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3월 25일 온고을교회 주일예배 설교 - 황의찬 목사
맡음 & 믿음
롬3:1~8
<내가 사람의 말하는 대로 말하노니>
어떤 사람들이 이런 말을 합니다.
예수님을 배신한 가룟 유다, “그 사람이 사실은 공로자다!” ··· “왜 그렇습니까?”
유다가 배반해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고, 그래서 “우리가 구원 받았다!”
만약 유다가 은 삼십에 스승을 팔지 않았더라면, 십자가 사건이 없었을 것 아니냐?
‘가룟 유다는 공로자다?’ ···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분명한 것은 ‘배신’ 이것은 나쁘다! 흔들림이 없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세요. 유다가 배신하지 않았더라도,
예수님의 십자가, 예수님의 보혈, 우리의 죄 값을 능히 감당하신다.
본문 5절 중간쯤에 대괄호 안에 말씀이 있어요. [내가 사람의 말하는 대로 말하노니]
사람들은 말하기를 좋아한다. 앞뒤가 안 맞는 말도 그럴듯하게 잘도 꾸며댄다.
이걸 궤변이라고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꾸며내는 것, 내가 한번 언급해보겠다. 이 뜻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궤변이 들어 있습니다. 들을 만 하실 겁니다.
잘 들으시고, 궤변에 빠지지는 마시고, 은혜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유대인들의 이점과 공로>
하나님은 많은 민족 중에서 유대 민족을 제사장 나라로 삼으셨습니다.
‘제사장 나라’ 하나님의 말씀을 온 세상에 전파하는 사명을 가진 나라입니다.
하나님은 그들과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너희는 나의 제사장 나라가 되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리라!’
그리고 율법을 주셨습니다. 할례도 주셨습니다. 가나안 땅도 주셨습니다.
이를테면 그들을 학급에서 반장으로 뽑으신 겁니다.
반장이 되면 담임선생님의 측근이 됩니다.
선생님께 가까이에서 좋은 가르침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집니다.
유대민족에게 그런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그러면 어떤 유익이 있습니까?
(2절) “범사에 많으니 우선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음이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다.” 대단한 영광입니다.
그 말씀을, 아브라함 때부터 예수님 오실 때까지, 2천 년 이상, 잘 보존했습니다.
대단한 사명, 감당했습니다.
하나님이 독생자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 이 땅에 오시도록, 토양을 마련했습니다.
하나님은 “때가 차매” 독생자 예수, 보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섭리하시고, 경륜을 펴시기까지, 유대인들이 말씀을 잘 보존했습니다.
이 공로, 인정할 만합니다.
만약 한국을 제사장 나라로 삼아서 맡기셨다? 잘 보존했을까요?
이스라엘만큼도 못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괜히 이스라엘 시샘할 이유도 없습니다. 그렇지요?
하나님은 말씀도 맡기시고, 예수님을 유대인의 후손으로, 이스라엘 땅에 보내십니다.
대단한 영광입니다. 세상에 이런 영광 둘도 없어요. 오직 유대인에게 주어진 광영이지요.
말씀을 맡은 유익입니다. 유익이 작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하나님의 제사장 나라, 예수님의 탄생지, 모든 성도들의 선망입니다.
그곳에 여행하는 것, ‘우리의 소원’입니다. 그 여행을 성지순례라고 높여서 불러줍니다.
성지 순례를 가면, 요단 강물을 피티 병에 넣어서 비싼 값으로 판대요.
한국의 목사님들, 그 물을 사옵니다. 그 물을 어디에 쓰느냐? ··· 세례식 때 쓴대요!
우리 침례교 목사님들은 그거 안 사올 겁니다.
왜요? 침례 할 만큼 요단강 물을 사올 수가 없잖아요?
겟세마네 동산도 있지요? 예수님이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기까지 기도하셨던 바위.
거기서 예수님처럼 기도하는 포즈로 사진을 찍어옵니다.
큼지막하게 빼서 걸어놓고 보면, 얼마나 은혜가 되겠습니까?
그러한 꿈의 땅, 이스라엘!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제사장 나라!
그러나, 유익이 많으면, 책임도 큽니다. 왜 안 그렇겠습니까?
‘위험한 장사가 이문이 많다.’ 한국 사람들, 고스톱 판에서 자주 쓰는 말입니다.
많은 유익을 누린 이스라엘, 책임은 잘 감당했을까요?
<맡음 & 믿음>
오늘 설교 제목이 무엇입니까? “맡음 & 믿음”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 “맡았다!” / “믿었다”가 아닙니다. ‘맡았다’예요.
