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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래정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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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스크랩 *특별한 경우에 행하는 기도법
정대식(松憙) 추천 0 조회 13 13.11.14 14:39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특별한 경우에 행하는 기도법

 

 

속성가피를 이루려면

우리 불자들은 기도를 한다. 불보살님께 마음속의 소원을 기원하면서 기도를 한다.

간절히 간절히 기도를 하고, 마침내는 '소원 성취'라는 결과를 이룩하게 된다.
간절한 기도에 소원 성취.그러나 이것은 불교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기독교, 이슬람교, 힌두교 등의 세계적인 종교나 각국의 민간 종교에서도 간절한 기도를 통하여 소원을 이루는 경우는 수없이 많다. 심지어는 집단 최면의 효과가 있는 타종교의 '광(狂)'에 가까운 기도가 더 빠른 성취를 안겨 주는 듯이 보일 때도 있다.
그렇다면 여기서 잠시 생각해 보자. 불교의 기도와 다른 종교의 기도는 같은 것인가?

불교만이 아니라 그 어떤 종교의 기도라도 똑같은 영험에 똑같은 결과가 있기 마련인 것인가?
아니다. 그렇지가 않다. 왜냐하면 기도 성취의 근거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불교의 기도는 불성(佛性), 누구나 가지고 있는 참된 마음 자리의 영원 생명, 무한 능력을 의지하고 개발하는 것인데 비해, 타종교의 기도는 인간이 스스로 설정한 바깥의 절대적인 존재에만 매달리는 것이다.

따라서 불교의 기도를 하여 가피를 입은 사람은 자기의 참 마음 자리 개발을 위해 꾸준히 수행하는 경우가 많고, 타종교의 사람들은 자기 개발보다는 절대자를 위한 헌신으로 나아가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이다.
이에 이러한 사실을 바탕에 깔고, 불교의 기도 성취 원리와 옛 스님들이 수없이 절을 하면서 기도를 하도록 한

까닭에 대해 보다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자.

 

 

1) 절하는 사람과 절 받는 부처님


불교의 절은 능례(能禮)와 소례(所禮)로 이루어진다. 곧 능(能)은 주체요 소(所)는 대상으로, 능례는 절하는 '나'를 소례는 그 절을 받는 불보살을 가리키는 것이다.
중생의 분별 세계에서는 이 능과 소가 언제나 붙어 다니기 마련이다. 우리가 그토록 중요시하는 '나'도 '너'가 있기 때문에 있는 것이다. '너'가 없으면 '나'라는 존재도 있을 수 없다. 선악(善惡)도 마찬가지요, 사랑과 미움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이 모든 상대적인 것이 결코 두 몸을 가지고 있거나 다른 뿌리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들은 손등과 손바닥의 관계처럼 항상 함께 하고 있다. 곧 예배를 하는 이와 예배를 받는 분이 완전히 별개의 존재가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불이(不二)의 관계에 놓여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절을 하는 사람과 절을 받는 분은 무엇에 의지하여 손의 앞, 뒷면처럼 존재하게 되는 것인가?
그것은 우리의 참된 마음 자리이다. 절을 받는 부처님은 참 마음 자리를 회복해 가진 분이요, 절을 하는 우리는

참 마음 자리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제대로 발현을 시키지 못하고 있는 존재인 것이다.
따라서 기도하는 우리에게 가장 절실하게 요구되는 것 또한 우리의 마음 자리 능력을 한껏 끌어올리는 일이다.

만약 이렇게만 하면, 절을 받는 부처님과 절을 하는 우리의 마음 자리가 하나로 계합하여 어떠한 소원도 능히

이룰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나'의 참 마음 자리! 모든 것은 이 마음 자리로부터 생겨난다. 비록 이 마음 자리는 특별한 모습이나 실체가 없지만, 인연이 화합하면 갖가지 묘한 모습과 작용을 나타내 보이게 된다.
좋고 궂은 모든 일도 바로 이 마음 자리에서 일어나고, 기도 성취의 근원적인 힘도 이 마음 자리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곧 기도를 제대로 하면 참된 마음 자리에서 묘한 힘이 흘러나와 기도를 이루게 하는 것일 뿐, 다른 특별한 존재가 있어서 감응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 불자들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다.

