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4.6 지난달부터 판소리 개인레슨을 받는다. 이번 주 토요일 논산에서 있는 경연대회 나갈 준비다. 어제 일요일 네 번째 수업을 받았다. 단체수업에서는 배울 수 없는, 세세하고 미묘한 지적들과 개인별 문제에 대한 지적을 들었다. 처음 수업할 때는 지적이 무진장 많아서 한 장단조차 그냥 지나가는 법 없이 노래 끊고 다시 또 다시 했었다. 혼자 연습하다가 생긴 나쁜 버릇에 나름 멋 내느라고 어설픈 기교 부리던 걸 다 지적받았다. 하릴없이 살 다 털어내 빼고 뼈대만 추려 소리하기에 이르렀으니 미원 한 숟가락씩 넣던 찌개 먹다 천연조미료만 넣은 찌개 먹는 것처럼 소리 부르기가 소태맛이다.
어제 일요일 나가서 수업하는데 참 많이 늘었단다. 3년 지나오면서 그만 둘 생각을 300번은 했노라, 했다. 소리 참 징그러워요 했더니, 원래 소리라는 것이 징그럽기 짝 없단다. 그러나 나더러 타고나기를 예술가고, 또 열심히 한 태가 난단다. 소리가 몰라보게 늘고 지난주에 지적했던 것들 많이 고쳤단다. 어쩐 일로, 내년쯤에 개인발표회 가질 수 있겠단다. 선생님은 소리 배우기 시작한 지 20년 지나서야 개인발표회 가졌다고, 섣불리 소리 내놓는 거 좋지 않다고, 야무지게 단단히 익혀서 내놓아야 하는 거라고 한다. 그래,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조금 더 멀리 보며 미련하게 가야지 한다. 아, 돈 더 열심히 벌어야 한다. 고수 모시고 가느라고 고수비에 레슨비에 숙박비 마련해야 한다. 그나저나 개인레슨비 얼마 하는지도 아직 모른다. 몇이 같이 나가느라고 공부중인데 다들 모른단다. 일단 저지르고 봤다. 될 대로 되겠지, 뭐.
2009.4.9 어제 북방에 가서 대회 나갈 준비로 공부하는데 연신 전화기 울린다. 군포에서 판소리 하는 이 있는데 지난 달 그 이 학원에 갔다가 하얀 부채 두 개를 내놓고 거기 그림을 그려달라고 해 가져다놓고 아직 작업을 못 했다. 그런데 다음 주말에 소리판을 갖는데 그 판에서 내 그림 들어간 부채를 들고 싶단다. 며칠 안에 그려서 보내드리기로 했다. 판소리 배우는, 아는 지인이 작업실 구경 오고 싶단다. 누추하고 볼 것 없다는데도 뭐 구상하는 게 있어서 그렇다고 굳이 오겠단다. 우선 다음 주로 미뤄놓았다. 스님한테서도 전화 왔다. 그 스님이 염색도 하고 옷도 만드는데, 옷 만들어 남양주 어디로 옷 가져다주러 오실 일 있단다. 나무판에다 꽃그림 그려 액자 몇 개 만들면 가게에 걸어놓고 팔겠다고 했는데, 그 작업 좀 했느냐고 한다. 나무 구하지도 못하고 나무판 다듬을 새 없어 아직 못 만들었는데, 그렇거나 말거나 오는 길에 보잔다. 연락드리기로 했다. 주문받은 매화 서각 작품을 어제 보냈어야 하는데 소리공부 때문에 아침에 일찍 북방 나갔다가 저녁에 미아리에서 수업 있어 집에 돌아오니 열 한 시 넘었다. 결국 오늘 아침에 우체국 가서 보냈다. 민화친구한테서 전화 왔다. 익산시립국악관현악단 발표회가 있는데 거기 팜플렛 제작을 하게 되었는데 자료가 필요하다고 해서 국악 관련 팜플렛 가지고 있는 거 다 찾아서 지난주에 가져다주었는데 그 팜플렛 제작에 내 그림을 무단으로 몇 장 썼단다. 고백한단다. 인쇄 들어가기 직전인데 인쇄 들어가기 전에 고백하는 거란다. 웃었다. 더 쓸 것 있으면 쓰라고 했다. 학원 간 김에 국악 팜프렛 필요 없는 거 다 뒤져서 한 묶음 가져왔다. 다음에라도 자료로 쓰라고 가져다주려고.
소영이한테서 전화 왔다. 아프단다. 며칠 전부터 기침 심하고 목 부었다고 하더니. 점심시간에 병원 갔는데 점심시간이라 진료 안 된단다. 선생님한테 전화해서 조퇴시켜달라고 한다. 양호실로 가라고 했더니, 나중에 다시 전화해서 선생님이 조퇴 안 시켜준다고 징징 짠다. 나중에 하릴 없이 야자는 빼고 병원 가서 진료 보고 약 지어 돌아왔단다. 건희도 전화했다. 아프단다. 집에 빨리 오란다. 누나는 아파 누워있고 밥은 먹기 싫고 만두 시켜먹겠단다. 열한 시 다 되어 돌아왔더니 만두에 돈가스 시켜먹었다. 둘 다 아프니 돌아오자마자 죽 끓였다. 건희 자다가 일어나더니 속 안 좋단다. 화장실 가서 토한다. 아픈 놈이 만두에 돈가스 먹으니 당연히 속 안 좋지. 아침에는 둘 다 죽 먹여 학교 보냈다.
