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지난 해인 2013년 10월 경,
문화관광부와 (사)한국음반산업협회가 공동 주관하는 '대한민국 대중음악 아카이브 작업'에
가수들의 프로필을 정리해달라는 요청에 따라 작성했던 프로필 위주의 간략한 글입니다.
각설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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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있어요', '춤추는 첫사랑'의 가수 이현 프로파일(Pro_file), 그 짧막한 메모
‘장군의 아들’, ‘귀공자 풍의 유학파 가수’에서
‘70년대 원조 아이돌 스타’로 자리매김되다
-1974년 KBS, MBC, TBC 등 3대 방송사 10대가수상, 모조리 휩쓸어
글 l 박성서 (음악평론가, 저널리스트)
지금은 올드 팬들로부터 '70년대 원조 꽃미남 가수'로 일컬어지지만
가수 이현이 처음 등장하던 1970년에는 '장군의 아들'이자 '귀공자 풍의 유학파 가수'로 비상한 관심과 주목을 받았다.
동시에 당시 청소년들로부터는 '선망의 대상'이자 '우상의 존재'였다.
본명 이헌.
대한민국 군군의 상징, ‘군번 1번(10001)’인 부친 이형근 장군은
1962년 주 영국 대사관 대사로 부임하며 이현 또한 영국에서 유학시절을 보낸다.
유학에서 돌아온 그는 집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중앙대 연극영화과에 진학한다.
그리고 당시 최고의 히트메이커인 작곡가 박춘석과 손잡고 70년 4월,
데뷔음반 '내 사랑 지금 어디'를 발표하며 활동을 시작한다.
1970년 데뷔 첫 해, '내 사랑 지금 어디'와 '첫사랑의 왈츠'로 TBC 방송가요대상 남자신인상을 수상하는 이현은
이듬해인 1971년 2월에 발표하는 '이별이 주고 간 슬픔'으로 그 해 5월,
일간스포츠 '가요베스트 20'에서 1위를 차지하는 등... 단숨에 톱스타 대열에 합류한다.
아울러 이 무렵 옴니버스 음반 '러브 스토리'를 통해 발표하는
'춤추는 첫사랑('Ten Guitars' 번안곡, 지명길 작사 홍현걸 편곡 )'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
이를 계기로 트로트 가수 이미지에서 벗어나 팝가수로 부각되기 시작한다.
참고로 1971년 6월 25일부터 3일간 시민회관에서 열린 '팝과 포크의 베스트 히트 플레이어쇼’에서
이현은 팝가수를 대표해 무대에 오른다.
당시 신문기사를 보면 '이 무대를 장식한 포크 가수는 서유석, 쉐그린, 라나 에 로스포,
팝 가수는 이현, 장미리 등이었다.'고 소개하고 있다.
팬 층도 급격히 10대 위주로 확산되자
작곡가 박춘석 역시 이어 발표하는 '슬픈 행복(1971년)'을 타이틀로 한 음반에서
이 노래들을 포함해 '마음은 집시', '고향의 푸른 잔디'까지 직접 편곡해 수록하기에 이른다.
때를 같이해 청소년들 사이에 불기 시작한 '이현 신드롬'은 스크린으로 까지 이어져
영화 '아름다운 청춘(1971년, 김영걸 감독)'을 시작으로 출연하는 작품마다 10대들의 발길을 극장으로 불러 모았다.
어느새 각 방송사의 주요 프로그램마다 빠지면 안 되는 스타로 부상함과 동시에
1971년 동아방송 개국 8돌 인기가수퍼레이드, MBC 개국 10주년 올스타쇼에 이어
1972년 동아방송 개국 9주년 기념공연까지 주요 행사무대에 올라 인기를 증명해보였다.
1972년과 1973년에 들어서면서 더욱 거침없는 질주는 계속된다.
이 2년이라는 기간 동안 무려 7장의 독집음반을 발표한 것,
아울러 1973년 MBC 10대가수상까지 수상한다.
이때 발표한 독집음반들을 살펴보자면,
'모래집/인형의 사랑(1972년)', '먼 여로(1972년)', '임은 어디에/타향등(1972년)'을 비롯해
지구에서 오아시스로 전속을 옮겨 발표하는 '오아시스 전속기념음반/잊지마(1973년)',
'잘 있어요/애원(1973년)', '내 너를 만나서(1973년)' 등이다.
이 노래들의 인기가 채 식기도 전인 74년,
'똑같애', '불타는 사랑', '불량소년', '라라라', '너를' 등을 잇달아 발표하며
당시 3대 방송사인 KBS, MBC, TBC가 시상하는 10대가수상을 모조리 휩쓴다.
보다 상세히 소개하자면,
1974년, 그 해 9월에 열린 '제10회 TBC 방송가요대상'을 시작으로
12월 2일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MBC 10대가수상', 같은 달 28일 'TBC-TV 7대 가수상' 수상에 이어
12월 30일에 열린 '제3회 KBS 연예대상 남녀10대가수상'까지 모조리 거머쥔 것.
