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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서예의 기초적 이해와 기술
서론: 미학과 서예
1. 미술이란 동양적인 면에서 특히, 고대동양에서 예, 악, 사, 어, 서, 수(공자의 6례중) 라고 하수 있다. 이중 서가 지금의 서예라고 할 수 있다.
2. 미는 "양의 대"라고 분석 할수 있는데 양이 대이면 맛이 좋다. 즉, 원시인의 맛에 대한 갈 구에서 시작되었다고 보여진다. 현대적의미의 미라면 아름다움(beauty) 예쁨, 좋은것 등의 의미이다.
3. 미학은(aesthetics) 미적 현상 내지 예술 현상에 관한 이론적 체계적 비판적 학문이다. 그러므로 실 증적이며 객관적이어야 한다.
4. 고대 중국의 천제적 예술가들은 미를 실제의 상태대로 파악하여 그 물체의 본질적인 형태를 포착하여 이와 동시에 미학적으로 훌륭한 구성을 만들어 내기 위해 간략한 선으로 표현하고자 했는데 이 간략선이 바로 서선이며 서예의 역학적 의미와 그 원천이 되고 있다.
ㅇ. "사자침의 일언"
"서법예술 분야는 아직 역학이론이 정립되지 아니하고 있으나 서법에 역학적 요소가 현현되어 있으니 서가 제현들의 깊은이해와 연구속에서 각식을 촉구하기 바란다."
5. 한글 서체는 표음문자인 관계로 그 예술성에서 상형문자에 떨어지기 마련이다. (왜냐면 서화 동원동체론) 그러나 한자서체의 미적 구성요소가 한글 서체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예술성이 있다 할수 있다.
ㅇ. 전서체
= 정음체, 판본체, 판각체 : 광복이후 쓰기 시작 서선의 굵기 일정 , 도장을 각할때 쓰는 글씨. 통일서체 없다.
ㅇ. 예서체
= 한자의 예서 필법 , 통일된 서체 없다.
ㅇ. 해서체
= 정자
ㅇ. 행서체
= 반흘림
ㅇ. 초서체
= 흘림, 진흘림
6. 이와같은 측면에서, 한글의 획내에서 역학적의미와 생동하는 물체의 본질을 찾고자하는것이 한글을 쓰는 이유이다. 물론, 그구성과 장법등에 의한 선, 적, 형, 색 : 서선미, 적획미,자형미, 묵색미 등의 beauty를 추구하는 의미도 포함된다.
ㅇ. 서화동원동체론
= 서(글씨)와 화(그림)은 한몸이다.
ㅇ. 조맹부(명의 서예가 이자 화가) 의 일언
= 회화와 서예는 근본적으로 동일하다.
바위를 그리는 것은 비백체로 쓰는 것이고, 나무를 그리는 것은 주체로 쓰는 것이며 대나무를 쓰려면(그리려면) 서예의 팔체에 통달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제 우리는 한글의 서예에 국한되어 생각한다
우선 한글 서예의 역사에 대하여 본I에서,
한글서예의 이론과 구조와 감상법에 대하여 본II에서,
한글서예의 실기에 대해서는 본III에서 살피고,
glossary로 "한글과 한자 서예의 필법에 관한 비교"를 함으로써 예로서의 한 글에 대한 기초적 이해를 갖는다.
본I. 한글서예의 역사
한글 서예가 시작된 것은 세종대왕 28년(1446)에 훈민정음이라는 이름으로 우리글을 창제한 이후이다. 한문서예가 고대 문자의 생성과 그 역사를 같이 하는 것과는 달리 한글 서예는 불과 550여년 전에 만들어졌으며 조형상, 구조상에서 한문 서예와는 큰 차이를 보인다. 한문서예가 사물의 모양을 본따고 의미를 합성한데 반해 한글서예는 天, 地, 人 삼재에 근거를 두고 만든 상형 분자이며 동시에 표음 분자이다.
