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정보
카페 프로필 이미지
불 향 지 사경원
카페 가입하기
 
 
카페 게시글
부처님스님법향 스크랩 혜민스님을 통해 `나를 알아가기`
禪海印(정진행) 추천 0 조회 25 12.06.03 08:39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젊은이들의 정신적 멘토, 혜민 스님 마음 수행법

 

 

 

                                        

 

 

 

 

하버드대 재학 중 출가해 한국 승려 최초로 미국 대학교수가 된 혜민 스님. 요즘 그는 스타다.
그를 스타로 만든 무대는 트위터. 9만 명의 팔로어와 소통하는 그는 젊은이들의 정신적 멘토로 통한다.
 최근 트위터에 쓴 글과 에세이 몇 편을 모아 책을 출간한 스님을 만나 인생의 지혜를 배우고 왔다.


 

UC버클리대 학사, 하버드대 비교종교학 석사, 프린스턴대 종교학 박사, 현 햄프셔대 종교학 교수 재직….
 미국에서 교수가 된 최초의 한국인 스님인 혜민 스님을 따라다니는 수식어다.
선망의 대상인 미국 명문대를 두루 거친데다 얼굴도 잘생긴, 일명 ‘엄친아 스님’으로 불리기도 하는 그는
지난해 방한한 리처드 기어의 통역을 맡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런 그가 요즘 타이틀을 하나 더 추가했다.
 
‘트위터계의 스타 스님’이다. 무려 9만여 명의 팔로어와 소통하고 있는 그는 위로와 공감이 필요한 젊은이들의
‘정신적인 지주’이자 ‘힐링 전도사’다. 삶에 대한 깨달음이 있을 때마다 자신의 생각을 트위터에 올린 글들을 모아
최근에는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쌤앤파커스)이라는 에세이집도 냈다.
 
지난 9일 서울대학교 캠퍼스에서 스님을 만났다(지난해 안식년을 맞아 한국에 들어온 스님은
서울대 규장각 한국학연구원으로 지내다가 1월 중순 출국했다). 사실 ‘스님’ 하면 장삼을 갖춰 입고,
합장을 하고, 근엄하고, 산사에 머물며 세상과 담을 쌓은, 그런 모습이 연상된다.
 
하지만 혜민 스님을 마주하는 순간 이 모든 편견이 사라졌다. 유쾌하고 명쾌하고 따뜻하고 편안했다.
인터뷰 내내 통쾌한 해답을 건넨 혜민 스님과의 진솔한 소통.


타지에서 모국어가 그리워 트위터 시작  

혜민 스님의 트윗은 유익하고 재미있다. ‘시기와 질투가 강하면 본인의 재주에 한계가 금방 온다’
‘다른 사람의 결점이 내 눈에 들어오는 것은 내 안에도 똑같은 결점이 어딘가에 있기 때문이다’
 
‘완벽한 사람은 없다.
 
오직 자신의 부족함을 잘 아는 사람과 잘 모르는 사람만이 있을 뿐이다’ ‘상대가 스님이라고
정성스럽게 합장 인사를 하니 나도 정성스럽게 합장 인사를 한다.
상대가 목례를 하니 나도 부지불식간에 목례를 한다. 나는 상대의 거울이다.
 
상대에게 원하는 것이 있으면 내가 먼저 해라’ 등의 글에는 1백40자 단문이라는 트위터의 한계를
뛰어넘는 지혜가 담겨 있어 ‘역시 도 닦는 분답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그런데 다음 글들을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삶에 대한 정열이 살아 있는 당신께 바치는 곡입니다.
Coldplay-Viva La Vida’ ‘연애를 할 땐 밀고 당기기가 중요하다’ ‘뷔페는 두 접시까지가 딱 좋다’
 
‘메일을 보냈는데 답장이 바로 오면 갑자기 무슨 보너스라도 받은 좋은 기분이 든다’ 등등.
이 스님, 스님답지 않게 참 발랄하다. 욕심 많게 접시 가득 담고선 후회하는 그 마음, 별 생각 없이
메일을 보내고 새로 고침 버튼을 눌렀는데 그사이 답장이 와 있어 아이처럼 즐거워하는 스님의 얼굴이 그려진다.
 
