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9월 9일 화요일>
내일 모레인 9월 11일이 추석이다. 어느덧 바람이 선들 선들하고 가을인 듯하다.
아직은 한낮의 햇볕이 따갑지만 가끔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은 기분을 상쾌하게 해준다.
한 달 후 10월 2일(목)~5일(일) 4일간 지평선 축제가 이곳 벽골제에서 열린다.
지평선축제는 문화관광부주관, 정부지정 전국 우수문화 관광축제로 선정 예산지원까지 받는 축제이다.
준비는 김제시청 19개 읍면동과 25개 실.과.소 가 행사 몇 개씩을 맡아서 관리 및 지원을 하는지라
이곳 벽골제는 벌써부터 행사 준비로 요란하다.
단지 내 점검을 마치고 사무실에 들어와서 책상에 앉아 서류를 정리하는 중 e-mail 이 왔다.
메일을 보낸 사람은 다름 아닌 陳春鶯 이다.
"재형오빠! 잘 지내시죠?
내일이 벌써 추석 이예요.
이곳 사람들이 명절을 준비하는 것을 보니 저도 고향이 그리워진답니다.
고향의 엄마 아빠도 보고 싶고 쓸쓸해요.
요즘 같으면 공부를 빨리 끝내고 고향으로 가고 싶어요.
오늘은 그냥 기분이 그래서 투정 부린 거니 마음에 두지 마세요.
그럼 명절 잘 보내세요. 안녕..."
난 곧바로 답장을 보냈다.
"우리 봄(春)이가 마음이 많이 외로운 모양이구나...
오빠가 신경 못써줘서 미안해...
오늘 6시 퇴근하고 바로 출발 할테니 기다려..
우리 이쁜 봄(春)이 좋아하는 초밥 사갈께."
진춘앵(陳春鶯)...
봄춘(春), 꾀꼬리앵(鶯) 난 그녀를 "이쁜 봄이"라고 부른다.
내가 그렇게 부를 때마다 그녀는 귀여운 입을 삐쭉거린다.
하지만 그렇게 부르지 말라는 말을 하지 않는걸 보면 싫지는 않은 모양이다.
바로 계룡산 아랫마을 학봉리 별장에 사는 보조개가 예쁜 그녀의 이름이 진춘앵(陳春鶯)이다.
사실 그동안 계룡산을... 아니 학봉리를 주말마다 갔었다.
은선 폭포의 비밀은 도저히 풀리지 않았고 답답하기만 했다.
그러던 중 나는 그녀의 주변을 맴돌기 시작했고, 우연을 빙자한 마주침을 여러 번 시도하여
마침내 그녀와 가까워질 수가 있었던 것이었다.
그녀의 나이는 26세, 이름은 진춘앵(陳春鶯)... 이름 그대로 아름다운 봄 꾀꼬리였다.
그녀는 생각보다 성격이 명랑했고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나를 오빠라고 불러줬다.
처음 오빠라는 말을 들었을 때 어찌나 가슴이 뛰던지...ㅎㅎㅎ
그녀의 집안은 중국에서 대대로 고고학을 연구 계승하는 고고학계의 유명한 가문인데
춘앵(春鶯)이와 그 오빠는 3년 계획으로 삼국시대의 역사와 설화를 공부하러 한국에 나왔다 한다.
이미 북한 평양에서 고구려 역사를 1년 공부를 했고,
현재 이곳 공주대학에서 백제를 공부하는 중이며, 다음은 신라를 공부하러 경주로 갈 것이라 한다.
요즘은 진영이와 민혁이 형에게 많은 핀잔을 듣는다. 고주몽은 까마득히 잊고 연애만 한다고...
하지만 어쩌란 말인가, 세 명이서 은선 폭포에 다시 가보기도 했지만 도무지 그 비밀을 풀 수가 없는걸...쩝
어느새 이쁜 봄이 집에 도착했다.
"띵동!"
"누구세요?"
"응... 오빠야..."
"재형이 오빠?"
집에는 봄이 혼자 있는 듯 했다.
"양안(良安)씨는?"
"네! 낮에 외출했어요."
"그래? 따끈한 국물과 어묵도 사왔는데... 넉넉히 4인분 사왔으니 일단 우리끼리 먹자. 나 배고파."
"그래요. 양안(良安)오빠 오늘 늦는다고 했어요."
그렇다. 봄이의 친오빠 이름은 진양안(陳良安) 이었다.
나이는 나와 동갑이라 친구로 지내기로 했는데, 은연중 서로를 존중 해주느라고 반말을 하지 않는 상황이었다.
초밥을 덥석 먹은 이쁜 봄이는 눈물까지 찔끔 흘리며 매워서 어쩔 줄을 몰라 한다.
봄이는 초밥의 겨자 맛을 매워하면서도 매우 좋아한다.
그 맛에 먹는다나... 어쩐다나......ㅎㅎㅎ
초밥으로 저녁식사를 마치고 신비하고 향기로운 자스민 차를 음미했다.
언제나 자스민 차는 뭐라 말로 표현키 어려운 황홀함이 있다. 마치 이쁜 봄이처럼...
"차 마시고 은선 폭포에 가볼까요?"
"지금?"
생각해보니 달빛속의 은선 폭포는 또다른 운치가 있을 것 같다.
지금이 8시 30분.. 시간이 조금 늦긴 했지만 3시간이면 왕복하기 충분하기에 일단 출발했다.
저녁이라 제법 쌀쌀해서 옷도 챙겨 입고 랜턴도 준비했다.
"봄아! 고마워..." 산길을 걸으며 말했다.
"뭐가요?" 그녀는 점말 무슨 말인지 모르는 모양이다.
"응.. 지금 이 시간 이렇게 내 곁에 있어 주어서..."
"피~~~"
생각해보면 오늘 이시간이 있기까지는 나의 피나는 노력이 있었다.
한달여동안 일주일에 월, 수, 금 세 번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봄이의 집 우편함에
편지와 장미 한 송이를 두고 왔었다. 물론 어떤 날은 봄이가 창문에서 나를 바라보는 것을 눈치 채기도 했지만
난 모른 체 묵묵히 나의 정성을 보여주었다. 사실 힘들고 피곤해서 코피를 흘린 적도 여러 번 이었고
고속도로에서 자동차가 고장 나는 바람에 진영이가 나를 데리러 3번이나 오기도 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처럼 편지와 장미를 우편함에 넣고 돌아섰는데
어느 틈에 왔는지 봄이가 내 앞에 서있는 것이다.
"안녕하세요." 난 어색하게 인사를 건넸다.
"........"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체 날 빤히 바라보며 그냥 서있었다.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생각도 안 나고, 마치 죄지은 사람처럼 그녀의 눈치만 보고 있다가
그녀를 막 스치고 지나가는데...
"이봐요!" 그녀가 입을 열었다.
"예?"
난 화들짝 놀라 걸음을 멈추었지만 뒤를 돌아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렇게 긴장해보기도 처음이었다.
"그대로 그냥 갈 거예요?"
"그럼 어떻게....."
내가 머뭇거리는 사이 어느 틈에 그녀는 장미를 꺼내 향기를 맡고 있다.
"음... 향기가 참 좋네요."
그러더니 내가 넣은 편지를 꺼내 읽는다...
"기기묘묘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여인이여...
지금 내 가슴에 요동치는 이 불덩이는...
나도 모르는 사이 마음 깊은 곳에서 움터...
체면 같은 거추장스러운 것을 벗어 던져버리고...
조용하면서도 감당치 못할 뜨거움으로 몸부림을 칩니다...
여인이여...
지금 내가 느끼는 이것이 무엇인지 그대에게 물어봐도 되겠는지요..."
얼굴이 화끈 달아오른다. 도저히 그 자리에 있을 수가 없었다.
난 에라모르게따...하는 심정으로 도망쳤다. 너무 부끄러웠다.
그날이후 그녀에게 가지 못했다. 몇번 가려했다가 너무 창피하고 브끄러워 갈수가 없었다.
그런데 일주일정도가 지난 후 그녀에게서 메일이 왔다.
물론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편지에 메일주소를 적었었지...
메일에는 아래와 같이 써있었다.
"제 목 : 바보...
보낸이 : 陳春鶯
당신은 정말 나쁜 사람이군요.
여린 나를...
장미의 향에 취하게 만들어 놓고, 이제 와서 무심한척...
그럼...
내방에 장미가 시들었는데.. 이제 그만 꽃병을 버려야하나요?
그래서 어쨌냐고?
그 날 밤 당장, 장미 한 다발을 사가지고 그녀에게 갔지...
그다음은 여러분의 상상에 맡기고...
아무튼 그렇게 해서 오늘 이자리가 있게 된 것이지...ㅎㅎㅎ
오늘도 은선 폭포는 안개에 쌓여있었지만 안개는 희미한 편이었다.
폭포를 한참 살펴봤지만 역시 아무리 봐도 폭포의 비밀은 풀 수 없다.
"봄이야..."
"응?"
"내가 왜 이곳 폭포에 자주 오는지 알아?"
"이쁜 봄이 보러?"
"앗! 들켰다... ... 하하하..."
"호호호..."
"봄이야...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 잘 들어. 이 이야기는 아무에게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야..
일부 나쁜 사람들이 알면 우리나라의 아주 중요한 유물을 도난당할지도 모르거든..
그만큼 우리(?) 이쁜 봄이를 믿고 하는 이야기야..."
난 봄이에게 처음 격포 바닷속에서 이상한 그림과 글씨를 발견했었을 때부터
지금까지의 일을 아주 상세히 이야기 해줬다.
이야기 도중에 봄이의 얼굴색이 여러 번 변하였지만 개의치 않았다.
내 이야기를 끝까지 들은 봄이는 무엇인가를 곰곰이 생각하는 듯 표정이 별로 밝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난 오랫동안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참! 예전에 은선 폭포에 고구려의 전설이 있다고 말했을 때 왜 갑자기 산을 내려갔어?"
"아.. 발목 다친 날?"
"그래 이제는 솔직하게 말해줘."
"저도 그런 유물이 나쁜 사람 손에 넘어가는 것을 원치 않기에 그랬죠.
그리고 그 당시에는 재형오빠가 어떤 사람인지 몰랐잖아요."
"지금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데?"
"이쁜 봄이의 보조개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아주 좋은 남자..."
"잉? 하하하...."
"봄아.. 혹시 그 전설에 대해 나보다 더 아는 것은 없어?"
"나보다 양안(良安)오빠가 더 많이 아는데 오빠에게 물어본 후 알려 드릴게요."
갑자기 한줄기 바람이 불어 봄이의 웨이브 머리가 흔들린다.
"봄아..."
난 봄이의 어깨를 두 손으로 감싸며 부드럽게 불렀다.
"그렇게 부르지 마요. 가슴 떨리잖아요."
봄이는 눈을 흘기며 몇 발자국 떨어진다. 아마 내 속셈을 알고 피하는 것 같다. 끙...
"이리와 봐 해줄 이야기가 또 있어."
"피~~~ 거짓말... 늑대와는 떨어져있을래요"
"아니야 정말이야... 좋아 그럼 무서운 이야기한다?"
내말이 끝나기도 전에 얼른 다가선다.
"알았어요. 무서운 이야기 싫어요!"
봄이는 무서움을 많이 타는 여리고 귀여운 착한여인이었던 것이다.
"음... 7년 전에 대학에서 이곳으로 극기 훈련을 왔었어.
은선 대피소에서 며칠을 묵으며 담력 훈련으로 암벽등산도 하고,
새벽에는 저기 칡넝쿨 사이에 있는 작은 동굴 속 지하호수에서 스쿠버훈련도..."
봄이가 말을 끊으며 묻는다.
"작은 동굴 요? 어디요? 안 보이는데?"
"응.. 여기서는 안보여.. 암벽을 타고 약간 올라가면 바위틈사이에 작은 입구가 있어."
"....."
"스쿠버 훈련 중 친구와 함께 그 연못 속에서 길을 잃고 위험에 빠졌었거든,
다행이 구조가 되긴 했지만 그 와 중에 물속에 공기통을 분실했었어."
"큰일 날 뻔 했네요?"
