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이직(全以直)
생년 ?(미상)
졸년 ?(미상)
시대 조선 중기
본관 성주(星州)
활동분야 무신 > 무신
출생지 강화군(江華郡) 양도면(良道面)
묘소 국사봉(國賜峰)
[상세내용]
전이직(全以直)에 대하여
생졸년 미상. 조선 중기의 무신. 본관은 성주(星州). 상서(尙書) 전신(全信)의 후손으로 강화군(江華郡) 양도면(良道面)에서 태어났다. 무과에 급제하여 1627년(인조 5) 통훈대부(通訓大夫)로 의영고주부(義盈庫主簿)를 거쳐, 1634년(인조 12) 연일현감(延日縣監)을 역임하였고, 절충장군(折衝將軍) 백령진수군첨절제사(白翎鎭水軍僉節制使)를 지냈다.
그가 강화군 중군으로 있을 때 공용(公用) 무명 1필로 말안장을 만들었는데, 중군에서 물러날 때 그대로 반환하는 등 성품이 청렴 강직하여 청백리(淸白吏)로 이름이 높았다. 묘지는 국사봉(國賜峰)에 있다.
[참고문헌]
仁川市史
海槎錄
[집필자]
김은영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역대인물종합정보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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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영고[ 義盈庫 ]
유형 제도
시대 고려, 조선/조선 전기
성격 관청
시행일시 1308년(충렬왕 34)
폐지일시 1882년(고종 19)
정의
고려·조선시대 궁중에서 쓰이는 기름·꿀·과일 등의 물품을 관리하던 관서.
내용
1308년(충렬왕 34) 충선왕이 즉위하여 관제개혁을 단행하면서 설치하였다. 관원으로는 종5품의 사(使) 1인, 종6품의 부사(副使) 1인, 종7품의 직장(直長) 1인을 두었는데, 공민왕 때 종8품의 주부(注簿) 1인을 더 두었다.
조선시대에는 호조 소속의 종5품 아문이었으나 뒤에 종6품의 주부가 실제로 주재관(主宰官)이 됨으로써 종6품 아문으로 바뀌었다. 관원으로는 사 1인, 부사 2인, 직장 2인, 주부(종6품) 2인을 두었다.
뒤에 다시 영(令, 종5품) 1인, 주부 1인, 직장 1인, 봉사(奉事, 종8품) 1인을 두었다가 다시 영을 없앴다. 이속(吏屬)으로는 서원(書員) 4인, 군사(軍士) 1인이 있다. 1882년(고종 19)에 혁파되었다.
참고문헌
『고려사(高麗史)』
『경국대전(經國大典)』
『대전회통(大典會通)』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의영고 [義盈庫]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