‘맡음’이나 ‘믿음’이나, 그게 그거 아니냐? 그렇습니까? ··· 아니지요, 달라요, 대단히 다릅니다.
혼동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착각한 사람들이 있어요.
누가 착각했어요? ··· 유대인들이 착각했습니다.
‘맡은 것’을 ‘믿은 것’과 혼동했어요.
바울이 이것을 지적합니다. 뭐라고 해요?
구원은 믿음으로 받는다.
말씀을 가지고 있다고 구원받는 것이 아니다.
“너희가 이 천년 동안 맡아온 말씀” 구약 성경이지요? 그 내용을 잘 보아라!
구약 성경은 오직 한 분, 오실 메시야, 그리스도에 관한 책이다.
지금 “그분이 오셨다.”
얼마 전, 십자가에 죽으시고,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시고, 부활하신 그 분이 메시야이다.
너희가 구약 성경을 제대로 알았다면, 말씀을 믿었다면,
예수님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 되심을’ 왜 모르느냐?
예수는 그리스도이시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할렐루야~
그런데, 유대인들, 말씀을 맡고, 믿음으로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오늘 그 이야깁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믿음으로 나아갑시다!”
유대인의 실수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만나야 할 하나님, 어떤 하나님이시냐?
첫째는 ‘미쁘신 하나님’ 신실하다는 말을 하나님께 적용할 때, ‘미쁘시다.’ 그럽니다.
둘째는 ‘참되신 하나님’
<Ⅰ. 미쁘신 하나님을 만납시다! >
(3절) “어떤 자들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하리요 그 믿지 아니함이 하나님의 미쁘심을 폐하겠
느냐”
말씀을 보관한 유대인들, 오신 예수님을 안 믿었어요!
그러나 유대인이 안 믿어도,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미쁘십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왜 안 믿었어요?
유대인들은 정치적인 메시야를 원했어요.
정치적인 모든 문제를 한 방에 해결 주실 분을 고대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유대인뿐만 아니라,
온 세상을 구원하실 분으로 예수님을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은 구원의 메시야입니다.
그러나 유대인들, 자가당착에 빠졌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보관하고 있는데, 하나님은 우리를 위한 메시야를 보내실 거야!’
교만에 빠졌습니다. 말씀을 맡은 것의 유익에 집착했습니다.
4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4절) “그럴 수 없느니라 사람은 다 거짓되되 오직 하나님은 참되시다 할지어다 기록된 바 주께서
주의 말씀에 의롭다 함을 얻으시고 판단 받으실 때에 이기려 하심이라 함과 같으니라”
사람은 누구나 변덕이 있습니다. 나에게 유리하면 좋아합니다. 불리하면 외면합니다.
유대인들, 예수님이 자기들 뜻에 안 맞는다고 외면했어요.
그러나 하나님은 유대인 눈치나 보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시고, 우주 만물의 주관자이십니다. 최후의 심판자이십니다.
최종 심판하실 분이 흔들리면, 이 세상 전체가 흔들흔들합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의지할 곳이 없습니다.
왜 우리에게 하나님이 유일한 소망이 되십니까?
우리가 세상에서는 사람들의 변덕으로, 여기서 치이고, 저기서 밀리고, 쓰러집니다.
그러나 한분 하나님! 신실하시고 미쁘신 하나님, 그분이 계십니다.
오늘 내가 억울해도, 지금 내가 고난을 당해도, 하나님을 바라보면 소망이 되는 줄 믿습니다.
우리는 흔들리지만, 변덕이 죽 끓듯 하지만, 흔들리지 않으시는 하나님, 참 좋으신 하나님!
세상에 있는 것, 붙들었다가는 언젠가는 함께 무너집니다.
그거 붙잡지 마십시오. 세상 의지하지 마세요. 흔들흔들하잖아요?
하나님 붙잡아 보세요! 굳건합니다. 천하없어도 요동치 않아요.
사람 의지 하지 마세요! 하나님 의지해야 되는 줄 믿습니다.
유대인이 예수님 안 믿었어요, 그러면 예수님의 십자가 구원, 무효가 됩니까? ··· 아니예요!
내가, ‘하나님은 없습니다’ 그러면 하나님 안 계신 겁니까?
철학자 니이체, ‘신은 죽었다.’ 그랬습니다. 그러면 정말 신이 죽는 겁니까?
복음을 거부하는 유대인들, 착각하고 있어요.
우리가 2천 년 간 말씀을 보관하고 있다. 우리 모르게 하나님이 그렇게 하실 리 없다.
그러면 그들의 주장대로 됩니까? ··· 아니다 이겁니다!