"응.. 동굴 지하수로는 매우 불규칙한 미로 같았고 생각보다 깊어서 길을 잃기 쉽상 이었어..."
혹시.. 누가 날 묶어 그 지하수로에 빠트려도
그 공기통으로 살아날 수 있을 거야. 근데 그게 작동을 할지 몰라...ㅎㅎ"
"피~~~"
"참! 그때 그곳에 50마리의 금붕어를 방생했는데
만일 지금쯤 금붕어 개체수가 많아졌으면 바다 속 물고기 떼처럼 아름다울 텐데..."
"기회가 되면 이쁜 봄이 데리고 한번 가줘요. 금붕어 떼 물쑈 보고 싶다."
"물쑈? 하하하..."
<2003년 9월 29일>
봄이에게서 메일이 왔다. 오늘은 어떤 내용으로 나를 설레게 할까?
"아마 핑크빛일거야...ㅎㅎㅎ"
그런데 메일에는 너무도 놀라운 내용이 적혀 있었다.
제 목 : 鷄龍 霧瀑內(계룡 무폭내)
보낸이 : 이쁜봄이
아래 내용은 오빠에게 들은 연개소문의 이야기와 전설 이예요.
재형오빠에게 도움이 될지 모르겠네요.
654년 신라왕에 오른 김춘추는,
655년 당의 새로운 권력자가 된 측천무후에게 사신을 보내 백제원정군을 요청했고
측천무후는 소정방, 유인궤, 설인귀 등에게 13만의 병력을 주어 백제를 공략토록 하였다.
657년 평소 안개의 신비한 매력에 심취해있던 고구려의 장수 연개소문이
노후에 정계 은퇴 후 사용할 목적으로 별장을 지으려고 하던 중
안개가 많은 이곳에 원래의 물줄기를 바꿔 폭포를 만드는 공사를 시작했는데
이곳에서 우연히 고주몽의 신물을 발견하게 되었다.
물론 그가 영류왕을 죽이고 영류왕의 조카 장을 왕(보장왕)으로 옹립했지만
그 신물을 소지한자가 왕이 된다는 전설에 더 이상 왕위를 둘러싼 피바람을 원치 않았기에
자신이 직접 전쟁포로를 진두지휘하여 신물을 폭포 속에 감추고 그곳의 위치를
아무도 발설하지 못하게 작업에 참여한 인부를 무인도(지금의 위도)로 강제로 이주시켰다.
그런데 복잡한 국제정세에 폭포만 완성시키고 별장공사는 중단되었다.
660년 당은 신라와 연합하여 백제를 멸망시켰고
측천무후는 좌효위대장군 방효태에게 10만의 병력을 주어 육로로 평양성을 향해 출발토록 하였으나
연개소문은 정찰병을 통해 방효태가 패수의 상류 쪽으로 접근할 것이라는 정보를 얻었고
그는 3만의 별동대를 구성하여 병중에도 직접 눈보라를 뚫고 패수의 상류인 사수로 이동했다.
사수는 강폭이 좁은데다가 겨울이라 얼어있었다. 방효태 군은 신속하게 강을 건너기 위해
통상 종대로 도하하는 병법을 어기고 횡대로 강을 건너기 시작했다.
방효태군이 강 한가운데 이르자 고구려 군은 양쪽에서 큰 돌을 강을 향해 쏘아댔다.
바위가 떨어지자 얼어붙은 강의 얼음이 갈라지고 방효태 군은 강 속으로 쓸려 들어갔다.
완벽한 대승이었다. 이를 역사에서는 사수대첩이라고 한다.
그런데 돌아오는 길에 연개소문은 숨을 거두었고 그 후 3년후 고구려는 멸망했다.
(물론 연개소문의 사망연도에 대해 여러 가지 설이 있긴 하다.)
난 너무 놀라 내용을 프린터로 뽑아 진영이에게 팩스로 보내준 후 민혁이 형에게 달려갔다.
내용을 본 민혁이 형도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음.... 이런 이야기가 있을 줄은 정말 몰랐네?"
"그래서 설화나 전설도 무시할 수 없나 봐요."
"그래, 그런데 그 신물을 폭포 속에 감추었다는 말은 무엇일까?
폭포벽속에 묻었다는 말 일까? 폭포 연못 속에 묻었다는 것일까?"
"그러게요. 폭포 벽을 파 볼 수도 없고 폭포연못에 들어가는 것도 관리소에서 허락하지 않을 텐데..
언제 시간 내서 은선 대피소에 하루 묵으며 새벽에 폭포 연못에 들어가 볼까요?"
"그래 지금으로서는 그 방법뿐일 것 같다. 일단은 지평선 축제가 끝난 후 그곳에 가보자."
"내 머리 속에는 한 가지 생각이 스쳤다. 만일 연개소문이 그 신물을 소유했다면 정말 왕이 되었을까?"
<2003년 10월 3일 오전 10시>
나는 주머니에서 자꾸 휴대폰을 꺼내 본다.
"전화 올 때가 되었는데?" 혼자 중얼거리며 안절부절 한다.
그렇다 나는 지금 봄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봄이는 1시간 30분전에 학봉리 집에서 나에게 전화를 했다.
"오빠 지금 출발하려고해.. 김제시내에 도착하면 다시 전화할게.."
내가 휴대폰 하나 사준다 해도 그렇게 거절하더니 이런 날은 답답해 죽겠다.
어제부터 지평선 축제가 시작되었다. 10월 2일(목) ~ 5일(일)까지 4일간이다.
축제 첫날은 여러 가지로 정신이 없어서 어떻게 지냈는지 모른다.
하지만 특별한 문제없이 축제는 잘 진행되고 있고 작년에 비해 한층 부드럽고 유연하게 운영되고 있다.
오늘은 이쁜 봄이가 축제에 놀러오는 날이다.
해산물을 특히 좋아하는 봄이에게 김제 신포 항에서 직송한 해산물을 먹이고 싶어서 초대를 했다.
행사장안에는 19개 읍면동 부녀회에서 운영하는 먹거리 장터가 있고
그분들이 자신의 동네사람들에게 이윤을 남기지 않고 거의 원가에 가까운 값에 제공하는 음식은
깨끗하고 정성이 듬뿍 담겼으며 위생적이고 맛도 좋았다.
지역적인 특성으로 음식의 종류도 陸(땅), 海(바다), 空(하늘)의 모든 음식을 맛볼 수 있었다.
김제에는 넓은 호남평야의 중심에 위치하여 여러 가지 농산물이 넘쳐나고
진봉면의 신포 항에서는 수산물을 비롯한 어패류를 가득 실은 어선이 수시로 들락거리며,
금산사가 있는 모악산 부근엔 메추리, 비둘기, 기러기, 타조, 꿩, ...등의 조류농장이 있고,
흑염소, 돼지, 젓소, 사슴...등의 동물농장을 비롯하여, 전국적으로 유명한 포도산지인
백구면과 용지면이 있으며, 백산면의 관망대 저수지에는 향어, 송어등 민물고기 가두리양식장이 있어
언제라도 싱싱한 민물고기 회를 접할 수 있는 김제는 이렇듯 풍요로운 곳이었다.
먹거리 장터의 19개 코너는 그런 재료를 가지고 서로 중복되지 않게 맛있는 음식을 제공하고 있었다.
드디어 전화벨이 울린다.
"여보세요?"
"오빠! 이쁜 봄이예요..."
"응... 우리 봄이 어디야? "
"벽골제[碧骨堤] 지평선축제안내소에 있어요."
"아니.. 김제 시내가 아니고... 벌써 이곳에 온 거야?"
"네.. 나 있는 곳으로 빨리 와요."
옅은 보라색 양산을 들고 같은 계열의 보라색 원피스를 입고 있는 봄이는 너무도 아름다웠다.
보자마자 안아주고 싶었지만, 첫 포옹을 여기서 할 수는 없었다.
좀더 멋진 곳에서 첫 포옹을 하기 위해 허벅지를 꼬집으며 꾹 참았다.
"시내에서 여기까지 길이 많이 막힐 텐데 어떻게 이렇게 빨리 왔어?
"시내에 차 놓고 셔틀 버스로 왔어요."
"우리 봄이 제법이네? 머리가 비상해.."
지평선축제는 우리에게 너무 많은 추억을 안겨줬다. 우선 벽골제[碧骨堤] 제방으로 제일 먼저 갔다.
제방에는 백제 때부터 전해 내려오는 전설이 있었다.
나는 봄이의 손을 잡고 제방을 걸으며 전설을 이야기해줬다.
"연인끼리 손을 잡고 벽골제[碧骨堤] 제방을 걸으면 그 사랑이 꼭 이루어진다는 전설이 있어..."
봄이는 걸음을 멈추고 나를 빤히 바라보더니 살그머니 손을 뺀다.
난 다시 봄이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손에 힘을 줘 손을 빼지 못하게 했다.
"봄아~~~ 내가 부담스러워?"
"아니.. 저도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그런데.. 뭐?"
"아니 예요.... 참! 이곳에 오는 도로변의 코스모스 너무 예뻤어요."
"참내....ㅎㅎㅎ"
제방을 내려오니 페이스 페인팅을 해주는 코너가 있다. 김제 소재 벽성전문대학 응용미술학과 학생들이
자원 봉사하는 코너이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얼굴에 예쁜 캐릭터를 그려주고 있다.
해바라기, 메뚜기, 벼, 해님, 무당벌레....등 모두들 즐거워하는 모습이 행복해 보인다.
나는 얼굴에 고추잠자리를 그렸고, 봄이는 보조개를 중심으로 코스모스를 그렸다.
코스모스가 보조개 덕에 입체적으로 보인다. 너무 귀여워...ㅎㅎㅎ
"어머나? 어머나?" 봄이가 놀라며 비명을 지른다.
그 소리에 놀라 바라보니 봄이 머리위에 메뚜기 한마리가 앉아있다.
난 잽싸게 메뚜기를 잡아서 입에 넣는 흉내를 내며 말했다.
"먹을 거 보며 이렇게 놀라는 사람 처음 봤네? 놀라지마! 메뚜기야."
"아.. 어떡해? 먹지마세요?"
봄이가 눈을 똥그랗게 뜨며 어쩔 줄 몰라 한다.
"하하하... 장난이야.."
"피~~~ 깜짝 놀랐어요.. 나도 메뚜기는 잡을 수 있는데..."
벽골제에서 직접 관리하는 논이 바로 옆에 있고 그곳에서 메뚜기잡기 행사를 하고 있다.
논 두 필지를 농약을 안주고 오리를 풀어 놓고 키우며 농사를 짓는 논이다.
바로 그 논에서 메뚜기를 가장 많이 잡는 사람과 가장 큰 것을 잡는 사람에게 각각 상을 주는 행사이다.
봄이와 나는 논으로 들어가 메뚜기를 찾기 시작했다.
잠시 후 봄이 4마리, 나는 3마리를 잡았는데 보아하니 등수 안에 들기는 틀린 것 같다.
봄이를 보니 나를 바라보며 피식 웃고 있다. 아마도 내생각과 같은 모양이다.
마침 우리 옆에 꼬마애가 있기에 우리가 잡은 것을 그 아이에게 주고 논을 나왔다.
돌아보니 꼬마가 메뚜기를 받더니 좋아서 입이 찢어지려한다.
"봄이야 큰일 났다. 저 꼬마 입 찢어지면 부모가 가만있지 않을 텐데... 도로 뺏을까?"
"호호호호...."
"봄이 입도 찢어지려한다 어쩌지? ㅎㅎㅎㅎ"
마침 논 옆길로 아이들을 태운 우마차가 지나간다. 누런 황소가 아이들을 실은 마차를 끌고 가는데
마침 황소의 고삐를 잡은 사람이 아는 사람이기에 눈을 찡끗하고 봄이를 번쩍 안아 마차에 태웠다.
봄이는 처음엔 놀라는 듯 하더니 이내 덜컹거리는 마차를 재미있어라 한다.
우마차가 돌아왔고 난 생각해둔 것이 있어서 봄이를 데리고 동백나무가 있는 곳으로 갔다.
난 미리 준비한 초콜릿을 녹인 물이 들어있는 병과 작은 붓 2개를 주머니에서 꺼냈다.
