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광주대교구 꾸르실리스따 원문보기 글쓴이: 이선정스테파노
2024년 11월 18일 월요일
[(녹) 연중 제33주간 월요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말씀의 초대
요한 사도는 아시아의 일곱 교회에 글을 쓰면서, 에페소 교회가 처음에 지녔던 사랑을 저버린 것을 나무란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예리코에서, 눈먼 이가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부르짖자 그의 믿음을 보시고 고쳐 주신다(복음).
제1독서
<네가 어디에서 추락했는지 생각해 내어 회개하여라.>
▥ 요한 묵시록의 시작입니다. 1,1-4.5ㄴ; 2,1-5ㄱ
1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하느님께서 머지않아 반드시 일어날 일들을 당신 종들에게 보여 주시려고
그리스도께 알리셨고, 그리스도께서 당신 천사를 보내시어
당신 종 요한에게 알려 주신 계시입니다.
2 요한은 하느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언,
곧 자기가 본 모든 것을 증언하였습니다.
3 이 예언의 말씀을 낭독하는 이와 그 말씀을 듣고
그 안에 기록된 것을 지키는 사람들은 행복합니다.
그때가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4 요한이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이 글을 씁니다.
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으며
또 앞으로 오실 분과 그분의 어좌 앞에 계신 일곱 영에게서,
5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에게 내리기를 빕니다.
나는 주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2,1 “에페소 교회의 천사에게 써 보내라.
‘오른손에 일곱 별을 쥐고 일곱 황금 등잔대 사이를 거니는 이가 이렇게 말한다.
2 나는 네가 한 일과 너의 노고와 인내를 알고,
또 네가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못한다는 것을 안다.
사도가 아니면서 사도라고 자칭하는 자들을 시험하여
너는 그들이 거짓말쟁이임을 밝혀냈다.
3 너는 인내심이 있어서,
내 이름 때문에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지치는 일이 없었다.
4 그러나 너에게 나무랄 것이 있다.
너는 처음에 지녔던 사랑을 저버린 것이다.
5 그러므로 네가 어디에서 추락했는지 생각해 내어 회개하고,
처음에 하던 일들을 다시 하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 주님,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8,35-43
35 예수님께서 예리코에 가까이 이르셨을 때의 일이다.
어떤 눈먼 이가 길가에 앉아 구걸하고 있다가,
36 군중이 지나가는 소리를 듣고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37 사람들이 그에게 “나자렛 사람 예수님께서 지나가신다.” 하고 알려 주자,
38 그가 “예수님,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부르짖었다.
39 앞서 가던 이들이 그에게 잠자코 있으라고 꾸짖었지만,
그는 더욱 큰 소리로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외쳤다.
40 예수님께서 걸음을 멈추시고 그를 데려오라고 분부하셨다.
그가 가까이 다가오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물으셨다.
41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
그가 “주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하였다.
42 예수님께서 그에게 “다시 보아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고 이르시니,
43 그가 즉시 다시 보게 되었다. 그는 하느님을 찬양하며 예수님을 따랐다.
군중도 모두 그것을 보고 하느님께 찬미를 드렸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예리코의 눈먼 이에게 하신 말씀은 이웃에게 호의를 베풀 때의 마음가짐에 대해서 묵상하게 합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에게 자비를 청하는 눈먼 이를 곧바로 고쳐 주시지 않고 물으십니다.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루카 18,41) 예수님께서는 먼저 그가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물으십니다. 눈먼 이는 예수님께 자신의 바람을 아룁니다. “주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18,41). 예수님께서는 그가 바라는 것을 베풀어 주십니다.
우리는 형제들에게 도움을 주려고 할 때, 먼저 그가 바라는 것을 세심하게 살펴야 합니다. 자칫 잘못하면 그가 바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바라는 것을, 내가 하고 싶은 방식으로 주게 됩니다. 그것은 도움을 받는 사람보다 내 만족을 더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 모습일지도 모릅니다. 애덕의 행위는 자신의 만족을 위한 행위가 아니라, 상대를 위한 행위여야 합니다. 그래서 이웃 사랑에는 상대의 마음을 살피는 세심한 배려와 겸손이 필요합니다.