 

 

2) 사력십증배(死力十增培)


그렇다면 어떻게 기도할 때 이 마음 자리로부터 성취의 능력이 분출되는 것인가?
가장 빠른 방법은 사력(死力)을 다하는 것이다. 사력을 다할 때 참 마음 자리의 힘은 가장 힘차게 뻗어 나오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중생의 마음을 연려심(緣慮心), 육단심(肉團心), 진여심(眞如心)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이 중 연려심은 다가온 인연 속에서 일어나는 평소의 마음상태를 가리키고, 육단심은 만용을 부려 억지로 하는 것으로 보통 때는 일어나지 않다가 큰 욕심이 일면 생겨나게 된다. 진여심은 우리의 마음 가장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 참되고 한결같은 마음 자리로서, 아주 특별한 때만 나타나게 된다.
예를 들면서 조금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어떤 사람은 집에 불이 나자 자기 키보다 더 큰 장 단지를 번쩍 들고 나왔는데, 나중에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어디에서 그런 힘이 나왔는지를 알 수 없었다고 한다. 그것이 바로 육단심이다.
옛말에 "욕심으로 하는 일은 보통 때보다 다섯 배의 힘이 생긴다(欲九五增培)."라고 하였는데, 이 마음으로 기도하여도 보통과는 다른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진여심의 힘은 평소에는 느낄 수 없지만, 특별한 경우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힘으로, 이를 세속에서는 '사력(死力)'이라고들 한다. "죽을힘을 다하면 열 배의 힘이 생긴다(死力十增培)."는 말은 바로 이

진여심과 관련되어 있다.

옛날 활을 잘 쏘는 사람이 밤길을 가다가 호랑이를 만났다. 깜깜한 어둠 속에서 눈에 불을 켜고 있는 호랑이를

대하자 온몸의 털이 모두 곤두섰지만, 순간적으로 그는 일념 속에 빠져들었다.
'죽어서는 안된다. 저놈에게 잡아먹힐 수는 없다.'
찰나 지간에 그는 화살을 활에 메겨 활시위를 당겼다. '팍'하고 꽂히는 소리가 들려 정통으로 맞힌 줄 알았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화살을 맞은 호랑이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는 다시 화살을 날려 정통으로 맞혔지만 이번에도 쓰러져야 할 호랑이는 그대로 앉아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다시 활시위를 당겨 모두 세 방을 정통으로 맞혔는데도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거 참 이상하다'는 생각과 함께 주위를 둘러보니 사방은 칠흑같이 어두웠고, 별안간 무서운 생각이 들어 '걸음아, 나 살려라'하면서 집으로 뛰었다. 그 다음날 손에 손에 무기를 든 동네 사람들을 이끌고 그곳으로 가서 보니, 마땅히 죽어 있어야 할 호랑이는 간 곳이 없고 그 자리에는 호랑이를 꼭 닮은 바윗돌이 서 있었다. 그리고 어젯밤 자기가 쏜 화살 세 개가 거기에 박혀 있는 것이었다.
"야, 그것 참 이상하다. 어제 저녁 바위를 호랑이로 본 것은 내가 잘못 보았다고 치더라도 어떻게 화살이 저기에 박혔을까? 내 힘이 저렇게 세단 말인가?"
그리고는 어제처럼 다시 화살을 쏘아보았다. 그러나 화살이 바위에 박히기는커녕, 바위에 부딪치는 순간 화살촉만 부러졌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참 마음 자리에서 나오는 '사력십증배'의 힘이다.
이를 기도에 적용시켜 생각해보라. 목숨이 달린 다급한 일이 있다면, 목숨처럼 소중한 일이 있다면 어떻게 기도를 할 것인가? 참 마음 자리의 영원한 생명력, 무한한 능력이 필요하다면 어떠한 자세로 기도해야 하는가?
사력을 다한 기도! 바로 사력을 다한 기도를 하면 된다. '죽으면 산다.'는 말이 있듯이, 사력을 다하여 기도할 때 참 마음 자리의 무한 능력이 분출되어 모든 소원이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고, 이를 응용하여 옛 스님들은 불전 3천배(佛前三千拜)를 수십 일 또는 수백 일 동안 행하게 하였던 것이다.
사력을 다한 기도..... 이와 관련된 기도 이야기 한 편을 함께 음미해 보도록 하자.