대부분의 트위터 명사들이 자신의 글만 올리고 사용자들의 질문에 응답하지 않는 반면,
스님은 일일이 질문에 답변을 다는 열의를 보인다. 또한 딱딱한 불교용어나 어려운 단어를 쓰지 않고 종교,
나이, 성별에 상관없이 공감할 수 있는 글들을 올린다. 그의 트윗이 인기 있는 이유다.
그렇다면 스님이 트위터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외로웠어요. 미국에서 강의를 마치고 연구실에 돌아오면 우리말로 누군가와 말하고 싶은데,
그럴 대상이 없다 보니 향수병에 걸린 것처럼 모국어가 그리워지더라고요.
그때마다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들을 트위터에 일기처럼 적었어요.
제 글에 공감하고, 모국의 언어로 대화해주는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큰 위안을 얻었습니다.”

그리운 사람이 그리운 사람들에게 말을 걸자, 그들도 말을 걸어왔다.
외로움을 이기려고 스스로 위안의 글을 남기자 사람들은 되레 위안을 받았다며 말을 걸어왔다.
상처받은 마음이 치유됐다는,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을 조금은 이해하게 됐다는, 나 자신을 사랑하겠다고
다짐했다는 글들이 쏟아졌다. 스님의 맑은 글, 따뜻한 위로에 사람들은 감동했고, 그렇게 소통은 계속되었다.
 
스님은 “나의 말 한 마디가 어떤 사람에게는 용기와 위안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며 “
그래서 마음을 가다듬을 수 있는 글을 올려 자신의 소중함을 깨닫고 스스로를 사랑하고,
다른 사람을 껴안을 수 있게 되는 데 보탬이 되고 싶었다”고 말했다.

전국 대학을 돌며 연 30회 이상의 법회를 통해 수많은 대학생을 만나고 있는 스님은 그가 진행하는
마음 치유 콘서트를 통해 20~30대 젊은이들과 소통하고 있기도 하다.
그는 “그동안 겪은 한국 청년들은 참으로 가여웠다”며 말을 이어나갔다.

“젊은이들을 만나면 두 가지 얘기가 빠지지 않고 나와요. 지금 다니는 대학을 나와 봤자 취직이 안 되니
관두고 재수할까 고민 중이라는 것과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뭔지 모르겠다는 것.
 
미국에서 법회할 땐 ‘진정한 나를 찾고 싶다’는 식으로 삶에 대해 철학적 해법을 찾는 분이 많았는데,
한국 청년들은 훨씬 절박하더군요. 자신을 다른 사람과 너무 비교하기도 하고요.
그러다 보면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모르고 남들이 원하는 것만을 쫓게 됩니다.
위만 보고 달리면 절대 행복해질 수 없어요.”

“남을 만족시키는 삶이 아닌, 나를 만족시키는 인생을 살아야 한다”고 강조한 스님은 젊은이들에게
도전과 모험 또한 아끼지 말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한국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너무 집착하는 것 같아요. 어려서부터 남들이 다니는 학원은 다 보내고,
 따라와 주길 바라고, 부모가 원하는 대로 커주길 바랍니다. 아이만 바라보고 사는 거죠.
 
 미국 부모들은 자식보다 배우자가 먼저고, 자기 인생이 먼저입니다.
 
아이들이 정말 잘되길 바란다면 아이에게로 향한 지금의 관심과 기대치를 일정 부분 낮추고
낮아진 수치만큼 관심을 자신의 배우자에게 돌리세요”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에 대하여 

“타이핑을 어떻게 하는지 먼저 배운 다음에 컴퓨터 자판을 두들기겠다는 사람과,
일단 되든 안 되든 자판을 두들기며 시작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또 영어를 잘하기 위해 일단 문법부터 마스터하고 외국인과 만나서 대화를 하겠다는 사람과,
일단 보디랭귀지를 써서라도 맞부딪히면서 배우는 사람이 있지요.
후자의 학습 속도가 전자보다 대체로 더 빠릅니다. 왜냐하면 후자는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거든요.”

그는 세상에 완벽한 준비는 없다고 말한다.
삶은 어차피 모험이고 그 모험을 통해 내 영혼이 성숙해진다는 것이다.
 
