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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랑길 강화 100코스 제2부
온수옛길상그름-길상초등학교-금풍양조장-
대한성공회온수리성당-강화군노인문화센터-
강화학생체육관-길정저수지-나들길포도농원
20241009
1.코스 개요(두루누비)
1)코스개요
- 섬 자체가 하나의 역사관이자 박물관인 강화도로 떠나는 역사 탐방길
- 외세에 대한 저항이 남아있는 문화유산과 오감을 깨우는 짜릿한 루지를 체험할 수 있는 코스
2)관광포인트
- 조선 효종 때 구축한 요새 '초지진'
- 중력만을 이용해 트랙을 내려오는 무동력 바퀴썰매로 동양 최대규모의 길이를 자랑하는 '강화씨사이드리조트루지'
-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사찰로 병인양요 때 승려들이 참전하여 호국도량으로 불리는 '전등사'
- 고려의 문신 이규보의 묘소와 석물이 있는 '이규보 묘'
3)여행정보(주의사항)
- 시점 : 경기도 김포시 대곶면 대명리 517-4 김포함상공원 옆 북측
대중교통) 김포골드라인 구래역에서 60-3, 직행 8000번 승차, '대명항' 정류장 하차 후 도보 600m
- 종점 : 인천광역시 강화군 양도면 길정리 156-5 곤능버스정류장 옆
대중교통) 강화여객자동차터미널에서 지선 48번 버스 이용, 곤능 버스정류장 하차
- 대명항은 수산시장과 어부들이 운영하는 횟집이 있어 신선한 해산물을 구입하고 맛볼 수 있음
- 전등사에서는 템플스테이를 운영하고 있음
- 길이 16.5km, 소요시간 6시간, 난도 보통
- 주요경로 : 대명포구 1.5Km 초지대교 6.1Km 전등사 입구 5.6Km 이규보선생묘 3.3Km 곤릉버스정류장
2.강화 길상면 온수리의 자랑은 무엇일까?
제2부 : 삼랑성길을 따라 온수옛길 상그름을 지나간다. 따듯한 샘물(溫水)이 난다고 하여 지명이 온수리(溫水里)가 되었고, 상그름은 온수리 주변을 뜻하는 옛 지명이라고 한다. 온수성당을 지나 임마누엘교회 앞에 자리한 길상초등학교 정문을 지나간다. 길상초등학교 정문 오른쪽에는 '그리운 금강산'의 작곡가 최영섭 선생을 소개하는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조형물 중앙에 최영섭 작곡가의 동판인물화가 붙어 있고, 그 아래 '그리운 금강산'의 노랫말과 약력이 적혀 있다. "누구의 주재런가, 맑고 고운 산~"으로 시작되는 가곡 '그리운 금강산'은 시인 한상억(1915~1992이 작사하고, 작곡가 최영섭(1929~)이 작곡하여 1961년 발표한 불후의 명곡이다. 두 분은 모두 강화도 출신이며, 작곡가 최영섭 선생은 바로 이곳 길상초등학교를 3년 수료한 뒤 인천 창영초등학교로 전학했다고 한다. 그렇기에 길상초등학교는 최영섭을 자랑스런 동문으로 기리고 있다. 그는 길상학교의 자랑이요, 강화의 자랑이요, 우리나라의 자랑이다.
'강화, 그리운 금강산 가곡제'는 올해 3회째를 맞이하여 강화문예회관 대극장에서 지난 9월 27일 열렸다고 하는 알림막이 길상초등학교 돌담에 아직도 걸려 있다. 3회째? 13회나 23회가 아니고 3회째라니? 너무나도 뒤늦게 시작된 '강화, 그리운 금강산 가곡제'에 길손의 마음이 가라앉는다. 뒤늦었지만, 가곡 '그리운 금강산'을 창조해 낸 시인과 작곡가의 고향 강화도에서 이 가곡제를 개최하기 시작했다는 것에 감사하고, 더 풍요한 문화축제로 발전하기를 소망한다. '그리운 금강산' 노랫말은 처음 발표 당시와 달라졌지만 지금이 훨씬 좋다. 1972년 남북적십자회담을 계기로 한상억 작사자가 직접 일부 노랫말을 수정하여 현재와 같은 아름다운 노랫말이 되었다. '더럽힌 지 몇 해'는 '못 가본 지 몇 해'로, '우리 다 맺힌 원한'은 '우리 다 맺힌 슬픔'으로, '짓밟힌 자리'는 '예대로인가'로 수정하였다. 그리고 인쇄과정에서의 실수로, '누구의 주재(主宰)런가'가 '누구의 주제(主題)런가'로 바뀌었는데, 이것은 원뜻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고 하여 그대로 두고 있지만, 시인이 처음 발표한 '누구의 주재(主宰)런가'가 훨씬 마음에 든다.
