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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7일 맑음 아침 5시에 우리 집에 모여 출발하였다 강릉 휴게소에 들려 망상해수욕장을 지날 때 예약한 배표 사무실에서 빨리 오라고. 전화가 왔다. 묵호를 오랜만에 지나가는 데 과거에 버스가 다니던 길 말고 시내를 관통하는 새로운 도로가 나 그 길을 따라 가다보니 왼쪽 아래로 항구가 보인다. 항구를 지나 거의 180도 되도록 좌회전하여 내려가니 여객터미널이다. 인석이는 주차를 하고 나는 매표소에 들러 표를 받았다. 묵호에서 울릉도로 가는 배는 두 종류가 있다. 썬플라워2호 카페리와 씨플라워호가 있다.
< 묵호에서 우리가 탔던 썬 플라워2호 >
출발은 성수기에는 두 대 모두 운항하고 승객이 많지 않으면 썬플라워2호만 운항한다. 표를 받아 보니 인적 사항을 기록하는 칸이 있는 데 다른 사람들은 모두 작성하는 데 안 적고 그냥 가라고 해서 그냥 통과하여 배를 탔다 처음 오른 곳에 차가 선적되고 우리는 2층으로 올라가 자리를 잡았다. 우리가 탄 배는 썬플라워2호로 매일 아침 8시 20분 출발하여 울릉도 도동항에 3시간 반 정도 걸려 도착하였다가 1시에 되돌아오는 배이다. 속력 : 35노트(knots), 정원 : 985명 , 톤수 : 4,599톤(ton), 소요시간 : 3시간30분,승용차 최대150대 선적이 가능하다고한다. 배가 커서 그런지 바다 한 가운데에서도 별로 흔들림이 많지 않다. 배에는 매점이 있는데 돌아올 때 되니 그날 실은 빵은 모두 판매해야하는지 마지막에는 할인 판매한다는 안내방송도 나왔다.
그리고 씨플라워호는 조금 작은 배로 속력 : 30노트(knots), 정원 : 423명, 톤수 : 584톤(ton) 이다 울릉도는 면적 72.56㎢, 인구 1만 398명(2009)이다. 북위 37°29′, 동경 130°54′에 위치하며 독도와는 87.4km 떨어져 있다. 오각형 형태의 섬으로 동서길이 10km, 남북길이 9.5km, 해안선 길이는 56.5km에 이른다. 512년(신라 지증왕 13) 신라의 이사부가 독립국인 우산국을 점령한 뒤 우릉도(羽陵島)·무릉도(武陵島) 등으로 불리다가 1915년 현재의 이름으로 바뀌고 경상북도에 편입되었다. 섬 전체가 신생대 제3기에서 제4기 초에 걸쳐 화산작용에 의해 형성된 종상화산(鐘狀火山)으로, 지질은 조면암·안산암·현무암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섬의 중앙부에는 최고봉인 성인봉(984m)이 있고, 그 북쪽 비탈면에는 칼데라화구가 무너져 내려 생긴 나리분지, 알봉분지가 있다. 섬 전체가 하나의 화산체이므로 평지는 거의 없고 해안은 대부분 절벽으로 이루어져 있다. 온화한 해양성 기후로 연평균기온 12.3℃, 연평균강수량은 1,236.2mm(평균값 기준)이며, 특히 겨울철에는 눈이 많이 내린다. 총경지면적은 전체면적의 15%에 불과하고 밭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예전에는 주로 옥수수·감자·보리·콩 등을 재배하였으나 지금은 명이,미역취, 부지깽이, 등의 산채와 천궁·더덕·작약 같은 약초를 많이 재배해서 농가소득을 올리고 있다. 주민의 절반가량이 어업에 종사하며 관광산업도 점차 그 비중을 높여가고 있다. 식생은 향나무·후박나무·동백나무를 비롯해 650여 종의 다양한 식물이 자라고, 39종의 특산식물과 6종의 천연기념물이 있다. 또 흑비둘기 등 62종의 조류(텃새 24종, 철새 38종)가 서식하여 동식물의 보고라 할 수 있다. 근해는 한류와 난류가 만나는 조경수역으로 오징어·꽁치·명태 등이 많이 잡히며, 특히 오징어는 품질이 우수한 것으로 유명하다. 교통은 강릉공항과 울릉구암헬기장을 부정기적으로 오가는 헬리콥터와 포항·후포·묵호 등으로 정기 운항되는 여객선에 의해 육지와 연결되고 해안을 따라 섬을 일주하는 지방도로가 있다. 그리고 요즈음 비행장 공사가 진행 중이다. 예로부터 도둑·공해·뱀이 없고, 향나무·바람·미인·물·돌이 많다 하여 3무(無) 5다(多) 섬이라고도 한다. 12시 지나서 도동항에 도착하였다. 도동은 울릉도에서 저동다음 큰 마을로 육지에서 오는 배가 저동과 도동으로 나누어 입도한다.