 


3) 매일 3천배를 삼칠일 동안


제 1공화국 시절 말기에 치안 국장을 지낸 이강학은 대구에서 태어났다. 공부를 열심히 하였던 그는 초창기 경찰 학교을 수석으로 졸업하였고, 곧바로 이승만 대통령의 눈에 띄어 30대의 나이에 치안 국장이라는 높은 자리에 앉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의 어머니 대덕화(大德華)보살은 불심이 지극히 돈독한 분으로 열심히 팔공산 파계사를 다녔고, 차를 타고 가다가도 먹물 옷을 입은 스님만  보면 얼른 뛰어내려 큰절을 하고, 주머니를 털어서 얼마라도 보시를 해야 직성이 풀리는 분이었다. 대덕화 보살은 아들이 높은 권력을 쥔 치안 국장이 되자 더더욱 여러 절을 찾아다니며 불사(佛事)를 많이 도왔고, 사찰에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적극 해결해 주었다.
특히 당시는 자유당 말기 시절인지라, 아부하기를 좋아했던 지방의 경찰 국장들은 치안 국장의 어머니인 대덕화보살이 움직일 때마다 친히 길 안내를 자청하였다.
하루는 팔공산의 사찰을 찾아갔더니, 경찰이 와서 주지 스님을 잡아가려 하는 것이었다. 이유인즉, 스님이 큰 나무 하나를 베어 절 앞의 개울에 외나무다리를 놓았는데, 그것이 산림법 위반이라는 것이었다. 대덕화 보살은 길 안내를 맡은 경찰 국장에게 말했다.
"걸음도 제대로 못 걷는 나 같은 노인이 개울을 걷다가 넘어지기라도 하면 어떻게 되겠소?

외나무다리를 놓아야지."
"예,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이 주지 스님 일도 잘 해결되겠지요?"
"여부가 있겠습니까?"
이렇게 대덕화 보살은 어려운 일의 해결사 노릇을 하였다. 사찰 입구의 길을 닦는 일, 법당을 짓기 위해 나무를

베는 일, 불상을 모시기 위해 돈을 모으는 일 등 당시 어렵던 절 집안을 위해 헌신을 아끼지 않았다.
그런데 이승만 정권의 부정 부패를 보다 못한 학생들이 봉기하여 4,19가 일어났고, 그 와중에서 군중을 향해

'발포하라.'고 명령을 내린 죄로 내무부장관 최인규와 함께 아들 이강학이 사형을 선고받게 된 것이다.
양지가 음지 되고 음지가 양지된다더니, 기정 사실화된 아들의 죽음과 함께 대덕화 보살의 집안에는 온통 차압을 하겠다는 빨간딱지가 붙었다. 72세의 대덕화 보살은 울고 또 울면서 팔공산 파계사까지 50리 길을 걸어갔다.

그리고 종수스님 앞에 엎드려 피눈물을 흘리며 하소연을 하였다.
"스님, 아들이 사형을 당하게 되면 저는 이 세상에 단 1분도 더 살아 있을 이유가 없습니다. 제 목숨이라도

바칠 테니 제발 아들을 살려주십시오."
"보살님, 아들을 꼭 살리고자 하면 부처님께 매달려 보십시오, 사람의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일이라면 부처님께

의지하는 길밖에 없습니다. 그렇지만 보통 기도로는 통하지 않을 것입니다. 아드님을 30년 동안 키웠으니,

30년 키운 공만큼 부처님께 공을 들여야 할 것입니다. 죽기 살기로 기도해 보십시오.

부처님의 응답이 있을 것입니다."
"어떻게 기도를 할까요?"
"아들의 사형 집행은 언제쯤 있을 것 같습니까?"
"한 달 정도 있으면 처형될 것입니다."
"그럼 삼칠일[21일] 동안 매일 3천배씩 절을 하십시오."
"예, 아들만 살릴 수 있다면...."
아들을 살리겠다는 일념으로 3천배씩 삼칠일을 하겠다고 다짐했지만, 유난히 뚱뚱한 체구의 늙은 대덕화 보살로서는 하루 3천배가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다. 젊고 날렵한 사람들보다는 절 한 번 하는데 2-3배의 시간이 걸렸던 대덕화 보살. 첫날 1천배를 했을 때 그녀는 이미 파김치가 되어 있었다.
'아이구 죽겠다. 그놈이 죽을 팔자라면 죽고, 살 팔자라면 살겠지. 나는 못하겠다. 더 이상은 못하겠다.'
그녀는 10여 분을 누워 있다가 '내 아들이 죽으면 안된다.'는 생각이 들면 다시 일어나서 절하고 또 절하고..
이렇게 3천배를 거의 하루종일 걸려서 끝마쳤다. 둘째 날도 셋째 날도 그녀는 첫날과 같이 고달픈 몸과 '아들을 살려야 한다.'는 마음의 싸움을 하며 정말 지루하게 절을 하였다.
그러다가 4일째 되는 날, 대덕화 보살은 마음을 굳혔다.
"죽을 목숨 살리기가 어찌 쉬운 일이랴. 나는 지금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살리고자 부처님께 기도를 드리고 있다. 일념으로 빌고 또 빌어도 이루어지기 어려운 일인데, 몸 고달픈 것을 핑계삼아 절을 할까 말까 망설이고 불평