그런데, 길상초등학교 앞을 지나는 이 도로명을 최영섭길이라 명명하지 않고, 삼랑성길이라 명명하였다. 최영섭 선생이 아직 생존해 있기 때문일까? 강화도에서는 삼랑성을 사랑하는 마음이 더 깊으며, 학교 바로 위에 단군의 세 아들이 쌓았다는 정족산 삼랑성(정족산성)이 있기 때문일까? 유태현이 작사하고 작곡한 길상초등학교 교가에는 삼랑성의 정신이 나타난다. "반만년 역사 깊은 삼랑성 기슭/ 무궁화 우리들의 꽃피는 동산/ 모이자 배우자 동무들이여/ 큰 사람 자라나는 길상학교// 정족산 저 성 틀에 반석과 같이/ 무쇠와 강철 같은 우리들의 혼/ 한마음 한뜻으로 힘을 합하여/ 무럭무럭 자라나는 길상학교" '삼랑성과 정족산 저 성'은 무쇠와 강철 같은 우리들의 혼으로 큰사람의 바탕이 된다. 그렇다면 삼랑성길이라고 명명할 곳은 여러 곳이므로 그 길을 삼랑성길이라 명명하고, 이 길은 최영섭길이라 명명하면 어떨까?
길상초등학교 돌담 아래에 아코디언 연주와 아이들 조형물이 조성되어 있다. 최영섭 선생을 기리고 아이들이 평화를 사랑하는 큰사람으로 성장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조형물에 담겨 있는 것 같다. 연주자의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과 아이들의 순진무구한 동심이 피어오른다. 조형물을 지나 앞을 바라보면 반듯한 골목길이 곧바르게 이어지고, 지난 시절의 그윽한 추억을 불러 일으키는 휴게실 간판과 비교적 긴 2층 목조가옥이 나온다. 목조건물 앞으로 가니 금풍양조장 설명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2층 목조가옥은 1931년에 지어진 금풍양조장 건물이다. 1931년 이전부터 막걸리를 제조한 금풍양조장은 김학제씨가 설립하였으며, 현재의 금풍양조장은 1969년 양환탁씨가 인수하여 운영하기 시작하여, 그의 아들 2대 양재형씨가 약 50년을 운영하였고, 현재는 그의 손자 3대인 양태석씨가 운영 중이라고 한다.
금풍양조장 안으로 들어가 금풍양조장 실내를 살펴 보았다. 실내는 과거와 현재를 절묘하게 혼합하여 꾸며져 있다. 금풍양조장의 마스코트 금풍이, 술트릿 금풍 파이터 곰과 호랑이 그림, 장식용 커다란 술항아리, 금 술잔을 비롯한 판매용 예쁜 용기들이, 계산대 옆과 벽에 전시되어 있다. 금풍양조장에서는 인수한 1969년을 기념하여 6.9도 금풍양조 막걸리를 생산하여 판매하는데, 1병에 7천5백원이다. 값이 비싼 편이지만, 길동무가 1병을 구입하였다. 실내 곳곳을 살피지 못하고 금풍양조장을 빠져나와 100년 세월의 흐름을 견뎌온 금풍양조장 외관과 골목 풍경을 뒤돌아보며, 예쁘구나, 감탄하며 가야할 길을 따라간다.
금풍양조장에서 삼랑성길을 따라 곧바로 내려가면 온수길의 온수리사거리, 온수리 시가지 풍경을 살필 수 있는 곳이다. 그런데 서해랑길은 이 길로 내려가지 않고 삼랑성길과 헤어져 금풍양조장 왼쪽으로 꺾어 온수길33번길을 따라 아래쪽에 있는 온수길과 평행으로 이어가다가 온수감리교회 아래쪽에서 벽화골목길로 내려가 온수길과 만난다. 온수리사거리에서 온수길을 따라 이곳으로 오면서 온수길 거리 풍경을 살피는 게 더 좋을 것 같은데, 서해랑길을 온수길로 연결하지 않은 것은 온수길의 좁은 2차로 때문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서해랑길은 온수길 횡단보도를 건너 온수길46번길 골목을 통하여 새로이 개발되는 온수리 지역으로 들어간다.
공간이 활짝 열리고 강화 문화의 새로운 건물이 눈앞에 펼쳐진다. 무엇이지? 사각기둥에 '길상마을센터 On'이라고 적혀 있다. '길상마을센터 On'? 이게 뭐하는 곳이지? 알아보니, '길상마을센터 On'은 공동체 활성화와 지역경제 발전을 위해 주거지 도시재생사업으로 조성하여 올해 5월 25일 개관하였다고 한다. 지상 2층 규모로, 1층은 스터디카페와 작은 도서관, 2층은 루프탑을 겸비한 마을 카페, 별관에는 요리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는 공유주방 등이 마련돼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름이 어렵다. 누구나 이해하기 쉽고, 용도를 밝히는 우리말이 없을까? '길상마을센터 On'이 자리한 곳은 온수옛길에서 조금 떨어진 곳으로 새로이 개발되는 지역인 듯. 복합문화공간 '배꼽아리랑'도 근처에 있다. 이곳은 무엇을 하는 곳일까? 천부경 강연이라는 안내판이 붙어 있는 것을 보면 강연과 토론 등이 열리는 곳 같다.
