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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평가된 예수님
(요14:6-17, 2010.08.08, 주일예배)
잘못된 평가
지난 1974년에…삼성전자가 이제 막 반도체 사업에 뛰어들었을 때…삼성전자 주식이 한 주에 천원이었습니다. 한 주에 천원. 그래서 아무도 이 주식의 가치를 몰랐죠. 그러다가 이제 2010년 현재 삼성전자 주식이 한 주에 80만원입니다. 그러니까 무려 800배가 오른 것입니다. 이와 같이 삼성전자 주식이 엄청난 가치를 가지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1974년에 반도체를 시작했을 때는 아무도 그 가치를 인정해주지 않는…그런 이름 없는 주식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삼성전자 주식을 사고 싶어도 못 사죠. 지금은 사고 싶어도 돈이 없어서 못 삽니다.
이렇게 장래의 유망 직종을 알아보는 이런 일에 저도 별로 개념이 없어서…지난 1987년에 제가 삼성에 입사했을 때 연수원에서 연수생끼리 몇 개의 팀을 나누어서…장래의 유망 직종을 알아보는 게임을 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 팀은 전부 안전을 좋아하는 좀생이들만 모여가지고…그 당시에 돈이 아주 잘 벌리는 그런 직종만 선택을 했지…과감하게 새로운 직종을 발굴해서 장래의 대표산업으로 키울 생각을 못했습니다. 그 결과 우리 팀이 운영했던 회사가 거의 부도가 나는 참패를 당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때 제가 받은 인상은…정말 장래에 어떤 것이 가치 있는지 모르면…내 인생이 완전히 망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와 같이 세상에서 제일 억울하고 미련한 일이…어떤 사람이나 물건의 가치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인데도 불구하고…우리 기독교 안에서 이런 일이 아주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기독교 안에서 예수님에 대한 평가는…예수님이 지난 2천 년 전에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와 지금이 별로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이런 일에 있어서 우리는 전혀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요즘도 그저 “예수님” 하면…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런 고마운 분이라는 생각밖에 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부터는 사람들이 전부 어디로 갑니까? 이미 예수 믿고 구원받았으니까…사람들이 전부 어디로 가요? 이제부터는 좀 더 안전하게 살아야겠다는 기복주의로 가거나…아니면 예수님을 제쳐놓고 내가 직접 하나님을 만나겠다는 그런 신비주의로 갑니다.
성경의 이해
그러나 이런 식으로 예수님을 생각하는 것은…우리에게 엄청난 재앙을 가져옵니다. 우리 에게 엄청난 재앙을 가져와요. 이것에 대해서는 제가 여러분에게 많은 말을 할 수 있지만…오늘은 그 중에서 그저 한두 개만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그저 우리를 위해서 죽으신 그런 메시아 정도로만 생각하면…첫째는 성경을 이해하는 통로가 완전히 막히게 됩니다. 그래서 성경이해가 거의 불가능하게 돼요. 이렇게 되면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그저 몇 가지 도덕적인 교훈을 주는…그런 인간의 책으로 전락하게 됩니다.
그래서 요셉이 정말 죽을 고생하다가 애굽의 총리가 된 것을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그러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요셉처럼 꿈을 가져야 된다.” “어려워도 잘 참고 인내하면 언젠가는 좋은 날이 온다.” 대부분 이런 식의 생각밖에 하지 못합니다. 대부분 이런 식의 생각밖에 못해요. 그리고 목사님들도 대부분 이렇게 설교를 하죠.
그러나 성경을 이렇게 읽으면…이것은 그저 서점에 가서 일반 책을 사보는 것과 전혀 다를 것이 없습니다. 요즘에 시중에 “꿈은 이루어진다.”는 그런 책이 얼마나 많은지 아십니까? 심지어 “꿈은 이루어진다.”는 그런 차원에서…박지성 선수의 성공비결에 대한 책까지 나와 있습니다. 그러면 성경이 일반 책과 다른 것이 무엇입니까? 도대체 하나님의 말씀이 가진 능력과 일반 책의 차이는 뭐예요?
그 대신 성경이 전부 예수님의 얼굴을 그리는…그런 화가의 그림이라고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그래서 성경 곳곳에서 예수님의 흔적과 예수님의 냄새가 난다고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그러면 요셉이 형들에 의해서 구덩이에 던져지고…나중에는 감옥에까지 들어간 것은…우리 인생이 이 땅에서 형통하게 사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우리 인생은 예수님의 삶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우리 인생은 예수님의 삶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에 있다는 것을 알게 돼요.
