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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양산 백학장원 원문보기 글쓴이: hwd
잡초는 없다
윤구병
-구구단 외우는 대신 들판으로 나가자
농사일이 힘들다는 건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이다. 토요일도 일요일도 없다. 물론 방학도 없다. 겨울철은 농한기여서 한가하리라고 여길 사람이 있을지 모르나 지난겨울에 시골에서 지내면서 거의 하루도 쉴 틈이 없었다. 땔나무도 해야 하고 보리밭 고랑을 덮을 낙엽도 긁어모아야 하고 이런저런 올해 농사 준비로 그야말로 눈코 뜰 새가 없었다. 시골 생활을 모르는 도시내기 가운데 이런 말은 하는 사람이 있다.
“토요일과 일요일은 좀 쉬지 그래요. 그리고 방학 때는 이곳저곳 돌아다니기도 하고 손님도 맞고 그러면 조금 덜 고될 텐데요.”
“글쎄요, 풀도 주말에는 자라지 않는다면 쉴 수 있겠지요. 그리고 해도 날을 정해서 비추고 비도 우리가 바라는 때 내려주면 그럴 수 있을지도 몰라요”
지난봄에 콩을 심으려는데 언제 심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동네 할머니께 물었다.
“할머니, 콩은 언제 심어요?”
물으면서 마음속으로 틀림없이 몇 월 며칠에 심는다는 대답을 해주실 줄로 믿고 달력을 쳐다 보았다. 그러나 할머니 대답이 뜻밖이었다.
“으응, 올콩은 감꽃 필 때 심고, 메주콩은 감꽃이 질 때 심는거여.”
이 말을 듣고 나는 정신이 번쩍 났다. 그래, 책을 보고 날짜를 따져서 씨앗을 뿌리겠다는 내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은가! 지역마다 토양이 다르고 기후도 온도도 다르고 내리는 비도 바람길도 다른데, 그래서 지역에 따라 씨 뿌리는 철도 거두어들이는 철도 다를 수밖에 없는데, 마치 몇 월 며칠이라고 못을 박아야 정답인 것 같고, 다른 풀이나 나무가 자라는 시기를 기준으로 대답하면 틀린 것으로 여겨온 내 교과서식 지식이 얼마나 잘못되었는가.
내가 보기에 농사꾼만한 기술자가 따로 없다. 우리 마을에 사는 예순이 넘은 어른들이 몸에 지니고 있는 기술을 예로 들자.
새끼 꼬기, 짚신 삼기, 가마니 짜기, 멍석 엮기, 지붕에 이엉 얹기, 토담 쌓기, 무명, 모시, 명주 같은 온갖 실 잣기. 베 짜기, 옷감에 물들이기. 약식, 약과, 강정, 산자 같은 온갖 한과 만들기, 식혜, 수정과, 술 담그기. 망치질, 톱질, 끌질로 짐승 우리와 사람 사는 집짓기. 갖가지 김치에, 젓갈에, 장 담기. 벌이나 누에를 치고, 닭, 오리, 개, 소, 돼지 기르기. 쟁기질, 가래질, 써레질에 관리기, 경운기, 트랙터, 콤바인 몰기..... 이렇게 늘어놓다 보면 한이 없다.
놀라운 것은 그 많은 기술 가운데 사는 데 불필요한, 쓸모없는 기술은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그 모두가 살아가는 데 꼭 필요했던 기술들이다. 그리고 그 가운데 많은 기술들은 요즈음에도, 또 앞으로도 쓸모 있는 기술들이다. 그 중에는 영원히 낡지 않는 기술도 있다.
곧 고추 모종을 해야 한다. 씨앗은 근처에서 유기농을 하는 분에게 구했다. 고추 모종을 빨리 한 분들은 벌써 비닐하우스 안에서 키운 모종을 다시 모판에 옮겨 심었다. 남보다 먼저 키워 빨리 시장에 내놓아야 제 값을 받을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경쟁 사회가 되다보니 시골에서 농사짓는 분들도 이렇게 철을 앞당기려고 기를 쓴다. 무리를 하다 보니 모판에 전선을 깔아 지열을 높이고, 비닐을 이중으로 깔아 길러내야 한다. 봄볕이 땅을 녹여주기를 기다릴 틈이 없는 것이다.
