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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 5월 24일, 파리 시내 인터콘티넨탈 호텔에서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 했던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와인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다른 어떤 일보다도 놀라울 수 있는 일이었다.
호텔 한켠 다른 저녁 행사가 열리기 전에 잠시 얻은 공간에서
파리에서 와인상점을 운영하고 있던 영국인 Steven Spurrier가
프랑스와 캘리포니아산 와인들을 비교하는 시음회를 열고 있었다.
Steven Spurrier는 영국에서 건너와 파리 시내 중심지 한 골목에서
작은 와인 상점인 'Caves de la Madeleine'을 프랑스 사람인 전 주인으로부터 인수해
1971년부터 운영하고 있던 사람이었다.
프랑스에 와서 살고 있던 영국인들이나 미국인들에게는
모국어가 통하는 가게라는 장점때문에 개점 초기부터 인기가 많았고
이에 힘 입어 영어로 강의하는 'Académie du Vin'이라는 와인 클래스까지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있었다.
이런 소식을 미국과 영국의 신문들에서 화제 기사로 다루어 주었는데
내친김에 프랑스 현지인들에게도 입지를 굳혀 보겠다는 취지로
마침 독립 200주년을 맞이한 미국에서 막 떠오르고 있는 와인들을 가져다
맛을 보는 행사를 기획하게 되었던 것이다.
당시의 프랑스 와인은 2등이 없는 일등으로 군림하고 있을때라
시음행사에 참여할 전문가들을 초청할때 '비교'라는 말은 언급도 하지 않았고
단지 미국이 독립 200주년이 되었으니 프랑스가 미국 독립에 기여한것도 다시 한번 되돌아 볼 겸
이런 행사를 한번 열어보는것이 어떻겠느냐고 제의했다고 한다.
Spurrier자신도 모두의 예상을 뒤엎는 흥미로운 결과가 나올것이라고는 전혀 기대하지 않은채 진행한 행사였다.
그는 이전에도 프랑스 사람들은 생각지도 못 했던
보르도의 최고급 와인(Premier Cru Classe; First growth)을 생산하는 샤토들인
Latour, Lafite Rothschild, Mouton Rothschild, Margaux 및 Haut Brion을 초청해
비교 시음하는 행사를 처음으로 열어 프랑스 사람들의 관심을 모은적이 있었다.
프랑스 와인에 대해서라면 현지인들보다도 더 훤히 꿰뚫고 있는 그가
미국의 와인에 관심을 가지게 된것은, 자신의 가게에 미국인들이 드나드는것 이외에도
'Académie du Vin'의 제자이면서 나중에 강사로 함께 일하게된 Patricia Gallagher가
미국인이었던데다가 그때까지 캘리포니아 와인하면 너무 농익은 포도로 만들어
알코올 돗수가 높고 맛도 익다 못해 졸아버린 느낌을 준다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던차에
한 저녁 모임에서 만난 미국의 와인 비평가로부터 모든 캘리포니아 와인이 다 그런것은 아니라는
설명을 들었던 탓이었던듯 싶다.
거기에 더 해 때때로 파리를 방문하는 캘리포니아 와인 생산업자들이
맛을 보라고 놓고 간 와인을 직접 대하면서 자신이 가졌던 선입견을 바꾸게 된 그는
시음회에 참가시킬 와인을 직접 고르기 위해 캘리포니아를 방문했었다.
1920년 1월에 시작해서 1933년 12월에 끝이 난 미국의 금주령 이후
캘리포니아는 한동안 와인 생산이 질보다 양 위주에 머무르고 있었는데
꿈을 가진 젊은이들이 하나, 둘 나파 밸리에 모여 들면서 자연스럽게 질 좋은 와인 생산으로 방향을 바꾸어 가고 있었다.
나파밸리의 와인 생산 역사는 180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금을 찾아 캘리포니아로 왔던 사람들중 금을 찾는데 성공 하지 못한 몇몇은
나파 밸리에 정착해서 와인 생산을 시작했다고 한다.
1850년대에는 이미 작지만 와인 생산 붐이 있었고 Inglenook이니 Beaulieu Vineyard, Charles Krug같은 와이너리들이
20세기가 시작되기 이전부터 와인을 생산하고 있었다.
금주령으로 슬럼프에 빠졌던 나파 밸리가 Mondavi나 Gallo 일가와 같은
신흥 와인 제조업자들에 의해 부흥이 되기 시작하자 나파는 물론 인근 소노마 밸리에 이르기까지
와인 생산을 새로 시작하려는 사람들로 가득차 점점 땅을 구하기가 어려워지게 되었다.
