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오후 2시 대명동 계대에 도착하기 위해 버스를 두 번이나 탔다. '송환'이란 단어 자체에서 풍기는 이미지가 있듯 감동은 기대하되 재미란 기대는 두고 갔다. 1시 45분, 정문에서 기다리다 과 친구들과 상영관으로 올라갔다. 생각보다 많은 관객에 좀 놀랐다. 전단지를 받아들고 중간쯤 자리를 잡고 교수님 오셨을지 두리번 거리며 난 그렇게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수업 시간 말씀하셨듯이 화질도 음향도 별로였다. 무식했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다큐멘터리 영화를 본 것도 이번이 처음이었다. 아님 봤어도 그게 다큐멘터리 영화였는지 몰랐을수 도 있다. 대강 들은 내용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처음에는 졸아버렸다. 아마 어제 늦게 잔 탓이 아닐까란 핑계를 대보았지만 딴 몇몇친구도 자는 걸 보았기에 솔직히 안심했다. 존 것은 처음 한 5분쯤 되었을까? 점점 흥미진진해지는 이야기를 보며 화면으로 몰입하게 되었다.
솔직히 난 육이오시대 사람도 아니고 학교 다니면서도 '송환'에 관한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기에 의식 자체가 없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일이 아닌 이상 아주 잠깐 관심을 가지거나 아님 아예 신경쓰지 않는게 대부분이니깐 말이다. 내가 경험해 보지 않은 일이기에 비전향장기수 할아버지들의 감옥 생활이 진짜는 어땠는지 알 수 없다. 다만, 경험담만을 들은 내가 이렇게 분노할 정도라고 생각하니 짐작은 할 수 있었다. 20-30여년의 세월이라,,,간첩이라 욕얻어 먹으며 교도소에서 받은 고문과 사회에 나와서도 비난,가난과 싸워야만 하는 그 긴 시간들을 견뎌냈던 이유를 짐작해보았다. '난 돌아가야한다,돌아갈 곳이 있다'란 희망 하나만을 가지고 견디지 않았을까?
영화를 보고 난 후 오직 이것 하나만 심각하게 생각해 보았다. 가고싶은, 아니 가야만 하는 고향을 두고 온갖 비난과 무시를 받은 20여년의 시간의 '보상'말이다.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조국을 위해 몸받친 애국자들을 위한 그 보상, 북으로 '송환'한 할아버지들은 국가로 부터의 물질적 보상은 물론이고 자존심회복과 국민들에게 환영과 존경심도 다 받았다. 북한의 이런 보상들은 아주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이 당연한 일들조차 무시해버린다. 독립운동하느라 목숨받친 애국자분들의 생활은 가난 그 자체로 후손들까지 어렵게 살고 있다. 반면 자신들의 몫만 챙기느라 일본 앞잡이 노릇을 한 친일파 놈들은 아직까지 상위계층에 앉아 여전히 잘먹고 잘 살고 있다. 요즈음 정치나 경제를 보면 알겠지만 한숨밖에 안 나온다. 솔직히 내 생각은 그렇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국가를 위해 목숨받친 위인들에게 보상을 해주고 그 후손들에게도 더 확실하게 나라에서 혜택을 주어야 할 것이다. 친일파 놈들은 다 죄 값을 받게 해야한다. 앞으로의 우리나라를 위해서도 꼭 이렇게 정의로운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정의가 승리하는 세상이 부럽게만 느껴지는 유럽의 국가들이 아니라 바로 내나라, 대한민국이 꼭 그랬으면 좋겠다.
아무쪼록 2차 송환을 기다리시는 할아버지들도 무사히 가셔서 남은 여생을 편안히 보내셨으면 한다. 남한으로 송환되길 간절히 바라는 우리 할아버지들도 꼭 돌아오셨으면 한다. 분명히 해야할 건 '송환'이란 문제가 우리만 양보하고 추진할 것이 아니라 북 측에게도 당당히 요구해야함을 알고 좀 더 적극적인 관심으로 추진해야할 것이다.
12년동안이나 비전향장기수들에게 관심을 가지며 찍었다는 것에 우선 감독께 박수를 쳐드리고 싶다.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사람들의 자유를 위해 노력해온 추진위원회 사람들에게도말이다. 몇 년전부터 북한과의 관계에 대한 영화가 많이 나오고 또한 흥행에도 성공해 많은 사람들이 본다. 모두가 이런 영화들을 보면서 한번 울고 감동받고 말 것이 아니라 보고 느꼈으면 참여해서 꼬였던 매듭들을 하나둘씩 풀 수 있겠금 의식을 가지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계명대학교 인문학부 4617920 이성희*
-남태우교수님~!!!
대학생활중에 아마 1학년 1학기 '영상예술의 이해'시간을 선택한 것에 대해선 단 한번도 후회하지 않을 것 같아요.
교수님 수업 듣게 된거 정말 행운으로 생각하구요, 영화에 대해선 아직 잘 모르지만 종강하면 달라져 있을게요.^ㅁ^ -
첫댓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