도움을 주려는 선의가 자칫 폭력이 될 수 있습니다. 상대가 필요하지도, 바라지도 않는 것을 받도록 강요할 때입니다. 살레시오회의 설립자인 요한 보스코 성인은 사랑에 대한 중요한 가르침을 전합니다. “사랑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그들이 사랑받고 있음을 느끼게 해야 합니다.” 자기중심적인 방식으로 사랑할 때 상대는 사랑을 느끼지 못하고, 상대를 중심으로 사랑할 때 비로소 사랑받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는 통찰입니다.(최정훈 바오로 신부)
우리의 절박한 목소리를 외면하지 않으시는 주님!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이스라엘의 지형은 독특합니다. 해발 천미터 남짓되는 높은 곳에 위치한 도시가 있는가 하면, 해수면 보다 낮은 곳에 위치한 도시도 있습니다. 다양한 꽃들과 식물들로 온화하고 풍성한 지역이 있는가 하면 황량하고 척박한 광야도 있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들르신 지역도 정말이지 특별한 곳이었습니다. 예리코! 지구 상에서 가장 낮은 위치에 자리한 도시로 유명합니다. 그런데 지구상 가장 낮은 도시 예리코에는 이 세상에서 가장 가련한 한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태어나면서부터 심각한 시각 장애를 안고 살아온 사람이었습니다. 그간의 세월이 얼마나 고달팠겠습니까? 비장애인인 우리는 상상도 못할 고통을 그는 겪고 살아왔습니다. 앞이 조금도 안 보이니 얼마나 답답했겠습니까? 눈 떠도 깜깜 눈 감아도 절망! 그 삶이 참으로 혹독하고 절망스러웠습니다.
지구상 가장 낮은 도시에서 살아가던 그, 이 세상에서 가장 가련히 살아가던 예리코의 시각장애인에게 어느 날 뜻밖의 행운이 찾아옵니다. 해방자요 메시아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 자신의 코앞으로 지나가시는 소식을 전해 들은 깃입니다.
그는 직감으로 느꼈습니다. 자신에게 다가온 인생의 마지막 기회라는 것을. 그래서 그는 젖먹던 힘까지 다해 크게 외쳤습니다.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수많은 군중의 말소리에 파묻혔을 법도 한데 예수님께서는 그의 절박하고 목소리를 들으셨습니다. 그의 간절함을 나 몰라라 하지 않으시고 마침내 그의 평생 소원을 들어주십니다.
오늘 우리를 향해서 주님께서는 자상하게 물으십니다.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주기를 바라느냐?”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주일 미사 마치고 교우들과 인사를 나누는데 한 형제님과 자매님이 면담을 청했습니다. 저는 사목회가 있었지만, 저를 찾아온 부부와 면담했습니다. 10년 전에 달라스 성당에서 아들과 함께 세례받았다고 합니다. 필라델피아로 이사 갔다가 다시 달라스로 왔다고 합니다. 세례는 받았지만, 곧 성당을 멀리하였다고 합니다. 저를 보면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제가 성당에 다니지 않아서 벌 받았습니다. 제 둘째 아들이 죽었습니다.” 이렇게 말하면서 부부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저는 성당에서 장례미사를 하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형제님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제가 염치가 없이 어찌 그런 청을 할 수 있겠습니까? 다만 신부님께라도 이렇게 말을 하지 않으면 괴로워서 죽을 것 같아서 왔습니다.” 아드님이 하느님의 품으로 간 것은 형제님이 성당에 오지 않아서가 아니라고 말하였습니다. 자비하신 하느님께서는 비록 형제님이 성당에 다니지 않았을지라도 이렇게 청하면 기꺼이 장례미사를 할 수 있도록 허락하시는 분이라고 말하였습니다. 슬픔이 가득했던 부부는 위로받았고, 아들을 위한 장례미사를 청하였습니다. 그렇게 아들은 모든 성인 대축일에 장례미사를 하였습니다. 모든 성인의 전구 함으로 천국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으리라 믿습니다.