비닐하우스에서 자라는 고추 모종을 보면서 딱한 생각이 들었다. 저렇게 키운 고추는 스스로 자기를 지키는 힘이 없어서 평생 동안 농부의 보살핌 속에서 비닐하우스 신세를 면하지 못하겠구나 하는 생각 말이다. 고추 농사는 한 해 농사니까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경우는 다르다. 아이를 부모가 평생 동안 돌볼 길이 없으니까. 그런데도 마치 아이가 늙어 죽는 날까지 돌볼 수 있다는 듯이 아이를 지나치게 감싸고 돌아 결국에는 그 아이가 혼자서 살아갈 힘마저도 빼앗은 듯이 보이는 부모님이 주변에 적지 않게 눈에 띈다.
자녀의 양육과 교육에는 다 같이 ‘기른다 育’는 뜻이 담겨 있다. 기르는 일은 만드는 일과는 다르다. 인격, 사람다운 모습은 길러지는 것, 양성되는 것이지, 빚어지는 것, 형성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도시 생활을 오래 하다보면 도시 안에서는 모든 것이 만들어지니까 자녀들도 길러지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고 생각하기 쉽다.
농업은 ‘기르기’가 중심이 되는 삶의 길이다. 먹이와 옷, 집의 원료가 되는 풀과 나무, 그리고 짐승들을 길들이고 기르는 일은 사람의 힘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다. 이 ‘기름’에는 햇볕과 공기, 흙과 물, 그리고 공기나 땅속에 있는 무기물과 유기물이 전체로서 참여한다. 사람을 기르는 교육과 양육에도 마찬가지 원리가 작용했다. 원시 공동체 사회와 농경 사회에서 사람은 아들은 크게 보아 자연의 아들이었다.
그러나 시장경제의 원리에 따라 산업 사회가 농경 사회를 대신하면서 기르는 일은 뒤로 물러서고 만드는 일이 앞장섰다. 그에 다라 사람도 ‘기르는 사람’ ‘길러진 사람’에서 ‘만드는 사람’으로 바뀌어 왔다. 이 실험은 인류 역사에서 지난 200년에 걸쳐 이루어진 역사의 전환을 반영한 것이자 새로운 역사 창조의 원동력으로 작용했는데 이 실험의 중심기관이 ‘학교’였다. 그런데 그 결과는 어떤가? 자연을 떠나서, 햇볕과 공기와 물과 흙 같은 ‘ 사람 밖에 있는’ 온갖 요소의 상호협력을 배제하고 사람의 힘만으로 행복하고 보람 있게 사는 공동체를 건설할 수 있을까?
제도교육에 힘입은 도시 사회의 건설과 확대는 이런 믿음을 뒷받침하는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산업 사회의 역사 고작 200년인데도 인간의 생명과 삶의 질을 위협하는 여러 부작용이 도처에서 나타났다. 도시 사회에서 범죄율의 증가, 특히 청소년 범죄의 증가, 마약, 알콜 중독, 차가워진 인간관계, 물과 공기의 오염, 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라는 아이들의 감각기관이 무디어지면서 그에 따라 자기표현과 창조력의 쇠퇴현상이 어디에서나 눈에 띄게 드러나기 시작했다. 지난 200년 종안 자연과 삶터에서 격리시켜 사람의 힘만으로 아이들을 기르고 가르치겠다는 자신감에서 출발한 전대미문의 교육실험은 이제 막다른 골목에 이른 것 같다.
지금 자라는 아이들은 태어나자마자 우유나 이유식에서부터 군것질거리에 이르기까지 도무지 자연의 맛이 무엇인지 모르는 채로 인공 첨가물이 가미된 음식만 먹고 자란다. 따라서 지금 곶감이나 대추에 도리질을 하는 아이들이 언젠가 전통 음식을 그리워하리라는 보장도 없다.