 “물론 심사숙고해서 결정해야겠지만, 백 퍼센트 확신이 설 때까지 기다렸다 길을 나서는 것은 너무 늦다.
설사 실패를 한다 해도 실패만큼 좋은 선생님은 없다”는 것이 스님의 말이다.
혜민 스님의 세 번째 에세이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에는 이러한 청년들의 고민을 포함,
세상 사람들이 겪는 고통에 대한 젊은 출가자의 답변이 실려 있다.

‘사람 대 사람’의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스님은 이 부분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또 행복한 관계를 오랫동안 맺어가는 방법에 대해서도 알려주었다.

“인간관계는 난로처럼 가져야 해요. 너무 가깝지도 않고 너무 멀지도 않게.
아무리 마음이 잘 맞는 사람이라도 너무 오랫동안 바짝 붙어 있으면 탈이 납니다.
 
처음에는 좋아도 그 관계가 오래될수록 점점 좋은 줄 모르게 되고 구속받는 느낌이 생기는 거죠.
이럴 땐 서로에게 심리적 공간을 주는 시간이 필요해요.
이는 절친한 친구나 사랑하는 연인, 가족 사이에서도 해당됩니다.”

이는 자연스럽게 요즘 한국의 학부모들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스님은 자녀교육에서만큼은 한국의 부모가 미국 부모와 닮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한국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너무 집착하는 것 같아요.
어려서부터 남들이 다니는 학원은 다 보내고, 따라와 주길 바라고,
 부모가 원하는 대로 커주길 바랍니다. 아이만 바라보고 사는 거죠.
미국 부모들은 자식보다 배우자가 먼저고, 자기 인생이 먼저입니다.
 
제가 한국 부모가 미국 부모를 닮아가야 한다고 말하는 부분은 바로 이 부분을 말하는 거예요.
아이들이 정말 잘되길 바란다면 아이에게로 향한 지금의 관심과 기대치를 일정 부분 낮추고
낮아진 수치만큼 관심을 자신의 배우자에게 돌리세요. 이러면 아이들이 더 잘 자랄 수 있어요.”



 


세상 사람들이 겪는 고통에 대한 혜민 스님의 답변

은 그대여, 잠깐의 뒤처짐에 열등감으로 가슴 아파하지 마세요.
삶은 당신 친구들과의 경쟁이 아닌, 나 자신과 하는 장기 레이스입니다.

프라이팬에 붙은 음식 찌꺼기를 떨어뜨리기 위해서는 물을 붓고 그냥 기다리면 됩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떨어져나갑니다.
아픈 상처를 억지로 떼어내려고 몸부림치지 마십시오.
그냥 마음의 프라이팬에 시간이라는 물을 붓고 기다리면 자기가 알아서 어느덧 떨어져나갑니다.

쓰나미가 무서운 것은 바닷물이 아닌 바닷물에 쓸려오는 물건들 때문입니다.
회오리바람 또한 바람 때문에 죽는 일보다 바람에 쓸려온 물건들에 치여서 다치고 죽습니다.
 
우리가 괴로운 건 우리에게 일어난 상황 때문이 아닙니다.
그 상황들에 대해 일으킨 어지러운 상념들 때문입니다.

배우자에 대해 ‘쉽게 변하지 않겠구나’ 하고 포기하려 하니 앞으로 남은 그 많은 세월
어떻게 참고 살까 걱정이 되나요? 그럼 스스로에게 물어보십시오.
나는 그 사람이 봤을 때 완벽한가? 인간관계에서 생긴 문제를 풀 때,
왜 상대가 내 마음을 알아주지 못할까, 왜 내가 원하는 대로 해주지 않을까,
 
이런 마음에서 출발하면 문제는 절대 풀리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상대에 대한 이해가 아닌 나의 요구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대신, 왜 상대가 나에 대해 저렇게 생각하는지, 나의 어떤 면 때문에 오해를 했고 힘들어하는지,
이런 관점에서 출발하면 상대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고 생각보다 쉽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스펙을 쌓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스펙을 쌓는 것이 아니라 하나하나 배우는 과정이 즐거워서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우다 보니 스펙이 하나둘씩 쌓이도록 하세요.
과정의 즐거움이 빠지고 결과만 얻으려 하면 그게 바로 고통입니다. 과정을 즐기십시오.

