.22
아시아연구기금의 주요사업 내역이 담긴 2003년도 연차 보고서 표지. 공교롭게도 배경지도에 있는 동해의 영문 지명은 일본해(Sea of Japan)으로 되어있다.
ⓒ2005 아시아연구기금
http://cafe.daum.net/woweej/9340/4070
국제정책대학원, ‘동북아안전보장’ 연구
‘사사카와평화재단’ 2억 대줘…논란일듯
http://legacy.www.hani.co.kr/section-005000000/2005/06/005000000200506270238039.html
■ 뉴라이트 안병직 '토요타 재단'
뉴라이트 안병직서울대교수
안병직 교수가 토요타 재단의 기금을 받아서 연구한 논문에서 주장하는 바
1.식민지하에서 조선 농촌의 값싼 노동력이 공업 노동력으로 전환되었는데,
이것은 일본의 강제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조선 민중의 자발적 선택에 의한 것이었다.
2.식민지 공업화 과정에서 조선인 노동자들은 비록 일본인 노동자들보다는 못하지만 그래도 질적 발전을 경험하였다.
안병직 교수의 이야기를 더 쓰고 싶지만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서울대 교수출신이라는 작자가
이따위 말을 했다는 사실과 그의 자료를 보다가 노트북 컴퓨터 자판 부셔버릴뻔해서 그냥 참는다.
안병직 교수와 그 제자인 이영훈 교수가 주장하는 논문들의 기초는 한마디로
일제 시대가 있었기에 우리나라 경제가 이만큼 발전했다는 친일적인 사고 방식인것이다.
■ 국제정책대학원 '사사카와 평화재단'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이 일본재단의 출연금으로 세운 ‘사사카와평화재단’으로부터 연구기금을 받아 동북아시아 안전보장에 관한 연구를 진행했었는데 국제정책대학원의 담당자가 한 말이 더욱 웃기다.
“사사카와평화재단 쪽에서 먼저 기금 지원을 제안했고, 재단의 성격과 상관없이 순수한 학술지원이라고 판단해 기금을 받기로 했다”며 “대학원에서는 사무국 역할만 맡을 뿐 연구는 외부 연구자들이 독립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똥인지 된장인지도 모르는 아니 그런 판단도 없으면서 무슨 국제정책을 연구하는 대학원의 관계자라고 할수있는가?
■ 탤런트 이서진 '일본 재단'
아래는 신문 기사의 일부이다.
14일 오후 3시부터 도쿄의 일본재단 본부에서 이서진과 사회복지 활동을 하는 공익 단체인 일본재단이 공동으로 창설한 환경기금 '렛츠 트리(Let's Tree)'의 출범에 즈음한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 자리에는 이서진을 비롯해 일본재단의 사사카와 요헤이(笹川陽平) 회장, 기금운영위원인 컬러 핑크 재팬(Color Pink Japan)의 전영선(全映宣) 회장, 그리고 제네시스(GENESIS) 그룹의 윤홍근(尹洪根) 회장이 참석했다.
여기서 애기하는 사사카와 요헤이 회장은 바로
'반공우익과 기부천사의 두 얼굴' A급전범 사사카와 료이치의 아들이다.
사사카와 요헤이는 아버지의 뒤를 이은 인물로 그의 인터뷰 기사 어디를 봐도 한국을 침략해
모든 공공재산을
수탈하고 만행을 저질른 것에 대해 어떤 반성의 흔적도 보이지 않는다. 일본은 그에 대한 사죄나 반성은 커녕 오히려 그 시대의 역사적 흐름을 정당화 하고 또한 아직도 새역사를 만드는 모임 의 핵심멤버들을 일본 재단의 임원으로 임명하고 있다.
위의 인물들이 누군인지 아는가?
바로 친일의 대표적인 이완용,이근택,박제순,권중현,이지용 이다.
우리의 근대사에서 가장 치욕적인 잘못은 바로 반민특위가 해산되면서 우리나라가 올바르게
친일파를 청산하지 못했다는 것이다.이것으로 우리 사회 전반에서 친일파가 득세하고
이것은 민족이나 국민을 위해서 일하기보다는 자신의 부와 권력만을 쫓아 살면 모든것이 해결된다는
식의 사회의식을
우리 국민에게 심어준 꼴이 되어 버렸다.과거는 묻지말고 오로지 돈과 권력만 있으면 된다는 풍조는 대통령들부터 시작되었다.