병을 열고 붓에 초콜릿 물을 뭍 혀서 봄이에게 주고 나도 똑같이 준비했다.
"봄이야! 나 하는 거 봐."
나는 동백 잎이 나무에 붙어있는 상태로 초콜릿 물로 잎에 글씨를 썼다. [♡]
봄이가 배시시 웃는다.
"봄이도 한번 해봐."
"네..." 봄이도 뭐라 적는다. [미워]
"호호호..."
"하하하..."
"봄이는 이 나무에 글씨를 써... 나는 옆에 나무에 쓸 께..
그리고 얼마동안의 시간이 흐른 후 와서 보면 초콜릿으로 글씨 쓴 곳만 벌레가 먹어서
자연스럽게 글씨가 나타 날거야.. 우리 그때 같이 와서 보자..."
내말을 들은 봄이의 눈이 반짝 빛을 발하며 흔들린다.
"잎이 작아서 못쓰겠으면 잎 하나에 글씨 한자만 써.. 나중에 글자 맞추기도 재미있겠다."
우린 서로에게 보여주지 않으며 글씨를 썼다.
뒤돌아 쓰고 있는 봄이 어깨너머로 힐끔 보니 "해"도 보이고 "요"도 보인다.
"해요? 음... 그렇다면.. 사랑해요..일까..아님 좋아해요..일까?
설마 미워해요..는 아니겠지? ㅎㅎㅎ"
과연 봄이는 뭐라고 썼을까? 무척이나 궁금했지만 벌레가 글씨를 만들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아마도 겨울이 지나고 날이 따뜻해져서 벌레가 활동을 할 때까지 기다려야 할 것 같다.
안내방송이 나온다.
"잠시 후 제방위에서 연날리기 대회가 있을 예정이오니 참가를 원하시는 시민께서는
단야연못 무자위 옆의 연 배부 처에서 무상으로 연을 나눠 드리고 있으니 받아 가시기 바랍니다."
연날리기가 생각보다 쉽진 않았다. 그런데 봄이는 나보다 연을 잘 날리고 있었다.
봄이의 연은 얼레에 감긴 실이 모두 풀려 나가고 연이 높이 올라갔다. 연 다루는 솜씨가 놀라웠다.
봄이의 연을 넋을 놓고 바라보는데 봄이의 방패연에 가오리연이 연싸움을 걸어왔다.
"잉? 누가.. 우리 봄이에게?"
난 순간 주먹이 불끈 쥐어졌다. 그리고 봄이에게 비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봄이야 연싸움 해봤어? 내가 싸워줄까?"
봄이의 목소리에는 여유가 있었다.
"아니 예요 제가 해볼게요."
연 싸움을 걸어온 사람은 큰 삿갓을 쓰고 있어서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옷차림을 보니 젊은 사람 같았다.
이쁜 여자가 연 날리고 있으니 수작(?)을 걸어 온 거야 뭐야?
구경꾼들이 하나둘 모여 들었고 나름대로 편이 갈라져 응원을 한다. 나는 당연히 봄이를 응원했다.
20분 정도가 지났는데 좀처럼 승부가 나지 않았다.
긴장되어 손에 땀이 난다. 봄이는 느긋한데 내가 더 안절부절못하다.
에라 모르겠다. 난 버럭 고함을 질렀다.
"이겨라~ 이겨라~ 우리 봄이 이겨라~~~"
그 순간 사람들이 화들짝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창피고 뭐고 없다.
다시 한번 "이겨라~~~"를 외치려는 순간... 연 한 개가 끈이 떨어져 하늘로 멀리 날아간다.
이겼다. 나도 모르게 만세를 불렀다.
"만세~~~ 잘했어 우리 봄이..."
난 어깨를 으쓱하며 삿갓을 바라봤다. 그 사람이 삿갓을 벗으며 말을 건 낸다.
"재형이형! 그렇게 좋아요?"
"잉? 진영이?
그랬다 그 사람.. 아니 녀석은 진영이었다..참내...
"오빠! 아는 사람 이예요?"
"응! 인사해. 내가 말했지? 김진영이야."
"안녕 하세요 오빠에게 말씀 많이 들었어요."
"네.. 반가워요. 축제에 놀러 왔다가 보니, 형님이랑 같이 계시기에 실례했네요.
전에 관음봉에서도 뵈었었는데 기억 못하죠?"
"죄송해요..호호호..."
"야~ 김진영~ 감쪽같이 속았잖아...ㅎㅎㅎ "
그때 누군가 등을 툭 친다.
"결국 이쁜 봄이님이 진영이를 이긴 거야?" 민혁이 형이었다.
"진영이와의 내기에서 내가졌으니 내가 한턱 쏠께 진봉 부녀회로 가자.
근데 진영이가 일부러 져준 거 아닌지 몰라....ㅎㅎㅎ"
알고 보니 민혁이 형 형수와 진영이 부부가 축제에 구경 왔다가
제방위에서 연 날리는 봄이와 나를 발견하고 진영이가 슬그머니 연싸움을 걸어왔고
민혁이 형과 진영이는 누가 이길까를 놓고 내기를 했던 것이었다.
어쨌든 우리는 먹거리 장터로 해삼 멍게 주꾸미 소라...등 해산물과 어패류를 먹으러
룰루랄라 즐거운 걸음을 옮겼다. 민혁이 형과 진영이는 부부끼리 손을 잡고 앞서간다.
나도 슬그머니 봄이의 손을 잡고 뒤를 따랐다. 작고 부드러운 봄이의 손을.....
진봉 부녀회는 다른 곳에 비해 사람이 붐볐다. 역시 싱싱한 해산물이 인기였다.
주문한 음식이 나오기 전 봄이를 인사시켰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안녕하십니까..."
민혁이 형이 한마디 한다.
"봄이씨~ 그동안 재형이 혼자서 왕따이었어요.
진영이와 나는 이렇게 사귀는 여학생(?)이 있는데 재형이만 혼자였거든요.
주변머리 없는 놈이 여태 아는 여학생도 없고...재형이 착한 놈이니 봄이씨가 잘 좀 해주세요. "
봄이가 입을 삐쭉이며 말한다.
"재형오빠 하는 거 봐서요..."
"잉?"
"하하하...호호호...낄낄낄...키득키득..." 봄이의 말에 웃음바다가 되었다
난 쑥스러워서 화제를 돌렸다.
"진영이는 장사 안하고 여기에 어떻게 왔어?"
"이쁜 봄이씨에게 형님이 형수님에게 얼마나 빠져있나 보러 왔죠...ㅎㅎㅎㅎ."
"형수님? ... ...ㅎㅎㅎ... 아얏!"
봄이가 눈을 흘기며 내 허벅지를 꼬집었지만 너무도 즐겁다.
오늘도.. 어제처럼.. 봄이에게 한발 다가서게 되는 행복한 시간이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오늘은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사건이 시작 되는 날 이었다.
그렇다. 봄이, 민혁, 진영, 그리고 나.. 네 명은 모임을 만들었다.
모임명은 고주몽을 사랑하는 모임.. 일명 "고사모"
오늘 발족 회를 하기로 했다.
"자~ 고사모 발족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건배하겠습니다. 술잔을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술잔을 높이 들었다.
"아무런 사고 없이 우리가 원하는 일이 꼭 성공되기를 위하여~~~"
"위하여~~~"
나는 생합을 까서 초장과 고추 마늘을 올려 봄이에게 주며 마음속으로 다시 한번 되 뇌였다.
(아무런 사고 없이 우리가 원하는 일이 꼭 성공되기를 위하여...)
우리 여섯 명은 행사장 이곳저곳을 떼거리로 몰려다니며 축제를 즐겼고
해지기전 서둘러 서해 일몰을 보기위해 망해사로 출발했다. 망해사의 서해 낙조는 정말 일품이다.
하늘에 있던 불덩이가 바닷속으로 서서히 가라앉아 하늘과 바다 모두가 붉은빛이 되었고
불덩이를 삼킨 바다는 금방이라도 부글부글 끓어오를 듯 하였다.
하지만 이 순간 우리 6명은 모두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그 이유는 모두다 낙조를 바라보며 황홀경에 빠져있었던 것이다. (야~~ 정말 죽인다...)
망해사는 우리의 몸과 마음을 그렇게 잡아두고 있었다.
서해안 낙조를 감상한 후 우리는 김제 시내에 있는 슈퍼인 금평상회에 자리를 잡았다.
편안하고 조용한 자리에서 의논할 것이 있어서 이기도 했고, 봄이에게 갑오징어도 맛보이고 싶었다.
"안녕하세요.. 장사 잘되시죠?"
"어서와요.. 요즘은 날이 쌀쌀해져서 맥주 마시러 오는 손님이 좀 줄었어요."
"그렇겠네요...ㅎㅎㅎ"
"이 이쁜 아가씨는 누구예요? 처음 보는 분이구만.."
"네 재형이 애인 이예요."
"이제서야 애인이 생겼구먼... 매일 혼자 근천 떨드만...
또다시 홀아비 되기 싫으면 이쁜 아가씨에게 잘해요."
"네.. 마님..." 하하하...호호호...
우리 네 명은 헤어지면서 서로에게 각각 한 가지 숙제를 냈다.
문제는 鷄龍 霧瀑內(계룡 무폭내)... 은선 폭포 어디를 어떻게 공략할 것인가...
10월 10일 금요일 다시모여 일주일 동안 각자 연구한 의견을 제출하고
회의를 거쳐 채택된 방법으로 은선 폭포를 공략을 하기로 했다.
<2003년 10월 10일 금요일>
퇴근 무렵 봄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시내 금만사거리 "모스플러스" 커피숍에 와있어요. 퇴근 후에 여기로 오세요."
"벌써 온 거야? 양안(良安)씨도 왔지?
"네... 같이 왔어요."
모스플러스에 도착해보니 오누이가 다정스레 앉아있었다.
사실 어제 밤 봄이 오빠인 양안씨가 전화를 했었다.
"재형씨.. 잘 지내시죠?"
"그럼요! 양안씨 염려 덕에... 고마워요...ㅎㅎㅎ"
"저... 한 가지 부탁이 있는데.."
"뭔데요?"
"이번에 춘앵(春鶯)이도 "고사모"에 합류했다면서요?"
"그랬죠...."
"저도 그 모임에 참여하고 싶은데.. 제가 고고학에 관심이 많은 것은 물론이고
특히 이번 고구려시조인 고주몽의 유물탐사는 제 생애에 다시없는 기회일 것 같네요."
그리고 사실 저도 그 유물의 존재를 이미 알고 있었고 나름대로의 자료를 갖고 탐사도 했었거든요.
우리 서로가 갖고 있는 자료를 합하면 예상외로 쉽게 찾을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글쎄요.. 나 혼자 결정할일은 아닌 것 같은데요..
마침 내일 우리가 모이기로 했으니 내일 오전에 의논해서 연락을 드릴게요."
봄이와 양안(良安)씨를 데리고 약속장소인 성산타워에 갔다.
성산타워는 김제시내 중심에 작은 야산인 "성산"이 있는데
새벽에는 시민들의 운동 장소로 각광을 받고, 낮에는 연로하신 분들의 휴식 공원이 되며,
밤에는 서울의 남산타워에는 못 미치지만 꼭대기에 타워가 있어
김제시내의 아름다운 야경을 볼 수 있는 연인들의 데이트장소로 안성맞춤인 곳이다.
물론 민혁이 형과 진영이는 양안(良安)씨의 합류를 찬성했다.
인사를 나누자마자 양안(良安)씨가 새로운 사실을 알려준다.
"연개소문이 폭포 공사하기 전 그 장소엔 동굴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 동굴에 유물을 보관하고 입구를 봉쇄했다고 전해집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연개소문은 도굴을 염려해서 그곳에 몇 가지 함정을 만들어 놓았다고 해요."
우린 그 말에 너무 놀랐다.
"아니 어떻게 그렇게 잘 아시죠?"
봄이가 대신 말을 한다.
"재형오빠에게는 전에 이야기했다시피... 저희 집안이 대대로 고고학을 연구하는 집안 이예요.
몇 년 전부터 아버님께서는 중국의 수. 당나라와 고구려의 전쟁을 연구하시다가
고구려의 매력에 흠뻑 빠지셨고 지금은 고구려를 비롯한 백제 신라의 역사를 연구하시거든요.