불만까지 하다니.... 내 목숨을 걸어 놓고 정성껏 절을 해보자. 지금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이 길밖에 없다."
이렇게 결심한 그녀는 3일째부터 이를 악물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어느새 발가락이 부르트더니 짓물러 터졌고, 무릎은 다 벗겨져 피멍이 들었으며, 나중에는 손톱 밑에까지 멍이 들어 한 배 한 배 절을 드릴 때마다 그렇게

고통스러울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대덕화 보살은 절을 멈추지 않았다. 삼칠일이 거의 다 되었을 때는 기운조차 탈진되어 한 번 엎드리면 머리가 무거워서 일어나기가 여간 힘들지 않았다. 한 번 엎드리면 한참을 쉬었다 일어나고, 한 번 엎드리면 또

한참을 쉬고..... 이렇게 하다가 그만 순간적으로 깜빡 졸게 되었다.
순간, 불단 위에 앉아 계시던 부처님께서 일어나시더니, 탁자를 밟고 내려와 앞에 서시는 것이었다. 대덕화 보살이 고개를 들어보니 조금 전까지 분명히 서 계셨던 부처님은 보이지 않고 웬 스님 한 분이 동냥 그릇을 든 채 손을 내밀고 계셨다. 본래부터 보시 정신이 강했던 대덕화 보살은 평소의 버릇대로 주머니를 뒤졌다.
"돈이 있는지 모르겠네."
이렇게 혼자 중얼거리며 주머니를 뒤적이자 돈 한 뭉치가 잡히는 것이었다. 꺼내어 보니 돈은 돈인데 빨간 색의 돈이었고, 감촉이 쥐 껍질을 벗겨 놓은 것처럼 물컹한 것이 아주 기분이 나빴다. 액수를 세어 볼 것도 없이 몽땅 드렸더니, 스님이 그것을 받고는 품속에서 하얀 카드 한 장을 꺼내 주는 것이었다. 대덕화 보살은 무엇인지도

모른채 그것을 받았고, 정신을 차려 보니 꿈이었다.
그리고 다시 무거운 몸을 일으켜 절을 계속하였는데, 마지막 3천배가 끝나 갈 무렵 법당 밖에서 스님의 음성이

들려 왔다.
"보살님! 살았습니다. 아드님이 살게 되었어요."
"예? 살았다구요?"
"방금 내무부장관을 지낸 최인규는 사형이 확정되고, 아드님은 15년 징역으로 감해졌다는 라디오 방송이

있었습니다."
그 뒤 이강학은 몇 년형을 살다가 특별사면이 되었고,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

만약 대덕화 보살의 이러한 기도가 없었다면 이강학은 틀림없이 죽었을 것이다. 곧 사력을 다한 어머니의 기도가 아들을 살렸던 것이다. 이처럼 지극한 기도는 나의 업이 아닌 다른 사람의 업까지도 능히 녹일 수 있다.
일찍이 부처님께서는 '살인 등의 큰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불보살님 전에 지극히 기도를 하여 서상(瑞相)을 입으면 죄가 다 소멸된다.'고 하셨다. 기도를 지극히 하면 어떠한 업장도 소멸될 수 있는 것이다.
이 세상의 일이란 낮과 밤의 원리와 같은 것이다. 어둠이 다하면 밝음이 오고, 밝음이 다하면 어둠이 오게 되어 있다. 이를 기도에 적용시켜 보면 어둠은 업장이요, 밝음은 가피이다. 업장이 두터워 뜻과 같이 되지 않을 때 일월과 같은 부처님의 자비에 의지해 보라. 틀림없이 어두운 것이 사라지고 밝음이 오게 되어 있다.
문제는 오직 나의 정성이니, 만약 업장이 두텁다면 사력을 다해 목숨을 걸고 기도할 필요가 있다.
그 하나의 방법인 3천배 기도법은 과거 장엄겁(莊嚴劫)의 1천 부처님, 현재 현겁(賢劫)의 부처님, 미래 성숙겁(星宿劫)의 1천 부처님, 이렇게 3대겁(三大劫)동안에 출현하는 3천부처님께 각각 한 번씩의 절을 올리는 참회법이다.
만약 지금 우리에게 비상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면 비상한 기도, 비상한 참회가 뒤따라야 한다. 참으로 큰일을

해결하고자 한다면 적어도 3천배를 3일 또는 7일, 나아가 21일 정도는 하여야 한다.
지금, 큰일이 눈앞에 이르렀다면 크게 마음을 일으켜 부처님께 매달려 보라. 이것만은 꼭 소원 성취하게 해 달라고, 잘못했으니 살려 달라고 하라. 부처님께 매달려 온 힘을 다해 기도하면 부처님의 밝은 가피는 나에게 이르기 마련이고, 가피력이 나에게 이르면 어두운 업장이 녹아들어 모든 일이 원만하게 풀리게 되어 있는 것이다.   

