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념관 입구 정면에 있는 신돌석장군의 흉상
신돌석 의병장의 약력, 설화, 태백산 전투 등의 내용과 일제 침략의 만행과 그에 항쟁하던 의병 활동의 기록,
일본군의 무기와 형장구, 당시 의병들이 사용하던 장도 화승총, 창검류 둥 유물
'순국의사 신돌석장군 기념비'는 경상북도 독립유공자선열유족회 의병대장
신돌석장군기념사업회에서 1965년 7월에 영덕군 영덕읍 우곡리에 건립한 것을이곳
유적지 성역회 지역으로 199년 11월에 이건하였다.
'의병대장신공유허비'는 장군의 제 신태범이 각처에서 모금하여 1948년 영덕군 축산면
도곡리에 건립한 것을 이곳 유적지 성역화 지역으로 1999년 11월에 이건하였다
영릉의병장 장산 신돌석장군의 영정을 봉안한 사당인 충의사
영릉의병장 장산 신돌석장군 영정
장산 신돌석 장군이 평해 월송정에 올라 기울어가는 나라의 현실을 한탄하며 우국충정의 마음을 읊은 시비
누각에 오른 나그네 갈 길을 잊은 채 / 단군의 옛 터가 쇠퇴함을 한탄하네 /
남아 스물 일곱에 이룬것이 무었인가 / 가을 바람 불어오니 감개만 솟는구나
'영덕군 충,효,열공원 정려비' 지역의 충,효,열 관련 비각과 신돌석장군 유적지와 연계하여
충,효의 고장이라는 상징성 구현 및 충효정신을 계승하는 장소로 활용하기 위하여 조성한
공원으로 밀양박씨·무안박씨 효자각, 김녕김씨 삼행문, 안동장씨 충효각,
평산신씨 정충각, 진주강씨 정려각이 자리하고 있다
신돌석장군 유적지는 어린 나이에 항일구국운동을 하다가 목숨을 잃은 대한제국 최초의 평민 의병장인 신돌석
장군(1878~1908)을 추모하기 위한 공간이다. 신돌석 장군은 을사늑약 다음 해인 1906년에 의병을 일으켜 영
해, 영덕, 평해에서부터 삼척, 양양, 강릉, 원주, 안동, 영양 등 경상북도 북동부와 강원도 일대까지 신출귀몰하며
왜군에게 저항했던 의병장이다. 29세의 어린 나이에 3000여 명의 의병을 거느리고 경상남북도, 강원도, 충청도에
걸친 넓은 지역에서 항쟁한 의병장이기도 했으며, 일월산, 백암산, 대둔산 등지에 요새를 두고 소수정예로 적을
섬멸하는 게릴라전에도 능했다는 기록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