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린 탓에 하늘이 낮게 내려앉은 도시에도 봄기운이 느껴진다. 도시를 벗어난 차는 어느새 경부고속도로를 달려 대구와 포항을 잇는 도동 분기점에 다다랐다. 지난 2004년 12월 개통된 대구-포항 고속도로는 4.6차선으로 대구와 포항을 40분대로 앞당겨 놓았다. 예전엔 1시간 40여분이 걸렸으니 여행을 직업으로 하는 필자는 새로운 길이 고맙기 그지없다. 학전리를 벗어나 동해선 국도 7호선에 접어들면 끝없이 펼쳐진 동해바다가 나온다. 비가 온 탓에 바다와 하늘이 이마를 맞대고 있다. 비릿한 바다 내음도 오늘은 싫지 않다. 동해바다가 들려주는 감미로운 멜로디에 젖어들 무렵 강구항에 다다랐다.
영덕강구의 첫인상은 포근하다. 승용차만 다닐 수 있는 조그만 다리를 건너면 대게로 널리 이름이 알려진 강구항이다. 때문에 강구는 얼핏 보면 섬처럼 보인다. 다리 중간에 만들어 놓은 대형 대게모형이 인상적이다. 다리를 건너 항구 쪽으로 접어드는 길목부터 수협을 지나 약 1.5km 구간까지 즐비하게 늘어선 식당에서 대게를 쪄내는 수증기로 인해 도로가 보이지 않을 정도다. 대게는 11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 제철이다. 그러나 2월~4월까지 잡히는 대게가 가장 맛이 있다. 이때 잡히는 대게들이 박달대게다. 박달나무처럼 속이 꽉 차있어 박달대게라 부른다. 몇 년 전부터 유행처럼 식당마다 내다 건 대형 대게모형이 눈길을 끈다. 식당 앞은 대게를 잡는 근해자망 어선들이 질서 정연하게 정박해 있다. 대게를 잡는 배들은 약 1주일 정도 바다에 나가 조업을 하며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몰리는 주말을 맞춰 강구항에 들어온다.
그래야 조금 높은 값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은 러시아산, 북한산, 일본산까지 영덕대게에 합류했다. 때문에 영덕은 다국적 대게들이 죄다 모여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모양과 크기가 같아 일반인들 눈에는 모두 영덕대게로 보인다. 하지만 유심히 살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국내에 가장 많이 들어와 있는 러시아산 대게는 산호초가 많은 러시아 근해에서 잡히기 때문에 온 몸에 산호초의 흰 반점이 덮여 있다. 북한산은 러시아산 만큼 흰점이 많지 않지만 조금씩 붙어있다. 그러나 영덕대게는 껍질에서부터 차이가 난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무지개 빛이 나고 대체로 표면이 깨끗하다.
또한, 당당하게 국내산이라는 노란 완장을 팔에 차고 있다. 완장에는 대게를 잡은 선박이름과 선주이름 잡힌 날짜가 새겨져 있다. 가격도 차이가 크다. 박달대게는 1kg에 15만원이 넘는 반면 수입 산은 3분의 1 가격에 구입이 가능하다. 조금 저렴하게 대게를 먹으려면 항구가 끝나는 곳에 펼쳐진 난전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 말만 잘하면 주인 없는 떨어진 대게다리도 덤으로 몇 개 얻을 수 있다. 이곳에서 대게를 구입해 식당에서 양념값과 쪄주는 값만 내면된다. 찜 값은 보통 5,000원. 양념값은 1인분에 3,000원정도 받는다. 이들 식당은 난전에서 대게를 파는 상인들이 안내를 해준다. 대게를 쪄내는 수증기는 떡 방앗간을 방불케 한다. 찜통도 모양새가 방앗간과 똑같다.
찜통마다 숫자가 쓰여 있다. 자신의 숫자를 꼭 기억해야 한다. 고열의 수증기로 쪄내기 때문에 30분 정도 시간이 소요되며, 다시 10분정도 더 뜸을 들여야 가장 맛있는 대게를 먹을 수 있다. “ 대게도 좋아야 하지만 쪄내는 방법에서도 맛을 좌우 합니다” 식당주인은 다년간의 노하우를 보여주겠다며 찜통에 대게를 뒤집어 넣는다. “이렇게 뒤집어 넣어야 대게 특유의 향과 맛이 빠져나가지 않아요.” 40여분 후 김이 모락모락 나는 대게를 건네받았다. 가위로 대게다리를 잘라 속살을 입에 넣는 순간 입안 가득 동해바다의 모든 것이 녹아들었다. 대게를 다 먹고 나면 게 등껍질 속의 내장에 참기름, 김 가루를 밥에 비벼 내주는 '영양 게 밥'도 꼭 먹어보자. 그 속에도 동해바다가 들어있다.
