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서 온 두 처녀(1953년)>와 <갈대는 바람에 시달려도(1963년, 원제 '살아있는 갈대'>의 표지(펄벅기념관 누리집 사진)
1892년 6월 26일 박진주가 태어났다. 그는 퓰리처상과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한국 여성작가 중에 그토록 높은 평가를 받은 사람이 있다고? 나도 소설께나 읽은 사람인데, 그런 이야기는 처음 듣는다! 당신이 뭔가 오해하고 가짜뉴스를 퍼뜨리고 있는 것 아냐?’ 하고 놀랄 것까지는 없다.
박진주는 펄벅이다. 그는 사람들이 자신을 “박진주”로 호명해 주기를 바랐다. 세계적 저명인사가 스스로 한국식 이름을 작명해서 남들에게 그렇게 불러 달라고 요청했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이광수가 香山光郞으로, 박정희가 高木正雄으로…… 정작 한국인들은 부모가 물려주고 지어준 성명을 헌신짝처럼 버렸는데…….
펄벅은 한국을 제재로 한 〈살아 있는 갈대〉, 〈새해〉 등의 소설도 썼다. 그는 1964년 한국펄벅재단 산하에 소사희망원을 설립해서 오갈 데 없는 아이들을 돌보았다. 소사희망원이 존속한 9년 동안 여덟 차례나 방문해 직접 아이들의 발을 씻어준 펄벅의 아름다운 마음은 인류의 귀감이다. 다행히 부천문화재단에서 2006년 희망원 땅 일부인 부천시 성주로214번길 61에 펄벅기념관을 지어 우리나라 사람들의 체면을 조금이나마 살려 주었다.
1962년 어느 날 펄벅이 케네디와 주고받은 대화는 인권을 이야기할 때 늘 회자되는 유명 일화이다. 당시 미국 대통령이던 케네디가 “주한 미군을 철수시켜야겠습니다.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가요. 우리는 빠져 나오고 대신 옛날처럼 일본이 한국을 맡도록 하는 것이 현명하지 않나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펄벅이 대뜸 받아쳤다. “그들 사이에 형성되었던 불공정한 지배와 피지배 관계는 아직 회복되지 않았습니다. 위력을 휘둘렀던 쪽에 다시 통제권을 주겠다는 것인가요? 우리 미국이 영국의 지배를 받을 시절로 돌아가도 좋다는 말입니까?”
1949년 6월 26일 백범 김구가 세상을 떠났다. 그를 암살한 안두희는 불과 1년 만에 장교로 복직하고, 그 후에도 군납업체를 운영하는 등 정권의 비호 아래 상류층으로 호의호식했다. 법의 심판은 없었다. 김용희, 곽태영, 권중희 등의 비분강개에 시달리다가 끝내 박기서의 ‘정의봉’에 맞아 숨을 거두었을 뿐.
그래도 펄벅은 “한국은 고상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보석 같은 나라”라고 했다. 어쩌면 당혹스러울 만큼 우리나라를 곱게 보아준 박진주 여사에게 우리 모두는 늦게나마 감사 인사를 올려야 마땅하다. 아직 〈대지〉를 읽지 않았다면 지금이라도 그 세계를 마음으로 탐험해야겠고, 〈살아 있는 갈대〉도 원문이든 번역본이든 구해서 읽어야겠다. ‘머리 검은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다’라는 속담도 이제는 폐기시켜야 옳지 않겠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