도동항으로 배가 입항하는 모습
배에서 내리니 의외로 바닷가인데도 날씨가 덥다. 이곳에 올 때 직접 여관 숙소를 잡으려 하였더니 성수기인지 빈방이 없고 있는 곳은 터무니없이 비싸게 불러 전체 계산을 하여보니 여행사 상품이 오히려 싸서 자유시간이 많은 여행상품을 예약하였다. 배에서 내려가니 여행사 직원이 나와 있어 짐을 여행사 사무실에 맡기고 좁은 골목으로 식당을 찾아 갔다. 도동입구로 들어가 식당으로 가니 배가 들어오고 나가는 것이 겹쳐 식당 안에 들어갈 수 없다. 바깥에서 기다렸다가 자리를 나 점심을 먹는다. 반찬이 입에 맞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점심식사를 하고 숙소로 이동하였다. 도동은 울릉군 군청소재지로 인구는 저동보다 적으나 행정기관이 많아 거리는 좁은데 다니는 차가 많아 매우 북적거리는 느낌이다.
울릉도 여행코스는 육상 A코스 ( 해안선 좌회전 일주도로 : 도동 - 사동 - 통구미 - 사자바위 - 곰바위 - 태하 - 현포 - 코끼리바위(공암) - 추산 - 나리분지) - 육상 B코스 (해안선 우회전 일주도로 저동항 - 내수전 몽돌해변 - 내수전 일출전망대 - 봉래폭포) - 해상 유람선 관광 (도동항 - 사동 - 통구미 - 남양 - 구암 - 태하 - 현포 - 공암 - 추산 - 천부 - 삼선암 - 관음도 - 죽도 - 저동) - 해안산책로 - 성인봉 트래킹 - 독도 방문 등이 있다. 우리는 2박 3일 밖에 시간이 없어 첫날 육상 A코스, 둘째 날 오전 독도와 오후 육상 B코스 셋째 날 성인봉 트래킹으로 일정을 잡았다. 오후 2시에 첫째 날 육상A코스 여행을 시작하려고 관광버스에 탔다. 였다. 도동은 울릉도의 대부분 마을과 같이 좁은 계곡 양쪽에 들어선 마을이다. 울릉도의 행정중심이어서 여러 기관들이 육지의 달동네 같은 곳에 건물과 집들이 빼곡히 있고 가장 큰 간선도로도 중앙선이 없다. 많은 작은 골목들이 일방통행도로로 되어 있어 매우 복잡하다. 여기 버스들은 대부분 25인승버스이다. 길이 좁고 커브가 심해 큰 버스는 운전하기 어렵고 못가는 곳이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택시도 4륜구동 SUV차량이 많다. 그러지 않으면 눈이 왔을 때 운행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이태리 카프리섬에 갔을 때 다니는 차량이 기억이 난다. 벤츠버스인데 버스를 반 정도 잘라내고 개조한 버스를 타고 올라갔었다. 울릉도는 동쪽 해안 4.4㎞를 제외한 저동항 북쪽의 내수전에서 섬목까지 39.8㎞의 해안선을 따라 도로가 놓여 있다. 이곳 통구미에서 태어나 여기에서 고등학교 까지 다녔다고 자신을 소개하는 운전기사 겸 가이드인 아저씨가 경상도 본토 말로 안내를 한다. 도동에서 출발하여 사동으로 넘어가는 데 오른쪽에 도립병원이 있다. 병원을 지을 땅이 없어 산중턱에 짓고 병원을 가려면 길옆에 있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야만 병원에 갈 수 있다고 한다. 이 엘리베이터는 울릉도에서 유일하며 때로는 학생들이 일부러 타보고 싶어 와 오르내리기도 한다고 한다.