우리 공동체 식구 가운데 가장 어린애가 네 살 난 여자애인데 이 아이도 일 년 전까지는 도시에서 자랐다. 그런데 시골에서 산 지 일 년이 채 안 되는 이 아이의 입맛이 지금은 크게 바뀌었다. 우리는 손님들에게 가게에서 파는 과자나 음료를 사 오지 못하게 한다. 어쩌다 모르고 사 오는 경우에도 어린애들에게는 주지 않는다. 그 대신 집에서 군것질거리를 만들어 먹인다. 지금 우리 집 꼬마애는 못 먹는 것이 없다. 겨울인데도 마늘밭에서 돋아나는 이름 모를 풀들을 뽑아 식탁에 올려 놓고 “이러다 토끼나 염소가 되는 것 아니야” 하고 우스갯소리를 하면서 쌈 싸먹는 일이 잦은데 꼬마애도 이 이름 모을 풀들을 곧잘 먹는다. 감, 곶감, 대추, 호도, 보리개떡, 밀개떡, 쑥버무리..... 무엇이든지 가리지 않고 먹는다. 가끔 주책없는 손님들이 아이들을 위한답시고 가지고 오는 과자나 빵도 먹지만 일부러 찾거나 사 달라고 조르는 일은 없다. 어쩌면 아직 텔레비전 광고를 보지 않은 덕도 있고 가게 앞을 자주 지나다니거나 학교에 갈 나이가 안 되어 인공 감미료의 달콤한 맛을 보지 않은 덕도 있을지 모른다.
풋내기 농사꾼인 내 눈에는 아지 곡식이 아니거나 채소가 아닌 풀은 모두 잡초로만 보인다. 그래서 웃지 못할 실수를 저지르는 일이 자주 생긴다. 마늘을 심었는데 지난 2월부터 마늘밭에서 ‘잡초’가 움돋기 시작했다. 그래서 부랴부랴 왕겨를 깔았지. 꽤 두툼하게. 그렇게 깔아놓으면 햇볕을 받지 못하니 그놈들이 자라지 못하고 시들어버릴 줄만 알고. 그런데 웬 걸, 소용이 없었다. 그 두터운 왕겨 더미를 뚫고 마늘보다 잡초들이 더 무성하게 자라는 거다. 자세히 보니 그 ‘잡초’들은 두 종류였다. 까딱하면 마늘 농사 아닌 잡초 농사를 짓겠다 싶어 어서 뽑아내야겠다고 마음은 급한테 차일피일 미루다보니 드디어 마늘밭인지 잡초 밭인지 모를 지경이 되었다. 더 두면 큰일 날 것 같아 뽑기 시작했다. 뽑고 보니 ‘잡초’가 산더미 같았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풀들이 예사 잡초가 아니었다. 하나는 별꽃나물이고 또 하나는 광대나물이었다. 모두 맛있는 나물이자 약초였다. 그걸 모르고 심지 않은 것이라 하여 잡초로만 알아 함부로 뽑아 썩혀 버렸으니 굴러온 복을 걷어찬 셈이 되었다.
-묵은 밭을 다시 일구며
땅을 묵혀 놓으면 그 땅에서 제 철을 만나는 것들이 있는데, 그 가운데 으뜸은 다북쑥과 명아주와 바랭이와 망초들이지요. 묵히는 햇수가 늘어남에 따라 억새풀과 칡넝쿨과 가시덩굴들, 그리고 요즘은 아카시아가 차례로 이사를 옵니다.
묵은 밭을 일구는 데도 차례가 있다는 사실을 나이 쉰이 넘은 올해 들어와 처음으로 깨우쳤습니다. 그 동안 무엇을 하며 살았는지, 내 머릿속에 들어 있는 그 알량한 토막 지식들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이었는지 한숨이 절로 납니다.
묵은 밭을 일굴 때는 먼저 땅 위로 솟아오른 명아주대나 쑥대나 억새나 개망초대를 뽑아내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 따로 감고 올라갈 나무가 없으면 땅으로 뻗으면서 넝쿨이 뻗어가는 사이사이 버팀대를 마련하려고 뿌리를 내리는 칡넝쿨을 걷어내야 합니다. 뿌리 하나에서 여러 방향으로 뻗어가는 칡넝쿨을 잔뿌리 잘라가며 걷어내는 일은 크게 힘드는 일이 아니지요. 이렇게 해서 모든 칡넝쿨이 한 곳으로 모이는 곳을 따라가다 보면 칡뿌리가 있는데, 그 뿌리를 캐내고 나면 그 다음에 남는 일은 아카시아 나무를 베고 뿌리를 캐내는 일입니다. 산비탈 밭에는 가시덩굴이 칡넝쿨과 뒤엉켜 일이 까다로울 때가 있는데 이것도 차례에 따라 걷어내야 됩니다. 감나무 뿌리 캐기는 맨 마지막에 손을 댔어야 했지요.