우선 이승만은 아시아 태평양 반공 연맹을 시작으로 1966년 사사카와 료이치와 세계반공 연맹을 만들었고, 박정희 대통령은 그에게 '수교훈장 광화장'이라는 훈장을 수여한다.
이것이 말이 되는가?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전범국 일본은 한반도를 침략한 주범국 이라는 사실이다.
이런 범죄자에게 자기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서 돈을 받고 훈장을 수여해주고함께 단체를 세웠다는 것은 치욕스런 일이다.
사사카와 료이치의 자금으로 만들어진 일본 재단을 두고 순수하게 학술적인 재단이라고 이야기하는
말도 안되는 소리를 지껄이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너희 딸과 누나,그리고 아버지와 형제를 팔아먹은 돈으로 부자가 된 자의 돈으로
그 연구가 그 활동이 그리 소중하고 목숨을 걸만한 일이었던가?
일본인 중에서 정말 과거를 반성하고 한일 양국의 회복을 위해 애쓰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우선적으로 과거에 대한 반성이 먼저 시작되었다는 점이다.그리고 그 인물들이
만든 자금들은 모두가 정상적인 사업으로 조성된 자금이었다.
그러나 사사카와 료이치의 자금은 태생부터 검은 자금이고 그는 그 자금으로 자신의 명예를 위해
재단을 만들고 운영했었을 뿐이라는 사실이다.
아래의 신문 기사들을 읽어보기 바란다.
날짜 1907년 05월 15일
제목 일제육군, 친일단체 일진회에 10만원의 정치 자금을
내용
일제육군, 친일단체 일진회에 10만원의 정치 자금을 줌.
독립신보 1948년 08월 26일
일제의 앞잡이로 조선민족을 못살게 굴던 친일파들이 해방후 미군정에 잠입하여 갖은 못된 짓을 하여 인민의 생활은 도탄에 빠지게 하고 통일자주독립을 방해하여 3년이란 세월을 혼란으로 보냈는 바, 또 다시 대한민국정부의 고관에 취임함을 보고 인민의 원성은 고조에 달하자 국회에서 친일파 급 민족반역자처단법령을 토의중임을 안 친일파들은 갖은 수단으로 방해공작을 하고 있다는데, 친일파집단이라고 세간에서 말하는 모 당에 매월 20만 원 정도를 제공하던 친일재벌 金모씨는 요즈음 친일파·민족반역자숙청법안이 국회에서 논의됨을 보고, 돌연 2천만 원이라는 거액을 모 당에 제공하여 동 법안을 완화 또는 무능화하도록 공작하는 자금으로 제공하였다고 하여 일반의 주목을 끌고 있다. 그리고 국회에서 친일파·민족반역자 숙청을 강경히 주장하는 모모 의원들을 전기 모 당의 당수가 회견을 23일에 청하여 친일파 문제를 광범하게 취급할 것이 아니라 범위를 좁게 취급할 것을 요청하였다 한다.
일제 시대에도 일본의 자금을 받아 활동했던 친일파가 해방후에도 친일행각을 벌이고 현재에도 일본 극우 세력의 자금을 받아 여전히 활동하고 있다.
우리는 피해자 이기에 떳떳한 민족이다.무엇이 아쉬워 그들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그들의 자금을 받아서 그들을 위한 연구를 하고 그들의 극우주의와 역사왜곡에 협력하는가?
노무현 대통령은 반민특위의 사건을 읽고
“가슴 속에 불이 나고 피가 거꾸로 도는 경험”이라고 했다.
일본 극우 재단의 자금을 받아 쓰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사사카와 료이치의 흔적을 되돌아보고 그래도 돈받기를 원한다면
“권력과 부를 위해서는 나라도 팔아먹는 매국노라 불리울 것이며,그들은 결코 지식인이 아니며 야만인이고 형제와 가족을 참수하는 금수 만도 못한
'인간백정' 이라고 명명할 것이다."