온수리의 새로운 문화가 열리는 이곳 언덕에 과거의 강화 문화를 꽃피운 종교 건물이 탐방객의 눈길을 끈다. ‘성 안드레 성당’으로도 불리는 '대한성공회 온수리성당'이다. 이것저것 보려고 날뛰는 탐방객이 답답하여서 길동무는 벌써 저만치 앞서가고 있다. 온수리성당을 들러서 내려가도 되는데, 길동무의 꽁무니를 좇아 쏜살같이 달렸다. 온수리성당(1906년 건축)은 강화도에 지어진 대한성공회의 두 번째 성당으로, 강화읍의 강화성당(1900년 건축)이 선교본부의 지원과 선교사들의 주도로 지어진 것인 데 비해, 온수리성당은 신도들 스스로가 땅을 헌납하고, 자금을 마련하고 스스로의 노력봉사로 지은 성당이라고 한다. 온수리성당의 특징은 한국의 전통적인 건축기법을 활용하여 종교적인 성당건축 방법과 공간 구성을 확립한 동서 절충식 강당형의 목조건물이라고 한다. 살피지 못하였으니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없다.
온수길46번길은 온수리 옛 시가지에서 벗어나 들길을 따라 온수리 신시가지로 이어진다. 길상면사무소, 강화군노인문화센터, 강화남부군립키즈카페와 남부인지건강센터 등이 자리한 온수리 신시가지를 거쳐 온수리 북쪽 들녘으로 나간다. 도로명은 해란길32번길, 해란이 무엇일까? 온수리 북쪽 지역은 예전에 구리포(온수천) 둑을 막기 전까지는 바닷물이 들어왔다고 한다. 그래서 난자골과 그 북쪽에 해란마을이 자리한다. 난자골은 바다에서 자라는 난초(卵草)라는 풀이 자생하는 마을이라 하여 난초고을로 불리다가 난자골이 되었다. 해란마을은 게가 알을 낳고 바닷물로 간다 하여 해란(蟹卵)이라 불렸는데, 해랑당(海浪堂)이라는 당(堂)집이 있었기에 해랑(海浪)이라 변화되었다가, 이후 해란(蟹蘭), 근래에 해란(海蘭)으로 지명의 한자가 바뀌게 되었다고 한다.
해란길32번길을 따라 해란(海蘭)마을로 들어간다. 해란마을은 아름답다. 동쪽으로 들녘이 넓게 펼쳐지고, 논에는 황금빛 벼들이 풍요와 평화의 물결로 출렁이며, 마을길에는 수령 300년 가까이 된 느티나무가 마을의 어른처럼 솟아 있다. 비닐하우스에서는 강화의 명품 푸른 잎의 순무들이 무성하게 자라고, 들깨밭에서는 들깨들이 수확을 기다리는 자세로 결실의 향기를 날린다. 예쁜 돌담이 돌아가는 농가와 감나무에 노란 감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고 고추를 말리는 마당이 있는 농가가 정겹다. 이 모습을 정족산 삼랑성이 내려보고 있다. 탐방객은 해란마을에서 숨을 고른다. 인간의 본향, 우리 마음 깊은 곳에 잠자고 있는 원초적 고향이 가슴을 진동시킨다.
해란길32번길은 시루빌라, 강남중학교, 강화학생체육관을 거쳐 해란길과 만난다. 해란길은 해란 지역을 통과하는 도로명이다. 해랑길32번길은 해란길과 만나는 지점에서 끝이 나고, 서해랑길은 해란길을 따라 길정저수지를 지난다. 길정저수지는 규모가 엄청나게 크다. 길정저수지 안 수면(水面)에서 양도면 길정리, 길상면 온수리와 길직리가 만난다. 길정저수지 수면은 2개 면, 3개 리가 만나는 꼭지점이 있는 물이다. 길정저수지 제방 둘레에는 전원주택과 여러 펜션들이 자리하고 서북쪽 수변에는 낚시터가 조성되어 있으며, 그 뒤쪽에 진강산과 덕정산이 솟아 있다. 서해랑길을 단축하고자 하면 길정저수지 제방길을 따라 북쪽의 고려왕릉로로 나가면 곧바로 곤릉 버스정류소 옆 서해랑길 100코스 종점에 이른다.
길정저수지 동쪽 언덕의 해란길을 따라 길상면 온수리 북쪽 끝 지역을 통과한다. 아름다운 전원주택이 자리하고 있으며, 길정저수지 너머 서쪽 화도면(華道面)에는 강화도의 최고봉인 해발 472 m의 마니산(摩尼山)이 우뚝 솟아 있다. 강화의 자랑이요, 민족의 성산인 마니산에는 단군 왕ㄱ럼이 하늘에 제를 지내기 위해 설치하였다는 참성단이 있다. 마니산에서 매년 개천절에 제전이 올려지고, 전국체육대회의 성화를 채화한다. 민족의 성지 마니산은 그리스의 올림피아 같다는 생각이 든다.
