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결혼했다’
남편이 아니라 아내가?
제목 자체도 우리시대에 여전히 도발적이지 않을 수 없지만
세계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인 박현욱의 원작,
‘아내가 결혼했다’를 그대로 시나리오로 채택한 동명의 작품이라 궁금해졌다.
궁금한 채로 있는 건 건강에 그다지 좋은 자세라 여겨지지 않아 실천해(?) 옮겼다.
고교시절 이후로 소설읽기를 막 내린 나로서는 요즘 베스트셀러 작품이 뭔지,
어떤 유형의 이야기에 대중이 민감하게 반응하는지 감감한 터라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생각으로 영화관으로 발을 돌렸다.
원작은 주인공 덕훈과 그의 아내 인아,
그리고 재경이라는 두 번째 남자를 등장시켜,
결혼이라는 골대를 향해 질주하여 성공시키는 남자와
한 남자만을 사랑할 수 없다는 선언아래 두명의 골키퍼를 기용함으로써
이중결혼을 실천하는 아내,
그리고 이러한 난감한 상황에서 그녀를 사랑하기에
반쪽소유라도 포기하지 못하는 남자의 심리를 중심으로,
기존의 결혼제도에 나름 파격적이고 도발적인 도전을 한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에 사랑과 삶의 도식을 축구 경기라는 틀에 절묘하게 결합시켜
남녀의 사랑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미 소설로 성공한 작품이라 영화는 스토리를 크게 수정하지 않은 채
원작이 닦아놓은 길을 편안하게 밟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정윤수 감독의 전작인,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습니까?>를 보지 못해서
감독의 독특한 문제의식이나 메시지 해독은 녹녹하지 않았다.
어쨌거나 여주인공으로 손예진을 캐스팅함으로써
영화는 한편으로 주연배우의 기존캐릭터나 발랄한외모에 크게 의존하여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녹여낼 수 있는 영상적 메시지를
놓쳐버리고 말았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녀 또는 노출씬을 삽입시킴으로써 스토리 텔링과 관계없이
영화 자체보다는 눈요기를 원하는 관객의 입맛을 돋우었는지는 모를 일이다.
영화는 새 남편을 사랑하게 되는 인아의 감정변화에 대해
관객을 설득하려하기 보다는
마치 독립선언을 하듯 하는 인아의 몇 마디 선언으로
그것을 대체해버린다.
한 남자를 사랑하면서도 또다른 남자를 결혼의 테두리 내에서 사랑하고픈
인아의 내외면적 욕구나 요구에 관객은 따라가기도 어렵고
공감할만한 장면을 영화는 설치해 놓고 있지 않다.
개인의 심리적 변화에 공감 가능한 개연성의 고리를 남기지 못했다.
기껏해야 손혜진 정도의 깜찍 발랄한 여자라면
두 남편을 두고 살 수 있지 않을까?
정도의 코믹한 결론을 얻어낼 수 있을 뿐이다.
(감독은 코믹터치에 매달린 나머지 주제의식에서 멀어졌을 수도)
설령 일부일처제라는 문명의 산물로서의 보편적 제도가
영원한 것도 아니며 인간의 본성에 위배된다는 주장을 함으로써
기존의 도덕률이나 민법조항들을 개인의 자율적 삶의 선택보다
우위에 놓을 수 없다는 주장아래,
전통 규범을 깨려는 시도를 하고 싶었다 하더라도
상황은 크게 달라질 것이 없다.
그 또한 독립 선언문 읽듯 몇 줄 대사로 처리했을 뿐이기 때문이다.
영화에 몰입하지 못한 채 장면들을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영화는 끝났는지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있었다.
순간, 소설의 원작자와 감독에게 동시에 의문이 생겼다.
과연 두 사람을 동시에 사랑한다는 것이 가능한 걸까?
물론 두 사람을 성적 대상으로 삼는다거나
아니면 특정한 조건에 매달려 두 마리 토끼를 쫓는 설정은 가능하다.
예컨대, 일부일처제 사회에서 축첩제도가 있었던 우리 사회를 떠올려 보면,
과연 그 남정네들이 그 여인들을 모두 사랑했겠는가?
하는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욕정의 대상으로 다수의 여인을 거느릴 수는 있었는지 몰라도
그들은 어쩌면 한 여인도 사랑하지 못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사랑에 대한 정의를 어떻게 내리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는 있겠지만
(비생산적 결론 없는 논쟁을 그만둔다면)
직관적으로 볼 때 그려봄직한 결론이다.
남녀 간의 사랑에서 배타적 속성을 빼버린다면
인류애쯤으로 자리를 옮겨 앉아야하지 않을까?
이 영화를 보며 여성관객들은 어쩌면 대리만족을 하거나
쌍수 들어 환영할 수도 있었을지 모르나
리얼리티(허구를 전제로 한 개연성)가 떨어지는 설정과 연출은
내게 오히려 그리 개운치 않은 씁쓸함만을 남겼다.
첫댓글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습니까?>라는 영화 역시 독특한 문제의식은 느껴지지 않았고요. 뭐랄까 조금 다른 사랑방식을 보여주는 감독? 정도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상업영화'라는 형식 자체가 원문 그대로 표현할 수 없는 한계를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흥행에 성공해야한다는 강박관념을 그다지 크게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갈길을 모색하는게 어렵긴하겠지만 불가능한건 아닐거라는 생각을 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