문화의집에서 연락 왔는데 경기문화재단에 시민미술학교 공고가 났단다. 저녁에 돌아와 인터넷으로 보니 지난 2일에 났다, 공고. 그런데 접수 마감이 16일이다. 너무 빠듯하다. 16일이면 다음 주 목요일이다. 정신없다. 지난해에도 그 전 해에도 한 달 이상 잡고 기획했던 작업인데, 주말에 판소리 대회 나갔다 오면 일할 시간이 불과 며칠 안 남았다. 하릴없이 오늘 큰 얼개 잡느라고 진을 뺐다. 강좌 과목, 기간, 과목별 강좌 시간, 강사료 계산, 재료비, 수강료 책정, 수강료 비용 계산, 홍보비 책정, 전시회 계획, 전시회 예산, 사업 취지, 사업 목표, 사업성과 보고, 중장기 목표, 동호회 성과, 동호회 지원계획, 재료비, 기획회의비 등등 일일이 다 계산해서 짜야 한다. 더구나 올 해는 졸업전시회를 인사동 갤러리 빌려서 하기로 계획했다. 이거 더 골 빠개지는 일이다. 더불어 나는 숫자치다. 내일 아침까지 얼개라도 잡아서 메일로 보내고 논산 내려가야 하는데 머리가 멍하다.
오늘은 소리연습도 못 하다가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 오후에 차 끌고 나가 공터에서 차 문 꼭 닫아놓고 한 시간 연습했다. 대회장에서 실수만 안 하면 떨어지더라도 후회 없을 텐데. 어찌 될는지, 원. 돌아오는 길에 등뼈 사서 감자탕 끓였다. 죽 싫어하는 건희는 감자탕 먹이고 야자 끝내고 돌아온 소영이는 죽 먹였다. 일 조금 더 하고 자자.
2009.4.10 시민미술학교 기획안 뼈대를 어금버금 추려 아침까지 다 만들어 보냈다. 어제는 참 막막하더니, 역시 난 한다면 한다. 그동안 짠 거 다 버리고 돌아와 다시 새로 짜는 일이 있을지라도 일단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기로 한다. 오늘도 어찌어찌 하다 보면 소리연습도 못 해보고 그냥 갈 것 같아서 아이들 학교 데려다주고 오는 길에 공터에 차 세워놓고 창문 닫고 소리 한 시간 연습했다. 돌아오는 길에 시장 봤다. 3일 동안 나 없는 새 굶어죽을 일이야 없을 테지만 그래도 먹을거리 사다놓고 가야 마음 편하지. 애들이 둘 다 아파서 가지 않았으면 딱 좋겠는데, 고수도 일부러 오고, 응원군도 많아서 결국 가야 하리. 공부하러 간다 생각하고 편하게 마음먹어 평소대로만 하면 되겠지 한다. 이제 아이들에게 잔소리 담긴 편지 한 장 써놓고 나가야겠다.
서울 봉은중학교 1학년 교실 벽화 교실 전경 교실이라 벽화로 인해 어수선해지지 않도록 무겁지 않게 그렸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밝게, 들과 산에 나는 우리꽃 한 송이에 관심 가지게. 아이들 마음 푸근해지게. 평소 그리던 먹색 바탕을 없애고 흰 바탕에 그대로 그렸다.
찔레와 각시붓꽃
가시여뀌와 논뚝외풀
병아리난초
도색이 오래되어 낡았고 아이들이 축구공을 벽에 차서 자국이 많았다. 그림 그리는 바탕에 흰색 페인트를 칠하고 못 자국도 때웠지만 약간씩 흠이 남아있다. 작업에 집중하다 보니 과정은 사진을 남기지 못했다.
첫댓글 히야,멋져요.^^
좋게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
우와~너무 예뻐요..무슨 카페에 있는듯한 느낌이...애들이 공부도 더 잘 되겠어요..ㅎㅎ
아이들 공부에 도움이 되면 저야 더 바랄 게 없지요. ^^
햐~@@.... 저리 생생하게 그려 놓았으니 식물도감이 필요 없겠어요~ 학교마다 저렇게 우리의 야생화를 그려 놓으면 아이들도 좋아할거 같고 공부에도 도움이 될거 같습니다.
학교마다 그려달라고 하면 저는 몸살로 뻗을 겁니다. ^^
학교에 계시는 군요. 학생들이 참 행복해 할것 같습니다.
학교에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아는 학부형이 진행한 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