생각은 크게하고 실천은 작은 것부터 하십시오. 왜냐하면, 작은 생활의 변화에서 큰일을
해낼 수 있는 인연이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똑같은 이야기도 이렇게 하십시오. 너 어떻게 그렇게 서운한 소리를 하니.
이것이 아닌 네 말을 듣고 나니 내가 좀 서운한 마음이 든다.
즉 말할 때 상대를 향해 비난하는 투로 하지 말고, 나의 상태만 묘사하십시오.
이것이 좋은 대화법입니다.

아무리 서운해도 마지막 말은 절대로 하지 말아요.
 
그 마지막 말이 좋았던 시절의 기억마저도 모두 불태워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서운해도 마지막 말을 하지 말아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내가 하게 되면
상대방 역시 아픈 마지막 말을 하기 때문입니다.
인간관계에서 조금이나마 여백을 남기려는 노력은 그만큼 당신이 성숙하다는 의미입니다.



 

죽기 전에 내가 꼭 가보고 싶은 곳, 경험해보고 싶은 일들, 만나보고 싶은 사람들을 쭉 적어보세요.
그리고 그냥 그것들을 꾸준히 하세요. 하나씩 하나씩. 다른 사람 눈치 보지 말고,
이것저것 너무 고민하지 말고, 우리, 그렇게 살아요



 

행복은 인생을 즐겁게 긍정적으로 사는 것

사실 혜민 스님 하면 화려한 학력과 독특한 이력을 빼놓을 수 없다.
1992년 유학길에 오른 그는 UC버클리를 거쳐 하버드 석사, 프린스턴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1백 대 1이 넘는 경쟁을 뚫고 2007년부터 지금까지 매사추세츠주 햄프셔대에서 종교학을 가르치고 있다.
이 정도 ‘스펙’이면 속세에서도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인생이 보장되었을 터.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가를 결심한 이유는 무엇일까.

“평생을 헐떡거리며 살다가 죽음을 맞이하고 싶지 않았어요.
무조건 성공만을 위해 끝없는 경쟁만 하다가 나중에 죽음을 맞게 되면 얼마나 허탈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하버드에서 같이 석사과정을 공부하던 친구가 교통사고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을 때
이런 생각을 하게 됐어요. 죽음 앞에서는 학위도 돈도 사랑도 명예도 권력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셈이죠.”

스님의 꿈은 원래 영화감독이었다. 대학을 캘리포니아(UC 버클리)로 간 이유도
할리우드와 가깝기 때문이었다. 고등학교 시절 8mm 영화를 찍었을 만큼 영화를 만들고 싶은 욕심이 많았다.
영화를 찍고, 질문을 던지고, 찍고, 또 질문을 던졌다.
 
그렇게 질문의 끈을 따라가다 보니 바닥에 닿았다. 그 바닥에서 마주친 건 종교적 물음이었다.
그래서 대학교 3학년 때 전공을 영화학에서 종교학으로 바꾸고 머리 깎고 스님이 됐다.
아들의 출가를 지켜보는 부모님의 마음은 편치 않았다.
 
하지만 어려서부터 방목교육(울타리를 벗어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아이들의 자율성을 존중해주는 교육법)으로
아들을 키운 그의 부모는 아들의 선택을 존중하기로 했다.
다행히 요즘은 산중불교(山中佛敎)이던 때처럼 깊은 산속에 들어가 도 닦는 시절도 아니고,
예전처럼 속가 부모님을 멀리하지 않아도 돼 큰 문제는 없었다.
그래도 스님 하면 산속에 머문다고 생각되는데, 왜 그는 대학교 강단에 서 있을까.

“궁극적인 깨달음은 절에서 하는 수행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학생을 가르치는 것도 수행의 일부죠. 물론 저도 처음에는 깨달음을 얻겠다고 큰스님들을 만나러 다녔어요.
하지만 덕행을 하지 않으면 큰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제는 매 순간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해요.”