울릉도의 지질명소는 저동 해안, 도동 해안, 죽도, 봉래폭포, 거북바위와 향나무 자생지, 국수바위, 버섯바위, 학포해안, 황토굴, 태하 해안과 대풍감, 노인봉, 송곳봉, 코끼리바위, 죽암 몽돌해안, 관음도, 삼선암, 용출소, 알봉, 성인봉 원시림 등 19곳이다. 또 독도의 지질명소는 독립문 바위, 삼형제굴바위, 천장굴, 숫돌바위 등 4곳이다. 해안 절경은 사동항을 지나면서 시작된다. 도로왼쪽으로 시원스런 옥빛 바다와 기암절벽이 이어지고 거북바위, 얼굴바위, 오리바위, 사자바위 등 다양한 모습의 바위를 볼 수 있다. 학포를 지나면 한국의 10대 비경 중 하나로 꼽히는 태하다. 이곳은 움푹 팬 석벽에 붉은 황토가 있어 황토구미로 불렀는데, 조선시대에는 이 황토를 궁궐에 진상하기도 했다고 한다. 모노레일을 타고 향목전망대에 오르면 해안 절벽과 노인봉, 송곳산을 볼 수 있다고 한다. 고개를 넘어가니 먼저 사동항이 눈에 들어온다. 사동항은 독도 출발하는 배들과 울릉도 일주 유람선이 출발하는 곳이다. 항구에는 몇 척의 배들이 관광객들을 기다리면서 정박하고 있었다. 해안도로를 가면서 운전기사가 주변 경관과 울릉도에 대해 일반적인 설명을 해준다. 길 왼쪽에 주상절리 현상에 의해 장작을 차곡차곡 쌓아 올린 듯한 장작바위가 있다.
처음 방문한 마을은 통구미이다.
통구미는 울릉도 서면 남양리에 있는데 거북바위와 천연기념물 향나무 자생지가 있는 곳이다.
향나무자생지는 거북바위 맞은편 절벽위에 있다 천연기념물 제48호로 울릉 통구미 향나무 자생지 (鬱陵 通九味) 향나무( 自生地)이다. 통구미의 향나무는 울릉도 남양리의 마을 뒤 험한 암벽 틈에서 자라고 있다. 향나무는 울릉도의 대표적인 나무로 예전에는 크고 오래된 나무가 많이 있었으나 사람들이 함부로 베어가서 통구미 자생지는 물론 섬 전체에서 큰 나무를 찾아보기 어렵다.
향나무자생지
통구미의 향나무 자생지는 향나무의 원종(原種)이 자생하고 있는 곳으로 학술적으로 매우 중요시 되고 있으며, 특수한 환경에 적응된 유전자원으로서의 가치가 높아 사람들에 의한 무분별한 훼손을 막고자 천연기념물로 지정·보호하고 있다.
거북바위
거북이 여러 마리가 올라가는 모형이라고 해서 붙여진 거북바위 왼쪽에는 낚시터가 있어 사람들이 낚시를 하고 있었다.