다행히 캘리포니아에는 와인 생산에 적합한 땅들이 많아
와인 생산은 나파 밸리가 있는 북가주를 넘어 남쪽으로도 확장되기 시작했다.
이렇게 와인 생산을 하는 농가들이 많아지면서 나파 밸리 인근에 있는
University of California, Davis에는 포도 기르기에서 부터 와인 생산에 이르는 전 과정을
과학적으로 다룰수 있는 인재들을 기르고 농가들에게 기술 제공도 할 수 있는
와인 제조 전문 학과(Enology Department)가 한창 발전해 가고 있었다.
유럽에 역사와 전통이 있다면 캘리포니아는 앞선 과학적 기술과 제조업자들간의
남다른 협동 정신에 힘입어 짧은 시간안에 눈부신 성장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던것 같다.
시음회에 참가할 와인들을 직접 고르기 위해
캘리포니아를 방문한 Spurrier는 최종적으로 12곳의 와이너리를 선정했다.
화이트 와인은 부르고뉴 와인과 비교 할 수 있도록 Chardonnay로 정했고
레드 와인은 보르도 와인들과 비교 할 수 있도록 Cabernet Sauvignon으로 정한 다음
Chardonnay를 겨룰 와이너리로는 Chateau Montelena, Freemark Abbey, Spring Mountain, Veedercrest,
David Bruce 및 Chalone 을 택했고
Cabernet Sauvignon 생산 와이너리로는 Freemark Abbey, Heitz, Stag's Leap Wine Cellars, Clos Du Val,
Mayacamas 와 Ridge를 택했다.
히피 문화로 대변되는1960년대의 미국은 새로운것을 두려워 하지 않고 꿈을 쫒아 가는 젊은이들이 많을때였다.
Spurrier가 선택한 와이너리들은 거의 모두 이런 꿈을 쫒아 시골로 들어온 사람들이 일구어 놓은 곳들이었는데
와이너리를 시작하기 전까지는 와인 제조에 대한 지식이 전무했던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와이너리 선정을 마친후에 한가지 부딪힌 난제는 어떻게 와인들을 프랑스로 가져 가느냐하는 것이었다.
당시의 프랑스는 와인을 다른 나라에서 수입한다는 개념 자체가 없을때여서
수입 물품으로 통관하기가 곤란한 때 였다고 한다.
Spurrier 자신도 연전에 영국 여왕의 프랑스 국빈 방문시 연회에 쓸 영국산 샤도네이(? 드물지만 이런게 있었다는데^ ^) 를
통관시키려다 세관원과 실랑이를 벌인적이 있었다.
여왕과 퐁피두 대통령까지 들먹인 후에야 간신히 통관시켰던 기억이 생생한터라
왕도 대통령도 아무 관련이 없는 이번 행사에는 궁리끝에
마침 나파 밸리 와인 메이커들이 프랑스 와이너리에 시찰가는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참가자 각자가 직접 나누어 들고 오도록 조치를 취했다.
시음회에 참가한 심사위원들은 프랑스에서도 잘 알려진 요리 및 와인 전문가들로 구성되어 있었지만
프랑스 와인과 미국 와인을 같이 시음한다는 뉴스는 기자들의 관심을 별로 끌지 못해서
Spurrier가 섭외한 파리의 일간지Le Monde 니 Le Figaro, 그리고 Michelin에 대항하는
레스토랑 가이드인Gault-Millau 같은 매체의 기자들 모두가 시음회 당일 현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한 사람만이 예외였는데 미국 잡지 Time 의 파리 주재 기자였던 George M. Taber였다.
Spurrier의 와인 클래스도 수강하고 또 와인을 사러 그의 가게에 자주 들리곤 하던 그는
Patricia Gallagher의 설득에 만일 그날 다른 중요한 일이 생기면 가지 않아도 된다는 다짐을 받은후
개인적으로는 흥미있는 일이라서 초대에 응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그는 혼자만의 특종을 건지게 되었는데 만일 그가 아니었다면
이 시음회는 참가자들만 아는 이변으로 끝났을 터였다.
화이트와 레드 모두 캘리포니아 와인이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것을 알게 되자
그야말로 경악한 심사위원들중 한명은 점수표를 돌려 달라며 거칠게 항의까지 했었다고 한다.
심사위원들 입장에서는 블라인드 테이스팅이었으므로 공정성을 재론할 여지가 없었지만
일부 감정적인 프랑스 대중들이나 와이너리 주인들에게 이 사실이 알려지면
자신들에게 돌아올 비난의 화살을 감당하기가 두려웠는지도 모르겠다.