자료 참고 및 인용
일본 극우세력과 연합한 연세
전후 일본의 일제 잔재의 문제 박영재 교수
한겨례신문/오마이뉴스
한국사 데이터베이스
국가학술원
프랑스 학자들, 일본 극우 재단과 싸운다
한겨레21 입력 2010.07.02 18:10 수정 2010.07.30 18:12
[한겨레21]
"전범 사사카와가 세운 일본재단의 후원 거부" 공동성명… 해당 교수 소송당하자 연대 움직임
프랑스 학자들이 역사 왜곡을 일삼는 일본 극우에 맞서 지금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
사건의 발단은 2년 전 겨울인 2008년 12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는 프랑스와 일본의 수교 150주년을 맞아 이를 기념하는 각종 행사가 프랑스 현지에서 개최됐다. 그 일환으로 프랑스 국제관계연구소(IFRI)라는 싱크탱크에서는 수교 150주년을 기념하는 학술회의를 준비하고 있었다.
일본재단, 역사 왜곡 지원 활동
이 행사는 '프랑스-일본 재단'(Fondation Franco-Japonaise)이 후원을 통해 자금 지원을 하고 있었다. 프랑스 외무부도 프랑스-일본 수교 150주년을 자축하는 의미에서 이 학술행사에 공동 후원자로 참여하기로 예정돼 있었다.
문제는 이 행사의 주 후원기관인 프랑스-일본 재단의 실체였다. 이 재단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일본의 A급 전범으로 기소된 사사카와 료이치라는 극우 인사가 일본 국내외에 설립한 수십 개 '사사카와 재단들' 중 하나였다.
사사카와는 20세기 초반 이탈리아 독재자인 무솔리니를 따라 일본에 파시스트당을 건설하려던 일본의 대표적인 극우 인사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기간에 일본의 전쟁 수행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혐의로 종전 뒤 A급 전범으로 기소돼 수감 생활을 했다.
그러나 출옥 뒤 일본 극우 정치권의 지원하에 경정 도박사업을 독점 운영하면서 천문학적인 자금을 축적하게 된다. 이러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일본 극우 세력의 든든한 후원자 역할을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1962년 일본선박진흥회라는 공익재단을 설립해 운영한다.
일본선박진흥회는 나중에 일본재단(Nippon Foundation)으로 이름을 바꾸는데, 이들은 일본뿐 아니라 해외에도 수많은 유사 재단을 설립하고, 이 재단들을 통해 각종 학술문화 행사, 연구 활동 등을 지원하며 사사카와의 극우 행적을 미화하고, 일본 극우 세력의 역사 왜곡을 적극 지원해왔다.
그런데 프랑스 외무부가 이러한 사사카와 관련 재단이 후원하는 학술행사에 참여한다고 하니 프랑스 학계가 발칵 뒤집힌 것이다. 결국 프랑스의 일본학 및 동아시아학 관련 학자 50여 명은 행사 개최를 몇 주 앞두고 깊은 우려를 표명하는 공동성명서를 전격 발표하게 된다. 그들은 성명서에서 그동안의 학계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사사카와의 행적을 고발하면서, 프랑스 정부가 사사카와 관련 재단이 후원하는 이번 행사에 참여하지 말 것을 강력하게 요구했다.
학계의 이례적인 강한 논조의 성명을 접한 프랑스 외무부는 상당히 당황했다. 그래서 행사 개최를 불과 일주일여 앞둔 시점이었음에도 베르나르 쿠슈네르 외무부 장관은 지체 없이 행사 참여 재검토를 지시했고, 프랑스 외무부는 행사 개최 직전까지 고심하다가 마침내 이 행사를 공동 후원하지 않겠다는 최종 결정을 내린다.