 


수행자의 기도

 

사람들은 기도를 현실적인 소원 성취 또는 현재 처한 고난을 벗어나는 방편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많다.

그러나 기도의 결실은 그 정도로 한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기도는 오도(吾道)의 한 방법으로서,

수행의 걸음마 단계에 있는 사람에게 올바른 길로 나아가게 하는 훌륭한 길잡이가 되기도 한다.
또한 기도를 통하여 특별한 수행의 경지를 이루게 됨은 물론이요, 도를 깨닫는 경우도 많이 있다.

그러나 말만으로는 쉽게 이해가 되는 것이 아니므로, 실제 있었던 일들을 함께 살펴보면서 신심을 가다듬어 보자.

 

 

1) 기도로써 수행의 기틀을


세상의 그 어떤 일이든 처음은 언제나 중요하다.
수행자의 길에 들어선 사람도 예외는 아니다. 그들의 시작하는 마음, 그 첫마음은 너무나 순수하고 완전히 비어 있으며, 완전히 비어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 따라서 처음 시작할 때 수행의 기틀을

올바로 정립하면, 어디에서나 어느 때나 부처님의 깨달음을 접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처음 출가한 사람들에게 신심을 다 바쳐 기도함으로써 보이지 않는 업장을 녹이고 수행의 기틀을 잡을 것을 간곡히 권하곤 한다. 나 또한 수행 초기에 네 차례의 기도를 통하여 대발심(大發心) 용맹 정진한 일이 있고,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백용성(白龍城)스님도 그러한 고승들 중의 한 분이다.

3,1운동 당시 33인의 한 사람이었던 백용성 스님은 천수대비주(千手大悲呪)를 외워 수행의 기틀을 바로잡은

고승이다.
유교 집안에서 태어난 스님이 불교와 첫 인연을 맺은 것은 1877년 14세 때의 일이었다. 꿈속에서 부처님의

수기(授記)를 받고 불경을 보기 시작했고, 남원 덕밀암(德密庵)으로 출가하였으나 부모님의 강한 만류로 집에

돌아와야만 했다.
그 후 2년이 지난 16세 때 해인사로 찾아가 화월(華月)스님을 은사로 모시고 정식으로 출가하였으며, 17세 때

의성 고운사의 수월(水月)스님을 찾아가서 소년답지 않은 질문을 던졌다.
"나고 죽음은 인생에 있어 가장 큰일입니다. 모든 것은 무상하여 날로 변합니다. 어떻게 해야 생사도 없고

변하지도 않는 '나'의 성품을 볼 수 있습니까?"
그러나 당대의 대고승인 수월스님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하지 않고, 먼저 천수대비주를 외울 것을 권하였다.
"지금 숙업(宿業)이 무겁고 장애가 많아 견성법(見性法)을 너에게 일러주어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대비주(大悲呪)를 부지런히 외우면 업장도 소멸되고 마음도 맑아져서 저절로 길을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얼마 동안은 아무 생각 말고 대비주만 외우도록 하여라."
수월스님의 가르침에 따라, 스님은 대비주를 10만번 외우기로 스스로 다짐하고 부지런히 외웠다. 9개월에 걸쳐 대비주를 10만번 외워 마쳤을 때 스님은 양주 보광사 도솔암(兜率庵)에 머물러 있었다.

그런데 불현듯 한 가지 의문이 솟아오르는 것이었다.
"산하 대지와 삼라만상에는 모두 근원이 있다. 그렇다면 사람의 근원은 무엇인가?

보고 듣고 깨닫고 아는 근원은 어디에 있으며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이 의문을 일념으로 생각한 지 엿새가 되었을 때, 마치 깜깜한 방에 등불이 밝혀지듯 그 근원을 확연히 알 수 있게 되었다. 그 뒤 용성스님은 '무(無)'자 화두를 꾸준히 참구하여 확철대오(廓徹大悟)하였으며, 일제의 대처 불교에 대응하여 대각교운동(大覺敎運動)을 전개하고 역경 사업에도 크게 공헌하였던 것이다.

