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과 자캐오(루카 19,1-10)
『나니아 연대기』로 유명한 소설가인 C. S. 루이스가 쓴 『스크루테이프의 편지』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이 소설의 설정과 내용이 매우 흥미롭습니다. 주인공 스크루테이프라는 노련한 악마가 젊고 미숙한 조카 악마 웜우드에게 영혼을 유혹하는 요령을 가르쳐 주는 이야기입니다. 이것을 통하여 악마가 어떻게 인간을 교묘하게 유혹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이것입니다. “환자(영혼)에게 모든 일에서 중용을 지키라고 말해 주어라. ‘종교는 지나치지 않아야 좋은 것’이라고 믿게만 하면 그의 영혼에 대해서는 마음 푹 놓아도 좋아. 중용을 지키는 종교는 우리한테 무교나 마찬가지니까. 아니, 무교보다 훨씬 더 즐겁지”(『스크루테이프의 편지』, 8편). 빠짐 없이 주일 미사에 참례하는 신앙인이라 하더라도 그의 신앙이 점잖게 중용을 지키고 있다면, 그것은 신앙이 없는 것보다 오히려 더 나쁠 수도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요한 묵시록에서 주님께서는 바로 이 점을 안타까워하십니다. “너는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면 좋으련만...네가 이렇게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차지도 않으니 나는 너를 입에서 뱉어 버리겠다”(묵시록 3,15-16) 라오디케이아 교회는 주님의 말씀을 받아들였지만, 그 말씀에 온전히 헌신하여 살아가지 않았습니다.
이와 반대로 복음의 자캐오는 아주 차가웠지만, 예수님을 만난 뒤 아주 뜨거워진 사람입니다. 그는 세리이고 죄인이었지만, 그리스도를 자기 집으로 맞아들인 뒤 재산의 반을 가난한 이들과 나누고 자기 죄를 네 곱절로 기워 갚겠다는 결단하고 주님 앞에 선포합니다.
신앙을 가진다는 것은 하느님께 온전히 나를 맡기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근본적인 삶의 방향을 정하고, 그 삶에 헌신하겠다는 뜨거운 결단이며 행동입니다.
《루카 29,2-20,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서울대교구 최정훈 바오로 신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