그래서 그 내용을 알게 되었어요."
우리는 새로운 사실에 흥분 되었고 양안씨의 합류로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었으며
금방이라도 고주몽의 유물을 찾을 것 같았다.
머리를 맞대고 의논한 결과 우리의 의견은 세 가지로 모아졌다.
1. 폭포가 떨어지는 암벽을 직접 등반해서 확인.
2. 폭포 연못 속을 확인.
3. 폭포 옆 동굴을 조사해 볼 필요도 있음.
그런데 문제가 있다. 모두가 낮에는 도저히 실현 불가능한 방법들이었다.
그곳은 관광지가 아닌가. 관리소에서 허락을 안 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임은 물론
관광객들의 눈은 또 어찌한단 말인가.
그래 방법은 단하나... 야간에 확인하는 방법뿐...
봄이의 집이나 은선 대피소에서 쉬다가 한밤중 인적이 없을 때 탐사하는 방법...
봄이가 말을 한다.
"저희 집에서 준비하고 있다가 적당한 시간에 폭포로 출발 하는 게 좋을 듯싶네요.
그리고 암벽 타기는 양안(良安)오빠가 잘하는데 폭포 암반 오를 때 도와준다 했어요.
암벽에 먼저 올라가서 다른 분이 암벽에 올라와서 확인할 수 있도록 로프도 고정시켜주고..."
"정말 잘되었네요. 사실 우리 중에 암벽 타는 사람이 없는데... 양안(良安)씨의 도움이 크겠어요."
말은 민혁이 형이 했지만, 진영이도 나도 진심으로 양안씨에게 고마운 마음을 느꼈다.
<2003년 10월 12일>
스쿠버동호회에서 바다로 나가는 날이다. 일행을 9시에 구산사거리에서 만나기로 했다
일찍부터 잠이 깬 바람에 장비점검을 다 마치고도 한 시간의 여유가 있어서
봄이가 준 자스민 차를 음미하고 있는데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려 받아보니 진영이다.
"형! tv 켜 봐요. 유선방송 19번..."
"왜 호들갑이야... 뭔데 그래?"
"일단 봐요 다시 전화할게요......딸깍!"
일단 tv 를 켜고 19번으로 채널을 맞췄다.
진행자가 말을 한다.
" ......... 최근 일부 역사학자들이
압록강 이북(만주)에 있는 고구려(高句麗)와 발해(渤海) 유적지를 답사하려다
중국 정부에 의해 현장 접근을 저지당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중국 정부는 수년 전부터 이 같은 접근 제한조치를 시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같은 조치에는 ‘압록강 이북의 역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한국과 중국 역사학계의 시각차가 내포돼 있습니다.
여기에서 중국의 역사학자 진륭후의 말을 들어보겠습니다.
학자풍의 중국 사람이 나와서 인터뷰를 하고 우리말 자막이 나온다.
고구려·발해는 중국의 소수민족 지방정권이다.
중국의 시각에서 발해는 ‘말갈족을 주체로 한 민족 정권인 동시에 당나라 중앙 정 권의 책봉을 받아
당 왕조에 예속된 지방 정권’ 혹은 ‘소수민족이 세운 지방 정권’이다.
중국 정부의 공식입장을 대변하는 국정교과서에서도 ‘당 현종(唐玄宗)이 발해군왕(渤海郡王)으로 임명한
속말부(粟末部)의 수령(首領) 대조영(大祚榮)이 세운 속말말갈(粟末靺鞨)의
지방 정권’이다. 라고 적혀있으며
또 고구려인은 ‘부여(夫餘)에서 왔고 부여는 숙신(肅愼) 계통의 퉁구스족 즉 후대의 여진족이므로,
고구려인도 여진족과 동일한 족속’(왕건군, 고구려족속탐원·高句麗族屬探源)이다.
발해도 ‘고구려족(高句麗族)의 별종(別種)도 아니고 고구려의 후예도 아닌
중국 동북지방에 예로부터 생활해 온 숙신족(肅愼族)의 후예인 속말말갈족(粟末靺鞨族)’이다.
다시 진행자가 이야기를 한다.
중국에서의 고구려사 및 발해사는 한국사와는 무관한 중국사의 일부입니다.
철저하게 현재 중화인민공화국의 관점에서 과거의 역사를 재단(裁斷)하고 왜곡함으로써
자칫 학문 영역에서 불거질지도 모르는 영토(領土·혹은 역사영역) 관련 분쟁거리나
민족 단결에 해로운 논조를 송두리째 잘라내고 있습니다.
게다가 중국은 더 이상 한국에서 사용하는 만주(滿洲)란 명칭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물론 과거에 중국인들도 만주란 명칭을 사용했습니다.
그 예로 만주에서의 중국공산당 조직 명칭이 ‘중공만주성위(中共滿洲省委)’입니다.
그렇지만 중국 정부는 만주라는 용어를 사실상 폐기 처분했습니다.
그 이유는 만주라는 단어가 일본의 만주국(滿洲國)을 연상하도록 만든다는 점,
또 만주라는 단어가 그 지역이 중국의 영토가 아니라는 과거의 일을 연상하도록 만든다는 점 때문입니다.
중국은 현재 만주라는 용어 대신 ‘중국 동북지구(東北地區)’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이 명칭은 ‘만주가 중국의 확고부동한 동북지구’라는 점을 간접적으로 시사합니다.
중국인들은 한국인들이 만주가 ‘고구려·발해의 고토(故土)’로서
한국 영토의 일부인 것처럼 생각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죠.
고구려·발해의 유적지를 찾는 한국인들은 중국인의 눈에 ‘민족분열주의자의 전형’으로 비치는 것이죠.
게다가 중국 조선족에 대한 한국의 영향력이 점점 강화되고 있습니다.
만일 한반도가 통일된다면 만주에 대한 한국의 영향력은 더 커질 것이 분명합니다.
만주에 대한 한국인들의 애틋한(?) 감정은 중국 당국의 신경을 거스를..."
"아니... 이게 무슨 말이야.." 난 치밀어 오르는 화를 어찌할 바를 몰랐다.
진영이에게서 다시 전화가 왔다.
"형.. 봤어요?"
"응..... 어이가 없어서 원..."
"정말 큰일이네요. 이러다가 정말 고구려역사를 중국에 빼앗기겠어요."
"그래.. 광개토왕비를 비롯한 고구려의 많은 유물 유적들이 중국영토에 안에 있는데
국제사회에서 그 유물들을 중국의 역사로 인식될 우려가 충분해..."
"맞아요. 그냥... ‘지랄하고자빠졌네’.... 라며 넘길 일이 아닌 것 같아요.
우리도 뭔가 정확한 자료를 가지고 중국 측의 억지에 대응해야지
그냥 말로만 고구려가 우리의 역사라고 고함쳐봤자 소용없을 것 같아요."
"음....."
"참.. 재형이형!"
"그런데 아까 그 중국학자의 이름이... 진.. 뭐라 하던데 혹시..."
".......? 봄이와 양안씨를 말하는 거야?"
"그리고... 위도에서 그 어르신이 말한 보조개 여인......"
"뭐?....설마...."
"하하하... 아니 예요. 농담 이예요."
진영이는 웃으며 전화를 끊었고 나는 혼자 중얼거렸다.
(위도, 보조개, 중국인.....)
<2003년 10월 18일 토요일>
오전 근무를 마치자마자 민혁이 형이랑 나는 진영이가 운영하는 석궁사격장 앞으로 갔다.
진영이는 준비를 마치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 세 명은 호남고속도로를 달렸다.
학봉리에 도착하니 3시였고 양안씨와 봄이는 우리를 반갑게 맞아줬다.
양안씨는 마당에서 등산장비들을 정리하고 있었는데 처음 보는 장비들이 있어 물어보니
"이것들은 너트, 러프, 봉봉, 슬링, 스카이훅, 주마, 카라비너, 코퍼헤드, 퀵드로우, 하켄이라 하고
각각의 용도는.........."
"아이고.. 고만해요. 이름이나 용도가 너무 생소해서 머리는 좋으나 쓸 줄을 모르는 나는 모르겠네요...ㅎㅎㅎ"
"재형오빠~ 점심은 드셨어요?" 봄이가 웃으며 말한다.
"휴계소에서 간단히 먹었는데 좀 출출하네?"
"그래요? 그럴 줄 알고 간식거리를 준비했는데 좀 기다리세요."
잠시 후 우리는 주방에 있는 식탁으로 갔다. 그곳에는 주먹밥과 만두가 준비되어있었다.
"삼색주먹밥과 튀김춘권만두예요. 정성들여서 만든다고 해봤는데 맛이 어떨지 모르겠어요."
"와~~~ 맛있겠다."
나는 만두를 먼저 한입 먹어봤다.
"정말 맛있네? 나도 요리가 취미인데 이거 어떻게 만든 거지?
주먹밥을 먹어본 민혁이 형과 진영이도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야..죽인다..죽여... 입에서 살살 녹네?"
"요리 비법 좀 알려줘요 집에 가서 해달라고 하게.. 설마 비밀은 아니죠?"
"비밀 아니 예요...호호호...
대충 요기를 마친 우리는... 아니 .. 너무도 맛있는 요리를 먹은 우리는
은선 폭포에 가서 공략 목표를 마지막으로 확인 하고자 출발을 했다.
여전히 은선 폭포는 희미한 안개가 서려있다. 연개소문도 나처럼 안개를 좋아했던 모양이다.
안개 속에 보이는 폭포의 자태는 너무 황홀했다.
이곳에 별장을 만들어 노후를 보내려했던 연개소문의 마음을 알 것 같았다.
옆의 양안씨를 보니 폭포를 바라보며 심각한 표정으로 뭔가를 생각하는듯하다.
그때 문득 떠오르는 게 있었다. 그리고 양안씨에게 꼭 묻고 싶은 게 있었다.
"양안씨~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는데요."
"예... 뭔데요?"
"만일 우리가 고주몽의 유물을 발견한다면 그 유물을 어찌 처리했으면 좋겠어요?"
"나야.. 별 마음은 없고 그런 역사적 유물을 직접 보고 싶고, 발굴에 참여하는데 의미를 두고 싶어요."
"그럼 그 유물을 우리가 어찌 처리하던 관계없다는 이야기로 알아도 되는 거죠?"
"그래요. 어차피 고구려의 역사적 유물인데요."
"다행이네요. 요즘 중국에서는 고구려가 중국의 지방정권이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던데.."
"사실 이예요. 요즘 중국 내부에서 그런 주장을 펴는 사람이 많아졌어요.
하지만 나는 그런 사람과 의견이 다르니 염려 말아요. 하하하..."
"고마워요. 우리 서로가 이웃 나라의 역사를 존중해주는 것도 필요한일이지요."
난 양안씨에게 다짐을 하듯이 말했다.
"우리는 그 유물을 찾으면 국립박물관에 기증하기로 했어요.
우리는 개인의 욕심 없이 유물을 찾는 것이니 양안씨도 그 점은 양해해주시기 바래요."
"그래요. 그 점은 염려하지 말아요."
"고마워요."
양안씨의 시원한 대답에 마음이 놓였다. 봄이도 우리의 대화에 환한 미소를 보였다.
5명이서 눈을 반짝이며 살펴봤지만 은선 폭포는 우리에게 아무런 단서도 주지 않았고,
일단 우리는 봄이의 집으로 철수를 했고 어둠이 내리기를 기다려 새벽 1시에 출발하기로 했다.
봄이가 미워죽겠다. 할 수만 있다면 입술로 디지게 패주고 싶다. 어디를? 그야 봄이 입술을 집중적으로...ㅎㅎㅎ
죄목은 요리를 너무 잘하는 것.. 정말 왜 이리 요리를 잘하는 거야?
그 바람에 저녁을 많이 먹어 배가 너무 불러서 숨도 못 쉬겠다. 도저히 그냥 있을 수가 없었다.
동네라도 한바퀴 돌아야겠다 싶어 문을 나섰다가 갑자기 조인호 할아버지가 생각났고 재민이도 생각났다.
슈퍼에서 과자와 음료수 등을 사서 재민이네 집에 갔다.