길정저수지 동쪽 언덕 고구마밭에서 마을 주민들이 모여 강화도의 명품 속노랑고구마들을 수확하고 있다. 서해랑길을 탐방하며 고구마 수확하는 모습을 전남 무안에서 본 뒤로 강화도에서 다시 본다. 무안 지역의 고구마밭은 대규모이며 수확하는 농민은 우리 농민들이 많았지만 외국인 노동자도 다수였다. 그런데 강화도 고구마 수확은 마을주민들이 공동으로 수확하는 것 같다. 아닐까? 품앗이가 아니라 임금을 받고 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렇더라도 강화도 길상면 온수리 붉은 농토에서 주민들이 고구마를 캐고, 고구마를 담은 수많은 상자들이 밭에 널려 있는 모습은 강화의 아름다운 풍경을 이룬다. 강화 속노랑고구마는 여주 고구마와 더불어 쌍벽을 이룬다고 한 아주머니가 알려준다.
해란길을 따라 길상면 온수리에서 길직리로 넘어갔다. 길직리는 온수리 북쪽에 위치한다. 길상면 온수리와 길직리는 해안 안쪽의 내륙 지역이다. 그래서 농업이 중심을 이루고 밭작물과 과수 농작물이 주 소득원이 되는 것 같다. 해란길에서 길직로로 나가는 갈림길에 버스정류장이 있는데 정류장 이름이 산촌마을이다. 그런데 길직로161번길을 따라 길직로로 나가니 버스정류소 이름이 신촌마을 입구이다. 산촌마을과 신촌마을은 서로 다른 마을인지 아니면 어느 한 지명은 잘못 표기한 것인지 궁금하다. 해란길에 있는 마을은 산촌마을, 길직로에서 피미길로 들어가는 마을은 새로이 생겨났다는 신촌마을일까?
길직로는 동쪽 불은면 덕성리 염하강 해안의 덕진진과 서쪽 길상면 길직리 고려왕릉로를 연결하는 도로이다. 즉 진강산과 덕정산이 솟은 내륙과 덕진진과 광성보가 있는 해안을 연결하는 도로이다. 길직로를 따라 서쪽 고려왕릉로로 나가면 서해랑길 100코스를 대폭 단축할 수 있지만 이규모 묘를 탐방하지 못하게 된다. 길직로 신촌마을 입구 버스정류소에서 횡단보도를 건너 피미길을 따라간다. 피미길은 피(직稷), 미(산山), 길(로路)을 뜻하는 도로명으로, 길직로(吉稷路) 도로명을 토박이말로 풀이한 것 같다. 피미길 옆에 비닐하우스 포도농장이 있으며, 피미길에는 또 나들길포도농원이 있다. 그동안 화성 송산 지역과 안산 대부도 지역을 포도의 명산지로 꼽았지만 최근에 강화 포도가 각광을 받고 있다고 한다. 강화도는 포도의 명산지 반열에 올랐다.
지금까지 걸어온 길에서 만난 명품과 자랑이 무엇일까? 하나하나 떠올려 본다. 길상초등학교와 최영섭 작곡가, 정족산 삼랑성과 전등사, 금풍양조장, 대한성공회 온수리성당, 300년 수령 느티나무, 온수리 해란마을 농가의 돌담과 안마당, 난자골 들녘, 길정저수지, 진강산과 덕정산, 마니산, 강화 순무와 속노랑고구마, 강화 포도 등. 무엇이 명품일까? 명품 아닌 것이 어디 있으랴. 그대들은 모두 명품이며, 스쳐온 것들 또한 명품이며 자랑이다. 다만 몰라볼 뿐이다. 그럼에도 강화 길상면 온수리의 자랑은 무엇인가?
3.탐방 과정
전체 탐방 거리 : 17.8km
전체 소요 시간 : 4시간 7분
삼랑성길을 따라 길상초등학교 앞으로 이어간다. 이 길을 온수옛길이나 상그름길라고 바꾸면 더 좋을 듯.
길상초등학교 정문 오른쪽에 가곡 '그리운 금강산'의 작곡가 최영섭 선생의 안내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최영섭 작곡가의 동판인물화가 붙어 있고, 그 아래 '그리운 금강산'의 노랫말과 약력이 적혀 있다. 길상초등학교 3년 수료 후 인천 창영초등학교로 전학했다.
임마누엘 교회 앞에서 지나온 천주교 온수성당과 길상초등학교를 돌아본다. 최영섭 작곡가 안내 조형물이 맨 오른쪽에 보인다.
길상초등학교 돌담에 '강화, 그리운 금강산 가곡제' 알림막이 걸려 있다. 9월 27일 강화문회관에서 이미 열렸다.
길상초등학교 돌담 아래 쉼터에 아코디언 연주자와 아이들의 조각상이 조성되어 있다. 최영섭 선생을 기리는 작품 같다.