George M. Taber를 통해 전세계가 이 사실을 알게 된 주말
미국의 와인샵들에서는 그때까지 관심밖이었던 이들 와인들이 품절되는 사태가 벌어졌다고 한다.
이 시음회의 결과는 다음과 같았다.
Chardonnay;
1. Chateau Montelena 1973 (미국)
2. Meursault Charmes 1973 (프랑스)
3. Chalone Vineyard 1974 (미국)
4. Spring Mountain 1973 (미국)
5. Beaune Clos des Mouches 1973 (프랑스)
6. Freemark Abbey 1972 (미국)
7. Bartard-Montrachet 1973 (프랑스)
8. Puligny-Montrachet 1972 (프랑스)
9. Veedercrest 1972 (미국)
10. David Bruce 1973 (미국)
Cabernet Sauvignon
1. Stag's Leap Wine Cellars 1973 (미국)
2. Chateau Mouton Rothschild 1970 (프랑스)
3. Chateau Haut-Brion 1970 (프랑스)
4. Chateau Montrose 1970 (프랑스)
5. Ridge Monte Bello 1971 (미국)
6. Chateau Leoville-Las-Cases 1971 (프랑스)
7. Mayacamas 1971 (미국)
8. Clos Du Val 1972 (미국)
9. Heitz Martha's Vineyard 1970 (미국)
10. Freemark Abbey 1969 (미국)
그날 테이스팅에서 Chardonnay 부문 3위를 차지했던 Chalone Vineyard는
나파밸리에서 뚝 떨어진 남쪽 살리나스 인근에 위치하고 있다.
존 스타인벡의 생가를 찾아간 다음날 차를 다시 남쪽으로 돌려서 Chalone Vineyard를 향했다.
웹에서 주소를 찾아보니 번지수는 없고 Stonewall Canyon road와 Highway 146 교차 지점에 있다고 했다.
지도에 나타나 있는것으로 보아서는 외진 산중에 위치하고 있는것 같았다.
살리나스에서 아침을 먹고 난후 Chalone Vineyard가 있는 Soledad를 향해 달렸다.
Downtown Soledad
작은 시골 마을인 솔리대드의 손바닥만한 다운타운을 지나자 그대로 인적없는 시골길이 되었다.
고도가 점점 올라가는것을 느끼며 산모롱이를 돌아선 순간 셀폰의 신호가 없어져 버렸다.
아무것도 나타날것 같지 않은 산길을 몇굽이 돌며 남편도 나도 아무말을 하지 않았다.
조금 불안해진 때문이었는데 와이너리들이 종종 외진곳에 있는것을 감안하더라도
이곳은 길도 차 한대만 다닐수 있는 외길로 변한데다 갑자기 너무 야생의 산이 나타난 탓이었다.
한굽이만 더 돌아보고 아무것도 없으면 차를 돌리겠다고 생각했는데
헛간 같은것이 보이며 사람이 사는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용기를 내서 조금 더 올라가니 그제서야 'Chalone Vineyard'라는 표지판이 보였다.
토요일 정오가 다 되어 가는 시간인데 차 한대도 볼 수가 없었다.
표지판을 따라 들어가는 길에 정렬해 있는 늙은 포도 나무들을 보자 비로소 와이너리에 도착했다는 안도감이 생겼다.
몸통의 굵기로 보아서 수십년은 족히 되어 보이는 포도 나무들옆에는 아주 어린 가느다란 포도 나무들도 심어져 있었다.
와이너리를 오픈한다는 11시가 다 되었는데도 주변은 물론 건물에서조차 아무런 인기척을 느낄 수 없었다.
사진을 찍으며 시간을 보낸후 아직도 아무 인기척이 없는 테이스팅 룸의 문을 두드렸다.
반응이 없어서 돌아서려는 순간 노인 한분이 문을 열며 들어 오라고 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방 안에는 여느 와이너리들처럼
이곳에서 생산하고 있는 와인들이 각종 와인 관련 상품들과 함께 진열되어 있었는데
벽 한쪽에 걸려있는 Julia Child의 사진이 눈길을 끌었다.
문을 열어준 사람은 우리보다 훨씬 연배가 들어 보이는 아시안으로 테이스팅을 담당하고 있었다.
그는 우리에게 여기까지 어떻게 왔느냐고 물었다.
겨울철이라 인적이 뜸한탓인지 아니면 우리가 아시안이라서 그렇게 물었는지 알 수 없었지만
나는 대뜸 George Taber의 'Judgment of Paris'를 읽었노라고 대답했다.