조선 시대 이래로 한글 서예는 한문 서예에 밀려 그 연구와 발전이 저조했었고 요즈음에도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조선시대에는 많은 사람들이, 아녀자나 글을 모르는 서민들이 쓰는 글로 생각했었고 일제의 수난기를 거친 후에도 사대사상에 밀 려 겨우 명목만을 이어왔었다.
근대에 이르러 서양의 문물이 유입되면서 동양의 전통적 문자 표현의 재료와 도구 및 방법이 급격히 변화됨에 따라 자연히 글씨 를 쓰는데 대한 인식과 가치가 바뀌게 되었다. 여기에 한글의 예술성과 실용성이 이원화되면서 이른바 한글서예라는 전통적 근 대미술을 배태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우리나라 한글서예 근대화의 결정적 시기라고 할 수 있는 금세기의 전반은 일제의 침략과 6.25동란에 다른 미군정의 영향으로 인하여 전통 서예문화에 많은 왜곡과 굴절을 초래하게 되었다.
해방이후 경재적 재건과 더불어 부흥되기 시작한 서예문화는 주로 국전이라는 사회적 제도를 통하여 급속히 발전한 반면 학교 교육에 있어서는 사실상 형식에 그쳤을 뿐 체계적이고 학문적인 받침없이 오늘에 이르러 많은 문제점을 노출시키고 있다.
단적으로 공적인 교육기관이나 연구기관이 없었다는 것이다.
80년대 후반에 들어 공적 교육기관으로서의 서예관의 건립, 대학에서의 서예과의 신설, 그리고 사회적인 서예학술단체의 활동 은 21세기 한국서예의 확고한 위상정립은 물론 한글 서예계 발전의 획기적 요인이 될 것으로 기대 되나, 현재에는 아직 필체 및 서체의 명칭통일도 이루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에 이르러 내세우는 몇몇 서체명칭으로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1973 김응현: 정음체, 판본체, 정자, 반흘림, 진흘림
1973 김일근: 반포체, 효빈체(모방체), 궁체(남필, 여필), 잡체, 조화체
1983 박병천:
한글서체-전서체, 예서체, 해서체(정자), 행서체(반흘림), 초서체(흘림)
인쇄체-판본고체, 판본필서체, 인서체
필사체-정음체, 방한체, 궁체, 혼서체, 일반체
1979 중학 서예 : 판본체, 국한문혼서체, 궁체(정자, 흘림)
1985 윤양희 : 핀본체, 혼서체, 궁체(정자, 흘림(반흘림))
1986 김양동: 정음 고체, 언문시체(선비언필체, 궁체(정자, 흘림 진흘림))
위와 같은 분류들은 아직 분류개념 및 분류 위계도 불분명하다.
이상의 분류를 정리하여 한글 고전 자료를 분석해 보면 판본서체에도 전서, 예서, 정자, 반흘림, 흘림체가 있을 수 있고 궁중에 서도 전서체, 정자체, 반흘림, 흘림체가 있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전서체형만의 판본체와 정자 흘림체만의 궁체라는 개 념이 고쳐져야 한다. 그런데 한글 고전자료에서 순수한 예서체형의 글씨는 아직까지 발견되고 있지 않다.
한글 서예는 크게 나누어 훈민정음의 창제와 더불어 생성된 판본체와 궁중에서 체계화되고 여성사회에서 발전시킨 궁체 그리고 가장 긴 생명력을 가지고 독특한 개성을 충분히 살려 우리 민족의 얼과 더불어 오랜 세월동안 숨쉬어온 민체 등으로 구분해 생각 할 수 있다.
한글서체와 한문서체를 비교해 보면 판본체에 있어서 원필과 방필은 한문서예의 전서와 예서에 해당하고, 궁체의 정자와 흘림 은 한문서예의 해서와 행서 그리고 봉서 혹은 서찰은 초서에 해당된다.
판본체는 문자의 효용면에서 그 기능을 다했을 뿐 서예술로서 계승 발전되지 못했다. 판본은 판각된 형태이므로 각공에 의해서 판각되는 과정에서 글씨의 생명력이 상당히 저하되고 판각되기 이전의 원글씨가 지녔던 생동감이 거의 사라져 버린다. 그래서 성격이 다소 상실되어 그 형태와 획이 도식적이고 단순한 느낌을 갖게 하는 것이다.