영덕대게가 유명한 것은 고려시대까지 올라간다. 옛날부터 임금님 수라상에 단골로 올랐다는 대게는 조금 위쪽에 자리한 울진군 대게와 쌍벽을 이루고 있다. 인기드라마 대장금에서 임금님께 진상된 대게가 울진대게라 했다가 방송사로 항의 전화가 빗발쳐 곤혹을 치르기도 했다. 이처럼 대게는 두 지역을 대표하는 귀한 몸이 되었다. 때문에 금어기(禁漁期)까지 만들어 특별히 관리하고 있으며 산란기 철인 여름엔 조업이 금지되어있다. 더욱이 대게의 개체 수를 높이는 암게는 특별히 관리하고 있다. 때문에 암게는 이곳 선원들 사이에서 ‘빵게’로 통한다.
‘빵’이란 교도소, 감옥 등을 비유한 줄임말로 암컷을 잡으면 감옥에 간다는 뜻에서 ‘빵게’로 불릴 정도니 대게야 말로 이곳에선 자식처럼 귀한 존재다.
강구항 건너 흰 등대가 보이는 곳에 조그만 강구해수욕장이 있다. 그 해수욕장 뒤로 높게 솟아 있는 언덕에 ‘삼사해상공원’이 자리하고 있다. 강구항에서 승용차로 5분 거리에 있는 삼사해상공원은 동해바다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어 해마다 새해 일출을 보기 위해 전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공원으로 들어가는 양 길엔 숙박업소가 밀집되어있어 이용하기 편리하다. 평상시 숙박료는 1일 4만원선. 그러나 4월초 열리는 대게축제 땐 8만원~10만원으로 바가지가 심하다. 불편하지만 포항쪽 으로 자리를 옮겨 숙소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 곱게 포장된 아스팔트길을 따라 10여 미터 오르면 넓은 주차장과 지난 95년 이북 5도민들의 망향의 설움을 달래기 위해 세운 ‘망향탑’과 주차장 끝자락 돌계단 위에 만들어진 경북대종이 눈에 먼저 들어온다.
삼사해상공원이 유명해 진 것은 오래전 종영된 MBC 드라마 ‘그대 그리고 나’의 촬영장소로 알려지기 시작하면서부터. 때문에 아직도 공원 입구에 드라마 촬영지라는 커다란 푯말이 걸려있다. 경북종이 걸려있는 종각에 오르면 강구항과 항구 입구에 세워진 흰 등대, 그 위로 나는 갈매기들이 한 폭의 그림이다. 종각 바로 옆 이색적인 식당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국민가수 태진아 친 동생 집’ 보는 이 마다 웃음을 참지 못한다. 때문에 식당 기둥에 설치된 야외 스피커에선 연신 태진아 노래만 흘러나온다. 삼사(三思)란 세 번 생각한다는 뜻으로 이곳에 와서 그 아름다움을 생각하고, 돌아가는 길에 생각하고, 돌아가서 그 아름다움을 생각한다고 해서 삼사라 불린다는 뜻도 있지만 정확한 어원은 옛날 이곳 삼사리에서 3명의 시랑을 배출했기 때문이라는 설이 가장 설득력 있는 말로 기억된다.
l여행팁l
삼사해상공원과 강구항 일대에서 해마다 4월초가 되면 ‘영덕대게축제’가 열린다. 축제 중에는 대게를 이용한 다양한 음식을 무료로 시식도 할 수 있다. 행사장 한편에 만들어 놓은 대형풀장에서는 대게를 낚시대로 잡아내는 대게잡이 체험도 참가할 수 있다. 참가비는 10,000원으로 마릿수에 관계없이 잡는다. 필자도 처음 참가해 10마리를 잡았다. 관광객이 잡은 대게를 3,000원에 쪄주는 곳도 있어 즉석해서 먹을 수도 있다. 참가 인원이 제한되어 있으니 미리 줄을서서 예약을 하고 번호표를 발급받고 행사장을 돌아보자.
강구 어판장을 지나면 축산(918지방도)까지 나있는 환상의 해안도로가 있다. 몇 년 전부터 이 도로를 이곳에서는 대게해안도로라 부른다.
강구항을 지나면 오른쪽으로 동해바다가 펼쳐지고 방파제 삼아 만든 둑방 곳곳엔 해풍에 말려지는 오징어들이 사열해 있다. 그곳에 어김없이 조그만 어촌마을들이 자리하고 있다. 손을 뻗으면 닫을 것 같이 바다와 가까이 나있는 도로를 20여분쯤 달리면 왼쪽 언덕위에 외국영화에서 봄직한 풍력발전기 한기가 눈에 들어오고, 연이어 서너 개의 풍력발전기와 흰 등대가 나타난다.