가재굴바위
다시 출발하여 통구미 마을 쪽으로 가는데 운전사가 울릉도에 신호등이 있는지 없는지 퀴즈를 냈다. 정답은 ‘있다’이다. 통구미 마을을 지나면 바로 터널이 나오는데 육지와 다르게 예전 기차터널 처럼 일방통행이다. 985년 5월 착공, 1986년10월에 완공된 폭 4m, 높이도 4m정도 되는 아주 작은 터널이 3개 있기 때문에 이것을 통제하느라고 신호등이 있다. 처음부터 통구미터널, 남통터널, 남양터널이 나온다.
터널을 지나고 가면서 낙타바위, 오리바위, 얼굴바위들을 안내한다. 서면 면사무소가 있는 남양리를 지나 축항 끝에 사자바위와 오른쪽에 있는 투구바위의 전설을 설명해준다.
남양 포구에 사자바위라는 바위가 있고 그 옆에 사자굴이 있으며 사자바위를 굽어보는 투구바위가 있고 또 국수를 널어놓은 것 같은 국수바위가 있고 국수바위에서 태하로 가는 도중에 나팔봉이 있다. 이들 사자바위, 투구바위, 나팔봉은 모두 우산국의 최후를 전해주는 지명이고 바위들이라고 한다. 우산국왕 ‘우해’는 대마도에서 풍미녀를 데리고 와서 왕후의 자리에 앉히고부터는 나라일을 돌보지 않고 ‘풍미녀’의 환심사기에만 마음을 쏟고 있었다. 그리고 딸을 낳았는데 이름을 ‘별님’이라고 지어 그들에게만 몰두하는 왕이 되고 말았다(일설에는 풍미녀가 딸을 낳은 뒤 죽었다고 한다). 그는 왕후의 사치를 위해서 귀중한 백성과 신하의 생명까지도 돌보지 않고 멀리 신라까지 노략질했는데 신라의 백성들은 이 때문에 왕에게 우산국을 토벌해줄 것을 여러 번 호소했다. 신라왕은 강릉군주 이사부로 하여금 우산국을 토벌하라는 명을 내렸다. 우해는 신라가 쳐들어온다는 말을 듣자 맞아 싸울 각오를 하고 타고난 요새인 골계를 승부처로 정한 뒤 바닷가에 방책(防柵)을 세웠다. 이후 수평선에 신라군의 함대가 나타났고 우산국의 함대는 나가서 맞서 싸웠다. 우산국에 다다른 신라의 군사와 우산국 군사들 사이에 치열한 격전이 벌어졌다. 신라군은 열심히 싸웠지만, 바다를 무대로 살아온 우산국 군선에 쉽게 무너지고 말았다. 신라군은 대부분 육군이었기 때문이다. 패전의 고배를 마시고 하슬라(강릉)로 돌아간 이사부는 임금에게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옵소서.”라고 사정했고, 그리고는 견문 좁은 우산국 군대를 겁주어 물리칠 계획을 세웠다. 이듬해 그는 군사를 다시 훈련시켜 다시 우산국으로 쳐들어 갔다. 이사부는 싸우기 전에 우해왕에게 사신를 보내어 항복을 권하였다. 그러나 지난 해에 신라군과 싸워 이긴 우해왕은 이사부를 업수이 여기고 사신을 그 자리에서 목 벤 다음 싸움을 걸어 왔다.