'아' 하는 짧은 숨을 토해낸 그는 우리 앞에 시음용 잔들을 가져다 놓았다.
열가지나 되는 와인을 5달러에 시음할 수 있단다.
아마 여기까지 올라 오느라 수고했을 사람들에 대한 배려인것 같았다.
나는 바깥에 보니 아주 오래된 포도 나무가 많이 있더라고 말을 건넸다.
그는 웃으면서 심은지 100년쯤 되는 Chenin Blanc이라고 했다.
와이너리 초창기에 심은것이 아직까지 잘 열매를 맺고 있는데 우리가 처음 시음하게 될 와인이 바로 그 와인이라고 했다.
화이트 와인, 그중에서도 Chenin Blanc은 자주 마시는 편은 아닌데 생각보다 향기도 좋고 깊은 맛이 있었다.
오래된 포도나무에서 나온 와인이라 그런지 참 좋은것 같다고 말하자
우리에게 어디서 왔느냐고 물었다.
엘에이에서 왔는데 어떤이들은 그보다 더 먼저 어디서 왔는지 궁금해 하기 때문에
서울, 코리아에서 왔다는 대답도 덤으로 해주겠다고 농담하자 그는 웃으며 자신은 그런 상황을 아주 잘 안다고 했다.
그의 아버지는 1900년대 초에 농장 노동자로 취업해 필리핀에서 이곳까지 왔다고 했다.
자신은 이곳에서 태어나 대학에서 건축학을 전공하고 오랬동안 건축가로 일하다 은퇴했는데도
아직도 사람들은 자기를 보면 어디서 왔느냐, 영어를 잘 한다, 필리핀 말인 타갈로그어를 할 줄 아느냐고 묻는다고 했다.
자신은 아쉽게도 필리핀 말을 할 줄 모르는데다 많은 필리핀 사람들이 카톨릭교도인데 반해
감리교 신자라고 말하면 놀라워 한다는 말까지 해 주었다.
샤도네이를 따라 주며 그는 와이너리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했다.
해발 2000 피트의 고지대에 위치한 Chalone Vineyard는
애당초 그런 외진곳이 포도 재배에 적당하다는걸 어떻게 알았을까 궁금해지는 곳인데
19세기말에 프랑스에서 건너온 어떤 사람이 캘리포니아를 돌아다니다가 이곳의 흙이 자신의 고향
부르고뉴의 흙과 똑같다는걸 발견했다고 한다.
산속의 흙을 들여다보고 고향의 흙과 같다는걸 감지해낸 그 사람이 정말로 존경스러워졌는데
그는 정작 포도나무 몇그루를 심어 놓은것이 전부라고 했다.
그 이후로 몇차례 주인이 바뀐끝에 Chalone Vineyard는 중요한 한 사람을 맞이하게 되는데
그가 바로 Richard(Dick) Graff이다.
하버드에서 음악을 전공하고 해군에 입대해 복무한후 은행에서 일하던 그가
이곳에서 와인 제조업에 뛰어들게 된 연유는 순전히 우연이라고 하는데
지금도 이렇게 외진곳이 1965엔 오죽했을까 생각하고 있는 내게
와인을 따라주던 분이 그라프가 와서 땅을 다시 일구고 포도를 심고 와인을 만드는 한동안
이곳에는 물도, 전기도 아무것도 없었노라고 했다.
땅은 포도 재배에 알맞는 칼슘 성분이 풍부한 석회암 토질이지만 워낙 비가 내리지 않는곳이라
물 없이 포도 재배를 제대로 하기는 쉽지 않았을텐데 처음에는 물탱크로 물을 실어 날라다 쓰고
나중에는 샘을 파서 이스라엘에서 고안해 냈다는 드립 방식으로 물을 주었다고 설명을 해 주었다.
그리고 보니 지금도 그 방식을 쓰는지 포도 나무 고랑사이로 검은색 튜브들이 따라 가던것을 본 생각이 났다.
물과 전기만 없는것이 아니라 야생 동물들로부터 포도 열매를 보호할 장치도
돈이 많이 드는 탓에 제대로 갖추지 못했었는데 그 시절 사냥으로 사슴을 잡고 보면
뱃속에 와인을 만들려고 기른 포도가 그득했었다고 한다.
초기에는 닭장을 개조한 가건물에서 와인을 만들었다는 소리를 들으며
벽에 걸려 있는 딕 그라프의 사진을 쳐다 보았다.