오늘날의 한글서예는 판본체의 획의 묘를 살려서 쓴 고체와 궁궐안에서 쓴 궁체 그리고 (서)민체가 있다. 이중에서도 궁체는 한국적 고유미를 가장 잘 표현하고 완벽에 가까우리만큼 그 조형미가 뛰어나다고 할 수 있다. 궁체의 발달은 약 350년간에 걸쳐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그것은 필사된 서찰과 서책의 유품에 의해 증명된다. 서찰은 주로 왕후와 상궁 그리고 궁녀들의 필적 인데, 능숙한 필치로 단아하고 자유분방하게 씌여진 것이 그 특징이다. 서책은 궁중의 내서인데 미려하고 우아하며 한결같이 고 르다. 궁체가 발달된 이유는 왕실과 외척사이에 편지 왕래가 잦았기 대문에 봉서를 쓸 기회가 많았으며 또 왕후와 공주의 교양서 로 책을 많이 필사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궁중의 문화가 외부로 나와서 귀족계급에 파급되었다. 그리고 한문을 모르던 여성들에게 파급되어 보존되고 닦여졌다. 그리하여 오늘날 우리가 볼수 있는 궁체가 정제되어졌다.
궁체는 그 글자 구성이 한문 문자에 비해 단순한 만큼 서선내의 함축미와 글씨 짜임에 있어서 고차원의 균형미를 요구한다. 필 법에서 중봉행필을 엄수하고 붓털의 오묘한 탄력을 활용할 수 있을 때 까다로운 궁체의 균형에 틈이 생기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궁체는 너무 곡선미가 짙고 여성적이며 지나친 기교로서 미서에 이어지는 흠이 있다. 또한 서법이라는 준비된 질서 속 에 구속되어 일률적이고 개성이 없으며 그 조형성과 예술성의 격조가 낮은 느낌이 있다.
민체는 궁체와 더불어 필사본으로 되어있는 한글류의 책들에서 나타난 서체이다. 이는 서예작품으로 쓴 것이 아니고 소설, 가사 , 서간 등 읽고 기록하기 위한 목적으로 쓴 것이다. 글씨로 쓴 민체는 필사자, 필사연대를 간혹 밝힌 것도 있으나 대부분 명시되 어 있지 않은 것이 특징이다. 다만 궁중 이외의 백성들에 의해서 필사되었다는 것과 조선 중기에서 말기에 간행된 것이라는 정도 밖에 추측할 수 없다.
민체의 특징은 각기 개성이 뚜렷하며 자유분방하게 서사(書寫)함으로써 우리민족의 넋과 얼이 살아 있다는 것이며, 고구려의 광 개토왕비와 울진 봉평비 등에서 느낄 수 있는 우리민족의 예술성이 살아 있다는 것이다. 민체의 형식은 자유롭고 구속됨이 없이 작자의 시간별로 달라지는 슬픔과 기쁨 넉넉함과 배고픔의 뜻을 표현하고 있으며 그때 그 자리에서 그 자신의 표현인 즉 통일성, 강조, 균형, 비례, 선, 형태, 재질감, 공간의 환영리 등의 조형성이 잘 나타난 것이 특징이다.
그러나 민체는 민간에서 정립되지 않은 채 기록된 것이다. 다시 말하여 '체(體)'라 일컬을 만한 기준이 서 있었다고 보기는 어 렵다는 의견도 있다.우리나라 고유의 민화가 우리서민의 감정과 생활상을 깊숙히 반영하고 있다고는 하나, 이를 하나의 통일된 기준으로 정립된 화풍으로 볼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한편, 조선 중.말기에는 서사상궁의 글씨 쓰기 교육용으로 연습교본이 있었으나 한글 글씨쓰기를 정식으로 교본화 한 것은 1910년에 한서 남궁억이 쓴 신언문체법이 최초인 것으로 알려진다.