우리는 스님의 깨달음과 모든 활동에 10만 독(讀)의 대비주가 힘의 원천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을 해야만 한다. '대비주'도 좋고 '관세음보살'도 좋다. '나무아미타불'도 좋고 '마하반야바라밀'도 좋다. 무엇이든 한 가지를 택하여 부지런히 염하여 보라. 특히 지금 불법의 문턱에 들어선 사람이면 꼭 한 차례 깊이 기도를 할 필요가 있다.
어려운 교리나 의심도 나지 않는 화두를 들고 마구잡이로 씨름하기보다는, 스스로 마음을 정하여 업장을 녹이고 신심을 북돋울 수 있는 기도를 한바탕 열심히 하는 것이 장래의 수행에 큰 도움을 주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불보살의 가피를 입을 때까지, 아니면 7일 또는 삼칠일의 용맹스런 기도나 백일기도를 올리게 되면, 처음 출가했을 때의 순수한 그 마음에 믿음의 뿌리를 깊이 내리게 되어 해탈의 세계로 쉽게 나아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2) 수행 중에 장애가 있을 때


그리고 수행을 하다 보면 뜻과 같이 되지 않을 때가 많다. 번뇌가 치성할 때도 있고 세속일에 대한 미련이 솟구칠 때도 있으며, 몸이 공연히 아프거나 뜻하지 않은 일에 휘말릴 때도 있다. 수행자는 이러한 일을 당했을 때 포기해서는 안된다. 오히려 이러한 때에 필요한 것이 기도이다.
다시금 마음을 굳게 가지고 기도를 해보라. 새로운 힘이 샘솟게 된다. 진정 참된 수행자라면 시련의 시기를 기도로써 극복하여 불보살님께로, 그리고 불보살의 경지로 더욱 가까이 다가서야 하는 것이다.

현대의 대선사 금오(金烏, 1896-1968) 스님이 젊었을 때인 1920년대 초기, 스님은 당대의 선지식인

수월(水月)스님을 뵙고 지도를 받기 위해 만주 봉천으로 향했다.
그런데 조선 땅과 만주 땅과 러시아 땅이 합해지는 회령 지방을 조금 지나 막 러시아 땅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

마적떼들이 어느 부잣집을 털다가 반항하는 주인을 죽인 강도 살인 사건이 발생했다. 갑자기 남편을 잃은 부잣집 안 주인은 제정신이 아니었고, 범인 검거에 혈안이 되어 있던 러시아 경찰들은 불심검문을 하다가 장비처럼 생긴 금오스님을 체포하여 그 부인에게 보였다.
"이 사람이 그 마적떼요?"
"그런 것 같아요, 마적떼 대장과 비슷하게 생겼어요."
정신이 반쯤 나간 그 부인의 말 한마디에 금오스님은 완전히 범인으로 몰려 감옥에 갇히게 되었고,

고문을 당하면서 자백을 강요받았다.
"나는 수도하는 승려이지 마적떼가 아닙니다."
그러나 러시아 경찰은 믿지 않고 밤낮없이 고문을 계속하였다. 그러더니 며칠이 지나자 고문을 중단하고

감옥에만 가두어 놓는 것이었다.
'웬일일까? 고문도 그만두고 감옥에만 가두어 두다니..'
이렇게 고민을 하면서 지내던 어느 날, 한국인 한 명이 그 감방에 들어왔다. 학교 선생인 그는 산골짜기에 아편을 심었다가 발각되어 잡혀 온 것이라고 하면서 물었다.
"스님이 살인 강도의 누명을 쓰고 들어온 분입니까?"
"그렇습니다."
'스님, 범인은 이미 잡혔습니다."
"그런데 왜 나를 석방시켜 주지 않는 거요?"
"아마, 이 감옥에서 나가기가 어려울 걸요?"
"왜요?"
"우선 조선 사람은 나라가 없기 때문에 일본 사람들이 힘을 써 주지 않습니다. 설사 러시아 쪽에서 풀어 준다고

하더라도, 조선 사람이 러시아 감방에서 죄없이 갇혀 있었다는 것을 구실로 일본은 러시아에 보상을 요구합니다.

러시아로서는 공연한 말썽거리가 생기는 것을 원치 않으므로, 차라리 감옥에서 죽도록 내버려두는 것입니다.