그래서 요셉이 억울하게 감옥에 들어간 것은…예수님처럼 우리도 분명히 내 잘못과 실수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때로는 이 땅에서 가난하게 살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고…또 내가 요셉처럼 그렇게 열심히 산다고 해서…하나님이 나를 꼭 부자 되게 해주시고 출세하게 해주시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예수의 흔적
“그럼, 목사님. 목사님은 늘 그렇게 말씀하시는데…목사님 그게 우리에게 위로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렇게 살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구요. 우리는 그저 피곤한 인생에 위로를 좀 받고…인생을 좀 편안하게 살고 싶다구요. 예?”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가 가는 길을 전혀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번에 우리 반석이가 군대에 가면서…무려 네 번이나 시험에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제일 먼저 카투사 시험에서 떨어지고…그 다음에는 공군 통역 병에서 떨어지고…그 다음에는 공군 일반 사병도 떨어지고…그 다음에는 육군 탄약병 지원도 떨어지고…그래서 마지막에는 이제 306 보충대에 들어가서 철책 선으로 갈 날만 기다리고 있는데…갑자기 느닷없이 하나님이 6사단의 사단본부 작전실로 발령을 내셨다는 것입니다. 이 과정을 한번 잘 생각해보십시오. 그러면 반석이의 인생도 요셉처럼…자꾸만 밑으로 내려만 가는 인생으로 보이지 않습니까?
그러면 이게 무슨 뜻이냐? 그것은 우리 인생이 점점 더 내리막을 가더라도…우리 인생이 재앙이나 무슨 절망으로 끝나지 않는 것은…그 안에 반드시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이 있고… 하나님이 우리 인생을 아름답게 만들어 가시는 그런 과정 중에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우리 인생에 예수님의 흔적을 새기기 위해서 그렇습니다. 그래서 예수 닮은 인생이라는 확실한 표를 내기 위해서 그래요.
그런데도 우리 한국교회는…요셉처럼 꿈을 가지면 결국 성공하고…애굽의 총리까지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니 예수를 믿어도 나만 잘 살기 위해서 모든 노력을 다하고…이 세상에서 성공하는 것이 무슨 신앙의 본질인 것처럼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다보니까 이미 예수 믿은 지 20-30년이 되었는데도…사람들이 전혀 변하지를 않습니다. 사람들이 전혀 달라지지를 않아요. 그러면서도 이 세상에서 성공하고 싶은 욕심은 더욱 더 커집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성공하고 싶은 욕심은 더욱 더 커져요.
생명 살리는 일
그러나 창39:2에 나오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이 말씀은…요셉이 잘 되고 부자가 되었다는 말이 아닙니다. 요셉은 여전히 이 집의 노예로 있는데…잘 되긴 뭐가 잘 됩니까? 요셉이 도대체 뭐가 형통했다는 얘기에요? 그 대신 요셉은 하나님이 보내신 일…즉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데 형통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희생을 통해서 다른 사람의 생명 살리는 일에 형통했어요. 비록 나는 지금 가난하게 살지만….
제가 지금 왜 이렇게 이름 없이 살아야 됩니까? 그리고 앞으로도 왜 성공하고는 관계없이 살아야 됩니까? 그렇다고 오해하지는 마십시오. 제가 이렇게 산다고 여러분까지 이렇게 살아야 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위해 또 하실 일이 있죠. 그래서 여러분은 그 정도까지는 좀 살아야 됩니다. 하나님을 위해 뭔가 일을 좀 해야 되는 그 정도까지는 살아야 돼요. 그래서 여러분은 저처럼 그렇게 꼭 가난하게 살 필요도 없고…또 아마 하나님이 그렇게 하시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저는 왜 이렇게 살아야 됩니까? 저는 이번에 어떤 책을 보면서…어떤 단어 하나가 제 마음에 꽂혀서 정말 엉엉 울 뻔 했습니다. 그것은 ‘구속적 고난’이라는 말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다 같은 길이 아니라…특별히 예수님처럼 구속적 고난의 길을 가도록 부름 받은 사람들이 있다는 거예요. 바로 요셉이 그렇죠. 그래서 사람들 때문에…좋지 않은 환경 때문에…정말 많은 고난을 당했죠. 그러면 저는 또 왜 그렇습니까? 저도 요셉처럼 구속적 고난의 길을 가기 위해서…그래서 이 세상의 고통 받는 사람들과 아무 희망도 없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서…제가 지금 하나하나 준비하는 과정 중에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제가 은사를 다 믿는 것은 아니지만…그래도 저는 다른 장로교 목사님들과는 다르게 은사를 완전히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제가 강도사 시절에 어떤 사람이 저를 위해서 이런 기도를 해줬죠. 우리 처형이 데리고 다니는 선지자의 무리 중에 하나가 이런 말을 했죠. 저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가 대신 전해준다고 하면서…“너는 참 욕심이 없구나. 그래서 내가 너를 좋아한다.” 저라고 왜 욕심이 없겠습니까? 저도 엄청나게 욕심이 많죠. 그런데도 하나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는 것은…제가 꼭 가야 될 길이 이런 구속적 고난의 길이라는 싸인입니다. 그런 싸인이에요.