신라군은 신라를 떠날 때 모든 군선의 뱃머리에 나무로 만든 사자를 세웠는데, 그 사자들의 입에서 일제히 불이 뿜어져 나왔고, 군사들은 배 위에서 한꺼번에 화살을 쏘면서 우산국으로 쳐들어 갔다. 우산국의 백성과 군사는 혼비백산했다. 듣고 보지도 못한 짐승이 입에서 불을 뿜으며 우뢰소리 같은 우렁찬 소리를 지르고 있지 않은가. 사나운 짐승은커녕 뱀 한 마리도 보지 못했던 우산국 전사들은 그 짐승에게 다가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하나 둘 슬금슬금 꽁무니를 빼 배를 대고 방책 뒤로 피했다. 골계 앞바다까지 온 이사부는 신라 군사를 시켜 뱃머리에서 큰 소리로 “당장 창과 칼을 거두고 항복하지 않으면 이 짐승들을 풀어서 너희를 다 죽여버리겠다.”고 위협했다. 이미 이상한 짐승에 질린 우산국 병사들은 전의를 상실한데다 빗발치는 화살은 우산국 병사를 더 궁지에 몰리게 하였다. 우해왕도 최후를 깨달았다. 사기가 떨어진 군졸을 이끌고 싸운다는 것은 패전을 의미하는 것임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게다가 주위를 둘러보니 전사들은 거의 다 달아나고 몇몇밖에 안 남아있었다. 그래서 그는 결국 항복하기로 마음먹고 투구를 벗어 이사부의 군문에 항복을 하고 말았다. 항복의 조건은 우해는 우산국에서 쫓겨나고, 우산국은 신라의 속국으로서 해마다 공물을 바치기로 하는 것이었다. 우해는 항복하면서 이사부에게 “부디 데려오신 짐승을 남겨두어 내가 죽더라도 그것이 이 섬을 지키게 해 주십시오.”라고 부탁했고, 이사부는 그의 부탁을 들어주어 나무사자를 배에서 끌어내 물에 띄웠다. 우해는 바다로 몸을 던졌고, 이후 우산국은 멸망했지만 전설은 남아 있으니 그때 하늘에서 뇌성벽력이 쳐 목사자가 지금의 사자바위가 되었고, 우해왕이 벗어던진 투구는 지금의 투구봉이 되었다고 한다. 국수산은 비파산이라고도 하는데 우해왕이 연주하던 비파였다고 한다.
해변으로 더 가니 급격히 고도를 높여야 하는 지형이 있어 육지에서 볼 수 없는 태극문양으로 돌면서 올라간다.
이런 모양은 사람들이 걷는 길도 있는데 마치 소라 모양이다. 급경사 오르막과 몇 개의 터널을 지나 태하리에 도착했다. 큰 길에서 마을길을 지나가니 모노레일과 옆에 작은 삭도가 있다.
옆 언덕위에 노인이 사시는데 과거에는 급한 언덕길을 걸어서 오르내렸는데 울릉군의 지원을 받아 삭도레일을 설치하여 편하게 마을을 다닐 수 있게 되었다. 요즈음도 경사가 급한 밭에 많은 삭도를 설치하여 과거처럼 등짐지고 농산물을 운반하는 농부들의 수고를 많이 해결해 준다. 그 후 관광객들의 관광을 목적으로 모노레일을 추가하여 놓았다 한다.
조금 더 들어가니 태하동굴이 있다. 강원도 삼척의 어느 사또가 관기들과 뱃놀이를 나왔다가 그만 풍랑을 만나 표류하여 일행들과 함께 이곳 울릉도의 태하까지 떠밀려 왔다. 당시 이곳엔 사람이 살지 않았음으로 먹을 것도 없고 그야말로 굶어 죽게 생겼는데 이때 누군가 이곳의 황토를 발견하고 이것을 파먹으니 맛이 괜찮고 먹을 만하여 결국 사람들은 이 황토를 먹으며 연명할 수 있었는데, 그 맛이 파먹는 위치에 따라 달라 모두 아홉 가지의 맛을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 그 후 아홉 가지의 맛이 나는 황토라고 하여 태하마을을 "황토구미" 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이런 황토는 이곳 울릉도 태하가 아니면 어디서도 구할 수 없음으로 이 섬을 빼먹지 않고 잘 순찰을 돌았다는 증거물로 이곳 태하향나무와 함께 이곳의 황토를 임금께 가져가 진상하게 되었다. 동굴 왼쪽에는 해변으로 가는 길이 있는데 소라 모양으로 올라간다. 올라가 보면 절묘한 바위들이 많이 있다.
