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필자는 지인들과 상해, 항주 여행을 다녀왔다. 경비를 절감하기 위한 패키지 여행은 늘 그렇듯 현지에서 판매하는 라텍스 혹은 보이차 판매장을 방문하는 것이 투어의 한 일정인데, 지루한 점원의 설명을 들어주어야 하는 것은 여간 고역이 아니다. 그런데 어느 판매장에서 중국인 점원이 하는 말에 번쩍 눈이 뜨인다.
“중국국토 지형은 암닭 형상입니다. 대륙의 동쪽은 머리이고, 서쪽은 닭 꼬리에 해당됩니다. 상해는 닭 가슴이고, 광동성은 배부분입니다. 그리고 백두산은 닭 부리에 해당합니다.
그런데 일본을 보면 길게 늘어진 것이 마치 지네 같은 형상입니다. 암탉이 좋아하는 지네를 먹으려고 호시탐탐 노리고 있지만, 한국이 가운데서 막아주고 있는 형세입니다. 일본은 한국에게 늘 고마워해야 합니다.”

한국인들을 상대로 한 호객행위로 립서비스겠지만, 그 말 속에는 닭 부리에 달려있는 한반도는 닭의 먹이감 쯤으로 생각하는 오만함을 엿볼 수 있다. 씁쓸한 생각에 잠시 암탉의 천적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니 고양이과 동물을 가장 두려워한다고 한다. 문득 시라소니가 생각난다. 협객 시라소니가 주먹 하나로 중국대륙을 벌벌 떨게 했듯이 한반도가 통일이 되면 불패의 쌈꾼 시라소니 처럼 되어 암탉의 먹이감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야 된다는 생각을 해본다. 중국인 점원이 계속해서 말하기를
“암탉이 알을 낳은 것이 해남도이고 대만은 알이 부화한 병아리입니다. 그런데 어미는 대만이 자기가 낳은 새끼가 맞다고 하지만, 정작 병아리는 중국은 자기 부모가 아니라고 우기고 있습니다.”
중국과 대만의 관계를 자국의 입장에서 보는 시각이 일반화 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번에는 김씨 성을 가진 중국인 가이드를 소개해 보겠다. 이 가이드는 아버지가 한국인이고, 어머니가 중국인으로 중국에서 태었기 때문에 중국국적이다. 그러나 한국어가 능통해서 가이드를 선택했다는 것이다. 알리바바의 마윈이 젊어서 영어선생이자 가이드로 활동했듯이 자신도 그러한 길을 걸으며 경험을 쌓고 견문을 넓히고 싶다는 것이다. 가이드 말하기를 땅 넓은 중국에서 그들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거처는 인물이 많이 나는 소주에 태어나, 살기 좋은 항주에 살면서, 산수가 빼어난 계림에서 즐기다, 명당이 많은 난주에 묻히는 것이라고 한다. 풍수가 전업인 필자에게는 어떤 관광보다 기억되는 말이다. 그러고 보니 소주·항주·난주 등 모두 술 이름 같아 술 좋아하는 필자는 유쾌하기만 하다.
항주는 절강성(浙江省, 저장성) 城都로서 가장 대표적인 경승지가 서호이다. 넓은 저수지는 산들이 둘러싸고 있는 분지형 지형을 이루고 있어 물이 모이는 곳이다. 물이 모이는 곳에 사람과 재물이 모여 도시가 이루어진다는 풍수의 격언이 그대로 적용되는 곳이다. 그런데 이곳 산들의 올망졸망 둥그스런 모습이 한국 산세와 흡사하게 닮았다. 마치 한국 어느 지방에 온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친근감이 든다. 중국인들은 이러한 산세를 부러워했기에 항주가 사람이 살기에 가장 좋은 곳이라 했던 것이다.