그래서 결국 제가 죽어서…이 세상의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서 그렇습니다. 바로 이것이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의 특징 아닙니까? 그리고 성경은 바로 이걸 증거 하는 책 아닙니까? 그래서 요셉의 인생은…그저 이 땅에서 고생하고…못 먹고…굶주리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이 세상에 생명을 주는 그런 생명 공급자로…그리고 이런 삶이 비록 이 땅에서는 초라하지만…반대로 천국에서는 가장 큰 상을 받는…그래서 천국에서는 마치 해같이 빛나는 그런 삶이 된다는 것을 미리 보여주는…바로 그런 일에 요셉은 형통했습니다. 요셉은 나중에 1700년 후에 오실 예수님의 삶을 미리 보여주는 그런 일에 형통했어요.
그런데도 이것을 전부 “요셉처럼 꿈을 가지면 성공한다.”는 식으로…이 땅에서 성공하는 일에 초점을 맞춰보십시오. 그러면 성경은 인간을 부자 되게 하는 책으로 전락하고…성경이 말하는 그런 위대한 삶…그래서 우리가 예수님이 가신 십자가의 길을 걸어갈 때…이 세상에 과연 얼마만한 일이 일어나고…이 세상에 얼마만한 구원이 베풀어지고…사람들이 과연 얼마만한 기쁨과 은혜로 살게 될지…이런 것은 아예 짐작도 못하는…그래서 성경말씀이 주는 파괴력과 이 세상을 완전히 뒤집어엎는 그런 힘을 다 잃어버리고 오직 빈껍데기만 남는…그런 무기력한 책으로 전락해버린다는 것입니다.
해석의 기준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성경 전체를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로 봐야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기준으로 해서…성경전체를 다시 소급해서 보는…그래서 성경전체를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로 완전히 덮어서 보는…바로 이런 식으로 성경을 봐야 돼요. “그러면 성경을 볼 때마다 전부 이런 식으로…예수님을 꼭 그 구절에 연관시켜서 봐야 되느냐?” 그게 아니라 성경전체를 예수님이라는 큰 그림 안에서 봐야 된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을 기독론적 성경해석이라고 말합니다. 기독론적 성경해석….
그래서 설교는…여기에는 이런 교훈 저기에는 저런 교훈…이렇게 파편적으로 다 쪼개서…오늘은 이걸 좀 먹고 내일은 저걸 좀 먹고…이렇게 여러 가지 요리를 먹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이렇게 잡탕밥식으로 섞어놓은 것이 아닙니다. 그 대신 성경은 예수님이라는 큰 그림을 그리면서…각 본문이 그 안에서 세부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에…우리는 각 본문을 볼 때마다…어떻게 이 본문이 예수님을 증거하고…어떻게 이 본문이 예수님을 향해 가며…어떻게 이 본문이 예수님의 그늘 아래 있는지를 잘 살펴서…그것을 사람들에게 정확하게 말해줘야 된다는 것입니다.
비늘이 빗겨짐
그러면 정말 놀라운 것은…바로 그때부터 우리 눈에서 비늘이 벗겨져서 하나님의 세계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우리를 이 세상의 모든 속박에서 자유롭게 해줄 수 있는 예수님의 십자가 세계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초월적인 세계를 보기를 원하십니까? 그래서 전혀 이 세상에 사는 것 같지 않은 영적인 자유를 누리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신비주의 은사단체를 찾아가지 마시고…무슨 이상한 변 목사님 찾아가지 마시고…정말 그러지 말고~엠마오로 갔던 두 제자처럼…성경을 읽을 때마다 예수님 때문에 우리 눈에서 비늘이 벗겨지게 해달라고 그렇게 기도하십시오.