고구마는 상처 없이 캐서(그러려면 변산처럼 돌이 버글버글한 땅에서는 아예 고구마 농사 지을 생각을 말아야 한다는 결론이 납니다. 함평 같은 부드러운 황토 땅이 알맞다는 걸 뒤늦게야 알았지요.) 얼지 않게 상온이 유지되는 지하 저장고나 방 윗목에 바람이 잘 통하도록 대발 같은 것으로 둥우리를 만들어 담아놓아야 오래 간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팽나무 할매, 고맙구만이라
도시사람들은 음식뿐만 아니라 아직 더 입을 수 있는 옷가지며 아직 더 쓸 수 있는 가구며 심지어 더 일할 수 있는 사람까지 마구 버리는 데 익숙해 있다. 이 버릇이 시골에까지 번져서 이제는 시골에도 점점 더 많은 쓰레기가 눈에 띈다.
어떻게 하면 아무것도 버리지 않는 자연을 본받아 살 수 있을까? 지난 겨우내 내변산 수몰 지구를 돌아다니면서 허물어진 집터에서 구들짝을 파냈는데 나무로 구들짝을 데워서 거기에 등 대고 자야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에서 그런 것을 아니었다. 요즈음에는 시골에도 어지간히 도시의 생활양식이 스며들어 연탄을 때는 집조차 드문 형편이다. 그러니 우리가 사는 산간 마을에도 어디를 가나 석은 나무둥치가 뒹군다. 이것을 이용하여 간장도 달이고, 엿도 고고, 소금도 굽고, 밥도 짓고, 방도 데우고 하면 좋을 듯 싶어 외양간으로 바뀐 옛날 부엌을 다시 손보아 가마솥을 앉히고, 구들돌을 다시 놓았다. 담장 밑에 따로 쓰지 않아 버려진 솥 세 개를 가져다 걸어놓은 것도 그런 생각에서였다.
가끔 바닷가에 나가보면 파도에 밀려 온갖 것들이 다 버려져 있다. 얼핏 보기에는 모두 쓰레기들이다. 그러나 쓸모 있는 것도 적지 않다. 해변을 말끔하게 치울 겸해서 찢어진 그물과 널려진 밧줄과 밀려온 나무 토막을 부지런히 주워 온다. 자전거 바퀴는 진흙을 시멘트에 개서 그 위에 발라 굴뚝 지붕으로 만들어놓으니 모두 멋있다고 한다. 찢어진 그물은 극성을 부리는 산새들이 씨앗을 파먹지 못하게 모판에 덮어놓으면 따로 비닐을 써서 모종을 길러내지 않아도 된다. 바닷물에 오래 잠겼던 나무토막들은 그늘에 말리면 훌륭한 가구 재료로 쓰인다.
우리가 지난겨울에 들일을 하면서 입었던 옷들도 거의 도시 사람들이 입다 싫증이 나서 버린 것들이었다. 음식 찌꺼기는 남을 겨를이 없다. 풋고추 꼭지까지 알뜰하게 씹어서 먹는 습관 탓도 있지만 그 밖에 한 식구로 사는 개와 오리와 닭 들이 남는 음식을 먹어주기 때문이다.
좁은 생활공간에 이것저것 하나도 버리지 않고 쓸 만하다 하여 모아 둘 양이면 도시에서는 살기 힘들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유행에 뒤졌다 하여, 조금 더 불편하다 하여, 남 보이기 부끄럽다하여, 쓸모 있는 것을 자꾸 버리고 새 것을 사들이는 버릇이 오래 가다보면 나중에는 부모 형제마저 버리게 되지나 않을까?
버리지 않는 삶은 버릴 것이 없는 삶, 검소하고 무엇이든지 아끼는 생활 태도의 반영이다. 아껴야 쌓이는 것이 있고, 쌓이는 것이 있어야 남에게 베풀 여우도 생간다고 보면 안 될까? 그리고 물건을 아끼다 보면 사람 아끼는 마음도 생긴다고 보면 안 될까?
처음 변산 우리 집을 방문하는 사람은 곳곳에 널려 있는 쓰레기를 보고 “참 지저분하게도 살고 있군.” 할지도 모른다. 우리 집에 널린 쓰레기 목록을 대충 적어보면 아래와 같다.