또한 영화배우로써, 하이틴 스타로써 그는 '겹치기 출연'까지 해야 할 정도로 바쁜 나날의 연속이었다.
심지어 세 편의 영화를 동시에 촬영하고 있다는 보도도 눈에 띌 정도.
그가 출연한 영화들을 살펴보면
스크린 데뷔작인 ‘아름다운 청춘(1971년, 김영걸 감독)’을 시작으로
'별난 장군(1972년, 변장호 감독)', '청춘교사(1972년, 김기덕 감독)', '뜨거운 영광(1973년, 편거영 감독)',
'방년 18세(1973년, 이원세 감독)', '처녀시절(1973년, 이성구 감독)' 등 주로 하이틴 물.
각각의 상대역 또한 당시 인기정상의 하이틴 스타들인 임예진, 안인숙, 이영옥, 서미경, 주미 등과 호흡을 맞췄다.
아울러 당시 '문화영화'라는 이름으로 제작되었던 '강산에 노래 싣고 웃음 싣고(1972년)',
'웃고 노래하는 팔도유람(1973년)', '노래 실은 금수강산(1974년)' 등등에 출연하는 등,
거리에는 온통 그의 사진이 실린 영화포스터가 나붙었고 라디오와 TV에서는 연일 그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거침없이 인기가도를 질주하며 전성기를 구가,
스테이지와 스크린을 동시에 장악하던 1975년.
그러나 '누구일까/언약' 음반을 마지막으로 모든 활동을 접고 지금까지도 대중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는
가수 이현.
(당시 무대를 떠날 수밖에 없었던 상황들은 기회있을 때
주인공으로 부터 직접 드라마틱하게 들으시길 권합니다....요.^^)
이로부터 40년 쯤 시간이 흐른 뒤인 지난 2013년 10월,
우연히 함께 들른 속초의 한 횟집.
어느덧 환갑을 훌쩍 넘긴 '그 이' 임에도 한눈에 알아본 아주머니들이 주위에 몰려들어
기념사진을 찍자며 휴대폰을 들이댔다.
40여 년 전 10대 소녀 팬들이 바로 자신들이었다며...
필자가 놀란 건 이미 아슴프레해졌을 40년 전 기억을 눈앞에서 찾아낸 이들의 '눈썰미'이기도 했겠지만
그보다 먼저, 지금도 금세 알아챌 정도로 '예전 그대로의 동안(童顔)'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어쩌면 이것이 주위에서 자꾸만 컴백을 부추기는 이유 중 하나인지도 모르겠다.
어느덧 같은 세대가 된 올드 팬들에게 '꿈과 희망을 되돌려주어야 할' 책임이 있는 게 아니겠느냐...며.
(2013년 10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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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그리고...
어느날 갑자기,
이러한 선물 하나가
내 손에 쥐어졌다...^^ ㅎㅎ
첫댓글 당시에 전 다른가수에 관심있어서 별로 주의깊게 알려하지 않았는데
이제보니 참 복많은 가수였습니다.^^
더 복많은 가수가 누구인지, 제가 알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시쥬?
@오후의 발견 녜 ㅎㅎ
얼마전 KBS 배철수님이 진행하는 7080에 출연하셔서 "잘있어요"를 열창하는 모습 보았지요...
고교를 졸업하기 전에 데뷰를 해서 그 당시 신촌 살고 있어서 핸섬한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던 스타였지요..
그렇군요. 현재 이현 팬클럽 분들 중에 특히 그 근처를 오가던 소녀들이 많더군요.
초등학교시절 흑백TV에 너무 잘생긴 가수보고..ㅎㅎ
중학생때는 엘비스프레슬리 보고...ㅎㅎ
제 눈에 아버님이 더 잘생기셨네요
잘있어요를 따라부르며 흥얼거리던
초등시절로 추억여행 떠납니다^^
감사드립니다.
음, 갑자기 샤찌님 초딩시절 모습이 무척 궁금하다는...
장군이신 아버님 이 멋지시네요 ~
고운모습 답게 ~
좋은 집안에 태어나셨군요 ^^
우야든동 스타 패밀리, 집안인 게 확실한 것 같습니다.
지기님도 자주 뵜었군요.
(지기님과 이웃 학교ㅎ)
당시 우리 여고 앞에 있는 양옥집에 살고 계셔 가끔 뵀던 기억ㅎ
최근 부인이 회집을 개업했던데 함께 쳐들어가면 재미있는 얘기가 많이 나올 것 같죠?
원조 10대아이돌스타^^
회집은 잠원동 해초섬 이죠.어제 갔다 간장게장.문어.세꼬시회.보쌈.떡.실컨 먹고 노래도 이현님과 같이 3시간 동안 같이 부르며 재미있게 본인도 놀다 왔지요. 이현님 생일 잔치를 해초섬 에서 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