결국 이 행사는 처음 기획과는 달리 프랑스 외무부의 이름은 빠진 상태로 개최됐고, 이후 논란은 프랑스 학계와 외교가의 후일담으로 종결되는 듯했다. 그러나 이 사건이 세간의 기억에서 잊혀질 무렵인 2009년 가을, 사사카와 재단 쪽은 뜻밖의 일을 벌인다. 당시 서명 작업을 주도한 학자 중 한 명인 파리정치대학(시앙스포) 국제관계연구소의 카롤린 포스텔 비네 박사를 지목해, 프랑스 학자들의 공동성명서가 사사카와 료이치와 그가 세운 재단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프랑스 법원에 거액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보복성 손해배상 소송 "학문 자유 위협"
특히 당시 성명에 참가한 학자 50여 명 전체가 아닌 단 한 명의 학자에게만 '본보기' 성격의 소송을 제기하고, 소송 통보 과정에서도 카롤린 박사의 주거지나 사무실이 아닌 공개적인 교내 학술행사 장소에서 수많은 사람이 보는 가운데 소장을 전달하는 모욕적인 방법을 택했기에 파문은 더 컸다.
이에 프랑스 내 학술연구단체들은 일제히 강력하게 반발했다. 프랑스 정치학회는 지난 2월에 발표한 성명을 통해 "공익재단이 연구자의 학술 활동에 대해 이런 소송을 벌인 사례는 거의 전무하며, 소송 내용이나 과정 또한 학문 연구의 자율성을 억압하기 위한 본보기 성격이 짙다"고 항의했다. 프랑스 일본학회도 성명을 발표해 "사사카와 료이치의 극우 행적은 학문적으로 이미 수많은 학자가 검증한 사안인데, 이런 학문적 사실에 근거한 내용을 문제 삼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면서 "학문의 자유를 위협하는 행위를 즉시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 아울러 프랑스의 역대 대통령, 장관, 국회의원 대부분을 배출해온 파리정치대학 교수 및 연구자들도 이례적으로 기명 공동성명을 내 "우리는 카롤린 포스텔 비네 박사를 지지하며, 연구 활동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끝까지 연대할 것"이라고 지지 의사를 밝혔다.
이에 대해 익명을 요구한 프랑스의 한 일본학 연구자는 "사사카와 관련 재단 쪽의 이번 대응은 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 전개하던 그들의 역사 왜곡이 위기에 처했다는 방증"이라며 "서구 국가 중 일본에 가장 우호적이던 프랑스 학계에서의 영향력 행사에 균열이 생긴 데 대한 보복 성격이 짙다"고 말했다.
사사카와 관련 재단이 제기한 소송의 희생양이 된 비네 박사는 소송 문제로 벌써 수개월째 정상적인 연구 활동을 하지 못하고 있다. 그 밖에도 30년 넘게 일본을 연구해온 프랑스의 대표적인 일본학 연구자로서 받게 된 정신적 충격과 심리적 압박은 상당하다.
"일본재단에 관대한 한국, 의외다"
"사상과 학문의 자유를 누리는 학자들에게 주어진 사회적 책무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자신의 학문을 바탕으로 우리 사회의 '성실한 감시자'가 돼야 한다는 것이며, 또 다른 하나는 잘못된 것이 있을 때에는 '용감한 고발자'가 돼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는 내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입니다. 특히 이번 사건에 대한 프랑스 법원의 판례는 앞으로 다른 나라 학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사사카와 재단 쪽에 유리한 판결이 나오면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프랑스뿐 아니라 다른 나라 학자들을 위해서라도 학문의 자유와 역사적 진실을 지키기 위해 힘들지만 끝까지 싸우겠습니다."
비네 박사의 말이다. 그는 또 "한국의 일부 대학들에서 사사카와 관련 재단의 연구자금 유입과 관련한 논란이 있었음을 잘 알고 있다"면서 "일본의 식민 지배를 당한 한국 사회가 일본 극우 세력의 과거사 왜곡을 뒷받침하는 사사카와 관련 재단에 관대하다는 점은 의외"라고 말한다.
일본 극우의 역사 왜곡에 가장 경계심을 가져야 할 한국 사회가 오히려 프랑스 사회보다 이 문제에 둔감하다는 것은 다소 역설적이다. 최근 유명 한류 연예인(이서진)이 사사카와 가문의 일본재단을 사실상 홍보하는 역할을 맡기로 한 것은 이 문제에 지금 우리 사회가 얼마나 둔감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비네 박사를 포함한 50여 명의 프랑스 학자들은 지금 1898년 에밀 졸라가 그러했듯이 "나는 고발한다!"(J'accuse!)는 외침으로 해외에서 역사 왜곡을 일삼는 일본 극우 세력을 고발하고 있다. 그들의 이러한 외침에 한국 사회는 과연 어떤 반향으로 연대할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해볼 일이다.