그렇다면 ‘마음’이 말을 듣지 않아서 고민한 적은 없을까.
출가 전에는 평범한 남자로서 결혼도 꿈꿨을 것이고, 출가 후에도 많은 유혹이 마음의 문을 두드렸을 터.

“저도 평범한 사람인지라 출가 전에 사랑도 해보고 아픔도 겪어봤어요.
 내 의지와 상관없이 문득, 우연히 찾아온 사랑이었는데 그 사랑을 통해 저는 종교적인 감성을 느꼈어요.
 신이 문득 찾아오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랄까.
 
물론 그 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었고, 결국 짝사랑으로 끝났습니다.
하지만 미련 없이 사랑했고 후회는 없어요. 진정한 사랑은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고 조건 없이 주는 거라고 생각해요.”

출가 후의 유혹에 대해선 “자기 마음의 패턴을 잘 읽고 있으면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자신의 마음이 어떻게 움직인다는 걸 알고 있으면, 그 결말을 미리 알 수 있어서 대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스님도 스스로의 마음 패턴을 잘 알고 있어 이제까지 유혹이 왔을 때 잘 넘길 수 있었다.

미국 명문대 출신인 그가 모든 것을 버리고 출가한 지 어느덧 13년. 그는 미련이나 후회는 없다고 했다.
 오히려 얻은 것이 많다. 사람을 얻었고 지혜를 얻었고 그 안에서 깨달음을 얻었다.
스님은 한국 청년들과의 인연이 그의 삶을 바꾸어놓았다고 말했다.
 
혼자서 도 닦는 게 무슨 소용이냐며 함께 행복해지고 싶다고도 했다.
그는 위로가 됐다는 반응을 들을 때마다 고마움과 보람을 느낀다.
스님이 생각하는 행복은 인생을 즐겁게 긍정적으로 사는 것이다.
스님의 긍정 마인드는 신기하게도, 인터뷰를 하는 동안 기자에게도 전해져 이제껏
‘의심병’에 ‘걱정투성이’로 살아온 기자의 사고를 바꾸게 했다.

스님의 이야기를 듣고 어떤 사람은 ‘말이 쉽지 그게 뜻대로 되냐’며 의문을 갖기도 할 것이고,
어떤 이는 ‘그러다 나만 바보 되는 거 아냐?’ 하고 튕기기도 할 것이다.
그래도 그중 몇 사람은 스님의 답을 통해 마음속 괴로움의 뿌리를 뽑아내는 기쁨을 얻을 것이다.

“인생을 가볍게 생각하십시오. 어떤 일이 생겼을 때 무겁게 받아들이지 말고
 가볍게 받아들이고, 함부로 하지 말고 진중하게 임하면 인생살이가 아주 쉽습니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모든 사람의 삶이 한층 가벼워지고 좀더 유연해지길 바란다.

 

KBS <아침마당> 출연 화제, 하버드 출신 혜민 스님 “미 명문대 출신인

 내가 모든 것 버리고 출가하기까지

 

 

                              

 

 

하버드에서 출가한 지 10년. 그사이 혜민 스님은 미국에서 최초로 한국인 스님 교수가 되었다.
최고 명문대를 졸업한 스님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자, 이에 대한 지난 10년 동안의 생각들을 저서
<젊은 날의 깨달음>에 정리했다. 책 출간을 기념해 잠시 한국에 들른 혜민 스님을
부처님 오신 날을 며칠 앞두고 조계사에서 만났다.
혜민 스님과 함께한 3시간. 이야기를 나누고, 식사하고, 사진 촬영을 하는 사이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어떻게 보면 참 짧은 시간인데 그사이 많은 인연을 경험할 수 있었다.
인터뷰 전날 아침방송에 출연한 스님을 알아보고 많은 사람이 인사를 건넸다
한 노부인은 “스님, 어제 TV에 나오신 분이죠? 어쩜 그렇게 공부도 많이 하시고, 훌륭하신 분이 계실까….
만나게 돼서 너무 반갑습니다”라고 한참이나 어린 스님에게 허리 숙여 인사를 했다.
 