삼랑성길이 그윽하다. 온수옛길이나 상그름길이라고 바꾸었으면 좋을 듯. 앞에 금풍양조장이 있다.
금풍양조장은 1931년 건축된 2층 목조건물로, 현재의 양조장은 1969년 양환탁씨가 인수하여 3대째 운영한다고 한다. 서해랑길은 금풍양조장을 지나 왼쪽으로 꺾어 온수길33번길을 따라간다.
금풍양조장 건물은 건축물대장에는 1931년으로 되어있으며, 폐쇄등기부등본(건물)의 기록에 의하며 최초 등기접수는 소화12년(1937년) 1월 29일로 되어 있어 그 시대상을 미루어 짐작하기로 금풍양조장이 실제로 건축되어 등기 및 건축물 신고까지는 실제 설립연도와 약간의 차이가 있을것으로 생각된다. 1931년 이전부터 막걸리를 제조한 금풍양조장은 김학제씨가 설립하였으며, 1969년 양환탁씨가 인수하여 2대 양재형씨가 약 50년을 운영하였고 현재는 3대인 양태석씨가 운영중이다. - 지식백과
금풍양조장 입구에 금풍양조장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금풍양조장 안으로 들어가 잠깐 구경하고 막걸리 한 병을 구입했다.
1.금풍양조장 SINCE 1931 : 금풍양조장은 강화도 최초 지역특산주 면허를 취득했으며, 옛 목조건물을 그대로 보존, 한결같이 막걸리를 만들고 있는 양조장입니다. 금풍양조 三無원칙/一無 : 무농약쌀 (강화도 친환경쌀), 二無 : 무감미료 (수제 프리미엄 막걸리), 三無 : 제로웨이스트 (쌀포대를 업사이클링). 강화도 진환경쌀과 온수리 지하수로 빚은 클래식한 100년 양조장의 술맛을 한번 느껴보세요~
2.금풍양조장(金豊醸造場), 인천광역시 등록문화재 : 금풍양조장은 일제강점기에 설립된 양조장으로 근대 건축 양식인 트러스구조가 원형 그대로 잘 보존되어 있다. 트러스구조는 구조 부재가 휘지 않게 접합점을 핀을 이용하여 삼각형으로 연결한 구조이다. 또한 1938년 인천주류품평회 탁주 약주 부분에서 우등상을 수상했을 정도로 인천과 경기지역에서 술맛으로 인정을 받았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우물을 중심으로 총 4칸으로 나뉘어 있다. 우물 오른쪽은 밀가루를 씻고 보일러로 증자를 했던 장소이며 왼쪽은 반지하 형태로 국실과 발효실로 나누어져 있다. 국실과 발효실의 외관 벽체는 술을 빚을 때 필요한 온도와 습도를 조절할 수 있도록 왕겨를 사용하여 건축하였다. 2층은 증자한 밀가루를 말리던 공간으로 초기 원형이 비교적 그대로 잘 보존되고 있다.
금풍양조장 실내 입구에 금풍양조장 소개 사진이 게시되어 있다.
왼쪽에 금풍양조장 애완견 금풍이를 조심하라는 안내문, 오른쪽에 금풍술레길이 적혀 있다. 양조장을 즐기는 금풍술레길 5코스는, 1.시각 : 100년 전 양조장을 보고 2.청각 : 술항아리에 소원을 말하고 그 울림을 듣고 3.후각 : 금풍 양초 향기를 맡고 4.촉각 : 吉祥 기둥을 만지고 5.미각 : 양조장 막걸리를 맛보는 코스라고 한다.
오른쪽 뒤 벽에 술트릿 금풍 파이터 곰과 호랑이 그림이 그려져 있다.
이 큰 항아리는 어디에 쓰는 것일까? 술을 담는 술항아리를 장식용으로 쓰는 것인가?
술 관련 여러 용기들을 판매하고 있다. 금 술잔이 예쁘다.
금풍양조장을 인수한 1969년을 기념하여 6.9도 금풍양조 막걸리를 생산한다고 한다. 1병에 7천5백원이다.
금풍양조장의 환경 사랑 정신을 안내한다.
금풍양조장 6.9도 금풍양조 막걸리는 별도의 포장백을 사용하지 않고 강화도 지역 카페에서 사용한 원두백을 재사용하며 지구사랑에 우리만의 가치를 담고 있습니다.
금풍양조장의 애완견 금풍이는 금풍야조장의 마스코트이다.
내 이름은 금풍이, 2020년 12월 생입니다. 저는 양조장에 오신 분들은 누구나 너무 좋습니다. 그런데 꼬마 친구가 예쁘다고 저를 쓰다듬어 줬는데~ 하필 눈이 찔려서 이후로 손이 다가오면 무섭고 겁이 납니다. 으앙~~ ㅠㅠ 이제 꼬마 친구들은 저를 만져보고 싶더라도 눈으로만 예뻐해 주시기 바랍니다. 앞으로 오랫동안 금풍양조장에서 함께 할 금풍이니 예쁘게 지켜봐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금풍이 올림
걸어온 온수옛길과 금풍양조장을 뒤돌아본다. 고전적 아름다움이 풍겨 나온다. 금풍양조장 건물은 인천시 등록문화재로 등재되었다는 알림막이 붙어 있다.