1958봄에 갈물 이철경은 갈물 한글 서예 단체를 발족하고 가을에 제1회 갈물한글서예회 회원전을 열었는데 이는 행사 이전에 많 은 후학들에게 한글 궁체쓰기를 지도한 결실이라고 할 수 있다.
1959년에 동방연서회(이사장 김충현)가 창립되어 후진양성에 치중하는 한편 서예 특강, 학생휘호대회 등을 통하여 한글 서예 보 급에 많은 기여를 하였다.
한글 서예에 대한 연구는 70년대에 이르러 비교적 깊게 이루어 졌으나 일부인만이 참여하는 실정적인 것인데 반해 80년대에는 많은 서가들이 다양한 형태로 한글서예 교본을 출간하는 현상을 나타내고 있다.
이상과 같이 알아본 한글서예에는 많은 과제가 남겨져 있다.
현대문 표기가 가로 행을 하고 있으므로 장법에 있어 가로 쓰기를 연구해 보아야 겠으며, 한글 서예를 보다 발전시키기 위해서 는 그 내용이 되는 문학성(국문학)에 대한 연구와 형식이라고 할 수 있는 조형성(미술)에 대한 이해가 같이 수반되어야 한다는 것 등이다.
한글서예는 자칫 조형화하기 쉬운 한문서예에 비하여 많은 과제와 함께 가능성과 장점을 갖고 있는 우리글이다.
1. 발달사
1) 한글체의 명칭
판본류 - 판본자체: 전서체형, 예서체형
필사류 - 판본서체: 정자체형
- 궁중서체: 반흘림체형, 흘림체형
ㅇ. 문교부식 분류
고체 - 판본서체
국한문혼용체 - 판본서체
궁체 - 궁중서체
"우리의 관심사는 필사류이다"
2) 실용문자인 판본류의 글자꼴은 훈민정음 창제당시 고전체에 가까운 판각체 500년동안 점차적으로 발전한 정자체의 필서체 다시 명조체형의 인서체로 발전되어 왔다.
3) 육필의 필사류는
분류 연대
(시작, 전성,소멸) 체분류 원전
정음체
(훈민정음과 비슷) 세종조/중종조/계속 판각체
반포체
. 1464 상원사 권서문(현존 최고)
1536 양주영 비각자
1597 선조 어필 연감 1,2
방한체
(한문 모방) 선조조/현종조/숙종조 모방체
효반체 1604 선조 어필 언간 3
1500후기 인목대비 친필
궁체 현종조/숙종조/계속 궁서체 1685 숙종 어필 언간 1
1686 숙종어필 언간 2
1685 인현왕후 친필
혼서체 선조/계속 조화체
국한문
혼서체 1500후기 후기 선조 친필
1500후기 인목대비 술회 궁인서
1517-1584 양사언의 미인별곡
4) 계속하여 유연해지던 판보류의 글자, 더욱 부드러워진 필사류의 글자들이 17 18 19세기를 지나오며 많은 변환이 일고 이과정중 정자, 반흘림, 흘림들의 궁중 서체가 생김
궁체는 1910년대에 이르러 현대화 됨
2. 인맥적 역사
한글서예는 궁체에 이르러 그작가적 의미가 파악 되므로 궁중글씨의 작품화와 해제까지하여 현대화한 "윤극영" 부터 시작한다.
그러나 그전에도 선말에 현상궁, 천상궁, 서기 이씨 등이 있다. 그 전의 봉서가 오늘날 까지 전해진다.
소설류 궁체 원전인 '옥원듕 화연' '낙성비룡'등이 교본체로 인정 받고 있다.