사사카와 관련 재단들의 꼼수
일본재단·도쿄재단 등 이름 바꿔가며 실체 은폐
프랑스의 일본학 연구자들은 "A급 전범 사사카와 료이치가 설립한 일본선박진흥회가 1996년 일본재단(Nippon Foundation)으로 이름을 바꾼 것은 일본 정부가 만든 국제교류기금인 일본재단(Japan Foundation)과의 혼동을 겨냥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실제로 유럽과 북미는 물론 국내에서도 이 두 개의 상이한 재단을 하나의 같은 재단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두 재단의 일어 명칭보다는 영어 명칭이 주로 사용되는 상황에서, 'Nippon Foundation'은 'Japan Foundation'의 또 다른 표기 정도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도쿄재단'(Tokyo Foundation)이 일본재단과 동일한 자금과 임원진으로 설립·운영되는 곳이라는 사실도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국내 정치인과 언론은 물론 심지어 진보적 시민단체에서도 이곳을 대표적인 일본의 싱크탱크 중 하나로 소개하는 경우를 볼 수 있다.
한편 영국·프랑스·북유럽 등 해외에 설립된 사사카와 관련 재단들의 경우에는 처음 등록 때에는 사사카와라는 이름을 사용하지 않다가 현재는 사사카와라는 이름을 함께 병기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사사카와 료이치라는 인물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이미 해외에서는 많이 희석된 덕분이다. 프랑스에 설립된 프랑스-일본 재단(Fondation Franco-Japonaise)의 경우에도 프랑스 당국에 공익재단으로 처음 등록할 때는 사사카와라는 명칭을 사용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홈페이지를 비롯한 모든 활동 내용에 '사사카와 프랑스-일본 재단'(Fondation France-Japonaise Sasakawa)이라는 비공식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프랑스 학자들은 이러한 사사카와 관련 재단들에 의한 조직적인 역사 왜곡의 대표적 사례 중 하나로 난징 대학살 문제를 언급한다. 몇 년 전, 유럽과 미국 주요 대학의 일본학 및 동아시아학 관련 연구자들과 도서관들에는 일제히 도쿄재단에서 보낸 책들이 도착한 일이 있었다. 그것은 < 난징 대학살: 사실 vs 허구, 한 역사학자의 진실 탐구 > (The Nanking Massacre: Facts versus Fiction, A Historian's Quest for the Truth)라는 책이었는데, 난징 대학살이 사실이 아니라 허구라는 일본 극우 세력의 역사관을 대변하는 한 일본 학자의 책을 영어로 번역 출판한 것이었다. 이 책을 전세계에 보급하고 적극 홍보에 나선 도쿄재단은 일본재단이 출자해서 만든 수많은 사사카와 관련 재단 중 하나다. 사사카와의 자금으로 만들어진 수십 개 재단이 이름만 달리해 활동함으로써 일본 극우 세력과는 무관한 여러 단체가 이러한 주장을 펴는 것처럼 위장하는 대표적 사례라는 것이다.