거기다가 보복을 두려워한 그 부잣집 안주인이 돈을 써서 스님을 풀어 주지 못하도록 하였으니...."
'큰일났구나. 이 감옥에서 살다가 죽어야 하다니! 이토록 난감하고 억울한 일이 어디 있는가? 필경 불보살의

가피를 입어 탈출을 하는 수밖에는 딴 도리가 없겠구나.'
금오스님은 감옥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 관세음보살을 부르기 시작했다. 참선도 화두도 그만두고 오로지

관세음보살의 구원만을 갈구하며 부지런히 염불하였다.
사흘째 되는 날 밤, 어떤 사람이 철창 바깥에 나타나 감방 안을 들여다보며 주위를 살피는 것이었다. 보는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한 그가 쇠창살 두 개를 잡고 쑥 뽑아 올리자, 쇠창살이 그대로 빠져 버리는 것이었다.

그는 뽑힌 쇠창살 사이로 고개를 들이밀어 스님을 향해 '씩 -' 웃고는, 다시 쇠창살을 꽂아 놓고 사라졌다.
비몽사몽간에 이 일을 접한 금오스님은 자리에서 일어나 가운데 쇠창살 두 개를 뽑아 보았다.

이상하게도 쇠창살이 쏙 뽑히는 것이었다. 스님은 감방을 빠져나와 형무소 문 쪽으로 다가갔고,

때마침 문지기들이 졸고 있어 몰래 기어 나올 수 있었다.
이렇게 완전히 형무소를 탈출하여 달려가다가 다리가 아파 수수밭에서 쉬고 있는데, 갑자기 말을 탄 간수들이

나타나 탈옥수를 찾는 수색을 시작하는 것이었다. 스님이 다시 안전한 곳을 찾아 피해 가는데, 한 간수가 말을

몰아 쫓아오더니 잡으려고는 하지 않고 묻기만 하는 것이었다.
"탈옥수 한 명이 지나가는 것을 보지 못했소?"
"보지 못했는데요."
"이상하다. 어디로 사라졌지?"
그는 더 이상 묻지 않고 다른 곳으로 달려갔다.
'이것이 관세음보살의 가피로구나.'
스님은 불보살님의 은혜에 크게 감격하면서, 만주 봉천의 깊은 산림 속 토굴에 계신 수월스님을 찾아가,

1년 동안 모시고 열심히 정진하였다.
금오스님은 훗일 후학들을 지도하면서 그때의 일을 자주 들려주시고 이렇게 말씀하시곤 했다.
"참선하는 수좌도 가끔은 기도를 하는 것이 좋다."
이 금오스님의 말씀처럼 참선 수행자도 장애가 있으면 한바탕 기도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기도를 하면서

원(願)을 새롭게 가꾸고, 가피를 입을 일이 있으면 가피를 받는 것이 좋다. 그리고 한 번의 기도로 모든 것이

다 해결되지 않을 때도 있을 것이다. 그때는 도심(道心)에 걸림이 없을 때까지 거듭거듭 행하여야 한다.
누구든지 갈등이 있으면 기도하라. 장애가 많고 공부가 잘 되지 않으면 기도를 통하여 거듭거듭 발심하라.

불보살님께서는 틀림없이 큰 힘을 주실 것이다.

 


  3) 기도의 극치는 깨달음


나아가 기도가 삼매를 이루어 오랜 시간 계속되면 곧바로 깨달음으로 이어지게 된다. 

기도를하여 힘이 드는  것도 시간 가는 줄도 모르게 고비를 넘기고  나면 묘력(妙力)을 얻게 되고, 참선을 하는

이라면 밥 먹고 잠자는 것도 잊는 경지에 들어서야 득력(得力)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모든 상대적인 경계와 생사(生死)마저도 초월하는  무심삼매(無心三昧)에

빠져들면 오도(悟道)의 경지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널리 알려져 있지 않지만, 조선 선조 때 선하자(禪荷子)라는 스님이 계셨다.

이 스님은 벽송대사(碧松大師)의 제자요, 조선시대 제일의  고승으로 추앙 받고 있는 서산대사(西山大師)의

사숙이 되는 분이다.