1).윤배영 , 남궁진 ,김녕진, 권홍수, 김기용 등
;일제시대때 활약하며 계승
2).이철경, 이미경, 조용선, 조종숙, 권오실, 이지연
;고전궁체의 특징을 살려 아름답고 곱게 현대화
3).김충현, 김응현, 김진상, 윤양희,신두영
;궁체 쓰기의 현대화와 판본 쓰기의 교본화
4).손재형, 김기승, 서희환
;한글 서체를 전예서화 하여 새로운 획형의 글씨꼴로 변형
예서화 하여 방각본의 글씨체와 비슷하게 표현;현중화
5).신집호, 조수호, 한양근, 정주상, 신달우, 이수덕
;한글 서예의 현대화와 한글 서예 교육
6). 대표적 작가와 특징
(1)갈물과 꽃뜰 (갈물 한글 서예회) : 이철경 이미경
남궁억의 체본으로 궁체를 익히기 시작한 갈물은 궁체 보급의 큰역활을 담당
갈물 글씨의 특징은 곱고 부드러운 유연에 나는 글씨
궁체원본들의 글씨보다 크게 썼으나 남성미는 zero
꽃들 글씨는 갈물의 궁체보다. 힘차고 궁체 원형의 가까 운 필체로 쓴것이 특징
(2)일중과 여초 (동방연서회) : 김충현 김응현 ; 찬내 밝산
남성적이며 강건. 최초의 글씨가 더유연
밝산은 찬내보다 더 강건하고 남성적인데
한글의 중모음의 세로 서선의 입필 부분이 약간 좌측으로 기운듯하게 쓰면서 도 전체가 조화 되도록 하였음
여초는 한글 대신 국문이라는 표현을 쓴다.
(3)동강 조수호 한자 서예와 나타나는 것과 같은 기품과 생동감, 강직한 서선을 표현하는 남성적 글씨
(4)월정 정주상 , 촌보 한양근 등이 있다.
본II.한글서예의 이론과 구조와 감상법
- 한글서예의 이론과 구조적 이해에 대해서는 박병천 저의 "한글궁체
연구" 제 4 편을 중심으로 송은정이 발표함.
본III. 한글서예의 실기
- 동방연서회 강좌를 중심으로 .....
처음으로
사 군 자
서체의종류
한문 서예
서예 용어
문 방 사 우
한글서예
한글 서예가 시작된 것은 세종대왕 28년(1446)에 훈민정음이라는 이름으로 우리글을 창제한 이후이다.
한문서예가 고대 문자의 생성과 그 역사를 같이 하는 것과는 달리 한글 서예는 불과 550여년 전에 만들어졌으며 조형상, 구조상에서 한문 서예와는 큰 차이를 보인다.
한문서예가 사물의 모양을 본따고 의미를 합성한데 반해 한글서예는 天, 地, 人 삼재에 근거를 두고 만든 상형 분자이며 동시에 표음 분자이다.
조선 시대 이래로 한글 서예는 한문 서예에 밀려 그 연구와 발전이 저조했었고 요즈음에도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조선시대에는 많은 사람들이, 아녀자나 글을 모르는 서민들이 쓰는 글로 생각했었고 일제의 수난기를 거친 후에도 사대사상에 밀 려 겨우 명목만을 이어왔었다.
근대에 이르러 서양의 문물이 유입되면서 동양의 전통적 문자 표현의 재료와 도구 및 방법이 급격히 변화됨에 따라 자연히 글씨 를 쓰는데 대한 인식과 가치가 바뀌게 되었다.
여기에 한글의 예술성과 실용성이 이원화되면서 이른바 한글서예라는 전통적 근 대미술을 배태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우리나라 한글서예 근대화의 결정적 시기라고 할 수 있는 금세기의 전반은 일제의 침략과 6.25동란에 다른 미군정의 영향으로 인하여 전통 서예문화에 많은 왜곡과 굴절을 초래하게 되었다.
해방이후 경재적 재건과 더불어 부흥되기 시작한 서예문화는 주로 국전이라는 사회적 제도를 통하여 급속히 발전한 반면 학교 교육에 있어서는 사실상 형식에 그쳤을 뿐 체계적이고 학문적인 받침없이 오늘에 이르러 많은 문제점을 노출시키고 있다.
단적으로 공적인 교육기관이나 연구기관이 없었다는 것이다.
