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장에는 지혜를 찬양하는 시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먼저, 세상의 온갖 금은보화보다 더 귀한 것이 지혜라고, 지혜를 찬양하는 싯구가 한동안 이어집니다. 그리고 나서, 지혜는 아무도 가질 수 없고 찾을 수도 없다고 합니다. 결론적으로, 지혜는 오직 하나님께만 있고, 하나님에게서 나오는 것이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곧 지혜라는 것입니다. 27~28절을 보겠습니다.
27 바로 그 때에 그분께서, 지혜를 보시고, 지혜를 칭찬하시고, 지혜를 튼튼하게 세우시고, 지혜를 시험해 보셨다.
28 그런 다음에, 하나님은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주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요, 악을 멀리하는 것이 슬기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는 잠언의 말씀과 맥을 같이 하는 본문입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누가 이 말을 하는지는 나와 있지 않습니다. 욥이나 친구들이 아니라, 욥기의 저자가 지금까지의 논쟁에 대해 정리하는 기록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욥과 세 친구가 서로의 지혜를 겨루고 있지만 지혜는 깊이 감추어있고 오직 하나님께 속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보기에 따라 28장의 이 본문이 욥과 세 친구의 논쟁이 끝난 후에 갑자기 등장하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마치 내가 옳으니 네가 옳으니 떠들 필요가 없다고 논쟁 자체를 조롱하는 듯한 느낌이 들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29~31장에는 욥이 세 친구와의 논쟁을 끝내고 나서 다시 한 번 자신의 결백을 호소하고 정리하는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29장은 욥이 풍요롭고 행복하게 살았을 때의 일을 회상하는 내용입니다. 2~5절을 보겠습니다.
2 지나간 세월로 되돌아갈 수만 있으면, 하나님이 보호해 주시던 그 지나간 날로 되돌아갈 수 있으면 좋으련만!
3 그 때에는 하나님이 그 등불로 내 머리 위를 비추어 주셨고, 빛으로 인도해 주시는 대로, 내가 어둠 속을 활보하지 않았던가?
4 내가 그처럼 잘 살던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가서 살 수 있으면 좋으련만! 내 집에서 하나님과 친밀하게 사귀던 그 시절로 되돌아갈 수 있으면 좋으련만!
5 그 때에는 전능하신 분께서 나와 함께 계시고, 내 자녀들도 나와 함께 있었건만.
이어서 11~16절을 보겠습니다.
11 내 소문을 들은 사람들은 내가 한 일을 칭찬하고, 나를 직접 본 사람들은 내가 한 일을 기꺼이 자랑하고 다녔다.
12 내게 도움을 청한 가난한 사람들을 내가 어떻게 구해 주었는지, 의지할 데가 없는 고아를 내가 어떻게 잘 보살펴 주었는지를 자랑하고 다녔다.
13 비참하게 죽어가는 사람들도, 내가 베푼 자선을 기억하고 나를 축복해 주었다. 과부들의 마음도 즐겁게 해주었다.
14 나는 늘 정의를 실천하고, 매사를 공평하게 처리하였다.
15 나는 앞을 못 보는 이에게는 눈이 되어 주고, 발을 저는 이에게는 발이 되어 주었다.
16 궁핍한 사람들에게는 아버지가 되어 주고,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의 하소연도 살펴보고서 처리해 주었다.
욥은 과거에 자신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았던 풍요와 행복을 그리워하면서, 그것을 오로지 자신의 영화를 위해 사용하지 않았음을 밝힙니다. 앞 못 보는 사람에게는 눈이 되어 주었고, 발을 저는 사람에게 발이 되어 주었다고 말합니다. 궁핍한 사람들에게 아버지가 되어 주고,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의 하소연도 살펴보고 처리해 주었다고 말합니다. 마치 엘리바스가 욥에게 해준 세 번째 충고에서, 악을 행하지 않는 것 뿐 아니라 선을 행하지 않는 것도 죄라는 주장에 반박하는 듯합니다.
30장은 행복했던 과거가 사라지고 고난 받는 현실에 대한 괴로움을 토로하면서 하나님께 부르짖고 따지는 장면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18~23절을 보겠습니다.
18 하나님이 그 거센 힘으로 내 옷을 거세게 잡아당기셔서, 나를 옷깃처럼 휘어감으신다.
19 하나님이 나를 진흙 속에 던지시니, 내가 진흙이나 쓰레기보다 나을 것이 없다.
20 주님, 내가 주님께 부르짖어도, 주님께서는 내게 응답하지 않으십니다. 내가 주님께 기도해도, 주님께서는 들은 체도 않으십니다.
21 주님께서는 내게 너무 잔인하십니다. 힘이 세신 주님께서, 힘이 없는 나를 핍박하십니다.
22 나를 들어올려서 바람에 날리게 하시며, 태풍에 휩쓸려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하십니다.
23 나는 잘 알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나를 죽음으로 몰아넣고 계십니다. 끝내 나를 살아 있는 모든 사람들이 다 함께 만나는 그 죽음의 집으로 돌아가게 하십니다.
31장에는, 욥이 자신의 지나온 삶에 대해 한 점 부끄러움이 없었노라고 마치 법정에서 증언하듯이 주장하는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그 내용의 일부를 몇 군데 찾아보겠습니다. 먼저 4~6절을 보겠습니다.
4 하나님은 내가 하는 일을 낱낱이 알고 계신다. 내 모든 발걸음을 하나하나 세고 계신다.
5 나는 맹세할 수 있다. 여태까지 나는 악한 일을 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을 속이려고도 하지 않았다.
6 하나님이 내 정직함을 공평한 저울로 달아 보신다면, 내게 흠이 없음을 아실 것이다.
이어서 16~22절을 보겠습니다.
16 가난한 사람들이 도와 달라고 할 때에, 나는 거절한 일이 없다. 앞길이 막막한 과부를 못 본 체 한 일도 없다.
17 나는 배부르게 먹으면서 고아를 굶긴 일도 없다.
18 일찍부터 나는 고아를 내 아이처럼 길렀으며, 철이 나서는 줄곧 과부들을 돌보았다.
19 너무나도 가난하여 옷도 걸치지 못하고 죽어 가는 사람이나, 덮고 잘 것이 없는 가난한 사람을 볼 때마다,
20 내가 기른 양 털을 깎아서, 그것으로 옷을 만들어 그들에게 입혔다. 시린 허리를 따뜻하게 해주었더니, 그들이 나를 진심으로 축복하곤 하였다.
21 내가 재판에서 이길 것이라고 생각하고, 고아를 속이기라도 하였더라면,
22 내 팔이 부러져도 할 말이 없다. 내 팔이 어깻죽지에서 빠져 나와도 할 말이 없다.
욥의 고백이 진실이라면 어떤 검사나 판사라도 그를 유죄로 기소하거나 판결을 내리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고난은 죄의 결과로 오는 것이다, 라는 전통적인 신앙고백은 틀렸다고 결론을 내려야 할까요? 그런데 문제가 그렇게 간단치가 않습니다. 욥과 세 친구와의 대화는 무승부로 끝이 났지만, 토론은 엘리후라는 새로운 인물의 등장과 하나님의 참여로 다시 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