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은 김(金), 이름은 삼맥종(彡麥宗) 또는 심맥부(深麥夫)이다. 법호는 법운(法雲)이다. 지증왕(智證王)의 손자이며 갈문왕(葛文王) 입종(立宗)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법흥왕(法興王)의 딸 지소부인(只召夫人), 비는 사도부인 박씨(朴氏)이다. 법흥왕의 뒤를 이어 7세에 즉위할 때 태후, 즉 법흥왕비가 섭정하였다.
541년 이사부(異斯夫)를 병부령(兵部令)에 임명, 백제에 대해 화친정책을 썼으며 551년(진흥왕 12) 개국(開國)이라고 연호를 변경하였다. 그해 3월에는 우륵(于勒)과 그의 제자 이문(泥文)을 불러들여 음악 연주를 듣고 역시 같은 해에 팔관회(八關會)를 개최하였다.
553년 백제가 점령했던 한강 유역의 요지를 공취(攻取)하여, 거기에 신주(新州:廣州)를 설치하였다. 554년 백제 성왕(聖王)의 군사를 격퇴하고, 성왕을 사로잡아 죽였다. 561년 이사부의 공으로 대가야(大伽倻)를 평정하고, 이어 주위의 침입에 대비, 한강 유역에 주군(州郡)과 강력한 군단을 설치하고, 이들 새로 개척한 땅에 순수비(巡狩碑)를 세웠는데, 창녕(昌寧) ·북한산 ·황초령(黃草嶺) ·마운령(磨雲嶺) 등의 비가 지금까지 전한다.
[진흥왕 때의 영토확장]
565년 중국 진(陳)나라에서 사신 유사(劉思)와 승려 명관(明觀)을 보내면서 아울러 불교의 경론(經論) 1,700여 권을 보내왔다. 566년 기원(祇園) ·실제(實際)의 두 절을 지었으며, 같은 해에 황룡사(皇龍寺)도 준공했다. 568년 대창(大昌)으로 연호를 변경하였는데, 572년 다시 홍제(鴻濟)로 고쳤다. 같은 해에 전사한 장병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팔관연회(八關筵會)를 개최하였다. 574년 3월에 황룡사의 장륙상(丈六像)을 주조하였는데, 이것은 같은 절의 구층탑, 진평왕(眞平王)의 옥대(玉帶)와 함께 신라 삼보의 하나로 꼽힌다. 576년 비로소 화랑제도를 창시했는데, 이것이 신라 삼국통일의 원동력이 되었다. 진흥왕 때에 이르러서는 신라가 군사적 ·문화적으로 실력을 길러 장차 삼국을 통일하는 기반을 마련한 시기이다.
사다함 [斯多含, ?~?]
성 김(金). 내물왕의 7대손. 급찬(級飡) 구리지(仇梨知)의 아들. 화랑으로 추대되어 1,000여 낭도(郞徒)를 거느렸다. 562년(진흥왕 23) 이사부(異斯夫)가 가야국(伽倻國)을 정벌할 때, 15세로서 귀당비장(貴幢裨將)으로 출정하여 전단량(旃壇梁)으로 쳐들어가 멸망시키는 데 큰 공을 세웠다.
그 공으로 밭과 포로 가야인 300명을 상으로 받았으나, 밭은 병사에게 나눠주고 포로는 모두 풀어 주었다. 어릴 때 무관랑(武官郞)과 우정을 맺어 죽음을 같이 하기로 했는데, 무관랑이 병사하자 7일 동안 통곡하다가 죽었다.
첫댓글 진흥왕때 영토를 많이 넓혔었네요. 여하튼 국내외적으로 대단한 왕이였나봅니다.^^
그런 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