1층 공간은 사무실·생산실과 함께 막걸리 상품을 둘러보거나 시음할 수 있는 체험 공간으로 꾸몄다. 나무 계단으로 이어진 2층은 옛 방식으로 밀가루를 말리던 장소를 그대로 살려 100년 역사를 간직한 전시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금풍양조장은 개항기 이후 지역 산업 변천사가 담긴 건축물로서 역사·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 2022년 10월 인천시 등록문화재로 등재되기도 했다. - 연합뉴스, 김상연 2024. 9. 17.
금풍양조장 곡각지에 이정목이 세워져 있다. 서해랑길 100코스 종점 곤릉 버스정류소까지 8km가 남았다. 봉다방 방향의 삼랑성길로 나가면 온수길 온수사거리이며, 서해랑길은 왼쪽 온수길33번길로 이어간다.
금풍다방 바깥에 마니산의 곰과 호랑이가 술트릿파이터를 하는 조형물이 조성되어 있다.
삼랑성길 금풍양조장에서 왼쪽으로 꺾어 온수길33번길로 들어와 금풍양조장에서 운영하는 금풍다방을 뒤돌아본다.
온수길33번길에서 길상면소재지 온수리 거리를 살펴본다. 노점상을 지나 좌우로 지나는 도로가 온수길이다.
온수리(溫水里)는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에 있는 리(里)이다. 평지와 골짜기로 이루어진 농촌 마을이다. 마을 북쪽으로 길정저수지가 있으며, 동쪽에는 난자골이 있다. 자연마을은 온수, 사거리, 동문골 마을이 있다. 온수 마을은 더운 물이 있으므로 온수물이라 하였는데, 후에 온수 마을이라 개칭되었다. 사거리 마을은 내진으로 가는 네 갈래의 길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며, 동문골 마을은 동문 밑에 위치한다 하여서 이름 붙여졌다. 국가유산으로는 전등사 대웅전, 범종, 약사전이 있다. - 두산백과
온수길33번길에 강화남부농협 자재센터 본점이 자리하고 있다.
언덕에 온수감리교회 건물, 그 아래 느티나무가 자란다. 온수길33번길을 따라가 흰색 차 앞에서 오른쪽 골목길로 이어간다.
온수길33번길에서 벽화골목길을 통하여 온수길로 나간다.
길상면 온수리 거리를 통과하는 온수길 동쪽 방향을 살펴본다. 앞쪽에 온수사거리 도로표지판이 보인다.
서해랑길은 온수길 횡단보도를 건너 씨앤씨헤어 왼쪽 골목 온수길46번길로 이어간다.
온수길46번길에 '온수리 성공회 성 안드레 성당' 가는 길 벽화가 그려져 있다.
온수길46번길 골목을 나오면 활짝 열린 공간이 나오며 멋진 건물이 있다. 2024년 5월 25일 개관한 '길상마을센터 On'이다.
‘길상마을센터 On’은 강화 남부 거점인 온수 원도심의 공동체 활성화와 지역경제 발전을 위해 주거지 도시재생사업 공모사업에 선정돼 강화군 길상면 온수리 514-9번지 일원에 조성됐다. 이곳은 연면적 498.23㎡, 지상 2층 규모로, 1층은 학생뿐만 아니라 성인들도 자유롭게 이용 가능한 스터디카페와 작은 도서관이 갖춰져 있고, 2층은 루프탑을 겸비한 마을 카페가 있으며, 별관에는 장소 대여와 요리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는 공유주방 등이 마련돼 있다. - 강화일보, 조종현 기자, 2024.5.26.
'길상마을센터 On' 입구에 온수리 더불어문화의 거리 기부안내지도가 세워져 있다. 기부한 곳의 기부자 이름들이 적혀 있다.
'길상마을센터 On' 입구에서 가야할 온수길46번길을 바라보면 복합문화공간 '배꼽아리랑'이 앞에 보인다.
온수길46번길 동쪽에, ‘성 안드레 성당’으로도 불리는 '대한성공회 온수리 성당'이 있는데, 들르지 못하고 지나쳤다.
이 교회는 1906년 영국인 주교 조마가(Mark N. Trollope)가 지은 성당 건물로 우리나라의 초기 서양 기독교 교회양식의 건물이다. 성당은 정면 9칸 측면 3칸의 본당과 정면 3칸 측면 1칸의 문루(정면 3칸중 중앙 1칸을 2층 총무로 삼은 문루로 사용하고 있다)로 이루어진 건물이다. 한국의 전통적인 건축기법을 활용하여 종교적인 성당건축 방법과 공간 구성을 확립한 동서 절충식 강당형의 목조건물이다. - 설명안내판
온수길46번길은 들길로 이어진다. 앞쪽에 길상면사무소 건물이 보인다.