상해에서 항주까지는 고속도로를 약 3시간 달려야 하는데, 3시간 동안 끝없이 펼쳐진 평지만 보이다가 산이 보이면 비로소 항주에 다다른다. 서울에서 전주까지 가는 동안 산 하나 없는 것을 연상하면 된다. 이 넓은 평지에서는 산이 없으니 물길을 보고 터를 정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실감난다. 그러나 끝없이 펼쳐진 평야지대여서 무료한 것은 어쩔 수 없다.
항주의 서호는 서태후가 이곳 경치에 매료되어 통째로 옮겨오라고 할 정도로 탐을 냈던 곳이다. 그래서 그 대안으로 만든 것이 북경에 있는 이화원이다. 유람선을 타고 도는 서호의 절경은 사계절이 늘 다르다고 하니 서태후가 욕심을 낼만도 하겠다. 특히 달밤에 보는 서호와 물안개 자욱한 서호가 아름답다고 하는데, 그것을 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울 따름이다. 송나라 때 시인 소동파가 이곳에 부임하여 풍류를 즐기던 곳이기도 한데, 서호를 중국 최고의 미녀 중 한명이라는 서시에 비교할 정도였다.

물빛 빛나고 맑으니 마침 좋고
비 오는 모습과 어우러진 산색 또한 기이하구나
서호를 서시에 비유하니
옅은 화장 짙은 화장 모두 아름답구나
동방견문록을 쓴 마르코폴로는 서호의 절경을 보고 上有天堂下有蘇杭 하늘에 천당이 있다면, 땅에는 소주와 항주가 있다는 말로 항주의 경치를 극찬하기도 했다.
서호 한편에는 악비(岳飛)장군의 악왕묘가 있다. 악비는 주변나라와의 전투에서 매번 이기면서 남송시대의 영웅적인 장군으로 추앙받지만, 모함에 의해 39세 나이로 처형당한다. 악비는 문무를 겸비한 학자이자 장군으로 중국인들이 관우와 함께 가장 좋아하는 인물이다. 그리하여 근대 중국의 아버지로 불리는 손문은 악비장군을 중국민족의 수호신이라고 평할 정도로 중국인들에게 추앙받는 인물이다.


악비장군 묘 앞에는 그를 모함한 진회부부 등 4명이 쇠사슬로 묶여 무릎을 꿇고 있는 동상이 있다. 당시의 모함을 사죄하는 것을 표현한 것이다. 그런데 이 두 사람 앞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쓰여 져 있다. “가래침을 뱉지 마세요(请勿吐痰)” 악비장군을 모함한 간신이라 하여 관람객들이 너도나도 침을 뱉고 돌을 던지기 때문에 궁여지책으로 푯말을 붙인 것이라고 한다. 중국인들의 악비장군에 대한 깊은 애정을 엿볼 수 있다.

절강성은 한국의 새마을운동을 벤치마킹하여 농촌개량 사업을 벌였다. 문맹률을 낮추고 평균수명을 높이기 위한 목적인데, 가장 먼저 한 것이 뿔뿔이 흩어져 있는 개인 집들을 한 곳으로 모아 마을을 이루게 했다. 그런 다음 학교를 세우고 병원을 지어 복지후생에 정책적인 지원을 해준다. 이때 새로 지은 집들은 빌라와 같은 모습으로 4-5층 정도의 현대식 건물형태를 하고 있다. 습기가 많은 지형 탓에 1층은 필로티 형태로 농기계와 차량이 차지하고, 2층에는 할아버지 내외, 3층에는 부모님 내외, 4층에는 자식과 손주들이 사는 대가족을 이루고 있다.
건물 꼭대기에는 작은 구조물이 있는데, 옥탑방이라 하기에는 협소한 공간이다.


가이드 말하기를 그 공간은 사당으로 사람이 죽으면 화장한 뒤 단지에 담아 그곳에 모셔둔다고 한다. 그곳에서 보통 3년 정도를 보관하며 추모하지만, 3년이 지나면 절강성의 젖줄로 불리는 전단강에 뿌린다. 3년 정도를 집에 두는 이유는 망자에 대한 배려지만, 망자는 새로운 사람이 들어오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3년쯤 지나서 망자의 길을 가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망자를 보내고 새로운 사람을 받아들이는 절강성의 풍습이 도시화 되었다는 생각이다.

첫댓글 바쁘신 와중에도 먼길다녀 오셨습니다.
오랜기간동안 장비의 묘역이 보존되어 온 것을 보니
중국나름대로 문화에대한 진정성이 남아있는것 같습니다.
좋은글 잘 보고있습니다.
교수님의 글을 읽으면서..여행의 즐거움을 다시 누리는 기분입니다~^^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교수님 글 잘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자료 감사 합니다
재미있는 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