80년대 후반에 들어 공적 교육기관으로서의 서예관의 건립, 대학에서의 서예과의 신설, 그리고 사회적인 서예학술단체의 활동 은 21세기 한국서예의 확고한 위상정립은 물론 한글 서예계 발전의 획기적 요인이 될 것으로 기대 되나, 현재에는 아직 필체 및 서체의 명칭통일도 이루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에 이르러 내세우는 몇몇 서체명칭으로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1973 김응현: 정음체, 판본체, 정자, 반흘림, 진흘림
1973 김일근: 반포체, 효빈체(모방체), 궁체(남필, 여필), 잡체, 조화체
1983 박병천:
*한글서체-전서체, 예서체, 해서체(정자), 행서체(반흘림), 초서체(흘림)
*인쇄체-판본고체, 판본필서체, 인서체
*필사체-정음체, 방한체, 궁체, 혼서체, 일반체
1979 중학 서예 : 판본체, 국한문혼서체, 궁체(정자, 흘림)
1985 윤양희 : 핀본체, 혼서체, 궁체(정자, 흘림(반흘림))
1986 김양동: 정음 고체, 언문시체(선비언필체, 궁체(정자, 흘림 진흘림))
위와 같은 분류들은 아직 분류개념 및 분류 위계도 불분명하다.
이상의 분류를 정리하여 한글 고전 자료를 분석해 보면 판본서체에도 전서, 예서, 정자, 반흘림, 흘림체가 있을 수 있고 궁중에 서도 전서체, 정자체, 반흘림, 흘림체가 있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전서체형만의 판본체와 정자 흘림체만의 궁체라는 개 념이 고쳐져야 한다. 그런데 한글 고전자료에서 순수한 예서체형의 글씨는 아직까지 발견되고 있지 않다.
한글 서예는 크게 나누어 훈민정음의 창제와 더불어 생성된 판본체와 궁중에서 체계화되고 여성사회에서 발전시킨 궁체 그리고 가장 긴 생명력을 가지고 독특한 개성을 충분히 살려 우리 민족의 얼과 더불어 오랜 세월동안 숨쉬어온 민체 등으로 구분해 생각 할 수 있다.
한글서체와 한문서체를 비교해 보면 판본체에 있어서 원필과 방필은 한문서예의 전서와 예서에 해당하고, 궁체의 정자와 흘림 은 한문서예의 해서와 행서 그리고 봉서 혹은 서찰은 초서에 해당된다.
판본체는 문자의 효용면에서 그 기능을 다했을 뿐 서예술로서 계승 발전되지 못했다. 판본은 판각된 형태이므로 각공에 의해서 판각되는 과정에서 글씨의 생명력이 상당히 저하되고 판각되기 이전의 원글씨가 지녔던 생동감이 거의 사라져 버린다. 그래서 성격이 다소 상실되어 그 형태와 획이 도식적이고 단순한 느낌을 갖게 하는 것이다.
오늘날의 한글서예는 판본체의 획의 묘를 살려서 쓴 고체와 궁궐안에서 쓴 궁체 그리고 (서)민체가 있다. 이중에서도 궁체는 한국적 고유미를 가장 잘 표현하고 완벽에 가까우리만큼 그 조형미가 뛰어나다고 할 수 있다. 궁체의 발달은 약 350년간에 걸쳐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그것은 필사된 서찰과 서책의 유품에 의해 증명된다.
서찰은 주로 왕후와 상궁 그리고 궁녀들의 필적 인데, 능숙한 필치로 단아하고 자유분방하게 씌여진 것이 그 특징이다. 서책은 궁중의 내서인데 미려하고 우아하며 한결같이 고 르다. 궁체가 발달된 이유는 왕실과 외척사이에 편지 왕래가 잦았기 대문에 봉서를 쓸 기회가 많았으며 또 왕후와 공주의 교양서 로 책을 많이 필사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궁중의 문화가 외부로 나와서 귀족계급에 파급되었다. 그리고 한문을 모르던 여성들에게 파급되어 보존되고 닦여졌다. 그리하여 오늘날 우리가 볼수 있는 궁체가 정제되어졌다.