우리가 말씀을 보관중인데, 하나님이 우리에게 어떻게 진노를 내릴 수 있단 말인가?
(5~6절) “그러나 우리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나게 하면 무슨 말 하리요 [내가 사람의 말하는
대로 말하노니] 진노를 내리시는 하나님이 불의 하시냐 결코 그렇지 아니하리라 만일 그러하면 하
나님께서 어찌 세상을 심판하리요”
유대인들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진노를 내리시는 것은 있을 수 없다. 그런 하나님은 옳지 않다.
유대인이 그렇게 생각하면 그렇게 되느냐? 그렇지 않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유대인을 편애하시지 않으십니다.
오늘날 우리는 어떻습니까? 집집마다 성경책은 한 권씩 다 있습니다.
성경책 잘 보관했다고, 하나님의 심판, 피할 수 있느냐? ··· 아니다!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기도하고, 예배하고 순종할 때,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Ⅱ. 참되신 하나님을 만나자! >
(7절) “그러나 나의 거짓말로 하나님의 참되심이 더 풍성하여 그의 영광이 되었다면 어찌 내가 죄
인처럼 심판을 받으리요”
대단한 궤변입니다.
몇 년 전에 독감 ‘신종 플루’가 전국에 돌았습니다.
신종 플루에 걸리지 않으려면 손을 잘 씻어야 한다. 온 국민 손 씻기가 벌어졌습니다.
공공장소마다 손 소독 살균제가 비치되었습니다. 교회에도 갖다 놨습니다.
그랬더니 그해 병원들이 파리를 날렸습니다. 특히 안질환이 급격히 줄었습니다.
손을 잘 씻었더니 눈에 질병이 현저히 줄었습니다.
이 현상을 보고, ‘신종 플루’ 잘 왔다. 해마다 왔으면 좋겠다. 그렇게 말하면 됩니까?
말이 안 되는 이야깁니다.
가룟 유다 덕택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셨으니, 유다가 공로자라는 말과 똑같습니다.
하나님은 ‘신종 플루’도 심판하십니다. 가룟 유다도 심판하십니다.
하나님은 참되신 하나님입니다.
이런 궤변이 사람 사이에서는 통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궤변이 하나님께도 통한다? ··· 그러면 오히려 우리가 불쌍하지요!
시시때때로 변하시는 하나님이라면, 우리가 어떻게 믿을 수 있습니까?
그러면 우리는 어디로 가서 누구를 믿어야 합니까?
하나님은 참되십니다. “참되신 하나님을 만납시다!”
사람이 거짓된 존재라는 것이 드러나면 드러날수록,
하나님의 참되심은 더욱 분명해지는 것, 맞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방식으로 하나님의 참되심이 증명되기를 바라시지 않습니다.
(8절) “또는 그러면 선을 이루기 위하여 악을 행하자 하지 않겠느냐 어떤 이들이 이렇게 비방하여
우리가 이런 말을 한다고 하니 그들은 정죄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
“선을 이루기 위하여 악을 행하자!
사람들은 이렇게 궤변을 내놓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맺음>
사도 바울,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다메섹에 가는 길, 예수 믿는 사람들 잡으러 가는 길이었습니다.
거기서 예수님 만나고, 회심했습니다.
예수님이 메시야이심을 분명히 알았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확실하게 알았습니다.
율법 자랑, 할례 자랑, 언약 백성 자랑, 이 모든 것이 잘못되었음을 알았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궤변들, 바울은 자신이 여기에 빠져 있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깨우쳤습니다.
예수님 만나기 전에는 자신이 빠져 있는 궤변이 궤변인 줄 몰랐습니다.
오늘 말씀은 바울의 자서전과도 같은 말씀입니다.
성령 받고, 새롭게 눈 떴습니다.
예수님이 복음이신 것을 알았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이 구원의 유일한 길인 것을 알았습니다.
바울은 사실은 민족주의자입니다. 유대인을 무척 사랑하는 인물입니다.
이 말씀은 유대인을 미워하기 때문에 기록한 것이 아닙니다.
유대인을 비난하려고 쓴 글이 아닙니다.
바울은 어떻게 해서라도 자기 민족을 잘못된 논리, 궤변에서 벗어나도록 열변을 토합니다.
아프지만, 자기 민족, 유대인에게 채찍을 휘두르고 있습니다.
왜요?
“주님 품으로 돌아와라!”
“주님만이 참 소망입니다. 주님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십니다.”
바울에게 임했던 주님의 은혜,
오늘 예배한 저와 여러분에게도 동일하게 내려 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