살면서 ‘왜 나만’이라는 생각이 떠오를 때가 있습니다. ‘머피의 법칙’이라고도 합니다. 시험을 볼 땐 꼭 자신이 공부하지 않고 지나친 곳에서만 문제가 출제됩니다. 물건이 없어져 한참을 찾다가 결국 같은 물건을 사고 나면 찾게 됩니다. 기계가 고장 나서 기술자를 부르면 갑자기 잘됩니다. 세차하면 비가 옵니다. 예전에 엠피쓰리를 잃어버린 줄 알고 새것을 샀는데 나중에 가방에 들어있던 엠피쓰리를 발견하였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소경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소경은 ‘왜 나만’이라고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처지를 통해서 하느님의 자비가 드러날 수 있기를 청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소경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보아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소경은 즉시 다시 보게 되었고 하느님을 찬양하며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오늘 독서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나는 네가 한 일과 너의 노고와 인내를 알고, 또 네가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못한다는 것을 안다. 너는 인내심이 있어서, 내 이름 때문에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지치는 일이 없었다. 그러나 너에게 나무랄 것이 있다. 너는 처음에 지녔던 사랑을 저버린 것이다. 그러므로 네가 어디에서 추락했는지 생각해 내어 회개하고, 처음에 하던 일들을 다시 하여라.” 저항과 열정, 인내와 신념도 중요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합니다. 그것은 처음에 지녔던 사랑입니다. 하느님의 자비를 청하는 회개입니다.
예전에 엘리베이터의 게시판에서 읽은 글이 생각납니다. ‘눈이 오는 추운 겨울에는 소나무와 전나무가 더욱 푸르다.’ 모든 것이 푸르른 여름에는 잘 모릅니다. 하지만 시련의 때, 고난의 때에는 유독 그 푸르름이 돋보이는 나무가 있는 것처럼 주변을 보면 그렇게 자신의 길을 충실하게 걸어가는 분들이 있습니다. 신앙인은 세상의 흐름에 따라서 흘러가는 삶을 사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인은 거친 물살을 거슬러 올라갈 줄 아는 용기와 신념이 있어야 합니다. 흘러가는 삶은 살아지는 것이지 사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좋은 것들을 받아들이고, 편안하게 살아도 결국 중요한 것은 하느님과 함께하는 삶입니다. 주님은 소경의 간절함을 보시고, 보게 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보아야 하는 것들은 빠르고 편하고, 쉬운 길만은 아닐 것입니다. 비록 느리고, 힘들고 어렵다고 할지라도, 주님과 함께 가는 길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당신의 믿음이 당신을 살렸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굳이 당신의 힘과 능력을 내세우지 않으셨습니다. 당신께서 세우신 질서와 법에 따라야 한다고 하시지도 않으셨습니다. 선택과 결정을 전적으로 본인에게 맡겨 주셨습니다. 이것이 하느님의 아들이 사람이 되신 이유입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 나라의 질서입니다. “행복하여라! 악인의 뜻에 따라 걷지 않는 사람, 죄인의 길에 들어서지 않으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는 사람, 오히려 주님의 가르침을 좋아하고, 밤낮으로 그 가르침을 되새기는 사람”
<걸음을 멈추신 그분처럼>
상지종 베르나르도 신부님
“예수님께서 걸음을 멈추시고 그를 데려오라고 분부하셨다.”(루카 18,40)
걸음을 멈추신 그분처럼
버젓이 있음에도 어떻게든
없어야만 하는 벗 하나
애틋이 찾기 위하여
걸음을 멈추는 겁니다
걸음을 멈추신 그분처럼
뭇사람들 눈길 비켜가는
보잘것없는 벗 하나
애써 보기 위하여
걸음을 멈추는 겁니다
걸음을 멈추신 그분처럼
숨넘어가는 울부짖음마저
짓밟힌 벗 하나
기꺼이 듣기 위하여
걸음을 멈추는 겁니다
걸음을 멈추신 그분처럼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오히려
사람일 수 없는 벗 하나
오롯이 품기 위하여
걸음을 멈추는 겁니다
걸음을 멈추신 그분처럼
오늘의 성인
성녀 로사 필리피나 뒤센(Rose Philippine Duchesne)
활동년도 : 1769-1852년
신분 : 수녀원장, 선교사
지역 :
같은 이름 : 뒤센느, 뒤셴, 뒤셴느, 로싸, 로즈,
필리핀 프랑스 그레노블에서 부유한 어느 상인의 딸로 태어난 로즈는 그 도시 근교에 있던 쌩뜨 마리 당 오(Ste-Marie-d’en-Haunt)의 방문수녀회에서 교육을 받았고, 강력하게 결혼하기를 요구하던 양친을 뿌리치고 17세 때에 방문회에 입회하였다.
그리고 1791년의 프랑스 공포 정치 동안에는 그 수녀회가 프랑스에서 추방되었으나, 자신은 몰래 집으로 돌아와서 병자들을 방문하거나 교육하는데 헌신하였으며, 혁명의 희생물로서 감옥에 갇힌 성직자들을 찾아다니며 찾아다니며 위로하는 일을 하였다.