"안녕하세요? 그동안 별고 없으셨죠?"
"그래요. 어서와요." 재민이 아버님이 날 알아보시며 인사를 받으신다.
"그때 할아버님의 편지로 너무 큰 도움을 받았기에 감사의 말씀 전하려고 들렸어요."
"마침 잘 왔어요. 아버님께서 그때 그 봉투를 제게 맡길 때 2개를 주셨어요.
봉투 한 개를 먼저주고 다음에 고맙다는 말을 전하려오면 그때 나머지봉투도 주라고 하셨어요.
이게 바로 두 번 째 봉투예요."
난 어리둥절하며 봉투를 열어봤다. 거기에는........
집으로 들어오니 봄이와 양안씨는 등산장비 마무리 점검하고 있고
민혁이 형은 거실에서 역사서적을 보고 있고 진영이는 피곤했는지 쇼파에서 자고 있다.
"음.... 지금 시간이 11시니까 새벽 1시까지는 2시간 남았구나."
장비 중에는 작은 비닐 보트도 있다. 어린아이 두 명이 타면 꽉 찰 정도의 작은 보트였는데
바람을 넣은 후 새는 곳이 있나 점검중이다.
난 웃으며 봄이에게 물었다.
"이것도 필요한거야?"
"그럼요... 나중에 알게 될 테니 그때 보세요."
"..........????"
"호호호..."
하늘엔 별이 반짝이며 우리의 행보를 응원하고 밝은 달에서 들리는 옥토끼의 절구 찧는 소리가
은선 폭포로의 행진을 독려하는 북소리인양 우리의 발걸음에 힘을 실어주었다.
요 며칠 비가오지 않아 다행히 폭포수의 양이 적었으나 은선 폭포는 그리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폭포연못에 도착하자 양안씨는 비닐보트에 바람을 넣고 보트 앞뒤에 로프를 맨다.
연못에 띄운 보트에 장비를 실고 보트에 엎드리더니 한쪽 로프를 진영이에게 건네주고
살살 조금씩 풀어 달라하고 노를 저어서 보트를 폭포로 다가간다.
폭포 옆에 도착한 양안씨는 보트 앞에 묶은 로프를 살살 풀면서 말한다.
"진영씨 그 로프 잡아당기세요. 그리고 보트에 타세요."
그랬다. 진영이가 보트에 엎드리자 양안씨가 로프를 당겼고 우리는 쉽게 폭포로 이동할 수 있었다.
우리 "고사모"회원은 양안씨 덕에 힘들이지 않고 연못을 건널 수 있었다.
다행이 폭포 옆에 우리 모두가 서있을 공간이 있었다.
먼저 양안씨가 로프를 메고 암벽을 오른다.
코퍼헤드와 프렌드를 사용하며 조금씩 암벽을 오르고 있다.
잠시 후 폭포 정상에 오른 양안씨는 줄사다리 5개를 적당한 간격으로 암벽 아래로 내려트렸고
우리 5명은 그 줄사다리를 타고 한발씩 폭포 암벽을 오르며 눈으로.. 손으로..
그리고 망치로 두드리며 은선 폭포 암벽을 조사했다.
나와 진영이는 폭포수가 떨어지는 곳을 책임졌고 떨어지는 물의 양이 적은데도
그 충격은 만만치 않았지만 그보다도 한여름의 폭포수도 온몸이 짜릿하게 차가운데
10월말 새벽의 폭포수는 너무 고통스러웠다. 그런데 한 가지 다행인 것은
봄이가 우리 모두를 위해 미리 준비해준 우비와 주머니난로가 있다는 것이다.
암벽 여기저기를 살피며 망치로 두드려 보기도 하고 천천히 암벽을 오르는데
갑자기 무엇인가 떨어져 내 머리에 부딪히고 발밑으로 떨어진다.
아프지는 않았지만 놀라기도 했고 짜증이 나서 소리를 지르며 고개를 들어보니..
순간 뭔가가 입에 쑥 들어온다.
"야~~~ 뭐야~~~아~~~.....윽.."
입안 가득 비릿한 내음이 전해온다.
입안에 들어온 것을 손에 뱉어서 자세히 보니.... 그것은 붕어였다...참내...
폭포위에서 놀던 붕어가 새벽이라 잠시 졸다가 물에 휩쓸려 내 머리로 떨어진 것이었다.
옆의 사다리에서 암벽을 살피다가 내가 소리치는 바람에 무슨 일인가 나를 바라보던
"고사모"회원들이 내가 붕어를 물고 있는 모습에 다들 쓰러질듯이 웃는다.
"하하하...호호호...히히히..."
봄이도 한마디 거든다.
"재형오빠! 꼭 붕어빵 먹는 것 같아요...호호호..."
"못살아...." 나도 어이가 없어서 한참을 웃었다. 하하하...
벌써 3번째다. 서로 자리를 바꿔가며 암벽을 살펴봤지만 특별한 단서를 찾지 못했다. 어느덧 동이 터온다.
벌써 등산로를 걷는 사람들의 모습이 희미하게 보인다. 결국 우린 암벽에선 아무것도 찾지 못했다.
"민혁이 형! 오늘은 일단 철수해야겠네요. 좀 있으면 등산객이 관리소에 신고하겠어요."
"그래 오늘은 이만 철수하자. 더 있다가는 잡혀가겠다. 하하하..."
비록 고단함에 비해 소득은 없었지만 우린 즐거운 마음으로 철수를 했다.
우리에게는 또 다른 탐사 계획... 폭포연못과 폭포 옆의 동굴탐사가 있지 않은가...
봄이네 집에 도착하니 긴장이 풀려서인지 너무 피곤하다.
꼬박 날을 샌 탓에 눈을 좀 붙여야겠는데 여기서 자는 것은 지나친 폐를 끼치는 것 같다.
그렇다고 이 상태로 운전을 하고 김제로 가는 것도 무리여서 고민 끝에 공주시내로 나가 찜질 방으로 가기로 했다.
고사모 회원 5명 모두 함께 간곳은 공주에서 제일 시설이 좋다는 "계룡사우나타운" 이었다.
지하 : 주차장
1 층 : 머드팩과 자외선선탠
2 층 : 여자목욕탕
3 층 : 남녀공용찜질방
4 층 : 남자 목욕탕
5 층 : 헬스장
시골답지 않게 시설이 훌륭했다. 국립공원 계룡산이기에 등산객이 많은 탓인가 보다.
샤워를 하고 산소 방으로 가서 일단 잠을 잤다.
3층 찜질 방으로 갔다. 둘러보니 중앙 홀을 중심으로 옥돌방, 자수정방, 황토방, 참숯방, 얼음방, 모래방..등이 있다.
자수정 방이 마음에 들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잉? 사람들 틈에 봄이가 있는 거였다.
봄이는 눈이 토끼처럼 빨갛고 얼굴엔 땀을 많이 흘려서인지 꼭 우는 것 같았다.
"울었어? 그새 나보고 싶어서 울은 거야?"
".............."
".............."
농담으로 물어본 말인데 정말 울었나보다. 순간 할말이 없없다.
"무슨 일 있어? 왜 그래..."
"아니 예요.... 갑자기 엄마 생각이 나서요."
그러고 보니 봄이 아버지가 고고학자라는 말은 들었는데 어머니 이야기는 한번도 못 들었었다.
"엄마 보고 싶어서 그래? 그럼 시간 내서 중국에 한번 다녀와."
"................"
"일단 여기서 나가면 전화 먼저 하자...응?"
"우리 엄마 하늘에 계시는데 어떻게 전화해..." 봄이 얼굴에 눈물이 주르륵 흐른다.
"응?..... 그랬구나...미안해 몰랐어..."
봄이의 어머니는 하늘에 계신단다.
"불쌍한 봄이.. 얼마나 마음에 상처가 클까?..."
그때 양안씨가 왔다.
"춘앵이 또 엄마 생각 했구나?"
"..........." 봄이는 눈물을 닦고 감정을 추스린다.
난 봄이에게서 떨어지며 말했다.
"미안해요. 내가 먼저 물어보는 바람에..."
"춘앵이가 너무 마음이 여려서 탈 이예요."
잠시 후 우리는 찜질방을 나와 시내에서 점심을 먹으며 다음엔 폭포의 연못을 탐사하기로 하고 헤어졌다.
<2003년 11월 15일 토요일>
우린 다시 학봉리에 왔다. 그동안 탐사 날짜를 계속 조정해 봤지만 서로의 시간이 맞지않아
오늘에서야 우리 "고사모"회원들이 다시 모였고 새벽 1시에 짐을 챙겨서 폭포로 출발했다.
스쿠버장비까지 가지고 산을 오르려니 좀 벅찼지만 어쩔 수 없었다.
양안씨와 봄이는 스쿠버 경험이 없는 상태라 진영이와 양안씨가 1조, 봄이와 내가 2조,
그리고 민혁이 형은 혼자 하기로 했다.
준비를 마치고 양안씨와 진영이가 먼저 물에 들어갔다. 30분씩 교대로 탐사를 하기로 했다.
11월 중순의 산속은 너무 추웠다.
잠수복을 입고 그 위에 오리털 파카와 솜바지로 무장을 했으니 망정이지 사실 한겨울날씨였다.
"봄이야... 안 추워?"
"네.. 오빠는요?"
"난 추워죽겠어 나 좀 안아주라."
"어머나? 어머나?" 봄이의 동그란 눈이 참 귀엽다.
옆에서 우리를 보고 있던 민혁이 형이 고함을 친다.
"야~~ 니네 노는 꼴 못 봐주겠다. 에잇! 물속이나 들어가야지... 하하하"
민혁이 형마저 물속에 들어가고 이제는 봄이와 둘이만 남았다.
"봄아.. 고마워...
"뭐가요?"
"내가 존재하는 이곳에 나타나줘서.. 고마워"
"피~~~"
난 가방 속에서 편지를 꺼내 봄이에게 줬다.
"뭐예요?"
"음... 연애편지야...읽어봐."
봄이는 시를 읊듯이 낭랑한 목소리로 내 편지를 읽어 내려간다.
"내 마음에 작은 이슬방울의 모습으로 들어와
내 마음의 기울기에 따라 이리 저리 조리 굴러다니며
내 마음을 핑크빛으로 물들여버린 그대...
내 마음이 당신이 된지 오래 이고
내 마음은 이제 그대를 가슴깊이 가두려합니다.
내 마음도 당신이 가져가 주시길...."
내가 준 편지를 읽은 봄이의 얼굴에 화사한 미소가 번지고 붉은 홍조로 두 뺨이 불그스레하다.
"봄이야.. 나 머리 아픈 문제 하나있어. 정말큰일이야."
"갑자기 무슨 말 이예요? 무슨 일 있어요?"
"응 사실은... 그것 때문에 봄이에게 부탁이 하나있는데... 들어줄 거야?"
"뭔데요?"
"처음엔 이렇게까지 증세가 심각하지 않았는데 요즘은 증세가 아주 심해졌어."
"어서 말해 봐요."
"봄이 마음속을 내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는 열쇠가 필요해. 나에게 줄 수 있어?"
봄이가 막 입을 열려는 순간 민혁이 형이 연못에서 나왔다.
"와... 이 연못 정말 대단하다. 평범한 연못처럼 보이는데 오른쪽에 동굴이 하나 있거든?
동굴로 7미터쯤 들어가면 약간 넓은 수중지하광장이 나오는데
그곳에서 사방으로 9개의 불규칙한 동굴이 있고 그 동굴들은 상상외로 깊고 미로같이 복잡해서
지금 진영이와 양안씨가 살피고 있는데 재형이 너도 가봐야겠다.
진영이 혼자 살피기는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릴 것 같아."
난 아쉬움을 뒤로하고 일어나며 말했다.
"그래요? 그런 미로가 있을 줄은 몰랐네요. 어서 가보죠."
"저도 같이 가요." 봄이도 따라나선다.
물속은 칠흑같이 어두웠지만 헬멧용 랜턴 덕에 시야는 좋은 편 이었다.
민혁이 형을 따라서 가다보니 오른쪽에 지름이 1미터정도 되는 동굴이 보였다.