헌 자전거 바퀴살: 마당가에 아궁이와 부뚜막을 만들고 굴뚝도 쌓았는데, 이 바퀴살 위에 진흙을 발라 굴뚝 뚜껑으로 얹었더니 모슬렘 모스크를 닮았다고 칭찬하는 사람이 많았다.
깨진 옹기 조각: 목욕탕을 만드는 데 바닥에 타일 대신 깔 생각으로 모았다.
검은 고무 국수 가락: 마대에 담긴 채 불법으로 버려진 것을 주워왔는데 하우스대를 비롯하여 여러 가지를 동이고 매는 데 쓴다.
한옥 짓는 데서 나온 여러 가지 나무토막들: 나중에 아이들과 켜고 깎고 다듬고 하여 목공예품을 만들려고 쌓아놓았다.
불에 그을리고 바닷물에 절은 통나무: 이것은 변산 해수욕장에 오랫동안 박혀 있던 것을 세 토막으로 잘라 실어왔다. 바닷물에 오래 담가놓은 나무는 가구를 만드는데 안성맞춤이다.
찢어진 그물과 크고 작은 밧줄들: 변산 앞바다에서 떠밀려 해변에 널려 있는 것을 걷어왔다. 그물은 산비탈밭 모종밭을 산새들로부터 지키는 데, 밧줄은 이것저것 묶는 데 쓸 작정이다.
헌 사료 포대들: 같은 마을 돈사와 계사에서 버린 것인데 일부는 뜯어서 벽지와 천장에 바르고 일부는 토담집 지을 때 같은 용도로 쓰거나 효소 항아리를 덮는데 쓰려고 쌓아놓았다.
액체 아스팔트가 든 드럼통: 콜타르가 들어 있는 드럼통이 길가에 버려져 있어서 실어 왔는데 냉암소 문을 만드는 나무에 발랐더니 색깔이 좀 그렇기는 해도 나무가 썩지 않게 해주는 것 같다.
헌 신문지와 봉투들: 신문지는 벽 바르는 초배지나 아궁이 불쏘시개를 쓰고, 봉투는 씨앗을 담거나 나중에 소식지 만들어 우편으로 보낼 때 쓰려고 한다.
헌 비닐: 비 올 때 젖기 쉬운 것들을 덮어놓는 데 쓸모가 많다.
현대 문명은 쓰레기 문명이라고 불러도 좋다. 상품경제 사회가 자신을 유지하기 위해서 확대재생산하는 거의 모든 상품들이 인류의 지속적인 삶에 보탬이 되기는커녕 장애가 되고 있다는 점에서 지각 있는 사람이라면 당장이라도 삶의 울타리 밖으로 내던져버려야 한다는 뜻에서도 쓰레기 문명이고, 새 것이 아닌 것은 비록 어제 만든 것이라도 기능이 떨어지고 효율성이 낮고 유행에 뒤진 것이라는 관념을 심어주어 끊임없이 내다버리도록 부추긴다는 점에서도 쓰레기 문명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는 자연이 길러내는 것마저 사람이 사이에 들어 쓰레기로 바꾸고 있다. 서른 해 전까지만 해도 논이나 밭에 자라는 풀은 쓰레기가 아니었다. 길섶에 자라는 풀도 논둑과 밭둑을 뒤덮고 있는 풀도 베어다 두엄을 만들면 논과 밭을 살리고 기름지게 하는 거름이 되었다. 그러나 상품경제 사회가 농촌의 젊은 노동력을 쓰레기 상품 생산에 돌리려고 온갖 수단을 동원해 공장 벽 속에 가두기 시작하면서 농촌에서는 풀을 베어 짐승에게 꼴로 먹이거나 두엄을 만들 일손이 없어져버렸다. 도시에서 대부분 쓰레기 생산에 동원되는 많은 입들을 먹여 살리려고 개량된 수확품종을 심다보니 이것들을 살려내려면 제초제를 뿌려 다른 풀들을 죽여야 하고, 농약을 쳐서 병충해로부터 보호해야 한다. 그러니 논밭에 자라는 풀들은 모두 사람 몸에 해가 되는 독을 품은 쓰레기로 바뀌고, 심지어 곡식이나 남새까지도 건강의 관점에서 보면 농약 범벅인 쓰레기 식품이 되었다.
