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역사가와 사실 사이의 끊임없는 상호작용의 과정이며, 역사는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이다.” E. H. Carr의 ‘역사란 무엇인가’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구절이다. 그 중에서도 역사에 대하여 특히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정의는 그의 책, 제 1장에서 언급한 현재와 과거의 대화라는 것이다. 국사 첫 수업시간이면 어김없이 배웠던 ‘역사의 의미’ 덕분에 우리는 그의 이름이 결코 낯설지 않다.
역사를 인식하는 방법에 있어서 역사가의 역할은 중요하다. 과거에 일어난 사실이 모두 역사적 사실이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나름대로의 이유를 들어 역사가로부터 선택받은 사실이 곧 역사적 사건이 된다. 카는 역사가의 해석을 통한 역사의 기술을 강조하였다. 랑케의 입장과는 달리 그는 역사상의 사실을 객관적으로 복원하는 것에 치중하지 않고, 과거의 사실을 기록한 역사가의 사관에 의해 재구성됨을 인정한다. 단 역사가가 그것을 의도적으로 삭제하거나 왜곡해서는 안 됨을 전제로 한다. 역사가의 주관을 아예 배제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최대한 객관적으로 역사를 전달하려는 노력을 할 것을 부탁한 것이다. 과거의 사실은 역사가의 해석을 통해서 그 존재를 우리에게 나타낸다. 역사가를 현재, 사실은 과거라고 하면 곧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대화’라는 정의가 도출된다. 카는 역사가가 역사와 사회의 산물이기 이전에 한 명의 개인이기 때문에 역사가의 입장은 그가 처한 환경의 영향을 받기 마련이므로 역사를 연구하기 전에 일단 역사가가 처한 환경을 연구해 볼 것을 당부한다. 이어서 역사와 과학의 연구의 목적이 같고, 개인에 대한 도덕적 평가는 역사가의 몫이 아님을 밝혔다. 역사의 연구는 곧 원인의 연구이기 때문에 역사가에게는 과거에 일어난 역사적인 사실의 원인을 밝히고 과거의 교훈을 미래에 전달하는 중책을 맡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역사를 진보의 과정으로 소개하고, 덧붙여 ‘방향감각’을 찾아내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에게서 비로소 참된 역사가 쓰여 질 수 있음을 알린다.
이 책은 역사란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에 대한 답을 열거하면서 역사가의 자질과 중요성에 대하여도 언급하고 있다. 과거와의 대화가 가능한 특별한 능력을 가진 역사가들로부터 해석된 역사적 사실을 통하여 삶의 지혜를 배우고 깨닫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그것은 사회가 역사를 기반으로 움직일 때 창조와 발전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역사는 과거 만이 아니다. 역사는 과거에서 나아가 미래를 위한 발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역사에 대하여 흥미와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