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장 16-24절까지 핵심 요약
1, 대체가 아닌 변화 -----> 하나님이 우리에게 기쁨을 주시는 방식에 대한 것이다, 실제 제자들에게도,,,,
* 하나님은 우리 삶에 대체가 아니라 변화를 통해 기쁨을 가져다 주신다는 것이다,
* 해산하는 여인에 비유 (21-22절) ----> 해산의 고통을 잊게 하려고 다른 대체의 보상을 해주시지 않는다, 고통을 주었던 바로 그 아기를 통해 기쁨으로 변화 된다
* 대체하면 안되는 이유 ---> 아이가 장난감을 망가 뜨렸을 때 매번 새 장난감으로 대체 주는 부모는 아이를 망치게 된다,
* 대체는 미성숙의 길이다, 변화는 믿음과 성숙의 길이다,
* 성경의 증거 ---> 요셉 , 형들이 팔고 보디발의 감옥에 가둔 절망적인 상황을 승리로 변화시킴, 다윗 -- 사울, 죽기 직전까지 위협이 사람을 만들고 , 오늘날 우리가 위로 받을 수 있는 시편을 낳게 했다, 십자가 - 가장 수치와 패배의 상징이었지만 승리와 영광으로 변화됨,
* 우리에게 닥친 고난도 수훨하고 피해나가는 대체가 아니라 정면 돌파하여 영광 스러운 열매를 맺게하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얻어야 된다,
2, A little while ' 조금 있으면 ---> 7회나 반복,,
* 일차적 / 역사적 의미 ---> 주님의 죽음심과 부활하심의 3일의 간격,,
* 내가 아버지께서 가기 때문이라, ---> 주님의 승천 이후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는 교회의 전 기간,,
* 영원의 관점에 보면 교회가 예수님을 기다려온 시간은 그저 ' a little while' 잠시 잠깐일 뿐이다,
히10:37 - 조금 있으면 오실 분께서 오실 것이요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 세상은 주님이 없다고 기뻐하며 교회를 핍박하지만 창조물 전체가 해산의 고통을 겪으며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듯(롬8:22) 성도들은 잠신 잠간 후면 오실 신랑을 기다리는 신부의 마음으로 이 시기를 인내해야 한다,
* 문맥 탐구
요16:16-
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하겠고 다시 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가기 때문이라 하시니라
* 주님의 죽음 (His Death) ,주님의 부활 (His Resurrection) ,주님의 승천 (His Ascension)
* 주님은 이 영광스러운 3대 사건을 제자들의 당시 처지와 편견("in their circumstances and with their prejudices") 속에서는 선뜻 이해하기 힘든 신비로운 방식(deliberately puzzling statement)으로 선포하셨다. 제자들은 메시아가 오면 지상에 당장 영원한 왕국을 세울 것이라는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에, 메시아가 죽었다가 무덤에서 다시 살아나 승천한다는 이 엄청난 경륜적 플랜을 깨달을 귀가 아직 열리지 않았다
17- 그때에 그분의 제자들 중 몇 사람이 자기들끼리 이르되, 그분께서 우리에게 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하겠고 다시 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가기 때문이라 하고 말씀하시는데 이것이 무슨 말씀이냐? 하고
18 - 그러므로 이르되, 그분께서 조금 있으면 하고 말씀하시는데 이것이 무슨 말씀이냐? 그분께서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우리가 알 수 없노라, 하니
* 제자들은 예수님을 향한 경외심과 두려움 나타남 ----> 조금있으면 나를 보지 못하겠고' 말씀 속에서 심상치 않은 비장함 엄숙함, 느끼게 된다, --> 주님의 압도적인 영적 권위 십자가를 앞둔 무거운 분위기 때문에 제자들은 감히 입을 열어 질문할 두려움과 경외감을 가졌다,
* 주님의 마지막 고별 설교를 간절하게 이어가는 것에 자신들의 무지함이나 사소한 질문으로 주임의 엄숙한 교리의 흐름을 깨뜨리거나 방해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19 - 이 때에 예수님께서 그들이 자기에게 묻기 원하는 것을 아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하겠고 다시 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보리라, 하고 말한 것에 대해 너희가 너희끼리 묻느냐?
