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암행어서 박문수가 헌옷에 다 떨어진 갓을 쓰고 방방곡곡을 찾아다니며 어느 고을에 억울한 일이 있는지 선비나 부녀자 혹은 아이들한테서라도 탐문하면서 다녔다.
한 번은 어느 집 사랑방에 하루 저녁 묵게 되었다. 천자문(千字文)을 가르치고 있는데 배우는 아이하고 가르치는 선생이 초저녁부터 밤중까지 ‘굴’이란 발음만 번갈아가며 계속하니 그저 “굴굴굴…” 하는 소리만 들린다. 박 어사가 잘 시간이 되어 그 선생한테 묻기를 “천자문에 굴 자가 없는 줄 아는데 굴이란 자가 무슨 글자길래 밤중까지 굴굴굴 하느냐”고 물었다. 선생의 대답이 “저 아이가 하도 재주가 없어서 굴레 륵(勒)자를 배우는데 굴레 륵을 한꺼번에 못 배우니까 한 글자씩 배워서 ‘굴레 륵’ 이것을 가지고 사흘 동안 배운다”고 한다. 박 어사도 참으로 아이가 재주가 없다고 생각을 아니할 수 없었다.
세월이 흐르고 또 흐른 뒤 나라 임금님이 태평한 시절에 동지섣달 긴긴 밤을 무료하게 그냥 지낼 수가 없어 신하들을 불러들여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도록 하였다. 그런데 그런 이야깃거리도 며칠간이지 허구헌 날 매일같이 하다보니 이야깃거리가 떨어졌다. 그래서 신하들이 궁여지책으로 암행어사 박문수는 팔도강산으로 돌아다니면서 들은 것도 많고 본 것도 많을 것이니 재미있는 이야기를 잘 할 것이라고 임금님께 아뢰어 박 어사를 불러들였다.
박문수가 여러 가지 재미없는 이야기를 많이 하다가, 한 번은 어디를 갔는데 참으로 재주 없는 아이가 있어 천자문의 굴레 륵 자 한 자를 사흘 배우며 굴굴굴 하던 이야기를 했다. 모두들 웃음을 참지 못하고 웃고 있는데 그 중에 한 신하가 일어나더니 “그때 굴레 륵 자를 사흘 배우던 아이가 바로 소신입니다” 하는 것이 아닌가.
아무리 재주가 없는 사람이라도 열심히 노력만 하면 벼슬길에 올라 높은 신하가 되는 것이니 무슨 일이든 지극하게 힘을 들이면 반드시 좋은 결과를 성취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재주 없는 신하라도 둔공(鈍功)을 들이니 자연 영대(靈臺)가 밝아지는 것이다. -경봉 스임 설법 중
멩이 군말 : 중고등학교 때 나는 영어 단어가 그렇게 외워지질 않았다. 한 단어를 연습장 한 페이지에 반 이상 수백 번 빽빽이 써도. 군대에서도 신병 때 전화번호를 40-50개 외워야 하는데, 나는 10개도 못 외워 고생을 많이 했다. 도무지 맥락 없이 그냥 외우는 것은 거의 불가능이다. 그래서 이 무디고 둔한 둔공(鈍功)의 공부법이 참 맘에 든다. 둔재의 아이의 성실성을 믿고 아이에 맞게 공부를 가르친 스승도 생각해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