민혁이 형은 그곳을 가리키더니 먼저 동굴로 들어간다. 나도 봄이에게 따라오라는 손짓을 하고 동굴로 들어섰다.
굴은 4미터정도에서 다시 한번 왼쪽으로 꺽여 있었다. 곧이어 제법 넓은 지하광장이 나왔고 양안씨가 우리를 반긴다.
우리가 도착하자 진영이가 정면에 있는 굴속에서 나왔다. 동굴의 개수를 살펴보니 9개였다.
진영이가 이미 동굴 3개는 살펴봤는데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단다. 그럼 6개 남았다.
양안씨와 진영이가 같이하고 봄이는 광장에 있게 하고 민혁이 형과 내가 같은 조로 동굴을 살펴보기로 했다.
동굴은 오르락내리락 매우 불규칙했다. 수중동굴이라서 헤엄쳐 나가기에 힘들지 않았지만
만일 일반 동굴이었다면 탐사하기가 무척 힘들었을 것 같다.
동굴은 여러 갈래로 나뉘어져 탐사하는데 많은 시간이 소비되었고
동굴에서 돌아 나오며 다시 한번 구석구석을 살펴봤는데 별 다른 점을 찾지 못했다.
광장에 도착했는데 아무도 없었다.
(봄이는 어디 간 거지? 혼자 있기 무서워서 양안씨 따라갔나?)
우린 다음 동굴로 들어갔다. 이번엔 민혁이 형이 앞서간다. 그런데 이 동굴은 짧았다.
10여 미터를 가니 막혀있다. 앞서가던 민혁이 형이 어깨를 으쓱하고 민망해한다.
다시 돌아 나왔다. 마침 다른 동굴에서 진영이와 양인씨도 나온다. 그런데 봄이가 또 안 보인다.
다들 봄이의 행방을 모른다는 표정이다.
이제 남은 동굴은 하나.. 일단 진영이가 밖으로 나가 봄이를 찾아보기로 하고 폭포 쪽으로 나갔고
양안씨가 광장에서 기다리기로 하고 나와 민혁이 형은 마지막 동굴로 들어갔다.
이 동굴은 다른 곳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다른 동굴은 자연 상태였는데 이곳은 인공의 흔적들이 보였다.
동굴내부 여러 곳이 정으로 손질한 흔적도 보이고 일부러 미로같이 만들은 놓은 것 같았다.
민혁이 형이 화들짝 놀라며 나를 흔든다. 형이 가리키는 곳을 보니 동굴 안쪽에서 희미한 불빛이 보였다.
"잉? 저게 뭐야?" 형과 나는 긴장했다.
불빛이 점점 밝아진다. 갑자기 공포가 밀려온다.
형과 나는 눈빛을 교환했고 걸음아 .. 아니 오리발아 나 살려라하며 동굴을 뛰쳐나왔다.
광장에는 진영이와 양안씨 둘 다 있었고 허겁지겁 동굴을 나온 우리를 의아하게 바라보았다.
여럿이 있으니 좀 안심이 되었다. 모두에게 동굴을 지켜보라고 한 후 잠시 기다려보니
동굴 속에서 불빛이 보이더니 우리가 있는 곳으로 나왔다. 그 빛의 정체는 봄이었다.
"휴~~~" 난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봄이는 그 동굴에도 아무이상 없다고 손짓을 했고 우린 폭포 쪽으로 나갔다.
물 밖을 나와서 양안씨가 봄이를 나무랐다.
"춘앵이 너 대체 뭐하는 짓이야. 물속은 비상사태가 바로 생명과 연결되기에
남자들도 두 명이 함께 다니는데 왜 바보짓을 한거야?"
"미안해요. 동굴로 예쁜 금붕어가 들어가기에 그만..."
"이곳에 무슨 금붕어야!"
"정말 이예요. 조금 들어가니 금붕어가 많이 있었고 그 금붕어 떼에게 홀리듯 따라갔어요.
우리는 양안씨를 말렸다.
"이제 그만 해요. 봄이씨가 잘못한건 사실이지만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거예요?
어서 내려갑시다."
짐을 챙겨 산을 내려가는데 눈발이 내린다. 적은 양이기는 했지만 첫눈이다.
올해는 예년에 비해 15일이나 빠른 눈이었다. 벌써 겨울이 왔나보다.
진영이가 답답한 듯이 볼멘소리로 말한다.
"그럼 폭포도.. 연못도.. 아니라는 거야? 이거 너무 힘들다."
민혁이 형이 진영이 어깨를 두드리며 이야기한다.
"그래도 아직 한군데 남았잖아. 폭포 옆 동굴.."
"그렇긴 한데 왠지 자신이 없어 지내요."
그래 나도 사실 진영이와 같은 생각이다.
우리가 과연 그 신물을 찾을 수 있을까 회의감이 들기도 한다.
은선 폭포라는 것을 안지 한참이 지났건만 도무지 진도가 나가지 않으니 답답하다.
그래 아직 폭포 옆 동굴이 남아있으니 희망을 버리지 말자.
오늘은 자난 번 폭포에서의 탐사보다 피곤하지는 않다.
그날은 암벽에 매달려 폭포수를 맞다보니 몸도 얼고 근육도 아팠는데
오늘은 수중에서 헤엄만 친 탓에 별로 피곤하지 않아 김제로 출발했다.
<2003년 11월 17일 월요일>
벽골제에도 밤새 눈이 많이 내렸다.
눈이 많이 와야 다음해 농사가 풍년이라는데 올해는 눈이 많이 올 모양이다.
마을아이들이 비료 포대를 갖고 제방에서 눈썰매를 탄다. 나도 가끔 비료 포대로 미끄럼을 타보는데,
백구면에 있는 눈썰매장보다 길이는 짧지만 어릴 때 추억도 나고 재미있다.
단지 내를 둘러보니 젊은 연인들이 제법 있다.
눈이 세상을 하얗게 덮은 벽골제는 연인들의 데이트코스로 딱 이다.
눈 덮인 벽골제는 사진 찍기도 좋아 신혼부부들의 야회촬영지로도 이미 소문난 곳이기도 하다
단야연못, 물레방아, 단야루, 제방, 꽃터널...등 고풍스러운 시설물과
현대식의 시설물이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고 있기에 전주 덕진공원 못지않은 웨딩촬영지이다.
오늘도 여러 쌍의 야회촬영이 진행되고 있었다.
"나는 언제 저런 사진 찍어보나?" 갑자기 봄이가 보고 싶다.
단지 내를 둘러보고 사무실로 들어왔다. 컴 모니터에 떠있는 글씨... 메일이 도착했습니다.
봄이에게서 메일이 왔다.
"어제 혼자 동굴에 들어가 놀라게 해서 미안해요.
혼자 광장에서 기다리는데 심심하기도하고 따분해서 물고기를 구경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점을 발견했어요.
9개의 동굴 중 한곳에서만 금붕어가 들락거리는 거예요.
어두워서 잘 안보이기에 가까이 다가갔죠.
그러자 금붕어는 동굴 안으로 깊숙이 도망치는 거예요.
처음엔 그냥 동굴입구에서만 바라보고 있었어요.
그런데 잠시 후 20여 마리의 금붕어 떼가 이쪽으로 나오다가
나를 발견하고 방향을 틀어 돌아가는데 난 놀라움을 금치 못했어요.
tv에서만 보던 아름다운 물고기 떼의 방향전환을 본 것 이예요.
내 헬멧 랜턴 때문에 반짝 반짝 빛을 반사하며 유영을 하는
금붕어 떼의 아름다운모습에 난 반해버렸어요.
그래서... 그만....
걱정하게 해서 미안해요. 조심할게요.
................"
봄이의 메일을 읽다보니
예전에 은선 폭포 옆 동굴 지하호수에 금붕어를 풀어놓았던 일이 생각났다.
그렇다면 혹시 그 곳이 서로 연결되어있지는 않을까?
금붕어라.... 정말 그곳이 서로 연결되어 있을까?
동굴을 살폈어도 이상한점을 발견하지 못한 것을 보면, 그렇지 아닌 것도 같고...
혹시 연결통로가 작고 좁아서 발견 못한 건 아닐까?
만일 연결이 되어있다 하더라도 물고기만 다닐 정도로 틈이 작을지도 모르지...
일단 며칠 후.. 약속한대로 폭포 옆의 동굴을 탐사해보면 뭔가 나오겠지.
하지만 며칠 동안 연락을 하며 탐사 날짜를 조율을 해보려했으나 날짜를 맞추기가 어려웠다.
폭포옆 동굴이 사람들의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이긴 하지만 여러 사람이 장비를 들고 이동하면
틀림없이 관리소직원들이나 관람객들의 눈에 보일 수밖에 없는지라 밤에 탐사해야만 했다.
토요일로 맞추려했으나 도무지 서로의 시간이 맞지 않았다.
그러던 중...
<2003년 11월 29일 토요일>
봄이와 둘이서만 은선 폭포 옆 동굴에 가기로 했다.
물론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둘이서 데이트 겸 탐사를 하기로 한 것이다.
마침 양안씨는 중국에서 친구가 온다하여 인천공항에 갔고 월요일 오후에나 온다했다.
봄이랑 저녁식사를 마치고나니 8시쯤 되었다. 그런데 커다란 집에 둘이서 있다보니 좀 어색했다.
"봄이야 우리 상대방 이름으로 삼행시 쓰기 해볼까?"
봄이도 어색함을 느꼈는지 바로 동의를 했다.
"그래요. 상대방 이름으로 쓰는 거예요?"
"응!"
우리 둘이는 뒤로 돌아서 삼행시를 쓰기 시작했다.
잠시 후.. 우린 서로의 글을 보여줬다.
"진 : 진심으로 하늘에 감사드립니다...
춘 : 춘(春)삼월 꽃샘추위에 외로이 떨다가...
앵 : 앵두같이 상큼한 당신을 만나 너무 행복합니다..."
"정 : 정들어서 어찌하리...
재 : 재 너머에 기다리는 것은...
형 : 형형색색의 영롱함이 아닌, 가슴시린 아픔일진데..."
"봄아~ 봄이 글은 너무 슬프다."
"오빠 글은 너무 예쁘네요. 우리 다시해요. 이번엔 뭘로 할까요?"
"음.. 이번엔 봄이가 정해봐."
"그럼.... "당신의 수호천사로 살고자 하오"로 해볼까요?"
"잉? 너무 길잖아.... 좋아 해보자. 의미도 있고... "
다시 잠시 후....서로의 글을 보여줬다.
내가 쓴 글...
"당 : 당황했던 관음봉에서의 첫 만남으로
신 : 신비로운 한 여인을 가슴에 담게 된 후
의 : 의미 없이 지내온 외로운 시간을
수 : 수줍게 벗어 버리려 합니다.
호 : 호 접 란의 향기 찾아
천 : 천 리 길 떨어져있을지도 모를
사 : 사랑을 찾아
로 : 로망스의 리듬을 타고
살 : 살랑대는 바람결을 이 몸을 실어봅니다.
고 : 고즈넉한 이 시간
자 : 자꾸 내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여인이 있습니다.
하 : 하늘이 지정해준 나의 소중한 배필이
오 : 오늘 이 시간을 함께하는 여인이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오빠 글 잘 쓴다."
"잘 쓰기는 뭐...봄이 것도 보여줘 봐."
봄이가 쓴 글...
"당 : 당췌 궁금해 죽겠어요.
신 : 신데렐라는 왕자님 앞에다
의 : 의식적으로
수 : 수정 구두를 벗어두고 왔을까요?
호 : 호박으로 마차를 만들어준
천 : 천사는 왕자님과의
사 : 사랑이 이루어질 줄 알고 있었을까요?
로 : 로마가 신데렐라가
살 : 살았던 곳 인가요?
고 : 고민도 해보고
자 : 자료를
하 : 하루 종일 찾아봐도 당췌 모르겠어요.
오 : 오빠가 오늘 알려주세요. 네?
"잉?...끝내 장난 칠거야?"
"호호호...미안해요. 근데 오늘 정말 알려주세요. 호호호..."
어느덧 밤 11시가 되었고 출발 준비를 마쳤다. 하지만 공기통 두개를 짊어지고 갈 생각을 하니 꿈만 같았다.