궁체는 그 글자 구성이 한문 문자에 비해 단순한 만큼 서선내의 함축미와 글씨 짜임에 있어서 고차원의 균형미를 요구한다. 필 법에서 중봉행필을 엄수하고 붓털의 오묘한 탄력을 활용할 수 있을 때 까다로운 궁체의 균형에 틈이 생기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궁체는 너무 곡선미가 짙고 여성적이며 지나친 기교로서 미서에 이어지는 흠이 있다. 또한 서법이라는 준비된 질서 속 에 구속되어 일률적이고 개성이 없으며 그 조형성과 예술성의 격조가 낮은 느낌이 있다.
민체는 궁체와 더불어 필사본으로 되어있는 한글류의 책들에서 나타난 서체이다. 이는 서예작품으로 쓴 것이 아니고 소설, 가사 , 서간 등 읽고 기록하기 위한 목적으로 쓴 것이다.
글씨로 쓴 민체는 필사자, 필사연대를 간혹 밝힌 것도 있으나 대부분 명시되 어 있지 않은 것이 특징이다. 다만 궁중 이외의 백성들에 의해서 필사되었다는 것과 조선 중기에서 말기에 간행된 것이라는 정도 밖에 추측할 수 없다.
민체의 특징은 각기 개성이 뚜렷하며 자유분방하게 서사(書寫)함으로써 우리민족의 넋과 얼이 살아 있다는 것이며, 고구려의 광 개토왕비와 울진 봉평비 등에서 느낄 수 있는 우리민족의 예술성이 살아 있다는 것이다.
민체의 형식은 자유롭고 구속됨이 없이 작자의 시간별로 달라지는 슬픔과 기쁨 넉넉함과 배고픔의 뜻을 표현하고 있으며 그때 그 자리에서 그 자신의 표현인 즉 통일성, 강조, 균형, 비례, 선, 형태, 재질감, 공간의 환영리 등의 조형성이 잘 나타난 것이 특징이다.
그러나 민체는 민간에서 정립되지 않은 채 기록된 것이다. 다시 말하여 '체(體)'라 일컬을 만한 기준이 서 있었다고 보기는 어 렵다는 의견도 있다.우리나라 고유의 민화가 우리서민의 감정과 생활상을 깊숙히 반영하고 있다고는 하나, 이를 하나의 통일된 기준으로 정립된 화풍으로 볼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한편, 조선 중.말기에는 서사상궁의 글씨 쓰기 교육용으로 연습교본이 있었으나 한글 글씨쓰기를 정식으로 교본화 한 것은 1910년에 한서 남궁억이 쓴 신언문체법이 최초인 것으로 알려진다.
1958봄에 갈물 이철경은 갈물 한글 서예 단체를 발족하고 가을에 제1회 갈물한글서예회 회원전을 열었는데 이는 행사 이전에 많 은 후학들에게 한글 궁체쓰기를 지도한 결실이라고 할 수 있다.
1959년에 동방연서회(이사장 김충현)가 창립되어 후진양성에 치중하는 한편 서예 특강, 학생휘호대회 등을 통하여 한글 서예 보 급에 많은 기여를 하였다.
한글 서예에 대한 연구는 70년대에 이르러 비교적 깊게 이루어 졌으나 일부인만이 참여하는 실정적인 것인데 반해 80년대에는 많은 서가들이 다양한 형태로 한글서예 교본을 출간하는 현상을 나타내고 있다.
이상과 같이 알아본 한글서예에는 많은 과제가 남겨져 있다.
현대문 표기가 가로 행을 하고 있으므로 장법에 있어 가로 쓰기를 연구해 보아야 겠으며, 한글 서예를 보다 발전시키기 위해서 는 그 내용이 되는 문학성(국문학)에 대한 연구와 형식이라고 할 수 있는 조형성(미술)에 대한 이해가 같이 수반되어야 한다는 것 등이다.
한글서예는 자칫 조형화하기 쉬운 한문서예에 비하여 많은 과제와 함께 가능성과 장점을 갖고 있는 우리글이다.