연등을 밝힌 조계사에서 사진 촬영을 하기로 한 뒤 근처 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스님이 한국에 오면 자주 찾는다는 아담하고 소담스러운 식당이었다.
주문한 음식이 나오자, 서빙을 하는 종업원이 “밥값은 고두심씨가 계산하고 가셨어요”란다.
 일행 모두가 어리둥절했다. 갑자기 배우 고두심씨가 왜? 기자는 물론 스님 역시 그녀와 친분이 없었기에 더 의아했다.
 “어제 아침방송에 스님이 출연하신 걸 보셨대요”라고 종업원의 설명이 이어졌다.
 
TV에 등장한 혜민 스님이 고두심씨에게 큰 인상을 남겼는지, 불자이기도 한 그녀가 우연히 식당에서
스님을 보고 밥값을 계산한 것.
감사한 인연 덕분에 그 어느 때보다 식사가 즐겁고 맛있었다.
혜민 스님은 그 따뜻한 마음에 보답하고 싶어했다.
이 짧은 기사가 고두심씨에게도 전달되어서 혜민 스님의 마음이 전해질 수 있다면….
 
혜민스님이 졸업한 하바드 대학 전경
 
할리우드 키드, 스님이 되다 
 
속세를 떠난 스님에게는 ‘죄송한’ 표현이지만, 그는 ‘엄친아’다.
젊은 시절의 주윤발을 연상시키는 훈훈한 외모에, 하버드·프린스턴·버클리 등 세계적으로 알아주는
 대학교를 졸업한 인재다. 교편을 잡고 있는 햄프셔대학에 임용될 때는 100:1의 경쟁률을 뚫었다.
이 정도의 학벌과 배경이면 속세에서도 행복한 인생이 보장되었을 텐데…. 스님은 왜 출가를 결심했을까.
 
혜민 스님의 출가는 큰 사연을 품고 있지 않다.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원하는 것을 찾다 보니 승려의 길을 걷게 되었다.
다만, 누구나 사춘기 시절 고민하게 되는 ‘나는 누구이고, 어디에서 왔을까?
사람이 죽으면 어디로 갈까?’류의 고민을 주변 사람들보다 ‘조금 더’ 심각하게 했을 뿐이다.
 
대신 주변에서 일어나는 상황들이 그 시기를 결정해주었다.
하버드에서 함께 석사과정을 공부하던 친구가 교통사고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을 때
혜민 스님은 큰 충격을 받았다. 그 당시 참 많은 생각을 했고,
이처럼 삶이 아무런 예고 없이 부서지기 쉽다고 느꼈다.
 
죽음 앞에는 학위도, 돈도, 사랑도, 명예도, 권력도, 그 무엇도 아무런 소용이 없게 된다는 것을 깨달은 것.
혜민 스님은 승려가 된 이유를 자신의 저서 <젊은 날의 깨달음>에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내가 승려가 된 이유는 한 생을 분투만 하다가 죽음을 맞이하기 싫어서였다.
무조건 성공만을 위해서 끝없는 경쟁만 하다가 나중에 죽음을 맞게 되면
얼마나 허탈할까 하는 깨달음 때문이었다. 다른 사람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성공의 잣대에 올라가
다른 사람들에게 비칠 나의 모습을 염려하면서 그들의 기준점과 기대치를 만족시키기 위해
왜 그래야 하는지도 모르고 평생을 헐떡거리며 살다가 죽음을 맞이하고 싶지 않았다.’
 
“원래는 영화를 공부하고 싶었어요. 대학을 캘리포니아로 간 이유도 할리우드와 가깝기 때문이었죠.
 고등학생 시절 8mm 영화를 찍었을 만큼 영화를 만들고 싶은 욕심이 있었어요.
 전공은 종교학이었지만 영화 쪽도 많이 기웃거렸습니다.
 욕심이 많아서 종교와 영화에 대한 갈증을 모두 해소하려다가 ‘이것부터 풀리지 않으면 못 살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종교를 선택했지요. 솔직히 영화는 너무 힘들더군요.(웃음)
영화도 관람하는 건 참으로 로맨틱하지만, 제작 현장은 마치 전쟁터 같았죠.”
 