1801년, 교황 비오 7세와 나폴레옹이 국가와 교회간의 평화스런 관계 회복을 목적으로 하는 협정 체결 후, 그녀는 자신이 교육을 담당해오던 곳에 수도원을 재건하려고 크게 노력하였으나, 성공하지는 못하였다.
그녀는 마더 마들렌느 소피 바라는 설득하여, 마더 마들렌느가 성심회를 세우는데 기여하였고, 자신과 다른 네 명이 청원자가 되어 그 다음 해에 서원하였다.
1818년, 그녀는 4명의 수녀와 함께 미국으로 파견된 분원의 원장이었고, 세인트 루이스 근교인 세인트 찰스에 미국의 첫번째 성심수도원을 세웠다.
그들은 미시시피 서안에 무료학교를 처음으로 운영하다가, 다음 해에 세인트 루이스의 플로리샌트로 옮겼다.
많은 난관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공동체는 크게 꽃피울 수 있었고, 1828년경에는 미시시피 강변을 따라 6개의 분원을 갖게 되었다.
그녀는 1840년에 미국 지부장직을 사임하고는, 켄사스의 슈가 크릭크에서 인디언들을 위한 학교를 시작했는데, 이때 그녀의 나이는 71세였다.
그러나 불과 1년 후에 건강이 나빠서 떠나고 말았지만 그녀의 정렬적인 활동은 큰 발자취를 남기게 하였다.
그녀는 세인트 찰스로 은퇴하여 지내다가, 1852년 10월 18일에 귀천하였다. 그녀는 1940년에 시복되었다. 1988년 7월3일 요한 바오로2세께서 시성하였다.
성 바룰라 (Barula)
활동년도 : +304년
신분 : 소년, 순교자
지역 : 안티오키아(Antiochia)
같은 이름 :
성 에우세비우스(Eusebius)의 증언에 의하면 성 로마누스(Romanus)는 시리아의 카이사레아(Caesarea)와 안티오키아 교회의 부제였다. 그는 팔레스티나(Palestina) 출신으로 기혼자였으며,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 그는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투옥되는 것을 보고 용감하게 일어나서 박해자의 말로에 대하여 엄중히 경고했다고 한다. 이리하여 그는 체포되었고 산채로 구워 죽이라는 형을 받았다. 그는 최후 진술을 통하여 참되고 유일한 하느님께 대한 깊은 사랑을 호소하여 듣는 이를 감동케 하였다. 프루덴티우스(Prudentius)의 시에 따르면 그는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성 로마누스는 7살의 성 바룰라라는 소년과 함께 순교하였는데, 성 바룰라에 대해 어떤 확실한 것도 알려진 것이 없다. 학자들은 그를 시리아의 순교자인 성 바를라암(Barlaam, 11월 19일)과 동일인물로 보기도 한다.
성 오도 (Odo)
활동년도 : 879-942년
신분 : 수도원장
지역 : 클뤼니(Cluny)
같은 이름 :
프랑스의 르망(Le Mans) 출신인 성 오도는 앙주(Anjou)의 백작 풀크 2세(Fulk II)와 아키텐(Aquitaine)의 공작 빌리암(William) 집안에서 성장하였다. 그는 19세 때에 삭발례를 받고 투르(Tours)의 성 마르티누스(Martinus) 성당에서 활약하다가, 오세르(Auxerre)에서 레미기우스(Lemigius)의 지도하에 인문학을 공부하던 중 특히 음악에 심취하였다.
그는 브장송(Besanion) 교구의 바움(Baume) 수도원에서 수도자가 된 후 그곳의 수도원 학교 교장을 맡았다가 클뤼니 수도원의 제2대 원장이 되었다. 또 그는 교황 레오 7세(Leo VII)의 요청을 받고 로마(Roma)의 알베리쿠스(Albericus) 공과 이탈리아의 후고(Hugo) 왕 사이의 불화를 조정하였다. 그는 클뤼니 수도원의 영향을 전 유럽으로 파급시키는데 큰 공을 세웠다. 또한 그는 찬미가를 비롯하여 윤리와 구원에 관한 글을 남겼고, 오릴락(Aurillac)의 성 게랄두스(Geraldus, 10월 13일) 전기를 기술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