1. 발달사
1) 한글체의 명칭
판본류 - 판본자체: 전서체형, 예서체형
필사류 - 판본서체: 정자체형
- 궁중서체: 반흘림체형, 흘림체형
ㅇ. 문교부식 분류
고체 - 판본서체
국한문혼용체 - 판본서체
궁체 - 궁중서체
"우리의 관심사는 필사류이다"
2) 실용문자인 판본류의 글자꼴은 훈민정음 창제당시 고전체에 가까운 판각체 500년동안 점차적으로 발전한 정자체의 필서체 다시 명조체형의 인서체로 발전되어 왔다.
3) 육필의 필사류는
분류 연대
(시작, 전성,소멸) 체분류 원전
정음체
(훈민정음과 비슷) 세종조/중종조/계속 판각체
반포체 1464 상원사 권서문(현존 최고)
1536 양주영 비각자
1597 선조 어필 연감 1,2
방한체
(한문 모방) 선조조/현종조/숙종조 모방체
효반체 1604 선조 어필 언간 3
1500후기 인목대비 친필
궁체 현종조/숙종조/계속 궁서체 1685 숙종 어필 언간 1
1686 숙종어필 언간 2
1685 인현왕후 친필
혼서체 선조/계속 조화체
국한문
혼서체 1500후기 후기 선조 친필
1500후기 인목대비 술회 궁인서
1517-1584 양사언의 미인별곡
4) 계속하여 유연해지던 판보류의 글자, 더욱 부드러워진 필사류의 글자들이 17 18 19세기를 지나오며 많은 변환이 일고 이과정중 정자, 반흘림, 흘림들의 궁중 서체가 생김
궁체는 1910년대에 이르러 현대화 됨
2. 인맥적 역사
한글서예는 궁체에 이르러 그작가적 의미가 파악 되므로 궁중글씨의 작품화와 해제까지하여 현대화한 "윤극영" 부터 시작한다.
그러나 그전에도 선말에 현상궁, 천상궁, 서기 이씨 등이 있다. 그 전의 봉서가 오늘날 까지 전해진다.
소설류 궁체 원전인 '옥원듕 화연' '낙성비룡'등이 교본체로 인정 받고 있다.
1).윤배영 , 남궁진 ,김녕진, 권홍수, 김기용 등
;일제시대때 활약하며 계승
2).이철경, 이미경, 조용선, 조종숙, 권오실, 이지연
;고전궁체의 특징을 살려 아름답고 곱게 현대화
3).김충현, 김응현, 김진상, 윤양희,신두영
;궁체 쓰기의 현대화와 판본 쓰기의 교본화
4).손재형, 김기승, 서희환
;한글 서체를 전예서화 하여 새로운 획형의 글씨꼴로 변형
예서화 하여 방각본의 글씨체와 비슷하게 표현;현중화
5).신집호, 조수호, 한양근, 정주상, 신달우, 이수덕
;한글 서예의 현대화와 한글 서예 교육
6). 대표적 작가와 특징
(1)갈물과 꽃뜰 (갈물 한글 서예회) : 이철경 이미경
남궁억의 체본으로 궁체를 익히기 시작한 갈물은 궁체 보급의 큰역활을 담당
갈물 글씨의 특징은 곱고 부드러운 유연에 나는 글씨
궁체원본들의 글씨보다 크게 썼으나 남성미는 zero
꽃들 글씨는 갈물의 궁체보다. 힘차고 궁체 원형의 가까 운 필체로 쓴것이 특징
(2)일중과 여초 (동방연서회) : 김충현 김응현 ; 찬내 밝산
남성적이며 강건. 최초의 글씨가 더유연
밝산은 찬내보다 더 강건하고 남성적인데
한글의 중모음의 세로 서선의 입필 부분이 약간 좌측으로 기운듯하게 쓰면서 도 전체가 조화 되도록 하였음
여초는 한글 대신 국문이라는 표현을 쓴다.
(3)동강 조수호 한자 서예와 나타나는 것과 같은 기품과 생동감, 강직한 서선을 표현하는 남성적 글씨
(4)월정 정주상 , 촌보 한양근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