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중국개방과 함께 본격 이주 물결
돈 벌기위한 단신 밀입국 경우가 대부분
이민연륜 쌓이면서 구심점 태동 움직임
어떤 사람들은 그들을 조선족이라 부르고 어떤 이들은 중국동포라 부른다. 두 개의 이름 사이에 그들의 설움이 있다. 물론 여전히 당당히 조선족이라 말하는 이들이 있다. 하지만 부르는 사람이나 불리는 사람이나 굳이 중국동포라는 좀 더 정치적인 명칭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까닭은 조선족이란 단어에 스며있는 뉘앙스 때문이다. 가난하다…촌스럽다…등등의 부정적인 이미지 때문이다. 그래서 “동포 취급도 안해주면서 왜 동포라고 부르느냐”며 항변하는 이들도 있다.
알고 보면 그들은 몇 십 년 전의 우리의 모습이다. 그들도 우리처럼 ‘잘 살아 보려고’ 이 땅에 왔고, 그들도 우리처럼 꿈이 있어 험한 일을 하고, 그들도 우리처럼 피치 못해 불법체류를 한다.
어느새 한인 사회의 구성원이 된 중국동포. 흑인과 라틴계와는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고 애쓰면서도 언어가 같은 중국동포와의 관계는 크게 관심두지 않는다. 한인들의 무시가 서럽다는 중국동포들. 그들은 우리 안의 소수계다.
중국동포에 관한 구체적인 통계는 없다. 추산할 뿐이다. 이들이 미국에 오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중반이었고 모두 유학생이었다. 이들의 수는 극소수여서 1990년 이전가지 전국에 30~40명 정도 있었던 추산된다.
이 때는 수가 너무 적었고 학교에 있었기 때문에 설사 한인사회와 교류가 있다 해도 갈등이 거의 없었고 갈등이 있다 해도 표면화되지 않았다.
어찌 보면 중국동포 이민에서 초창기 유학생들은 가장 행복한(?) 사람들이었다. 국비 장학생인 덕분에 경제적인 부담이 적었고 학교에서 미국생활을 시작했으니 적응이 빨랐고 가족과 함께 왔으니 안정된 생활이 가능했다.
학생이 아닌 일반인들의 이민은 1990년 중국의 개혁개방과 함께 시작됐다. 미국에 사는 한국 친척의 초청을 받거나 미국의 친척을 방문했다 눌러앉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이것도 1994년 이전에는 그리 많지 않았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중국동포들은 이런 저런 이유로 이름이 나가는 것을 꺼렸는데 H씨는 “94년 이전에는 남가주에서 모이는 이들이 50~60명이 전부였는데 텍사스에서도 왔다”고 했다.
본격적으로 이민이 시작된 것은 94~99년이었다. 이전의 이민이 유학생과 가족 단위의 초청이민이었다면 이 때부터는 단신 이민자가 많았다. 미국에 오면 길에서 돈을 줍는 줄 알고 오기 시작했다. 수가 늘면서 브로커가 개입하기 시작했다. 3국을 경유한 불법 입국자도 많아졌다.
익명을 요구한 중국동포 K씨는 이들의 목표액이 10만 달러 정도라고 말했다. “보통 브로커에게 2~3만 달러를 주는데 이 돈을 갚는데 대체로 3년 정도 걸리고 10만 달러를 모으는데 7~8년 정도 걸리는 것 같은데 실제로 이 돈을 모아 중국으로 돌아가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은 듯하다.” H씨는 빚을 다 갚을 시기가 되면 초기의 헝그리 정신이 약해지는 게 아니겠냐고 봤다. “처음엔 한 아파트에 여럿이 살다가 나중에는 아파트도 따로 얻고 차도 사고 싶어지면서 페이먼트에 허덕이게 되는 경우가 있다.”
중국동포를 괴롭히는 것은 크게 적응문제, 불안한 신분, 한인에게 받는 설움, 외로움이다. 언어와 환경, 사고방식, 문화, 체제가 전혀 다른 곳에서 적응하려니 한인들보다 더 어려울 수 밖에 없다. K씨에 따르면 불법체류자의 경우 하루 종일 긴장 속에서 산다. “함께 차를 타고 갈 때 보면 경찰만 봐도 움추러 듭니다. 교통경찰은 불법체류자 잡는 사람이 아니라고 해도 소용없습니다.”
이들은 한인 업주들이 불안한 신분을 이용해 부당한 대우를 한다고 생각한다. 무시하고 깔보는 정도를 넘어서서 불법체류자로 신고하겠다고 협박하거나 네가 신고할 수 있겠느냐는 듯 구타를 하기도 한다. 가족과 떨어진 외로움까지 겹쳐 서러울 수 밖에 없다.
하지만 한인-중국동포의 관계가 모두 그런 것은 아니다. K씨는 “한인 중에는 중국동포의 능력과 성실함을 인정해 아예 가게 열쇠까지 주고 모두 맡기는 사람도 있다. 중국동포는 그게 고마워 더 열심히 일하고.”
H씨는 한인들이 특별히 중국동포만 무시하는 게 아니라고 본다. “중국동포를 무시하는 사람은 라틴계도 무시합니다. 자기보다 못해 보이는 사람을 무시하는 사람은 라틴계나 중국동포 가리지 않고 모두 깔보는 거죠. 안 그런 사람은 라틴계든, 중국동포든 누구에게나 함부로 하지 않습니다.” 그 사람이 원래 그런 건지 중국동포에게만 그런 건 아니라는 거다. “하지만 없는 사람이 자존심 밖에 더 있습니까. 나한테만 그런다는 생각이 드는거죠.” 그래도 이제는 새로 오는 사람에게 경험자가 미리 얘기해 주니까 10년 전보다는 상처가 덜한 편이다. 첫인상도 중요해서 중국동포가 한 번 마음에 든 사람은 계속 중국동포만 찾고 첫 인상이 안좋았던 사람은 다시는 안쓰는 경향이 있다.
그는 앞으로 관계가 좋아질 것으로 봤다. “전혀 다른 사회에서 살던 사람들이 만났는데 안그러겠습니까. 만나서 부딪치다 보면 서로를 이해하지 않겠습니까? 사실 한인에게 한편으론 설움도 불이익도 많이 당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도움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러니까 한인타운에 모여 사는 것 아닙니까.”
그는 중국동포들에게는 “5~6년 고생한 뒤에는 사업을 배우라”고 권했다. “한인들도 중국에 가서 사업을 하는데 중국어를 잘 하는 이점을 살려서 다운타운에 들어가 중국과 연계한 일을 할 수 있게 배우라”는 것이다. “한인들은 40년 만에 타운을 이렇게 키웠는데 중국동포들도 열심히 해야죠.”
최근엔 중국동포의 이민이 잠잠한 상태다. 9·11 테러 이후 이민에 대해 엄격해 졌고 중국의 경제개발도 이민의 속도를 늦추게 했다. 하지만 미국 쪽의 빗장이 열리면 중국동포는 계속 올 것이다. “그래도 서민들이 살기에는 미국이 좋다. 자녀 공부시키는 것도 그렇고.”
그는 중국동포들을 “열심히 일하려고 온 사람들”이라고 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예전에 한인들이 미국에 온 이유와 꼭 같다. 잘 살기 위해서다. 한 중국동포의 말처럼 “한인들이 독립운동하려고 미국에 온 게 아니듯 우리도 돈벌고 잘살려고 왔다.” 우리가 조금 일찍 왔다고 조금 일찍 성공했다고 내려봐서는 안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