다행히 올해는 쓰레기 대접을 받아 ‘잡초’ 신세로 전락한 풀들, 그래서 고엽제와 성분이 같은 ‘그라목손’이라는 제초제의 세례를 받는 가여운 풀들을 알뜰하게 챙겨 하나도 버리지 않을 길을 찾았다. <동의보감>, <향약집성방>, <동의학 대사전>, <향약 대사전>, <약용 식물도감> 같은 책을 부지런히 찾아 기계로 경작할 수 없다 하여 오랫동안 묵정밭이 되었다가 내 몫이 된 밭에서 자라는 풀들의 이름과 약성들을 확인하는 작업을 시작하고, 그 작업이 조금씩 열매를 맺어 지금은 서른 가지가 넘는 ‘잡초’효소, ‘잡초’ 술이 항아리에서 익어가고 있다. 쑥, 명아주, 망초, 한삼덩굴, 씀바귀, 바랭이, 칡, 억새, 마디풀..... 그 어느 것 하나 버릴 것 없는 약초요, 가공 방법에 따라 우리 몸을 살리는 먹을거리임에 차츰 눈뜨기 시작한 것이다.
이 마을에 들어와 살면서 들은 말 가운데 기억에 남는 말이 있다. ‘오월 단오 때까지는 염소가 즐겨 먹는 풀은 사람이 먹어도 좋다’는 옛 어른들의 말씀인데 그 말에 따라 살갈퀴나 씀바귀 잎을 뜯어 쌈을 싸 먹고 칡순을 뜯어 데쳐서 먹기도 하고... 혀로 맛을 보아 독성이 느껴지지 않는 풀들은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먹어보았다. 먹으면서 사람의 편식 습관이 굳어져온 내력이 무엇일까를 곰곰이 생각하게 되었다. 구태여 무나 배추로만 김치를 담아 먹을 까닭이 어디 있단 말인가. 흰쌀밥만 고집하는 게 무슨 식생활의 개선이고 음식문화를 발전시키는 길이란 말인가.
지난 해 고구마 순을 걷어 그냥 두엄으로 썩히기에는 너무 아까워 효소를 담고 물을 짜낸 건더기도 아까워 소주를 부었더니 온 여름 내내 아이들도 어른도 그 효소물로 다른 음료수 대신 갈증을 식히면서 몸을 지켜낼 수 있고, 또 손님을 맞아 뒤탈이 없는 술대접을 할 수 있었다.
비가 내리고 난 뒤 쌀쌀한 바람에 몸을 움츠리며 물에 불은 콩을 주웠다. 떨면서 한나절 동안 허리 한 번 제대로 펴보지 못하면서 주운 콩이 한 됫박이나 될까. 돈으로 바꾸자면 누가 이천 원도 주지 않으리라. 그 시간에 대기업 사보 같은데서 온 청탁을 거절하지 않고 원고를 썼으면 백 배 쯤 높은 고료를 받아 챙길 수도 있었을 텐데 하는 실없는 생각도 뒤늦게 떠올랐지만 콩을 줍는 순간에는 밭에 널린 흰콩밖에 보이지 않았다.
며칠 전에 의성에 사는 김영원 장로님이 다녀갔다. 평생을 두고 돈 안 되는 주곡 농사를 고집해온 분이다. 이분이 한 이야기 가운데 기억에 남는 말이 있다. 300평 밭에 밀을 심으면 500kg 쯤 수확을 거둔다고 한다. 이것도 잘 지을 경우의 이야기다. 우리밀살리기운동본부에서 후하게 쳐주는 값이 밀 1kg에 800원, 모두 팔아야 손에 쥐는 돈이 40만 원이다. 그 돈 받고 내다 파느니 차라리 집에 제분기 들여놓고 밀가루로 빻아 수제비를 뜨거나 밀개떡을 해 먹으면 이웃과 나누어 먹더라도 주리지 않고 한 철 날 수 있으니 그렇게라도 하자는 게 김 장로님의 생각이다. 구태여 집에 제분기를 들여놓을 필요가 어디 있느냐고? 밀을 방앗간에 가지고 가면 빻은 삯이 밀 값의 30~40%나 된다. 그것도 적은 양은 빻아주지도 않는다. 한꺼번에 많이 빻아 두면 보름에서 스무 날만 되어도 밀가루에서 바구미와 벌레가 생긴다. 이놈들이 생기지 않게 하려면 방부제를 쓰는 수밖에 없는데 그렇게 되면 수입 밀가루나 다름이 없게 된다.