20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는 슬피 울며 애통할 것이나 세상은 기뻐하리라, 너희가 근심할 것이나 너희 근심이 기쁨으로 변하리라,
* 너희 근심이 기쁨으로 변하리라 -----> 가장 큰 재앙이 최고의 위로와 기쁨과 소망으로
제자들이 주님의 죽음에서 잠시 근심, 슬픔이 있었다면 주님의 부활을 보고 기뻐 할 뿐만 아니라 죽음 그 자체가 말할 수 없는 기쁨의 원천이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 기쁨을 깨닫는 이유 --->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 이 땅에서의 화평, 용서, 앞으로 올 세상의 영원한 기쁨을 단번에 획득해 주셨기 때문이다,
* 전체 그림을 보여 주시는 하나님 ----> 제자들은 당시 상황과 편견에 갇혀 십자가 뒤에 숨겨진 하나님의 플랜을 보지 못했다, 하나님의 전체 계획은 중요하다,
고통은 기쁨으로 (제자들, 그리스도인들) 기쁨에서 고통과 절망과 통곡으로 (세상)
21 - 여자가 산고를 겪으면 자기 때가 왔으므로 근심하지만 아이를 낳는 즉시 세상에 사람이 태어난 기쁨으로 인해 다시는 그 고통을 기억하지 아니하느니라,
22 - 그러므로 지금은 너희에게 근심이 있으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볼 것이요, 그러면 너희 마음이 기뻐하리니 아무도 너희에게서 너희 기쁨을 빼앗지 못하느니라,
* 너희는 확신 하게 될 것이다,(제자들에게) ----> 흔들리지 않는 기쁨의 원천을 가지게 될 것이다, : 부활의 확신
* 제자들은 주님의 부활을 목격한 후 예수님이 진짜 메시아이며 사망과 죄를 단번에 제거하시는 왕, 대언자, 대제사장이시라는 것을 영과 육으로 완전히 확신하게 된다,
* 사람들의 위협과 박해를 가해도 제자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이 부활의 확신은 절대 흔들릴 수 없다, 불신과 의심을 심어 줄 수 없다,
* 결국 확신에서 나오는 기쁨 역시 세상이 빼앗아 갈 길이 없다,
* 예수님께서 부활 하셨다는 것과 승천이후 목격한 제자들은 이후 사역을 하며 모진 고문과 박해를 당하면서도 단 한순간도 단 한 명도 의심의 늪에 빠지지 않았다,
* 부활의 소망은 환경과 처지는 감옥에 갇히고 돌에 맞고 궁핍하였지만 부활의 소망이 있었기에 언제나 마르지 않는 기쁨의 샘물을 소유 할 수 있었다,
벧전1:8 -9- 너희가 그분을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지금도 너희가 그분을 보지 못하지만 그분을 믿고 있으며 말할 수 없고 영광이 가득한 기쁨으로 기뻐하나니, 이는 너희가 너희 믿음의 결말 곧 너희 혼의 구원을 받았기 때문이라,
23 - 그 날에는 너희가 아무것도 내게 구하지 아니하리라,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구하면 그분께서 그것을 너희에게 주시리라,
* 그 날에는 ---> 위로자 성령님께서 오셔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경륜 교회시대,
* 너희가 무엇이든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구하면 --->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일일이 직접 챙겨 주시는(실제 중보자) 일은 끝마치고 성령님의 능력과 권능으로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아버지께 직통으로 나아갈 수 있다,
요일 2:26-27 - 너희를 유혹하는 자들에 관하여 내가 이것들을 너희에게 썼노라, 그러나 너희가 그분에게서 받은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므로 어떤 사람이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으며 바로 그 기름 부음이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니라 또 그것이 진리요 거짓이 아니니 그것이 너희를 가르친 대로 너희는 그분 안에 거할지니라,
* 사람의 목사 교사의 역할:----> 새로운 계시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이미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르게 나누어 배울 수 있도록 돕는 조력자(Helper) 이다
* 성령님의 역할:----> 사람 교사가 성경을 설명할 때, 성도의 마음속에서 "아, 저 말씀이 맞구나! 저것이 진리구나!" 하고 최종적으로 도장을 찍어주시고 깨닫게(조명, Illumination)하시는 분은 오직 성령님이시다
24 -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러면 너희가 받으니리 이로써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하는 것 ----> 예수님께서 단 한번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한적 없는 제자들에게 십자가 직전에 주셨을까?
---> 제자들이 앞으로 마주할 수많은 시험과 박해, 그리고 자신들의 무력함과 무가치함을 뼈저리게 느끼는 바로 그 순간에야, 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라는 특권이 얼마나 보배롭고 기쁜 것인지 온전히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 배부른 자에게는 '이름'의 가치가 보이지 않는다:---> 예수님이 기적을 베푸시고 오병이어로 먹이실 때, 제자들은 어깨가 으쓱했다. 자기들의 힘과 의로도 충분하다고 믿었기. 그때는 "예수의 이름"이라는 카드가 얼마나 대단한지 절실하지 않았다.
* 바닥을 칠 때 비로소 깨닫는 나의 실상 ---> 하지만 주님이 잡히시던 밤, 제자들은 다 도망쳤고 베드로는 주님을 세 번 부인했다. 자신이 얼마나 나약한지 그리고 감히 주님의 제자라 명함도 내밀지 못할 만큼 자격 없고 무가치한 자인지 철저하게 깨달아 영적 파산을 경험한다
* 나의 노력이나 의로운 행위가 아니라 주님의 의와 자격으로 ----> 내 의가 다 깨지고 나니, 비로소 그 이름의 보배로움(Preciousness)이 왕관처럼 빛나기 시작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