온수길46번길 들길을 따라 길상면사무소 방향으로 서해랑길을 이어간다. 전신주에 서해랑길 100코스 표지판이 붙어 있다.
온수길46번길에서 온수길52번길로 나가 온수길52번길 오른쪽 길상면사무소 방향으로 이어간다.
온수길52번길을 따라 마니산로로 나간다. 오른쪽에 길상면사무소 건물이 자리한다.
길상면사무소 앞 온수길52번길 출입구에서 마니산로를 따라 올라간다. 곤릉버스정류소 7.6km 지점이다.
마니산로에서 오른쪽 해란길32번길로 진입한다. 서해랑길은 강화나들길 3코스와 동행한다.
중앙 뒤 길상면사무소 앞에서 마니산로를 따라와 해란길32번길로 들어왔다. 왼쪽 길은 강화군노인문화센터 진출입로이다.
해란길32번길에서 강화군노인문화센터를 내려본다. 그 왼쪽에 강화남부군립키즈카페와 남부인지건강센터가 자리한다.
해란길32번길을 따라간다. 오른쪽에 강화군보건소 남부인지건강센터, 왼쪽에 온수성문교회, 중앙 뒤에 진강산이 있다.
해란길32번길을 따라 온수리 들녘과 마을을 지난다. 중앙 뒤에 진강산이 솟아 있다.
해란길32번길에서 남서쪽을 바라보면 정족산 삼랑성이 보인다.
해란길32번길을 따라 해란마을로 들어간다. 느티나무 한 그루가 눈길을 끈다. 논에는 벼들이 황금빛으로 물결친다. 길상면 온수리 해란(海蘭)마을은 해랑대 혹은 해랑당으로도 불린다. 이 지역은 구리포(온수천) 둑을 막기 전까지 바닷물이 들어와 물풀이 무성했다. 게가 민물과 바닷물이 교차하는 물풀이 무성한 이곳에서 알을 낳고 바닷물로 간다 하여 해란(蟹卵)이라 불렸는데, 해랑당(海浪堂)이라는 당(堂)집 때문에 해랑(海浪)이라 변화되었다가, 이후 해란(蟹蘭), 근래에 해란(海蘭)으로 불린다고 한다.
느티나무 앞으로 와서 보호수 안내판을 보니 수령이 300년 가까이 되는 느티나무다.
해란길32번길 해란마을 농가의 돌담이 예쁘다. 순무 재배 비닐하우스를 지나 시루빌라 하우스 앞으로 이어간다.
해란길32번길을 걸어오다 뒤돌아서 느티나무와 예쁜 돌담을 다시 바라본다. 오른쪽 뒤에 온수성문교회가 보인다.
해란길32번길 해란마을에서 온수리 난자골을 바라본다. 난자골은 오른쪽 뒤인 것 같다.
온수동 북쪽에 있는 마을로 알과 같이 생겨 붙여진 이름으로 난자울이라고도 부른다. 일설은 바다에서 자라는 난초(卵草)라는 풀이 자생하는 마을이라 난초고을로 부르던 것이 난자골이 되었다고 한다. - 강화나들길
길상면 온수리 해란마을에 순무 재배 비닐하우스와 들깨밭이 있다. 뒤에서는 정족산이 내려본다.
해란길32번길을 따라 해란마을을 지난다. 순무를 재배하는 비닐하우스 규모가 크다. 앞쪽에 시루빌라 하우스가 있다.
감나무에 노란 감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고 고추를 말리는 농가의 마당이 정겹다. 뒤쪽에서 정족산이 내려보고 있다.
정감이 넘치는 마당이 있는 농가를 지나 시루빌라 하우스 옆 해란길32번길을 따라간다. 왜 '시루'라고 이름을 붙였을까?
해란길32번길을 계속 따라간다. 왼쪽 뒤에 강남중학교, 오른쪽에 강화학생체육관이 있다. 강화남부를 줄여 강남이라 이른다.
해란길32번길을 따라 강화학생체육관을 오른쪽으로 돌아간다. 강화학생체육관은 강남중학교 부속시설이다.
해란길32번길에서 오른쪽으로 동우농장 출입로가 있다. 앞쪽 자동차가 있는 삼거리에서 해란길32번길은 해란길과 만난다.
지금까지 해란길32번길을 따라왔는데 이곳 삼거리에서 해란길로 이어진다. 오른쪽은 동우농장이다. 이 지역은 해란(蟹卵)이라 불렸다고 하는데 근래에 해란(海蘭)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그래서 도로명이 해란(海蘭)길이다.
한우를 사육하는 동우농장은 축사 지붕에 태양광 시설을 설치했다.
해란길32번길을 따라 해란마을과 강화학생체육관을 거쳐 삼거리에서 해란길과 만났다.
해란길을 따라 길정저수지 앞으로 이어간다. 왼쪽 뒤에 진강산, 중앙 뒤에 덕정산이 보인다.