그래서 김 장로님은 요즈음 가정용 제분기 보급을 ‘운동’삼아 하고 있다. 우리도 김 장로님이 자기 돈 들여 개발한 가정용 제분기를 한 대 들여다 놓았는데 부품에 문제가 있다고 그걸 갈아주러 온 것이다.
농사를 지어보지 않은 사람은 밭 3천 평 가꾸기가 얼마나 힘든지 잘 모를 것이다. 농기계도, 농약도, 제초제도, 화학비료도, 항생제가 든 돼지 똥이나 닭똥으로 만든 유기질비료도 쓰지 않고 옛날 방식을 고집하며 농사를 짓는 경우에 한 집에서 밭 3천 평 가꾸려면 그야말로 뼈가 휜다. 장정이 낀 너 댓 식구가 달려들어도 힘에 벅차다. 주곡 농사를 할 경우에 토질이 비교적 좋은 곳에서는 200평 한 마지기에 50만 원, 나쁜 곳에서는 300평에 50만 원 소득이 생긴다 하니, 좋은 밭이라 쳐도 3천 평에서 생기는 소득이 다 보태서 750만 원이다. 네 사람이 매달린다 해도 한 사람에게 돌아오는 노동의 대가는 한 해에 200만 원이 안 되니 한 달에 20만 원을 훨씬 밑 돈다.
형편이 이러니 누가 주곡 농사를 거들떠보려고나 할까. 우리 동네에서 밀농사, 보리농사, 콩 농사에 매달리는 우리를 보고 ‘저 사람들 곧 손 털고 일어설 거여,’ 하면서 손가락질하는 분들이 많은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리고 생활 형편이 나은 집, 못한 집 할 것 없이 농촌에 젊은 이들이 남아 있으려 들지 않는 것도 백 번 이해할 만하다.
화해는 서로 다른 둘 이상의 살아 있는 것들 가운데 이루어진다. 갈등이나 싸움이 그러하듯이 싸우고 맞서는 당사자들이 직접 마음을 풀고 화해하는 모습은 얼마나 보기 좋은가. 그러나 그게 그렇게 생각만큼 쉽지 않은 게 세상살이다. 풀들을 빗대어 이야기 하자면 당근이나 감자와 바랭이 풀을 화해시키기는 물과 기름이 서로 섞이기를 바라는 것만큼이나 부질없는 짓이다. 마늘을 뽑고 난 뒤에 잠간 묵혀둔 빈 터에 돋아난 바랭이는 발효식품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되어 귀여워 보였다. 그러나 고추밭에서 자라는 놈들은 어찌 그리 미워 보이던지! 고추 모종이 먹고 자라야 할 퇴비를 몽땅 자기만 훔쳐 먹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어쩌자고 햇볕과 바람마저 가려 아예 고추모종이 노랗게 시들도록 만든다 말인가.
이렇게 우리가 애써 기르는 풀과 뿌리지 않았는데도 저절로 자라는 풀들 사이에 서로 목숨을 건 싸움이 벌어지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기르는 풀’이 된다. 이런 걸 일러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하던가? 땡볕에서 흐르는 땀을 훔치면서 바랭이 풀을 뽑노라면 가끔 엉뚱한 생각이 떠오른다. 고추와 바랭이가 서로 사이좋게 자라면 오죽 좋아. 이 생각이 가당찮음을 알기에 곧 다시 새로운 생각이 떠오른다. 이 두 풀들 사이에 다른 풀이 끼여 들어 둘 다 서로 해치지 않고 잘 자라게 화해를 시킬 수 있다면.
실제로 그런 풀들이 없지 않음을 안다. 볍씨가 자랄 틈서리를 남기지 않고 온 논에 빼곡이 들어차는 독새풀 사이에 들어 지나치게 자라는 것을 막는 자운영, 이른 봄부터 밭이랑에 뿌리로 잔 그물을 쳐서 남새나 곡식이 자랄 자리를 비워두는 살갈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