눅24:15-16절을 보십시오. “저희가 서로 이야기하며 문의할 때에 예수께서 가까이 이르러 저희와 동행하시나…저희의 눈이 가리워져서 그인 줄 알아보지 못하거늘.” 이와 같이 우리가 성경을 예수님 중심으로 보지 못하면…그래서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기준으로 성경을 이렇게 거꾸로 읽지 못하면…예수님이 아무리 우리 옆에 계셔도…우리는 하나님의 세계에 대해서 거의 아무 것도 알지 못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 힘든 세상을 예수님의 십자가로 승리할 수가 없습니다.
그 대신 아인슈타인이 이 우주를 해석하는 방법을 보십시오. 그러면 E=mc2이라는 공식 하나로 이 우주의 비밀을 다 풀어내지 않습니까? 그런 것처럼 성경도 예수님이라는 기준이 없으면 절대로 풀어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가 뭐라고 말합니까? “베드로와 요한, 그리고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의 부활을 봤다고 하는데도…우리는 왜 이렇게 안 믿어지냐? 그리고 우리가 벌써 신앙생활한지 30-40년 됐는데도…우리는 왜 이렇게 근심이 많고…또 세상을 이기는 힘이 없냐?”
바로 이때 눅24:27을 보십시오. “이에 모세와 및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모든 성경에 쓴 바…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이와 같이 예수님이 직접 이 두 사람에게 예수님을 기준으로 성경을 보는 방법을 말해주시니까…이 두 사람이 결국 어떻게 됩니까? 32절을 보면 “예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고…우리에게 성경을 풀어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이러면서 그토록 안 믿어지던 예수님의 부활이 이제는 믿어져서…이제 예수님의 부활을 알리기 위해서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갑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려는 영생의 축복과…또한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시려는 부활의 능력은…오직 성경을 예수님 중심으로 해석할 때만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결코 신비주의 은사집회가 아니라…예수님이 이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말씀해주신 것처럼…성경의 모든 내용을 예수님 중심으로 해석할 때만 열리는 그런 비밀에 속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영광
그런데도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성경을 이렇게 해석하면…그저 예수님만 영광을 받지 하나님은 전혀 영광을 못 받기 때문에…이런 식의 성경해석은 안 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은…정말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는 것인지 바로 그걸 모르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 13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우리는 이 말씀을 아주 심각하게 생각을 해야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먼저 예수님을 영화롭게 하지 않는…그 어떤 것도 다 거부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런 일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이 먼저냐? 아니면 예수님의 영광이 먼저냐?” 이런 논쟁을 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먼저 영화롭게 해야…그 사람을 인정해주겠다고 말씀하신 분은 바로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늘 이것을 잊어버리고…오직 성령을 통해서 은혜를 받거나…또 하나님에게 직접 기도해서 뭔가를 얻어내려고 합니다. 그러면서도 아주 철저하게 예수님의 십자가를 거부합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을 보십시오. 제가 개그맨 곽한구의 말대로…사람들의 환상을 지금부터 다 깨겠습니다. 오늘 말씀 13절에서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바로 “내가~시행하리니” 이렇게 말씀하셨는데도 불구하고…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은 오직 기도가 다 끝났을 때 그때 붙이는 형식적인 이름으로만 생각하고…그래서 모든 일에 예수 없이 오직 하나님과 성령만 찾고…그리고 성령세례를 받으면 모든 일이 다 끝나는 것처럼 생각하고….
그래서 오늘 말씀 16절에 나오는 “내가~아버지께 구하겠으니…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이런 말씀도 무시하고…오늘 말씀 26절에 나오는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바로 이 말씀도 무시하고…요15:26절에 나오는 “내가~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성령” 이 말씀도 무시하고…요16:14절에 나오는 “그가 내~영광을 나타내리니” 또 “내~것을 가지고” 바로 “내~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겠음이니라.” 이런 말씀도 다 무시하고…오직 성령만 찾고…오직 하나님을 통해서만 뭔가를 얻으려고 하는…이런 일이 너무나 많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문제
그래서 요즘에 유행하는 성령운동을 한번 보십시오. 그러면 대부분의 성령운동이 예수님을 아주 철저하게 무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성령이여, 오시옵소서. 성령이여, 오시옵소서. 그래서 나를 황홀한 은사의 세계로 인도해주시고…내 어려움과 질병문제를 해결해주십시오.” 계속해서 이런 기도만 합니다. 그래서 저는 “예수님이여, 어서 오시옵소서. 그리고 당신의 긍휼과 자비로 우리에게 성령을 부어주시옵소서.” 이런 기도를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성령운동을 하는 사람들 중에서…이렇게 예수님을 중심으로 해서 하는 기도를…제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어요.
