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함문길 가본 영화 명량
8월 함문길 참가자 12명중 10분 회원분들과 함께 수성구 CGV 영화관
로비에서 운영진이 준비한 김밥으로 간단한 저녁 식사를 하고
영화작품이 전쟁 영화로서 스펙터클하며 스토리도 스토리지만 영화
자체로서도 무척이나 재미잇어 128분 상영시간이 언제 지나간지도 모른체
빠져 들었지요
명량은 작품성이 높고 오늘날 한국 사회에 던져주는 시사성 메세지가 있는
영화이기에 함문길 회원분들을 포함하여 흥사단 단우 동지 모든분과 함께
하고저 카페 윤회공책 칼럼에 며찰전에 영화감상 후기를 1차 올렸습니다.
울돌목 해전
초등학교 시절에 울돌목 해전으로 알고 있었는데 .....
순수한 우리말 '울돌목' 과 '명량' 에 대하여 정리 해 봅니다.
명량(鳴梁 ) 은 한자(漢字)로 울 명(鳴) 자(字) 나무다리 량(梁)자(字) 입니다.
울돌목은 소리를 내어 우는 바다 길목 이라는 뜻의 순 우리말로
물길이 암초에 부딪혀 튕겨 나오는 소리가 매우 커 바다가 우는 것 같다고
하여 울돌목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 남서해안과 내륙의 하천에 '량'자가 들어가는 이름이 몇 있습니다.
노량(露梁,남해대교), 명량(鳴梁,진도대교), 견내량(見乃梁,거제대교),
마량(馬梁 충남 서천), 칠천량(七川梁, 거제 칠천도), 사량도(통영 蛇梁島) 등등
명량은 김한민 감독 작품으로 최민식(이순신), 류승룡(구루지마), 조진웅
(와키자카) 주연으로 2014.07.30 처음 개봉 하여 개봉 12일만에 누적 관객이
2014년 8월10일 현재 1,000 만이 넘었다고 합니다.
《명량》은 2014년 7월 30일에 개봉된 대한민국의 영화이다.
정유재란 중 명량 해전을 소재로 하고 있다. 처음에는 《명량-회오리바다》
라는 제목으로 홍보가 이루어졌으나, 개봉 단계에서 제목이 수정되어 현재의
제목으로 개봉하였다. 개봉 12일만에 1천만 관객을 돌파하여, 한국 영화 사상
최단기간에 1천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가 되었다.
정유년 1597년 음력 9월에 치루어진 명량대첨
임진년 1592년 일본의 침공으로 발발된 임진란은 1593년 일차 휴전후 3년이
지난뒤 일본은 1597년 정유년이 다시 침공하여 1598년에 임진왜란 7년은 통일
일본의 군주 토미 히데요시 [豊臣秀吉(풍신수길), 1536 ~ 1598.8.18] 의 죽음으로
마감 지어진다.
정유년 1597년 오랜 전쟁으로 인해 혼란이 극에 달한 조선.
무서운 속도로 한양으로 북상하는 왜군에 의해 국가존망의 위기에 처하자
누명을 쓰고 파면 당했던 이순신 장군(최민식)이 삼도수군통제사로 재임명된다.
하지만 그에게 남은 건 전의를 상실한 병사와 두려움에 가득 찬 백성,
그리고 12척의 배 뿐. 마지막 희망이었던 거북선마저 불타고
잔혹한 성격과 뛰어난 지략을 지닌 용병 구루지마(류승룡)가 왜군 수장으로
나서자 조선은 더욱 술렁인다.
일본 수군 330척에 달하는 왜군의 배가 속속 집결하고 압도적인 수의 열세에
모두가 패배를 직감하는 순간, 이순신 장군은 단 12척의 배를 이끌고 명량
바다를 향해 나서는데…!
'12척의 조선 vs 330척의 왜군
역사를 바꾼 위대한 전쟁이 시작된다!
스토리 보다 스펙터클(spectacle)한 재미있는 영화
12척의 조선수군이 330척의일본 수군에 승리한 울돌목 명량 해전은
다윗과 골리앗의 절대적인 열세속에 조선 수군이 승전한 세계 해전사에
기록될만한 조선 수군의 총 사령관인 성웅 이순신 !