해변을 돌아 내려와 울릉도 호박 식혜를 시원하게 한 잔씩 마셨다. 큰길로 되돌아와 구불구불한 현포령을 넘어 거쳐 울릉군 북면 현포리의 현포항으로 갔다.
현포항에는 현포리와 인근 태하리의 오징어배가 쉬고 있고, 예쁜 등대가 외롭게 서서 지키고 있는 항구 안에는 갈매기와 가마우지가 관광객을 반기고 있다. 방파제 바로 옆엔 노인봉과 송곳봉이 가까이에서 마주 보고 있다.
멀리 현포령에서 내려오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는 정경이다. 이곳 현포항 하얀 등대가 있는 방파제 위로 관광객을 태운 버스가 들어와서 주위 경관을 보며 잠간 쉬었다 가는 명소가 되었다.
현포항 옆에 노인봉이 있는데 높이 199m로, 봉우리 전체가 암벽으로 이루어져 있다. 암벽 봉우리에 가로로 굵은 결이 있는데 그 모습이 노인의 주름살처럼 보인다 하여 노인봉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학술적의미의 이름이 있고, 또는 가이드말에 의하면 노인들의 힘없는 남근 같아서 노인봉이라고 부른다고 하면서 웃겼다. 봉우리 서편은 주상절리가 수직으로 뻗어있고, 동편은 수평으로 주상절리가 발달되어 있다. 봉우리 아래 해안에는 주상절리의 암괴들이 널려 있는데 일부는 해식작용을 받아 암석 표면이 울퉁불퉁하고 해골모양을 하고 있어 해골바위라고 불린다. 울릉도 북쪽 해안가의 일주도로(지방도 926번) 바로 옆에 있다. 그리고 왼쪽에 뾰족한 송곳바위가 있다. 계속 돌면 북면이 나오고 천부리를 거쳐 나라분지로 올라갔다. 길이 매우 좁고 경사가 심하다. 가는 길 주변에 삼나물밭, 명이밭이 여기 저기 보인다. 올라가는 길에 급경사와 심하게 꺽어진 도로때문에 운전기사가 양해를 구하면서 에어컨을 껐다 켰다 하면서 나리 분지 전망대에 이르렀다. 멀리 높게 성인봉 중계소가 보이고 아래 쪽으로 화분처럼 분지가 보인다.
면적은 1.5㎢, 동서와 남북 간 길이는 각각 1.5㎞와 2.0㎞이다. 신생대 제3기말에서 제4기의 화산활동으로 생성된 화산체의 함몰에 의해 형성된 화구원이며, 그 안에서의 재분출로 알봉에서 용암이 흘러내려 알봉분지와 나리분지로 분리되었다. 사방이 500m 내외의 산지로 둘러싸여 있으며, 울릉도에서는 유일하게 넓은 평야지대를 이룬다. 기반암은 현무암과 조면암이며, 그 위에 화산재·화산사·화산력 등의 분출물이 쌓여 있어 보수력이 약하다. 집중호우 때는 물이 외부로 흘러나갈 수 없기 때문에 일시적인 호수를 형성하기도 하며, 지하로 침투된 물은 섬의 북측사면 250m 지점에서 솟아올라 관개용수와 추산발전소의 발전용수로 이용된다. 토지는 대부분 밭으로 이용된다.