그래서 요즘에 유행하는 어떤 치유집회에 대한 글을 보면…사람들이 대부분 이런 댓글을 답니다. “기독교인이라면 성령으로 거듭나야 된다는 말이 아주 기본적인 메시지임을 다 아실 거예요. 성령세례를 받으셨나요? 받지 않았다면 아예 말을 하지 마세요. 중요한 것은 어떤 장로님이 이단이다 아니다 평가하기 전에…당신들은 성령을 인정합니까? 인정한다면 성령세례를 받으셨습니까? 성령을 인정하지 않는 분은 곧 이단이고…성령세례를 받지 않고 성령의 인도를 받지 못하는 사람은…아예 신자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이 말이 조직신학적으로 말도 안 되는 얘기지만…제가 지금은 시간이 없으니까 딱 두 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성령세례는 우리가 예수 믿을 때 딱 한번 받는 것이지…계속해서 받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성령세례라는 말은…오순절 교회와 찰스 피니라는 19세기 부흥사가 처음 쓴 말인데…성령세례라는 이 말 자체에 문제가 있습니다. 성령세례는 우리가 예수 믿을 때 그때 처음 받는 것이고…그 다음부터는 성령충만이라는 단어를 써야 됩니다. 성령세례가 아니라 성령충만이라는 단어를 써야 돼요.
그래서 이 성령충만은 바로 기도를 통해서 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행4:31을 보면…이미 오순절에 성령세례를 받은 예수님의 제자들이…베드로가 감옥에서 나온 것을 기념해서 다시 기도하니까…이때 “빌기를 다하매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했다”고 하지 않습니까? 이와 같이 성령충만은 기도로 받는 것이지…이것을 위해 따로 은사집회를 해야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은사의 효과
그런데도 성령집회를 하면 왜 그렇게 사람들이 막 쓰러지고…방언하고…입신하는 일들이 일어나느냐? 그것은 성령집회가 진짜 성령세례를 받는 집회가 아니라…은사를…은사를 받는 집회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은사도 가짜가 많기 때문에 반드시 확인을 해야 되지만…문제는 이 모든 일이 다 예수님을 무시하는 쪽으로…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의 구세주로써의 역할만 하고 그만 사라져 주시고…이것보다 더 중요한 예수님의 주님으로써의 역할은…아예 생각지도 않는 그런 집회가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쓴 책을 보십시오. 그러면 “안녕하세요, 성령님” “고맙습니다, 성령님.” 이런 책만 있지…“안녕하세요, 예수님” “고맙습니다, 예수님.” 이런 책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저도 한때는 은사만 받으면 다 끝나는 줄 알고…은사를 받기 위해 무려 6년 동안 기도를 했지만…받은 것은 겨우 방언 하나였습니다. 그런 다음에 뒤를 돌아다보니까…사람들이 은사를 받고 병 고침을 받는다고 문제가 다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그래도 우리는 또 다시 몸이 아프고…또 다시 죄를 짓고…그래서 우리의 삶에서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다만 성령충만을 통해서 좀 힘을 얻고 이 세상을 살아갈 용기를 얻었을 뿐이지…이것으로 우리 인생의 고통이 다 사라지고…그래서 아무 문제없는 그런 인생을 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삼위의 질서
그러면 이제 결론을 좀 내봅시다. 삼위일체 하나님 사이에는 질서가 있고…하시는 일이 다 다릅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 10절을 보십시오.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이와 같이 예수님은 이 땅에 계시는 동안 철저하게 하나님을 위해서 살았지…자신을 위해 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오직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런데 이 관계가 예수님과 성령 사이에도 아주 정확하게 적용이 됩니다. 그래서 요16:13-14을 보십시오. 같이 읽겠습니다.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겠음이니라.” 여러분 어떻습니까? 방금 전에 하나님과 예수님 사이에 있었던 일이…여기서도 아주 똑같이 재현되지 않습니까? 그렇죠?