프랑스 학자 사이에서는 이러한 사건들 이후 사사카와 관련 재단들의 역사 왜곡 시도를 경계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일기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이미 여러 학자가 사사카와 관련 재단에서 연구자금을 받는 걸 거부했고, 이러한 움직임에 동참하는 학자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파리(프랑스)=윤석준 통신원 파리정치대학 유럽학연구소 박사과정 연구원semio@naver.com
첫댓글 모든역사가 정립이돼지않는다 역사상 수수계기의 종교단체 근본교와 홍만교 의 정체부터가 의문점이고 모든 권력자에게 종교는 도구이며 절과 교회는 방패역이다 그렇게 보는봐야지만 역사가 해결되기때문이다
2차대전말까지 2가지 세계 원월드 계획이 있었다고한다 그 2가지 계획때문에 대륙파와 해양파 홍만교와 흑횽회
그리고 영국을 중심으로한 도쿄파 국가 신도 가 대립을 계획했다 누가 바도 똑같다 사사료이치의 선박진흥회 세계는 하나 인류는 모든 형체라는 이구동성의 이야기를 보면 인터넷을보다가 이상한 내용을 보았다고한다 사사가와씨의 혈통과 그의 의지를 잊고있는 라인과 천왕을 필두로한 도쿄파의 대결은 끝이없고 서로 교미하는 뱀처럼 꼬여서 서로가 동조하다가 싸우는 이상한 관계임을 알수가 있었다 어느쪽 2개다 용이될 기회가 이있다고한다 이사실을 전후 역사가와 소설가가 동원되어서 전혀알수가 없는 이야기로 재
탄생되었을것이다 하지만 호리 와 홍만교의 재원은 주식투자라고하지만 출구 王仁三郎이 왜 그토록 많은 자금력을 가지고
한국에 로비를 했는걸까?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가 왜 외국인 참정권을 내세우면서 재일과 이민자들에게 동아공동체 이야기를 이야기했고 김대중과 노무현은 닮아도 너무 닮았다 하토야마가 재일외국인에게 참정권을 준다는 내용도 한국의 다문화 주의에 압장섰덧 노무현 김대중과 같은 꿈을 뀌었다고 봐야하는가? 자칫 잘못생각하면 힘든 사태를 초래할수있는 국책 변화이다 하지만 일본의 안과바깥쪽은 믿지않는게 더욱더 중요하다 어디까지 그들의 계획인지 알수조차없는 미궁임에 틀림이 없다 역사의 비밀은
나 역시 가설과 추측으로 역사를 말하고있지만 북한이 가짜 천왕제를 들고왔든 이라면어찌되는가 아직 김일성이 누구인지
김책인지는 밝혀지지않았고 김정은은 김정일과 요코타 메구미 사이에서 태어난 소문까지 dna검증이 필요한 시점이다
너무 비밀에 싸여져있다 역사의 앞면과 뒷면에서는 대아시아 주의는 어떻게 되는가? 1924년 쑨원이 일본의 회견에서
아시아의 부흥과 둑립운동에 있어서 왕도 를 위한 아시아 민족의 대연합을 이루기위해서 동아시아에 왕을 만들어야한다는 내용으로 이어진다 그 내용은 김정은이라는 동북아시아의 왕좌를 노리는 김씨 왕족의 패도주의와 연결된다
홍만교가 뭔지요? 붉은 십자가? 종교가 인간을 가두는 도구임에는 맞는것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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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이고향 너무 심한 댓글놀이를 삼가해 달란거지... 재미 있어서 재미있다하는걸 뭐라하시진 않겠죠...
옜날에 봤던 용 이라는 일본 만화가 생각나네요...
항상 느끼지만 심해님글들은 깊은곳에서 우러나오는 심오한 내용들... 볼때마다 감동이 밀려옵니다...너무심해,,,
@바이탈 난 배탈님의 덧글이 적응이 안되네요ㅠㅠ
수행이 부족한듯...
일본의 안과 밖의 이야기는 너무나 어렵고 심오하다 역사적 사실과도 연관이 되겟지만 적십자가와 육망성 만자가 소용돌이 칠때 역사가 바뀌었듯이 지금이 바로 변화의 핵심에 있다 손자병법에 나오는 계략과 전술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누가 맞는말일까? 동북아의 운명은 어찌될까? 적의 적은 친구 라고했다 빠르게 전쟁모드로 돌아가고있다
일본 교토vs 일본 도쿄, 동아시아연합vs 중국 , 후진타오vs시진핑 , 팔레스타인vs이스라엘 , 서로가 서로를 물리는 한판승부가 결정되어있고 정작핵심인 교토와 도쿄라인 의 운명이 핵심이될지도모른다 아니 둘다 일수도있다 이들의 연관관계가 어찌될것인가? 전쟁이 있는곳에 일본인과 유태인
Nippone a sigy hante fuzzy dae zumeun yen & dollar many zundey!
상해임시정부세력은 러시아가 만든 세력이라는데요,,러시아가 독일조선하고 전쟁을하는 상태인데요,,상해임시정부가 독립군이라고 생각하세요,흥사단이 진짜독립군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