앞에 길정저수지가 있으며 왼쪽 뒤에 진강산, 중앙 뒤에 덕정산이 있다. 서해랑길은 오른쪽으로 이어간다.
길정저수지 앞에 길정저수지와 이규보 묘 설명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서해랑길은 이규보 묘 2.9km 방향으로 이어간다.
길정저수지는 인근 농경지에 농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해 만들어진 저수지로 만수 면적이 약 17만평(약 56만㎡)에 이르는 큰 규모로 멋진 경관을 연출한다. 이규보 묘는 1995년 3월1일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15호로 지정되었다. 전등사 가는 길 진강산 쪽에 자리잡고 있다. 여주 이씨 종중에서 관리하고 있으며 1967년 후손들이 묘역을 정화하고 재실(齋室)을 복원하였다. 봉분의 높이 1.8m, 둘레는 16m이다. 봉분 앞쪽으로 상석과 석등 각 1기씩이 배열되어 있고, 그 앞쪽 좌우로 망주석(望柱石) 1쌍이 세워져 있다.
길정저수지는 양도면(良道面) 길정리(吉亭里), 길상면 온수리(溫水里)와 길직리(吉稷里), 2개 면, 3개 리 경계를 이룬다.
길정저수지 동쪽 언덕의 해란길을 따라 길상면(吉祥面) 온수리 지역을 통과한다.
길정저수지 동쪽 언덕의 길상면 온수리 해란길에서 길정저수지 서쪽 언덕의 양도면 길정리 정화마을을 바라본다.
길정저수지 입구에서 해란길을 따라 길상면 온수리 지역을 지나고 있다. 중앙 뒤쪽에 정족산 산줄기가 보인다.
강화도의 최고봉인 해발 472 m의 마니산(摩尼山)이 길정저수지 너머 화도면(華道面)에 솟아 있다.
해란길을 따라 길상면 온수리 지역의 전원주택지를 통과한다.
길정저수지 동쪽 언덕 고구마밭에서 강화도의 명품 속노랑고구마들을 수확하고 있다.
해란길 동쪽 고구마밭에 수확한 속노랑고구마를 담은 수많은 박스들이 운반을 기다리고 있다. 고구마밭 뒤의 길은 장촌길113번길로 길상면 길직리 지역이다.
해란길을 따라 길상면 온수리에서 길직리로 넘어와 마이박스 펜션 앞을 지나간다.
왼쪽은 길상면 길직리 길직1리 공설묘지로 가는 길이고, 서해랑길은 오른쪽 해란길을 따라간다.
해란길을 따라 길상면 길직리 해란길150 펜션 앞을 지나간다.
해란길 산촌마을 버스정류장에서 서해랑길은 오른쪽 길직로161번길로 이어간다. 왼쪽은 길정저수지로 갈 수 있다.
산촌마을 버스정류장에 서해랑길 이정목이 세워져 있다. 공릉버스정류장을 곤릉버스정류장으로 바로잡아야 한다.
왼쪽 뒤 해란길150 펜션에서 해란길을 따라 오른쪽 산촌마을 버스정류장으로 이어왔다.
해란길의 산촌마을 버스정류장에서 해란길과 작별하고 길직로161번길로 들어왔다.
길직로161번길을 따라 길직로로 나간다.
길직로를 횡단하여 피미길로 이어간다.
길직로를 횡단하여 걸어온 길직로161번길을 돌아본다. 바로 앞에 신촌마을 입구 버스정류장이 있다. 해란길의 산촌마을, 길직로의 신촌마을은 서로 다른 마을일까, 아니면 잘못 표기한 것일까?
길직로를 따라 서북쪽으로 올라가면 고려왕릉로와 만난다. 왼쪽 뒤에 진강산, 오른쪽 뒤에 덕정산이 보인다.
벼들이 황금물결을 이루고 있다. 서해랑길은 이규보 묘를 거쳐 왼쪽 뒤 아트팩토리참기름 앞으로 내려올 것이다.
피미길을 따라 길상면 길직리 포도농장을 통과한다. 피미길은 피(직稷), 미(산山)를 뜻하는 것 같다.
길상면 길직리 지역이 동쪽으로 펼쳐져 있다. 맨 끝에는 불은면 덕진리 강화 해안에 덕진진이 있을 것이다.
피미길을 따라 포도농장을 거쳐왔다. 강화 포도가 최근 각광을 받고 있다고 한다. 중앙 뒤의 덕정산은 양도면 길정리와 삼흥리, 불은면 삼동암리, 2개 면, 3개 리에 걸쳐 있으며 길정리 지역에 사격훈련장이 있다고 한다.
피미길을 따라 길직1리 마을회관 방향으로 올라간다. 오른쪽에 나들길포도농원이 있다.
오른쪽은 피미길로 넓은 길직리 들녘으로 이어지고, 서해랑길은 왼쪽 피미길32번길을 따라 길직1리 마을회관으로 올라간다.
서해랑길은 오른쪽 피미길32번길을 따라 오른쪽에 보이는 길직1리 마을회관 앞으로 이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