이곳이 바로 영덕 해맞이 공원이다. 나무계단과 산책로, 전망대가 압권이다.
바다로 나있는 산비탈 주변엔 다양한 종류의 꽃들이 심겨 있어 분위기를 더해준다. 특히 해풍을 맞고 자란다는 해당화가 지천에 심어져있는데, 열매가 열리는 여름에는 방울토마토 나무로 불린다. 그 생김새가 꼭 방울토마토와 흡사하기 때문이다.
언덕에 세워져 있는 등대를 지나 나무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제2전망대가 나온다. 바위 절벽과 동해바다 그리고 그 아래 부서지는 파도가 한 장의 엽서를 만들기에 알맞다.
해맞이공원 맞은 편 높지 않은 언덕으로 올라가면 또 하나의 드라마가 연출된다. 언덕 아래에선 서너 개이던 풍력발전기가 이곳에 오르면 수십 개. 총 25기의 발전기가 만들어내는 모습은 과히 장관이다.
때문에 이색적인 관광명소가 되어버렸다. 발전기에 가까이 다가가면 돌아가는 속도가 장난이 아니다. 돌아가면서 내는 바람소리는 간담까지 서늘하게 만든다.
석양에 걸린 풍력발전기들의 모습은 잔잔한 여운으로 남기에 충분하다.
l여행팁l 해맞이공원엔 주차 시설이 부족하다. 식당과 매점도 없다. 조그만 포장마차가 있지만 미리 준비하는 것이 좋다. 화장실도 간이 화장실이 전부다. 풍력발전소단지는 지난해 순환도로를 만들어 놓았다.
어릴 적 많이 불렀던 동요 ‘고향의 봄’과 딱 맞는 곳이 있다. 조금은 이르지만 4월 중순 경 영덕시내를 가로질러 흐르는 오십천을 따라 10여분쯤 달리면 온통 분홍물감을 쏟아 부운 듯한 언덕을 만난다.
바로 영덕 복숭아마을. 대게가 영덕의 제1의 특산물이라면 복숭아는 제2의 특산물이다. 매년 4월 20일을 전후해 오십천변과 지품면 그리고 달산면 일대는 복숭아꽃으로 장관을 이룬다. 때문에 전국에서 사진작가 및 일반관광객들이 끊이지 않고 찾고 있다. 때문에 영덕군에서는 이 시기에 맞춰 지난 85년부터 군민의 날 행사와 함께 영덕복사꽃 축제를 열고 있다.
영덕이 복숭아로 유명해진 것은 1959년 불어 닥친 사라호 태풍에 의해 오십천 재방이 무너져 논, 밭이 유실되면서부터다. 많은 양의 모래와 자갈이 뒤덮은 논과 밭에 하나둘 복숭아나무를 심기 시작해 오늘날 복숭아 마을을 탄생시켰다.
영덕복숭아는 오십천을 따라 해풍이 올라와 온도를 적절히 맞춰주고, 무엇보다 일조량이 좋아 빛깔과 맛이 일품이다.
l여행팁l 특별히 관광객을 위해 만들어 놓은 농원은 없다. 지나다 마음에 들면 아무 농원에 들어가면 된다. 때문에 편의 시설이 따로 마련되어 있지 않다.화장실은 영농기술센터를 이용하면 된다. 매점이 없으므로 영덕시내에서 준비를 하는 것이 좋다.
- 영덕 찾아가는 길 -
자가용 경부고속도로 - 북대구 - 도동분기점 - 대구.포항간 고속도로 - 7번국도 - 울진방면 - 영덕 (3시간 30분 소요)
대중교통 동서울 종합터미널에서 2-3시간 간격으로 출발하는 고속버스 이용
숙소 영덕 삼사해상공원 입구는 숙소가 많다.그러나 시즌엔 다소 요금이 비싸다.평일 4만원선. 대게축제 등 시즌엔 8만원~10만원 정도.따라서 숙박을 해야 할 경우 포항시내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
식당 삼사해상공원에서 300m터쯤 떨어져 있는 ‘영덕대게 협동조합직매장’ (054-734-0691)을 이용하자. 저렴하고 친절하다. 도착 시간에 맞춰 미리 예약을 하면 원하는 금액만큼 알아서 준비를 해준다. 도착해서 기다리는 시간 없이 바로 먹을 수 있다 .
도움주신분 - 경북영덕군 문화관광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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