공기통을 바라보며 나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다.
"휴~~~"
봄이가 나를 보더니 걱정스러운 듯 말한다.
"그럼 하나만 가져가서 교대로 사용해요."
"아니야 그건 너무 위험해.. 둘이 들어가서 하나가 이상 있을 때 하나로 같이 쓰는 거지
하나만 가지고 물속에 들어가서 만일 그 통이 이상이 발생하면 둘 다 위험해지잖아"
"그렇군요. 몰랐어요."
"이걸 어떻게 한다?" 궁리를 해봤지만 딱히 떠오르는 방법이 없었다.
하는 수없이 공기통 두개를 묶어 등에 메고 출발을 하였다. 너무 무거웠다.
그런데 동네 골목 모퉁이를 막 도는데 쓰레기 모아 두는 곳에 버려진 작은 리어카가 보였다.
"그래 바로 저것이야."
리어카를 살펴보니 바퀴엔 이상이 없었다. 봄이와 난 서로 얼굴을 보며 웃었다.
"우리 지금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거지?"
"네...호호호"
우린 리어카를 끌고 집으로 다시 왔고,
간단히 손을 봐서 공기통을 리어카에 올려 고정시키고 어깨에 걸 수 있도록 끈을 맸다.
다시 출발을 했다. 내가 앞에서 끌고 뒤에서 봄이가 밀고... 운반하기가 훨씬 수월해졌다.
"봄아 안 밀어도 되겠어. 앞으로와 같이 걷자."
"힘들지 않아요?"
"이정도야 뭐...하하하"
비록 춥긴 했지만 별도 달도 밝은 구름한점 없는 날이다.
봄이가 심각하게 말을 건넨다.
"저.. 할말이 있는데요."
"응? 뭔데?"
"저........"
" 말하기 어려운거야?"
".................."
"설마.. 진영이를 사랑한다는 말은 아니지?"
"어머나? 어머나?"
"하하하...농담이야... 하하하..."
봄이가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일까? 무척이나 뜸을 드리는 것이 별로 좋은 느낌은 아니다.
"혹시 읍참마속(泣斬馬謖) 아세요?"
"알지... 울면서 마속의 목을 벤다는 이야기,
큰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애석하지만 자기가 아끼는 자를 버리는 일을 비유하는 뜻으로
중국 촉(蜀)나라의 제갈공명(諸葛孔明)이 유비(劉備)가 사망한 후 숙적인 위(魏)나라를 쳤으나,
가정(街亭)의 싸움에서 군령을 어겨 대패한 부장 마속을 지난날의 전공과 개인적 친분에도 불구하고
울면서 마속을 참형(斬刑)에 처하여 전군의 각성을 촉구했다는 고사 말이지?"
"네.. 만일 오빠가 그 당시 제갈공명 이었다면 어떻게 했을 것 같아요?"
"음... 너무 어렵다."
"정말 아끼는 사람이라면 결정하기가 어려울 것 같아."
봄이는 재차 강조하듯이 물어본다.
"잘 생각해 보세요. 개인의 일이라면 내가 양보하고, 내가 손해보고 하겠지만
목숨이 오고가고 국가의 존망이 걸려있는 전쟁터라면 오빠는 어찌해야할 것 같아요?"
"그런 상황이라면... 정말로 뜨거운 눈물을 흘리면서 목을 베야겠지...."
"그래요.. 그게 정답 이예요."
"아니... 그런데 왜 그런 것을 물어보는 거야?"
"아니 예요 그냥..............."
잠깐 생각하는듯하더니 무슨 말을 하려다 그만둔다.
"이야기하다 보니 어느덧 폭포에 다 왔네요."
"으..응....."
은선 폭포에 도착한 우리는 그 옆 동굴로 가기위해 경사진 암벽을 올랐다.
경사는 그리 심한 편은 아니었지만 넝쿨 식물이 빼곡하여 진행이 쉽지 않았고
좁은 바위틈을 몇 미터 들어가야 동굴입구가 보이는 상태라서
동굴의 입구를 찾기도 어려웠지만 설사 찾았다 하더라도 입구에서 3~4 미터정도 들어간 후에는
지하로 15미터정도 낭떠러지라서 특별한 장비가 없으면 탐사하기가 어려워서 인적이 없을 수밖에 없었다.
공기통을 비롯한 장비를 하나씩 동굴에 옮기고 탐사 준비를 하기 시작 했다.
나는 스쿠버에 미숙한 봄이의 장비를 점검해주었다.
(모자, 헬멧랜턴, 물안경, 스노클, 호흡기, 부력조절용공기주입기, 비상용호흡기,
공기잔압계수심계, 부력조절기, 장갑, 웨이트벨트, 칼, 버선, 오리발...등)
나도 준비를 했고 점검 확인이 끝난 후 굴속으로 들어가 줄사다리를 낭떠러지에 내려트렸다.
"봄이야 나를 따라서 서서히 내려와.
그리고 제일 중요한 것은 내 곁에서 1미터이상 떨어지지 마. 알겠지?"
"네..."
봄이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줄사다리를 내려와 지하호수로 들어갔다. 지하수라서 물이 참 맑고 깨끗하다.
지하호수의 깊이는 대략 5미터정도인데 일정하지가 않았고 넓이는 30미터정도 되는 것 같았다.
물속에 들어가자마자 우리를 반겨주는 것은 금붕어의 환상적인 쇼였다.
예전에 화금[和金]붕어를 50여 마리 풀어두었는데 지금은 그 개체수가 많이 늘어나서 너무도 아름답다.
지하호수는 참으로 아름다웠다. 금붕어 떼의 유영 때문이기도 했지만
물을 보듬고 있는 동굴 벽 자체가 모양도 색도 참으로 아름답고 황홀했다.
우린손을 잡고 지하호수 구석구석을 살폈다. 아니.. 그 아름다움을 감상했다.
비록 잠수복을 입었지만 "수중발레" 흉내도 내며 우리도 나름대로 아름다움의 일부분을 담당했다.
호수는 동굴의 낮은 지대에 지하수가 고여 있는 상태여서 미로와 같이 불규칙한 모습이었다.
여러 갈래로 갈라진 통로를 둘이서 모두 탐사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물이 고여 있는 것이 아니라 어느 한쪽으로 흐르는 것 같았다.
가만히 멈춰서 물의 흐름을 느껴보았다. 유속이 빠르지는 않았지만 흐름은 일정했다.
"그렇지 고여 있는 물은 썩는 법인데 이물은 맑고 깨끗하지 않은가?"
우린 물이 유입되는 곳을 찾아가보기로 했다. 그곳은 지름 2미터 정도 되는 작은 굴이었다.
잠시 망설였지만 우린 굴속으로 헤엄쳐 들어갔다.
너무나 동굴 깊숙이 들어가는 것 아닌가 두렵기도 했지만 우리의 탐사의욕을 막지는 못했다.
그런데 굴은 생각 외로 짧았으며 위쪽으로 향해있었고 잠시 후 우린 물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수중동굴인지라 물속을 통해 좀더 높은 지대로 오르다보니 수면 밖으로 나오게 되었던 것이다.
"아~~"
그곳은 또 다른 세상이었다. 천장의 높이는 3미터 정도이고 지름이 5미터 정도의 작은방이었다.
사방이 막혀있는 상태이고 한쪽 돌 틈에서 샘물처럼 지하수가 콸~콸~ 솟구쳐 나와서
방금 우리가 올라온 물웅덩이로 흘러가고 있었다.
너무도 아늑하고 신비한 분위기였다.
"봄아 이방 맘에 들어? 널 위해 준비했어. 이방의 이름은 "행복의방" 이야."
"와~~ 너무 멋있어요." 봄이도 이 방(?)이 맘에 드는 모양이다.
우린 장비를 벗고 편안하게 앉았다. 그리고 더 이상 진행할 곳도 없고 밀폐된 곳이라서
산소가 부족할 것 같은 느낌에 공기의양을 확인한 후 공기통을 살짝 열어두었다.
그런데 이상하다. 굴속이 생각보다 밝은 것이다.
자세히 살펴보니 동굴암벽 몇 군데가 거울처럼 가공되어 작은 빛에도 반사가 잘되어서
봄이와 나의 랜턴만으로도 방전체가 환했고 촛불을 여러 개 켜놓은 것 같은 효과를 내고 있다.
"누가 이런 곳에 이런 방을 만들었을까요? 아... 그래 연개소문..."
(이런 바보.. 분위기에 취해 목적을 잊다니.....)
"봄이의 말이 맞다. 연개소문... 그럼 우리가 고주몽 신물에 가까이 온 것 같은데.."
우린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동굴 구석구석을 확인했다.
눈으로 살피고 손으로 만져보고 두드려보고 귀로 들어보고... 그러다 서로 부딪혀 넘어졌다.
그런데... 넘어진 자세가
봄이가 내 몸 위에 올라와 입을 맞추고 있는 민망한 포즈가 되고 말았다.
순간 그녀의 상큼한 향기가 내 코를 자극하고 촉촉이 젖은 봄이의 입술이 참으로 부드럽다.
당황해서 이 상황을 어찌해야할지 망설이는데 봄이가 날 밀쳐내며 말한다.
"아직은 안 돼요."
"아직은???"
그런데 봄이의 입김이 내 얼굴에 느껴지는 순간 잠잠한 내 가슴이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고
난 봄이의 허리를 안고 자세를 바꿔 봄이 입술에 다시 내입을 맞췄고 뿌리치는 봄이를 놓아주지 않았다.
잠시 후 나는 봄이를 놓아주었고 어색한 시간이 흘렀다.
난 봄이의 두 손을 마주잡고 말했다.
"봄아 이런 시간이 오기를 너무 기다려왔어"
"........................."
"봄아 사랑해..." 라고 말하며
봄이를 안으려하는데 봄이가 나를 다시 살짝 밀쳐낸다. 그때 난 어이없게도 스텝이 꼬여
벽에 부딪히며 넘어지고 말았다. 그런데 물이 샘솟던 그 벽이 힘없이 무너지는 것이 아닌가?
우린 너무 놀라 무너진 벽으로 다가서보니 또 다른 동굴이 있는 것이었다.
봄이와 난 서로 얼굴을 보며 서로의 의견을 물어보려는데 삑~ 삑~ 삑~ 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차... 그 소리는 공기통에서 나는 소리였다. 아까 살짝 열어둔 공기통의 공기가 다 떨어진 것이다.
뽀뽀시간이 예상 밖으로 길었던 것이다. 공기통 하나로 탐사하는 것은 너무도 위험했다.
결국 우린 아쉬움을 뒤로하고 서둘러 철수를 했다. 공기통 한 개로 둘이서 교대로 호흡하며....
동굴 밖으로 나와 봄이의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봄이는 내 시선을 자꾸 피했지만 난 너무 행복했다.
"봄이야~ 2003년 11월의 마지막 날인 오늘은 절대로 잊기 못할 거야."
"계속 할거예요? 브끄럽게?" 봄이가 눈을 살짝 흘기며 말한다.
"하하하... 미안..."
<2003년 12월 1일 월요일>
벽골제 제방 장생거 옆에 세 사람이 모여 있다. 그들은 다름 아닌 민혁, 재형, 진영이였다.
"민혁이 형? 지금까지 내가 한말 어떻게 생각해요?"
민혁이 형은 뭔가를 곰곰이 생각하고 있고 진영이가 끼어든다.
"우리를 떼어 놓고 간 것은 쓰레빠로 디지게 패도 분이 안 풀리겠지만
그런 결정적인 단서를 발견해온 것을 봐서 한번은 눈 감아 줄게요."
"그래 정말 결정적인 단서다. 이제 곧 뭔가 발견할 것 같은데...
재형이 네가 양안씨에게 연락을 취해서 날을 잡아 봐라."
"그래요. 알았어요. 근데 나 용서해 주는 거죠?"
"용서는 뭐.. 오히려 칭찬해줘야지, 우리랑 같이 갔으면 벽이 무너졌겠어?"
"아이고... 하하하"
점심 먹고 봄이에게 전화를 했다.
"오빠 인천에서 도착했어?"
"아직요..."
"오늘 온다고 했지?"
