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분노의 포도
저자 : 존 어니스트 스타인벡
역자 : 맹후빈
출판 : 홍신문화사 2009년판
# 1 - 정신적인 굶주림과 즐거움과 안정적 삶에 대한 굶주림
# 2 - 앞으로 나는 어떻게 네 소식을 알 수 없겠니? 네가 죽어도 내 귀에는 들리지도 않을 거구. 다칠지도 모르잖니. 그걸 무슨 수
로 안단 말이냐?
- 케이시가 말한 것처럼 사람은 자기만의 영혼이라는 것은 없고, 다만 크나큰 영혼의 한 조각을 갖고 있을 뿐인지도 몰라요. 그
러니까....
- 그러니까 뭐나, 톰?
- 그러니까 그런 건 아무 것도 아니잖아. 나는 어둠 속의 어디서나 있는 셈이니까. 어디에나, 어머니가 돌아보는 어디에나 말이
죠. 허기진 인간들이 밥을 달라고 소동을 일으키면 거기가 어디든지 간에 나는 반드시 그 속에 있어요. 경찰놈이 누군가를
패고 있으면 반드시 나는 거기에 있어요. 케이시가 말한 대로라면 나는 모두가 화가 나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는 그
고함 속에 있을 거구. 또 굶주렸던 어린 아이들이 저녁 준비가 됐다는 것을 알고 소리내어 웃고 있으면 그 웃음 속에도 나는
있어요. 그리고 우리 식구가 우리 손으로 가꾼 것을 먹고 우리 손으로 지은 집에 살게 되면 그때도 물론 나는 거기에도 있구
요. 알겠어요, 어머니? (본문 중에서)
# 3 - 인간은 우주의 모든 유기체나 무기체와 달리, 자기가 창조한 것을 넘어서서 성장하고, 자기의 사고의 범주를 딛고 넘어, 자기
가 이룩한 업적보다 앞서서 나아가는 존재이다.
# 4 - 책 내용들이 남의 일같지 않아 마음이 무척 아팠는데, 이 가족들의 수난 과정을 지켜보면서 조마조마한 마음에 끝까지 읽어
나가기란 여간 어렵지 않았다. 어느 순간에는 마음이 너무 아파 결과가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기를 바랄 정도였다.
# 5 - <분노의 포도>는 학교 다니던 시절 한 번 읽었는데, 이번에 읽으며 새삼 느낀 것은 구체적인 일부 내용들에 대해 전혀 기억
이 나질 않는다는 것이다. 그때도 완독했고, 이번에도 재미있게 완독했지만 즐거움은 배가 된 것 같다. (그것은 아마 첫번째
지적으로 성숙했다는 것, 두번째로는 인생의 경험을 어느 정도 쌓았다는 것, 마지막으로 독후감을 쓰기 위해 충분한 정독을
했다는 것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재미있게 읽었지만 왜 기억이 나지 않았을까. 흥미위주로만 읽는 독서 습관은 독서의 즐거
움을 반감할 수 있고 집중력을 또한 반감할 수 있으며, 독후감과 같은 지적 즐거움을 한 번 더 되씹는 과정과 같은 지적 성숙
의 단계로 발돋음하지 못함에 따라 향후 폭 깊은 독서 체험을 하는 기회를 놓칠 수 있다.
# 6 - 눈에 띄는 것은 대부분 결과일 뿐이다. 결과는 대부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 뿐이다. 대신 원인을 찾아야 한다.
밤이 완전히 어둠의 장막을 내리덮친다. 아기는 감기에 걸려 있다. 자, 이 담요를 덮어 주어라. 순모 담요야. 어머니가 쓰시
던 담요지. 갖고 가서 아기를 덮어 주라구. 이것이야말로 폭탄의 시초다. 이것이야말로 '나'에서 '우리'에의 시작인 것이다.