지형적인 영향으로 기온역전 현상이 나타나며, 우리나라에서 눈이 가장 많은 지역으로, 겨울에는 3m 이상의 눈이 쌓이기도 한다. 이러한 자연조건으로 인해 '우데기'라고 하는 독특한 가옥구조의 너와집이 많았으나, 현재는 주택개량사업으로 몇 채의 보존가옥만 남아 있다. 주민들은 밭작물 중심의 농업에 종사하며, 특히 천궁·황금·황귀 등의 약초와 더덕·명이나물 등의 산초재배로 높은 소득을 올리고 있다. 주차장 옆에는 나리 분지를 의미하는 나리꽃 꽃밭이 있다. 이곳 나리는 육지와 다른 섬말나리꽃이라 한다.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울릉도에서만 자생하는 세계적인 꽃으로 1997년 희귀 및 멸종위기식물 37호로 지정되었다. 어느 시인의 섬나리 꽃 시도 있다. 섬나리 꽃
저 멀리 굽이진 산고개 너머 연두색 바다가 흔들리고, 그 바다를 향하여 한송이 섬나리꽃은 피었다 바다가 우는, 바다가 우는 칠흑 같은 밤이면 꽃은 바람 맞은 기폭 몸부림치며 요령 소리로 울었고, 바다가 파랗게 가슴 설레는 푸른 달밤이면 꽃은 그리움, 그리움으로 받돋움하여 가문비나무 숲처럼 자랐다. 그리하여 이 저녁, 아쉬움같이 내리는 이슬을 맞고도 노을 속에 타오르는 황금빛 술잔 꽃은 진다.
주차장 앞에 주막이 있어서 더덕과 삼나물 안주로 막걸리 한 잔 하였다. 그런데 더덕은 향이 없어 밋밋한 맛이다. 삼나물은 한 줌 무친것이 이만원이나 한다. 맛은 좋지만 많이 비싸다. 돌아오는 길에 울릉도 호박엿 공장에 들렸다. 이곳에서는 호박젤리, 호박빵, 호박엿 등 호박으로 만든 울릉도 특산품을 판매한다. 원래 울릉도 호박엿은 후박나무의 껍질을 다린 물로 엿을 만들었던데서 유래된 후박엿이었으나 이것이 호박엿으로 와전되고 또 후박나무는 울릉도에서 흔한 나무이긴 하지만 보호하게 되고 후박 껍질이 공급되기 어려우니 호박으로 엿을 만들게 되었다고 한다. 호박엿은 방부제를 넣지 않고, 무공해 울릉도 호박이 사용된다고 한다. 특히, 다른 엿에 비해서 치아에 달라붙지 않고 고소한 맛이 강하다.
< 후박나무 > 오늘 일정을 마치고 회로 저녁식사를 하고 항구 부근에 나가 바닷바람을 쐤다. 바다고유의 내음, 밤바다에 비취는 불 빛, 친구들, 그리고 취기가 나도 모르게 또 하나의 추억이 되어 마음속에 새겨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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봐 줘서 고마워요.
오늘 온도가 4도나 내려 갔네요
환절기 건강 조심하세요
누워서 여행잘했네 가본지10년전이니 많이 변했겠지 잘보고간다 또 잼난거 올려 강림은 왜이리춥노
오늘 원주도 추워
감기 조심해
나두 울릉도 언제 누구랑 갈까 했는데~ 안가도 되겠슴다~ 고마와요~ 멋지네요~
ㅋㅋ근데~ 다른 경치 물리치고 아직도 눈앞에 아른거리는 광수씨 패션~
그거 신상 패션이야? 마나님 스커트야? 무지 멋있다~~~호호깔깔깔~~~
너무 상세한 울륭도얘기! 두고두고 읽어야 할까봅니다!
감사함을 뼈저리게 느낌니다! 감기조심하시고, 남은 교직생활 알차고 씩씩하게 잘마무리 지세요!
나는 10월 3~5일 2박3일 이코스 그대로 갔다왔는데 이분들은 출근안하고 연가받고 가셨나봐요.나는 4일이 소풍이라 하루만 연가.그때도 연휴라 사람 엄청많았어요.나름 독도에도 발디뎌보고 좋았는데 이렇게 사진을 보니 새삼 생경스럽네요.역시 용수씨는 대단합니다.
우리는 지난 8월7,8,9 일 방학 중 갔다 온 건구요 영옥씨 멋있는 사진 있으면 올려주세요.
혼자만 보시지 말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