모두가 부러워하는 아들의 출가를 지켜보는 부모님 마음은 그리 행복하지 않았을 것이다.
장남과 영영 이별하게 될까봐 걱정이 컸다는 부모님. 행자가 되기 위해 한국을 찾았을 때,
뒤도 안 돌아보고 수행 사찰로 들어가는 아들의 뒷모습에 무척 서운했다고 후에 아들에게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요즘은 예전처럼 스님들이 속가 부모님을 그리 멀리하지 않아 큰 문제는 없다.
혜민 스님은 부모님께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문안 전화를 드린다.
 
“부모님께서는 불교에 대해 잘 모르셨는데, 저를 이해하려고 불교 공부를 많이 하셨대요.
지금은 불교라는 종교 안에 이렇게 고귀한 길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셨어요.
은사 스님 다음으로 최고의 서포터이시죠. 부모님을 자주 뵙지 못하니,
글로써 아들을 가까이 느끼시라고 이렇게 글을 쓰게 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어릴 때 우연히 어떤 스님이 지나가시는데, 저도 모르게 ‘스님~’ 하고 부른 적이 있어요.
그 스님께서 저를 보시더니 ‘도반이 죽어서 다시 태어났구나’라고 하셨어요.
그 말씀이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그냥 지나갔는데, 출가한 후에 그 기억이 떠오르더라고요
.아마 그때부터 불교와의 인연이 시작되었을지도 모르겠네요.”
 
학창 시절 모범생이었지만 ‘만년 부반장’이던 혜민 스님. 외모에서 풍기는 분위기는
강남 8학군 출신의 부잣집 자제 같지만, 스님은 평범한 가정에서 자랐다.
오히려 가정 형편이 좋지 않아서 마음고생을 한 적도 있다.
 
어머니는 아들이 부반장에 당선되어서 기뻐하다가도, 한편으로는 넉넉지 않은 가정 형편 때문에 긴장한 적도 많다.
하버드에서 공부할 때는 IMF 때문에 생활비가 부족해서 고생하기도 했다.
등록금은 장학금으로 해결했지만, 한국 경제가 좋지 않아 부모님께 의지할 수 없었다.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을 때, 한국에서 한 번 인연을 맺은 노스님이 필요한 돈을 보태주었다.
 
 아직도 그 스님이 자신의 어려운 사정을 어떻게 알았는지 잘 모른다.
 다만, 당시 생활이 어려울 텐데 필요한 돈이 있으면 말하라고 스님이 직접 전화를 주었다.
혜민 스님은 그때 처음으로 전화기를 붙잡고 울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러한 경험들이 어려운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는 토대가 되었다.
 
일상생활에서의 수행  
 
스님은 버클리, 하버드, 프린스턴 대학을 졸업하고, 햄프셔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친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도 그는 ‘수행’의 일부라고 말한다. 궁극적인 깨달음은 수행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스님도 처음에는 깨달음을 얻겠다고 큰스님들을 만나러 다녔다.
 
하지만 덕행을 하지 않으면 큰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따라서 이제는 매 순간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한다.
누구나 그런 마음을 함께한다면 종교 간의 벽도 허물 수 있다.
모든 종교가 사랑과 자비를 외치는데 이를 관념적으로만 생각한다면 종교와 종교 사이에
건널 수 없는 강이 생기지만, 사랑의 실천으로 들어가면 서로 만나는 지점이 있다고 믿는다.
 
 행동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모두 똑같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을 기본으로 혜민 스님은
 여러 종교를 학문적으로 비교하는 ‘비교종교학’을 강의하는데, 학생들의 반응이 꽤 좋은 편이다.
 
화려한 스펙 때문에 의도하지 않은 일들도 벌어진다. 은사 스님이 계신 뉴저지의 한인 사찰에
 주말마다 들르는데, 혜민 스님은 학부모들 사이에서 ‘인기 스님’이다.
 대입을 준비하는 학생들도 명문대 출신 스님에게 ‘대입 에세이’ 작성에 대해 물어보는 경우가 많다.
 다행히도 스님이 도와준 아이들은 거의 원하는 대학에 합격했다고 한다.
그럴 때마다 스님도 자신의 아이가 합격한 것처럼 기분이 좋다.
 