그래서 우리가…또 성령운동 하는 사람들이 꼭 알아야 될 것은…예수님처럼 성령도 절대로 자기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절대로 자기 자신의 말을 하지 않고…오직 예수님의 영광을 위해서만 일을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소위 성령운동을 하고…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려고 할 때…과연 우리가 누구에게 먼저 영광을 돌려야 될지…이것은 너무나도 분명한 일입니다.
고질적인 문제
그런데도 정말 희한한 것은요…우리 한국교회에서 정말 희한한 것은요…사람들이 하나님에게 영광 돌리고 또 성령에게 영광 돌리는 것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으면서…유독 예수님에게 영광 돌리는 일만은 아주 이상하게 생각하고…굉장히 잘못된 것 같은 인상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참 이상하죠? 우리나라에 “대한예수교~장로회”가 너무나 많은데…왜 예수님에게는 영광을 돌리지 않고…유독 성령에게만 영광을 돌리는 일이 그렇게 많을까요?
여러분 도대체 왜 그럴까요? 바로 여기에 우리 한국교회의 두 가지 고질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 믿은 다음에 사람들이 대부분 가는 길이…예수 없이 하나님에게 직접 뭔가를 얻겠다는 것과…또한 성령을 통해서 신비한 것을 경험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없이 하나님에게 뭔가를 얻겠다는 것이 바로 기복주의고…예수 없이 성령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겠다는 것이 바로 신비주의입니다. 이 두 가지 문제가 우리 한국교회의 아주 고질적인 문제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뭘 원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이 도대체 뭘 원하시겠어요. 그것은 기복주의도 아니도 신비주의도 아니고…바로 십자가를 붙드는 예수주의입니다. 바로 십자가를 붙드는 예수주의예요. 바로 이것 때문에…제가 이 땅에 예수 십자가 공동체를 세우기 위해서 기를 쓰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교회를 개척했을 때…그 교회 이름을 “예수님의 교회”라고 한 이유가…바로 여기에 있어요.
그러면 우리 한국교회와 전 세계 교회를 통해서…사탄이 우리에게 원하는 것은 분명합니다. 사탄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도 문제 삼지 않고…사람들이 성령을 섬기는 것도 문제 삼지 않는데…사탄은 오직 사람들이 예수님을 섬기는 것만 문제 삼아서…이 세상에 예수의 이름이 아예 들리지 않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천하 만민 중에서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이 없는데도…바로 그 이름이 들리지 않기를 사탄은 너무너무 바라고 있어요.
십자가의 문
그러나 정말 충격적인 것은…하나님은 사람들이 자신을 안 믿어도 지옥에 안보내지만…예수님을 안 믿으면 반드시 지옥에 보낸다는 것입니다. 그 증거가 바로 유태인들입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은 하나님은 믿어도 절대로 예수님은 믿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은 다 지옥 갑니다. 다 지옥 가요. 그렇다면 왜 예수님이 기준입니까? 그것은 십자가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시기 전에…예수님과 한 가지 약속을 했습니다.
그것은 인간이 타락해서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는 날이 오게 되면…그때부터는 하나님이 예수 십자가를 통해서만 우리 인간을 상대해주기로…그렇게 약속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그 누구도 예수 십자가가 아니면 하나님에게 가까이 갈 수도 없고…반대로 예수 십자가가 아니면 하나님이 인간에게로 올 수도 없는…그런 묶임 상태가 되어 버렸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유일한 중보자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 요14:6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이 말씀은 우리가 구원받을 때만 해당되는 말씀이 아니라…우리가 하나님에게 가까이 가고 싶을 때도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예수님을 거치지 않고 하나님에게 직접 오려고 하는 사람들을…절대로 만나주시지 않습니다. 구약에서 짐승제사가 왜 있습니까? 짐승을 잡아서 피를 흘리지 않으면 하나님을 못 만난다는 얘기 아닙니까? 그래서 속죄의 피를 뿌리지 않고 지성소에 들어가면 모조리 다 죽는다는 그런 얘기 아닙니까?
그런 것처럼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과하지 않는…그 어떤 인간의 노력도…그 어떤 인간의 행동도 인정해주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계속해서 예수님을 건너뛰면서 축복을 받으려고 하고…예수님을 건너뛰면서 성령의 은사를 받으려고 하면…하나님은 어서 가서 다시 예수 십자가를 붙들라고…그리고 예수 십자가를 무시하고서는 절대로 나에게 찾아오지 말라고…아예 복 받을 생각은 꿈도 꾸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을 기억하고…남은 일생에 예수 십자가를 든든히 붙잡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