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한민족의 수난사 ◈
화성 배터리 공장 화재로 숨진 23명 중 17명이 중국인이지요
대부분 20~40대 젊은 조선족이었어요
현장을 찾은 싱하이밍 중국 대사는
“중국 당과 정부가 우려하고 있다”며
“한국 기업들이 뼈아픈 교훈을 얻어 다시는 유사한 사고가
발생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했지요
화재 원인 규명과 피해 수습, 재발 방지는 싱 대사 말이 아니라도
우리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지요
그의 ‘훈계’를 들으며 떠오른 것은 민족의 기구한 운명이지요
조선족은 중국인이기에 앞서 한민족이지요
먹고살기 위해 조국을 떠났다가 먹고살기 위해 돌아왔어요
우리 민족이 우리 땅에서 숨졌는데
중국이 큰소리를 치고 있는 것이지요
19세기 조선은 기근이 끊이지 않았어요
순조 때인 1809~1810년과 1832~1833년,
고종 때인 1876년 기근이 기록에 남아 있지요
1832~1833년 기근은
순조가 백성의 20~30%가 줄었다고 할 만큼 심각했어요
굶어 죽은 사람도 많지만, 나라를 떠난 사람도 많았지요
압록강, 두만강을 건너 땅은 비옥한데
사람이 살지 않는다고 소문난 간도로 갔어요
간도의 한인은 1860년대에 7만7000명에 달했지요
경술국치 후 일제의 수탈과 압제를 피해 온 사람이 합류했어요
1940년 간도 한인은 145만명으로 늘었고,
지금 중국 내 조선족은 190만명이지요
이 중 70만명이 한국에 들어와 있어요
연해주 이주도 비슷한 시기 시작됐지요
1937년에 18만명의 한인이 극동 러시아 지역에 살았어요
그해 스탈린은 이들 거의 모두를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켰지요
일본과 전쟁을 앞두고 한인이 일본 첩자 역할을 할 것이라는 우려,
중앙아시아 낙후 지역을 한인 노동력을 이용해 개간한다는
경제적 목적이 함께 작용했어요
지금 러시아와 중앙아시아의 고려인은 50만명이고,
이 중 8만명이 국내에 들어와 살지요
솔직히 150여 년 전에
나라가 가난하고 힘이 없어 조선족과 고려인이 생겼어요
화성 화재로 조선족이 겪는 고통의 씨앗은 그때 뿌려졌지요
국제사회를 지배하는 원칙은 예나 지금이나 ‘힘’ 아니면 ‘돈’이지요
급할 때는 돈보다 힘이 앞서지요
구한말 역사는 주변국의 한민족 수탈사라고 할 수 있어요
자신들의 전쟁과 노역에 한인을 이용했지요
일제 강점기 국내외에서 강제 동원된 한인이
780만명에 달한다는 통계가 있어요
간도의 한인은 중국 공산당과 국민당 내전에 6만3000명이 참여해
3500명이 숨졌지요
스탈린의 강제 이주 과정에서 한인 2만여 명이
추위와 굶주림으로 숨졌어요
민족 수탈은 지금도 진행 중이지요
19세기만큼 먹고살기 어려운 북한 주민이 대상이지요
중국의 수산물 가공회사에서 일하는 북 주민 1000여 명은
하루 18시간 냉동 생선을 손질하고 있어요
공장 관리자는 수시로 때리고
“도망치면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인다”고 협박하지요
이 생선들은 대부분 한국으로 수출되고 있어요
한인의 노동을 착취해 만든 상품을 한인에게 팔아
중국인이 주머니를 채우고 있지요
러시아 건설 현장은 북한 인력이 없으면 돌아가지 않아요
2017년 유엔 제재 직전 러시아 내 북한 노동자는 3만명,
전체 외국인 노동자의 20%였어요
이들은 1년에 3일 쉬고 하루 16시간 노동해
한 달 100달러를 손에 쥐었지요
조선족의 죽음을 보며 50년, 100년 후 우리 후손이 어디서,
어떤 대접을 받으며 살지 상상해보면
그때까지 대한민국이 선진국일까?
과연 나라가 존재하기는 할까?
자식이 자기보다 못살기를 바라는 사람은 없을 것이지요
그러려면 나라가 빈약해 주변국에 유린당한
과거를 잊어서는 안 되지요
그게 싱 대사 발언에서 얻어야 할
‘뼈 아픈 교훈’이 아닐까요?
-* 언제나 변함없는 조동렬 *-
▲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가
지난 24일 경기 화성시에 위치한 일차전지 제조 공장 아리셀 화재현장을 방문하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