“사실 저는 명문 대학에 입학하는 게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 대학이 왜 좋을까요? 아무도 대답을 못하죠. 남들이 좋다고 하니까 좋은 거예요.
그리고 모두가 다 갈 수 없잖아요. 실패한 아이들은 평생 동안 패배의식을 안고 살아가게 되죠.
 
 저는 명문 대학만 고집하는 부모님들에게 아이들 한 명 한 명이 갖고 있는 빛깔과 향기를
 존중하라는 말을 많이 해요. 모든 사람이 이탈리아 명품 옷을 입을 필요가 없잖아요.
 체형과 경제력 등을 모두 고려해서 옷을 구입하죠.
모든 사람이 한다고 나도 하는 것보다는 나에게 맞는 학교에 가서 스스로 삶의 의미를 찾는 게 정말 중요합니다.”
 
미국에서 혜민스님은 다양한 사람을 만나며 덕행을 쌓고있다.
 
마음이 말을 듣지 않을 때 
 
그렇다면, ‘마음’이 말을 듣지 않아서 고민한 적은 없을까?
출가 전에는 평범한 젊은 남성으로서 결혼도 하고 싶었을 것이다.
 출가 후에도 많은 유혹이 마음의 문을 두드렸을 터.
“저도 평범한 사람인지라, 출가 전에 사랑도 해보고 아픔도 겪었죠.
 
저와 만나던 분들은 모두 결혼해서 잘 살고 계십니다.(웃음) 그런 얘기가 있어요.
훌륭한 스승은, 순수한 게 아니라 이것저것 다 겪어봐서 아픔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다.
고등학교 때에는 정말 사랑을 하고 싶었어요. ‘나는 사랑할 준비가 되었습니다.
사랑이여 와주세요~’라고 속으로 외쳤죠. 하지만 그토록 기다리던 사랑은 절대로 오지 않더군요.
 
그런데 그 시간이 지나 손님처럼 문득 사랑이 찾아왔어요.
저는 그렇게 우연처럼 찾아온 사랑을 통해서, 종교적인 감성을 느꼈어요.
사랑이 문득 찾아오는 게, 신이 문득 나에게 찾아오는 것과 비슷한 경험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유혹이오? ‘마음의 패턴’을 잘 읽고 있으면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내 마음이 어떻게 움직인다는 걸 미리 알고 있으면, 그 결말을 미리 알 수 있어 대처가 가능해요.
저도 제 마음의 패턴을 잘 알거든요. 그래서 이제까지 유혹이 왔을 때 잘 넘긴 것 같네요.”
고민을 떨쳐버리고 싶을 땐, 혜민 스님만의 특효약이 있다. 바로 ‘봉사’다. ‘봉사’로 ‘고민’을 떨칠 수 있다니….
잘 이해가 되지 않지만, 스님의 경험상 그 효과는 상상 이상이라고 한다.
요즘 사람들은 모두 ‘나의 고민’에만 집중해 있기 때문에 그 생각을 분산하면, 고민은 사라지게 마련.
 
“나의 고민만 자꾸 생각하는 것은, 식물에 물을 주는 것과 비슷하죠. 고민만 자라나는 거예요.
다른 사람을 도와주면요, 가장 큰 도움을 받는 사람은 바로 자신이에요.
자기의 에너지를 남을 돕는 데 써보세요. 어떻게 하면 남을 도와줄 수 있을까를 계속 고민하다 보면
나의 고민은 어디로 갔는지 사라져버린답니다.
 
그리고 남이 잘된 걸 진실로 함께 기뻐하면, 그 공덕이 똑같다고 해요.
질투하거나 심술을 내면 공덕이 감소하는 것이고요.
진실로 타인을 위하면 너와 나 사이에 있는 벽이 사라지는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질투하는 마음이 생기면, 그 마음을 고쳐달라고 부처님에게 ‘나무관세음보살’ 하고 기도하면 된다.
불자가 아니어도 방법은 있다. 자신이 믿거나 존경하는 대상을 떠올리면서,
바로 그 마음을 고쳐주세요라고 기도하면 10분 안에 마음이 변한다고 스님은 장담했다.
이게 바로 혜민 스님이 젊은 날에 깨달은 점이 아닐까. 혜민 스님의 깨달음이 많은 사람에게 전파되길 바란다.

 

 

 
다음검색
댓글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