이순신이 명량해전에 나아가기 하루 전에 쓴 휘호((揮毫)
필사즉생 필생즉사 必死卽生 必生卽死
이순신의 '명량대첩' 임전훈(臨戰訓) 으로 패배에 젖은 조선의 수군에게
용기를 그러나 패전의 일본수군에게는 조선의 수군 대장 이순신에게
두려움과 존경심을 안겨준 역사에 빛날 해전 이였다.
" 무릇 장수(將帥) 된 자의 의리(義理)는 충(忠)을 쫓아야 하고
충(忠)은 백성(百姓) 을 향해야 한다"
대사는 이순신의난중일기에서는 볼수 없는 내용이고 아마도 작가가 현대적
해석으로 담아낸 것으로 여겨진다. 대한국민 지도층 인사들에게 경종을 울려
주는 멋진 대사로 여겨집니다.
그리고 이순신은 영화에서
"백성이 있어야 나라가 있고 나라가 있어야
임금이 있는 법이지"
라고 덧 붙였다.
이는 조선의 설계자 정도전이 좋아 했던 맹자에 나오는 구절과 비슷하다
이순신은 마지막으로 퇴각하는 왜군을 총 공격하게 되는 전투가 바로
정유년 1597년 다음해인 무술년 1598년 노량해전입니다. 기나긴 임진
왜란의 마지막 전투이자 이순신 장군이 가슴에 총을 맞고 숨진 전투
입니다.
" 나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마라"
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고
1545년생 이순신은 53세로 노량해전 에서 전사 생을 마감 하였고 7년의
임진란도 종결 되었다.
우리는 이순신을
' 불멸(不滅)의 이순신 ! '
이라 부르고 있으며,
노량해전에서 전사한지 400여년이 지났건만
당신은 아직도 우리곁에 살아 있습니다.
이순신가 서애 류성룡과의 만남
이순신은 태어난 서울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 시절에 이순신은 자신의
일생에 중요한 영향을 끼칠 뛰어난 인물을 만났다. 그는 나중에 영의정이
되는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 1542~1607)이었다. 서로 세 살 차이인 두
사람은 그 뒤 임진왜란이라는 거대한 국난에서 조선을 구원하는데 각각 문무
에서 결정적인 공로를 세웠다. 류성룡의 많은 업적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순신을 적극 천거하고 옹호한 행동이었는지도 모른다. 영의정의 류성룡의
혜안이 국난의 조선을 멸망에서 건졌다.
전남 진도군이 최근 진도대교 한편에 완공한 명량대첩 해전재현 승전무대.
영화 ‘명량’에서 본 울돌목의 회오리물결도 볼 수 있다.
울돌목 명량은 어디인가 ?
영화 ‘명량’의 역사적인 배경이 된 진도 울돌목 풍경.
이순신 장군 동상과 판옥선 등 임진왜란 당시의 흔적을 더듬어볼 수 있는
시설들이 즐비하다.
울돌목 명량은 현재 지도상으로 어디쯤 위치 하는지가 궁금 하여 인터넷으로
검색 해본 즉 진도대교 아래 울돌목이 있으며
이동진 진도군수는 “진도대교 옆 울돌목 바닷물의 거세고 빠른 유속을 보면서
당시 전투의 긴박감과 비장함을 체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며
진도대교 바로 옆에 승전무대를 설치 해두었다고 합니다.
2300㎡ 규모로 관람석 2100석이 마련됐고, 해안산책로 2㎞ 등이 조성되어 있으며
명량대첩축제 행사 때 해전재현 관람석으로도 활용이 가능하다.
승전무대는 ‘명량’ 영화 흥행과 함께 이순신 장군의 명량대첩 승전을 기념하기
위해 건립된 7층 규모의 진도타워 전망대, 녹진항 판옥선 등을 돌아보는 관광객들의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진도군은 명량해전 유적지를 찾는 관광객 안내를 위해 울돌목 들머리에 ‘홍보 공간’을
운영하고 문화관광해설사를 배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