인간으로서 가져야만 할 것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이 이걸 이해할 수 있다면, 그대들은 자신을 보호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대들이 원인과 결과를 분별할 수 있고 페인, 마르크스, 제퍼슨, 레닌 같은 사람은 모두 결과이지 원인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면, 그대들은 살아남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을 그대들은 도저히 알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소유한다는
것의 특질이 그대들을 영원히 '나' 속으로 동결시키고, 영원히 그대들을 '우리'에게서 단절시켜 버리기 때문이다. (본문 중에
서)
# 7 - 사랑에는 증오도 따르는 법인데 이것은 또한 사랑을 하는 다른 한 방식일 뿐이다.
1
책을 일처럼 읽었던 것 같다. 혹은 부담을 가지고 읽었거나. '존 어니스트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가 재미있는 소설이라는 것은-오래 전 학교 다니던 학생시절 이미 한 번 읽었기 때문에 기억에는 남아 있었지만 내용은 전혀 떠올릴 수가 없었다-알고 있었지만, 시간을 들여 새삼 다시 읽으려 책을 펼치니 책도 두꺼우려니와 서두에서부터 사막을 횡단하는 것처럼 벅차게 느껴져 곧 중단하고 말았다.
2
재미있었다는 기억, 널리 알려진 고전이라는 것, 당장 손에 잡히는 것 중에서는 그래도 제일 나은 선택이라는 것 등. 이렇게 해서 다시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책을 계속 읽기위한 묘책을 썼다. 그것은 다름 아닌 눈에 들어오지 않아도 나중에 다시 읽을 생각을 하며 진도를 계속 나가는 것이다. 영화를 찍을 때 쓰는 수법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이다. 영화를 줄거리대로 순서대로 촬영하는 것이 아닌, 줄거리를 여러 상황으로 분리해놓은 다음 영화 촬영하기 좋은 순서대로 촬영하고 모든 촬영이 끝나 편집 단계에서 줄거리대로 필름을 이어붙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감독의 영감에 의해 순서를 조정해서 필름을 연결해서 원하는 시간만큼의 영화를 만들어 내는 기법인 것이다. 그렇지만 독서는 서두를 조금 지나고 나니 줄거리 이해에 탄력이 붙고, 원래 이 책의 내용이 재미 는만큼 금방 본궤도에 들어서며 끝까지 줄곧 읽어낼 수 있었다.
3
- 항상 모든 작품은 원작 혹은 원어로 적힌 것을 읽어야 한다. 그래야 제 맛을 느낄 수 있다.
- 그러나 그렇지 못해서 번역본을 읽어야 한다면 명망있는 번역가나 명성이 있는 출판사본을 택하는 것이 좋다. 번역은 제 2의 창
작인만큼 번역하는 번역가의 수준에서 원작품이 재창조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번역 솜씨는 나무랄 것이 없었다. 번역가는 이 책을 번역하면서 다음과 같은 특별한 것을 도입했는데 그것은 바로 무성영화 시절 배우 못지않게 큰 비중을 차지했던 변사, 바로 그 변사를 변역에 출연시킨 것 같다. 원래 이 작품은 철없는 아이들의 등장으로 말미암아 줄거리 중간중간에서 내용 전체의 고난에도 불구하고 웃을 수밖에 없는 장면이 도출되는데, 이 분위기가 여러 비정하고도 힘든 고통들을 해설함에서 끊이지 않고 이어지게 함으로서 책을 읽는 독자들의 마음에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그렇지 않았으면 1930년대 당시 미국 서부에서 벌어졌던 비인간적이며 비열한 인간들과 그들에 의해 아무 것도 모른 채 몇대 째 살아왔던 정든 고향을 어느 날 갑자기 등지고 생활터전을 빼앗긴 채 아무런 연고도 없는 타향을 이리저리 떠돌며 인간 이하의 생활을 연명해야 하는 고통에 처한 평범한 사람들-아이들과 아내, 그리고 때로는 조부모들까지 거느린 대가족들-의 사무친 역사를 아무리 소설이라고는 하지만 더 이상 읽어낼 수가 없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