"인천에서 친구를 만났는데 일이 있어서 중국에 잠시 다녀와야 한다고 하던데요?"
"그럼 어떡하지? 민혁이 형이랑 진영이는 빨리 날을 잡자고 하는데..."
"이번 일요일 오후까지는 온다고 했으니 좀 기다려줄 수 없을까요?"
"이번 주말에 못가면 2주후에나 갈 수 있는데 너무 늦잖아."
"꼭 토요일로 고집할 이유가 없잖아요. 다음날 피곤해도 주중에 날을 잡아서 탐사해요."
"음... 그래 일단 이번 주까지는 기다릴게. "
"고마워요. 양안오빠도 이번 탐사에 꼭 끼워달라고, 오빠에게 전해달라고 했어요."
"응... 알았어. 그리고 참 뭐 먹고 싶은 거 있음 말해봐. 다음에 갈 때 사다 줄께."
"별로 생각나는 게 없는데요??
"지금은 없었어도 그동안 먹고 싶었던 것은?"
"음... 그럼요?
오실 적에 휴게소에서 맥반석오징어구이와 고구마튀김 그리고 군밤 사오세요."
"잉? 그걸 다 먹어?"
"피~~~ 말하라 해놓고..."
"알았어. 내일 사가지고 갈께...하하하..."
"아니 예요. 이번 주는 저도 좀 바쁜 것 같아요. 오시지마세요."
"무슨 일인데 그래?"
"나중에 이야기 할게요."
"그래 통화는 할 수 있지?"
"네..."
"?????"
난 봄이의 말에 이상한 느낌이 들었지만 나중에 물어보기로 했다.
<2003년 12월 5일 금요일>
벽골제 단야루 2층에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한 사람이 서있다. 그는 다름 아닌 잘생긴 정재형....ㅎㅎ
그런데 표정이 밝지 않은 것을 보니 무슨 문제가 있나 보다.
그랬다. 며칠이 훌쩍 지나갔다. 이상한일이다. 봄이와의 연락이 되지 않는 것이다.
간혹 통화가 되더라도 바쁘다며 자신이 전화를 해준다고 끊고 연락이 없다.
민혁이 형이랑 진영이가 어찌나 조르는지, 개인적으로도 그렇지만 중간에서 답답하다.
민혁이 형은 좀 덜하지만 진영이는 처음 우리 셋이서 하기로 한 일인데 이제 와서 이게 뭐냐고
나에게 짜증을 내기도하고 그 사람들 역시 고구려의 역사를 빼앗아가려는 중국 사람이지 않냐고도 한다.
갑갑하고 답답해서 어제는 퇴근 후 학봉리를 찾아갔었지만
외출을 했는지 집에 불도 꺼져있고 차속에서 몇 시간을 기다렸지만 그들을 만나지 못했다.
도대체 마지막 단계에 와서 왜 이리 일이 꼬이는지...휴~~~
<2003년 12월 10일 수요일>
메일을 열어보았다. 봄이는 오늘도 메일도 열어보지 않았다. 벌써 5통이다. 5일,6일,7일,8일,9일.
5일 이후부터는 전화도 안 되고 메일도 안 열어보고, 학봉리에 찾아가도 집에 없고, 정말 미치겠다.
이제는 민혁이 형까지 진영이와 같은 마음이라 난 더 이상 기다릴 수가 없었다.
최후통첩 같은 메일을 보냈다.
"봄이야...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참으로 답답하다.
전화도 안 되고 집에 찾아가도 못 만나고...
이제는 더 이상 기다릴 수가 없구나.
이번 토요일, 그러니까 이번 12월 13일 그곳을 탐사를 하기로 결정했다.
혹시 그 안에 이 메일을 보게 된다면 같이 갈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할 수없이 우리끼리 탐사를 하기로 했으니 이해해주기 바란다.
언제까지 마냥 기다릴 수가 없구나. 미안하다.
그리고 오늘도 난 하늘에 기도하련다. 오늘도 우리 봄이 웃음을 잃지 않게 해달라고..."
"휴~~~" 메일을 보내고 나니 한숨이 나온다.
난 봄이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가 염려가 되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이렇게 한숨만 내쉬고 있는 내 자신이 한심하고 바보 같았다.
민혁이 형이 내 어깨를 툭 치며 말을 한다.
"재형아~ 커피 한잔 하자. 이층으로 와라."
"예."
민혁이 형은 이층 휴게실 자판기에서 커피를 마시며 기다리다가 나를 보더니 커피를 뽑아준다.
"기분이 어때?"
"요즘은 재미없네요.
"봄이 씨에게서는 무슨 연락 있어?"
"아니요. 아직 아무런 연락이 없어요."
"혹시... 이상한 생각 안 들어?"
"무슨 생각 요?"
"봄이씨랑 둘이서 그곳을 발견한 후로 왜 갑자기 연락이 않 되냐 이거지..."
난 어째 자꾸 이상한 생각이 드는 거지?"
"설마요..."
"그래 나도 그런 일은 없으면 좋겠어. 당연히 없어야하고..."
"...............(아니야 그럴 리 없어...)"
"재형아 이번 토요일에 출발하는 것으로 준비하자 알았지?"
아무튼 우리는 무슨 일이 있어도 3일후인 12월 13일 토요일 출발하기로 결정을 했다.
<2003년 12월 11일 목요일>
혹시나 하는 마음에 봄이가 이메일을 열어봤는지 확인해봤다.
"야~호~~~"
난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고 사무실에 있던 직원들이 무슨 일인가하며 바라본다.
봄이는 내가 보낸 메일을 열어보았고 내게 메일도 보냈다.
"걱정 많이 했죠?
정말 미안해요.
사실은 전에 엄마에게 이식받은 신장에 이상이 생겨서 서울대학교병원 장기이식센타에 입원했었어요.
그리고 양안오빠가 전화를 하려했는데 제가 말렸어요. 나 때문에 오빠가 걱정하는 것을 원치 않았거든요.
지금도 말을 하면 배가 울려서 많이 아파서 통화하기 어려우니 전화는 내일하세요.
컴 앞에도 겨우 앉아서 메일 보내는 거예요.
박사님말씀이 내일오후부터는 아픈 게 없어진다 했으니 너무 염려 마세요.
참! 토요일 탐사 때는 같이 갈수 있을 거예요. 그럼 그때 뵈요."
나도 메일을 보냈다.
"이상 없다니 다행이야... 하지만
그래도 연락을 해줘야지.. 이게 뭐야.
내가 봄이를 위해서 아무것도 할 수없다는 것이 너무 화가 난다.
봄이가 예쁘니까 이번은 용서해주겠지만 다음에 또 이런 일이 있으면 용서 안 할 거야.
쫓아가서 입술로 기절 할 때까지 팰 거야. 어디를 팰 거냐고?
당연히 봄이 입술을 집중적으로....하하하..
그래 봄이 말대로 할 테니 몸조리 잘하고 토요일에 만나기로 해...안녕..."
<2003년 12월 13일 토요일>
아침 일찍 봄이에게 전화를 했다.
"몸은 좀 어때?"
"이제 멀쩡해요."
"그래도 우리와 함께 탐사하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 아닐까?"
"아니 예요. 양안 오빠도 허락했는데요,,,머"
"그래?"
"자기 동생이 건강이 악화되는 것을 그냥 두고 볼 사람은 없어요. 그러니 같이 가요."
"좋아 그렇다면 다행이지. 일단 집으로 갈 테니 만나서 이야기하자."
오전 근무를 마치고 금산사 I.C 를 통해 호남고속도로에 올랐다.
역시 민혁이 형은 매사에 침착하고 경험도 많았다.
"바쁠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있듯이 오늘은 천천히 가자.
5분 먼저 도착하려다가 만일에 탐사를 못하게 되는 일이 발생하면 낭패잖아."
"진영아 무슨 말인지 알지?
말은 진영이에게 했지만 사실 본인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었다.
지금 우리는 마음이 들뜨고 자꾸 흥분이 되어 침착해질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진영아 휴게소에 한번 들리자. 우리(?) 이쁜 봄이가 맥반석 오징어 사오라고 했거든."
나도 우리의 템포를 한 박자 늦추기 위해 한마디 거들었다.
"그래요. 근데 꼭 우리(?) 이쁜 봄이..라고 해야 되요? 참나 닭살스러워...ㅎㅎ"
"그럼 어떻게? 가슴 깊은 곳에서 자연스레 나오는걸.."
"진영아~ 놔둬라... 우리는 도저히 못 말리겠다.... 하하하"
휴게소에서 그리 오래 쉴 이유는 없었다. 몇 가지 음식을사고 커피한잔을 마시고 출발했다.
멀리 학봉리 마을이 보이고 볼 때마다 멋있는 집, 봄이네의 이층집도 보인다.
"띵동"
"열려있어요. 들어오세요." 양안씨의 목소리가 들린다.
집안에 들어가니 못 보던 남자 두 명이 보인다. 양안씨가 인사를 시켜준다.
"인사들 나누세요. 이쪽은 민혁, 재형, 진영이고 이쪽은 중국에서 온 제 친구 화승(和昇), 청낙(淸諾)이예요."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분위기가 좀 이상했다. 난 눈치를 봐서 봄이에게 살짝 물었다.
"설마.. 이 사람들도 탐사에 합류하는 것은 아니지?"
"그럼요. 양안오빠를 만나러 놀러온 친구들 이예요."
민혁이형은 그들과 잘 대화가 잘 통했다. 서로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들이라 공감대가 형성된 모양이다.
진영이와 난 준비해온 목삼겹을 구워먹기 위해 마당에다가 돌기둥을 세웠고,
그 위에다 스레트를 올려놓고 밑에다 번개탄과 숯을 넣고 불을 지폈다.
추운 12월 달 이었지만 오늘은 바람이 불지 않았고,
다행히 햇볕이 있어 밖에서 고기를 구워 먹어도 무리가 아닐 듯한 날씨였다.
물론 그래도 겨울이라 날씨는 춥고 써늘했지만 일단 번개탄과 숯에 불이 붙기 시작하면
그 열기로 충분히 추위를 이길 수 있을 것 같았다.
얼리지 않은 목삼겹을 철망에 올려놓고 후추를 섞은 소금을 살짝 뿌리면서 구워주면
기름이 쪼~옥 빠지고 담백하면서 쫄깃쫄깃한 게 맛이 기가 막히다. 생각만 해도 군침이 돈다.. 쩝
상추, 깻잎, 마늘, 고추, 파, 버섯, 양파....를 씻고 있는 진영이의 손놀림이 빠르다.
" 많이 해본 솜씨야?" 하고 물을 때마다.
"집에서 매일하는 건데요...머" 라고 답을 한다.
사실이 그렇다. 진영이 부인이 매일같이 하는 이야기가 있다.
"이이는 여자로 태어나야할걸 잘못 태어났나 봐요. 호호호"
그래 부인의 집안일을 도와주는 것은 좋은 일이지.. 나도 어서 봄이 일을 도와주었으면 좋으련만....
모두 숯불 주변으로 옹기종기 모여든다.
내가 고기를 올려놓고 뒤집으며 익히면 진영이가 먹기 좋게 자르고 사람들은 맛있게 먹는다.
고기 맛을 좌우 하는 것은 뭐니 뭐니 해도 불 조절에 있다.
고기 굽는 것 역시 진영이와 나는 단짝이다. 그 바람에 고기를 많이 먹지 못하지만 아쉬움은 없다.
우리가 구운 고기를 사람들이 맛있게 먹어주면 그것만으로 고마울 따름이다.
모두들 맛있게 고기를 먹는다. 즐겁고 배부른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봄이가 하늘을 보며 말한다.
"오늘 오전에 중부지방에 대설주의보가 내렸는데 하늘을 보니 눈이 올 것 같지는 않은데요?"
"그러게? 요즘은 일기예보가 잘 맞던데 오늘은 아닌가봐?"
민혁이 형이 하늘을 바라보더니...
"아니 예요. 좀더 두고 봐야 알겠는데요? 아까보다 하늘이 좀 어두워진 것 같아요."
그랬다. 하늘이 조금씩 어두워지고 있었다.
- 계속 -
첫댓글 난 봄이가 보고 싶다 봄이가 자꾸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