수염을 기르고 햇빛에 그으른 얼굴로 우리를 쳐다보고 있는 그는 어딘지 모르게 고집이 센것처럼 보였다.
자본가들을 끌어 들여 시설을 현대화하고 제대로 와인을 생산해 낼 수 있을 즈음에 만든 와인이
바로 파리 테이스팅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1974년산 샤도네이였다고 한다.
미국에 처음으로 프랑스산 오크통을 수입해 와서
오크통 속에서 와인을 발효시키기 시작한 사람이 바로 그였고
화이트 와인 발효과정중 와인의 맛을 부드럽게 해주는
'malolactic fermentation'을 처음으로 시도한 사람도 그였으니
프랑스 와인과 겨루어 인정을 받은게 그리 이상한 일도 아닌것 같았다.
얼마전 영화 Julie and Julia에 소개된바 있는 Julia Child는
자신이 프랑스 와인이 아닌것중 처음으로 좋아하게 된 와인이 Chalone의 샤도네이라고 했다는데
그래서인지 딕 그라프와 친분을 쌓고 와인 관련 행사에도 모습을 보인듯 벽에 사진이 여러장 붙어 있었다.
나중에 이 둘은 로버트 몬다비와 함께 'American Institute of Food and Wine'을 결성했다고 한다.
파리 테이스팅 이후 가장 달라진 점이 무엇인가 하고 물었다.
달라진것이 별로 없다는게 돌아온 대답이었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자본이 늘어나 'Chalone Wine Group'으로 발전시킨 딕 그라프는
자신이 몰던 경비행기 사고로 세상을 떠났고
이후 Chalone은 규모가 큰 주류회사인 Diageo에 합병되었다고 했다.
한시간이 넘도록 열가지 와인을 맛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도 아무도 더 나타나지 않았다.
정말 외진곳이구나 하는 생각이 다시 들었다.
시음을 마치고 나자 그는 우리를 바로 옆방으로 데리고 갔다.
시음실 문을 열자 마자 코끝에 진동하던 와인 향기가 바로 이 방에서 흘러 나오고 있었던것 같았다.
방에는 오크통들이 나란히 천장까지 쌓여 있었다.
지난 여름 수확한 포도들이 그 통들안에서 익어가고 있었다.
12월이라 와인 셀라가 바쁘게 움직이고 있으려니 짐작하고 물어보던 내게
그는 이곳은 아주 더운곳이라서 수확을 보통 다른 와이너리들보다 한달 정도 빠른
8월 중순에 끝내기 때문에 발효도 벌써 다 끝나 익히는 과정에 들어가 있다고 설명해 주었다.
돌아보고 나오는 순간 그가 내게 포스터 한장을 건네 주었다.
Chalone Vineyard를 그린 그림이었다.
시음실로 돌아와 사가지고 갈 와인을 골랐다
Chalone Vineyard의 역사를 쓴 책도 한권 사고 나오려는데 그가 우리 등뒤에 대고 물었다.
오늘 저녁에 밥 먹을곳을 정했느냐고.
몬트레이에 가서 찾아 볼 생각이라고 대답하자
그는 몬트레이 옆 Pacific Grove에 있는 식당 'Passion Fish'에 가보라고 친절히 알려 주었다.
Pacific Grove라면 존 스타인벡 집안의 여름 별장이 있던 곳이 아닌가.
스타인벡이 첫 결혼을 한 후 수입이 일정치 않자 아버지는 신혼 부부에게 그 집에서 살도록 했다고 한다.
Cannery Row에서 가까운 그곳에 살면서 존 스타인벡은 나중에 소설 'Cannery Row'에 등장하게 되는
여러 친구들을 만나 교류하였다.
그렇지 않아도 다음날 둘러 보려고 했는데 Wine selection이 아주 좋은데다가
값도 저렴하다는 식당까지 소개해 주는 것이었다.
한시간 남짓 이야기하는 동안 마치 오랜지기가 된 느낌이었다.
고맙다고 말하며 아쉽게 돌아서서 나온 우리는 사진을 몇장 더 찍고 차에 올라 탔다.
포도원이 시작되는 곳에 이르자 그제서야 젊은 사람들 너,댓명이 탄 지프가 한대 입구에 들어서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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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동창 홈피에서 가져온 글인데, 저 같은 문외한이 읽어도 재미있기에 옮겨왔습니다. 나파 와인이 세상에 파고 들게 된 계기가 된 파리 테이스팅을 정리해보고 싶던 차에, 마침 스타인벡 하우스 방문때 덤으로 인근에 있는 샬론에까지 갔다 온 덕분에 썼노라 했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