스님은 경상도 울산 출생으로,  일찍이 부모를 잃고 16세에 출가하여 전국의 유명한 사찰을 다니며 수행하였지만, 도를 이루는 것이 생각처럼 쉽지는 않았다.  24세가 되던 해, 스님은 크게 마음을 다져 잡고 많은 성현이

이적(異蹟)을 나타내 보였다는 묘향산 문수암(文殊庵)으로 가서 대오(大悟)의 서원을 세우고 정진하였다.
어느 날, 문수암  주위를 산책하던 스님은 건너편 선령대(仙靈臺)에서 하얀 옷을 입은  노인이 거닐고 있는 것을 보았다. 아무리 보아도 범속한 인물이  아닌 듯하여 쫓아가 보았으나, 노인은인홀불견(人忽不見), 간 곳이  없었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두 번 세 번 눈을 씻고 거듭거듭 살펴보았지만, 그 족적(足蹟)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분이 성현의 화신이 아니고서야 그럴 수 없다.'
이렇게 확신한  선하자 스님은 기도를 하여  기필코 그 노인을 만나 보기로 결심을 하고, 백일기도에 필요한 양식을 구하기 위해 안주 땅으로 탁발을  시작했다. 하지만 단순히 필요한 양식을 구걸한 것이 아니라, 하루 일곱 집을 돌면서 정성껏 축원하며 탁발하였고, 탁발한 식량을 등에 지고 묘향산으로 돌아올 때는 한 걸음 옮기고 절을 한번 하는 일보일배례(一步一拜禮 )를 행하였다.
비지땀을 흘리며 산 중턱쯤 올라왔을 때, 16명의 조그마한 아이들이 놀고 있다가 스님을 반겼다.
"스님, 힘드시지요? 저희들이 올려다 드리겠습니다."
아이들이 스님의 짐을  빼앗다시피 하여 문수암까지 들어다 주고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 아이들이 일반 세속인이 아니라 선하자 스님의 정성에 감동하여 나타난 문수암의 16나한이었던 것이다.
그날부터 선하자 스님은  직접 마지(부처님께 올리는 밥)를 지어 올리며 백일기도를 시작했다.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스님은 새벽부터 한밤중까지 목탁을 두드리며 관세음보살을 염창(念唱)하였을 뿐  아니라, 마지를 올리는 시간,  밥을 먹는 시간, 화장실을  가는 시간에도 계속해서 관세음보살을 염하였다.나중에는 꿈속에서도 관세음보살을 염불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마침내 1백일이 흘러  회향날이 되었다. 스님이 마지막 마지를 지어 법당으로 올라가고 있을 때, 갑자기 커다란 망태기를 짊어진 늙수그레한 포수가 나타나 애원을 하는 것이었다.
"스님, 여러 날  동안 굶어 배가 고파  죽을 지경입니다. 제발 그 밥을 저에게 주십시오."

마음 같아서는 당장에 그 밥을 주고 싶었으나,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인지라 스님은 도리어 포수에게 사정을 했다.
"영감님 사정을 보아서는  마땅히 이 공양을 드려야 하겠지만, 오늘이 저의 백일기도를 회향하는 날입니다.

잠깐만 기다리시면 기도를 마치고 상을 차려 드리겠습니다."
그러나 포수는 막무가내였다.
"스님께서 마지를 올리고 나면 저는 배가 고파 죽어 있을 것입니다. 부처님께 마지를 올리는 것보다 불쌍한 중생 하나를 살리는 것이 더 뜻있는 기도가 아니겠습니까?"
"그렇기만 합니다만, 스스로  부처님께 깊이 맹세한 바가 있어 어쩔 수 없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정히 그렇다면 할 수 없지. 이 총으로 스님을 죽이고 밥을 빼앗아 먹을 수밖에!"
포수가 총을 겨누었지만 스님은 뜻을 굽히지 않았다.
"여태까지도 굶었는데 잠깐 사이를 참지 못한다면 어찌 사람이라 하겠습니까? 나 또한 이 자리에서 죽는다 할지라도 마지를 부처님께 먼저 올리지 않고는 당신에게 밥을 드릴 수 없습니다."
선하자 스님이 그를 떨치고 법당으로 올라가자, 포수는 스님의 등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탕 - ."
총소리는 온 산중에 메아리쳤다. 

그러나 마땅히 죽어야 할 선하자 스님은 쓰러지기는커녕 그순간 확철대오(廓徹大悟)하였다. 스님은 너무나

기뻐 덩실덩실 춤을 추며 가가대소(呵呵大笑)하였다. 그러다가 정신을 차려 주위를 둘러보니 포수는 간 곳이

없었다. 바로 그분은 포수가 아니라 선하자 스님의 정성을 시험하고 깨달음의 연(緣)을 심어  주기 위해 나타난

문수보살님이었던것이다.

죽고 사는 것까지  넘어서서 깨달음을 이루고자 기도하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깨달음이 다가서기 마련이다.

꼭 참선을 하여야만 도를 깨달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선하자 스님의 경우처럼 기도가 꿈속에서도  이루어지고 일념삼매(一念三昧)에  젖어 들게 되면, 깨달음의 문이 저절로 열리게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열심히

정진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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