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란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그 분야에 있어서의 사실과 업적, 그리고 그것들에 의한 영향력을 조사하는 것이다. 역사를 연구하는 이유는 행위의 근원을 과거에서 찾으려는 실용적 태도에 연유한다. 하지만 정확한 역사 과정의 인식과 이를 기반으로 하는 연구가 수반되지 않으면 그 분야의 장래 지표 선정 및 발전을 지속적으로 가져올 수 없으며, 역사 연구의 부재는 정통성 확립에 어려움을 가져올 수 있다.
역사는 지나간 시간에 응축된 삶의 모습을 후세에 전해주는 거울이다. 당대(當代)에는 현상적인 것만 비추어지기 때문에 평가를 내리기 어렵지만 과거에 투영된 모습을 훗날 시대별로 정리해 보면 역사의 단면이 이어지면서 전체적인 흐름을 형성하게 된다.
스포츠의 세계가 존재한다면, 단지 의미적 세계가 아닌 우리들의 진술과 독립해서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며, 그러한 스포츠의 세계는 오로지 하나일 수밖에 없다. 우리가 알고자 하는 것은 바로 그러한 스포츠의 세계이며, 오직 그런 시도가 성공했을 때 우리들의 진술은 참이 된다.
스포츠 문화사도 마찬가지지만, 역사적 사건을 시대별로 연계시켜 보면 하나의 경향성을 파악할 수 있다. 특히 스포츠의 역사 연구는 역사적 변천의 흐름을 이해하고, 현재의 스포츠 현상을 바르게 이해함으로서 미래를 내다본다는 점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다.
체육사를 연구하자면 서양에서는 스포츠의 역사가 주된 연구 대상이지만 동양에서는 무예의 역사가 주된 연구대상에 포함된다. 사실 무예의 역사적 정통성 문제는 한국 체육사 연구에 있어 중요한 관심사 중의 하나이다.
전 세계에 한국의 전통 무예로 알려져 있는 태권도 역시 그것의 역사적 정통성에 대해 많은 의심을 받고 있으며, 이로 인해 오랜 기간 동안 치열한 역사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이에 이러한 논쟁을 올바르게 발전시키고 한국 체육사의 정통성을 정립하기 위한 노력들을 정리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태권도의 역사 정립에 대한 요구는 오랫동안 태권도인들의 숙원 과제이기도 하였다.
동양무술의 기본적인 목표 중의 하나가 격투라는 것을 상기하여야 한다. 특히 동양의 무술은 겨루기와 자기 방어를 위해 싸우는 기술을 배운다. 그러나 동양무술의 형식적인 유형(類型), 즉 품새(型)는 단지 싸우는 기술을 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그 나름의 목적을 위해 행해진다. 이러한 이치와 신체 사상이라 할 수 있는 것이 맨손의 격투 무술이다. 이 격투 무술은 품새(型)를 매우 중요시 하는 데 한국의 국기인 태권도 역시 이와 마찬가지라 할 수 있다.
이렇듯 태권도는 한국의 신체문화 유산 중에 최고의 상품으로 중국의 우슈나 일본의 가라테와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유도에 이어 동양의 무술로서 올림픽 종목에 채택되었다. 이로써 태권도는 한국뿐만 아니라, 동양이라는 지역적 한계를 뛰어넘어 세계인들과 함께 수련하는 무예라 할 수 있다.
태권도는 근대에 이르러 한국을 중심으로 무예 스포츠로서 세계화가 되었고, 양적으로 팽창하여 전 세계에 약 9,000만 명의 수련자와 840만여 명의 유단자 등 태권도 인구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각국에 파견된 사범 역시 6,000여 명에 이르며, 세계태권도연맹에 205개 회원국을 두고 있는 세계적인 스포츠로 각인된 세계화에 거대한 저변을 확보하고 있는 한국 무예이다. 특히 2000년 제27회 시드니 올림픽에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면서 태권도는 한층 더 세계화의 길을 단단히 하고 있다. 한국의 민족 문화를 대표하는 것으로 한글. 김치, 한복 등을 들 수 있으나 이제 태권도는 그에 못지않게 우리의 문화를 상징하는 것으로 되었다.
태권도의 세계화는 1959년에 최초로 이루어진 해외 원정 시범 이후 반세기만에 본격화되었으며, 그의 주역인 최홍희(전 국제태권도연맹 총재)와 김운용(전 세계태권도연맹총재) 등을 주축으로 수많은 사람들의 피와 땀의 결실에 의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2004년 제28회 아테네올림픽은 제1회 대회의 발상지라는 의미와 태권도가 전 세계인들에게 무예스포츠로서의 우수성을 알리며 한민족의 전통적인 강인함을 보여주는 기회가 되었으며, 우리에게는 태권도 종주국으로서의 자부심을 심어주었다. 이는 태권도가 우리나라 무예로써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발전되었다는 것과 함께 이제는 세계인 모두가 함께할 수 있는 문화 상품으로 발돋움하였다. 이러한 발전은 세계태권도연맹(World Taekwondo Federation)이 창립된 지 31년만이며, 해외로 태권도가 뿌리 내린지 40여년 만에 이룬 쾌거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태권도는 역사·철학적 근거가 미약하다’는 취약점을 안고 있다. 정부와 국기원은 물론 한국의 정신문화를 연구한다는‘한국학 중앙연구원’에서 조차 우리 정신문화로서의 태권도 정신 혹은 철학에 대한 연구가 미진한 상황이었다. 이와 함께 이원화된 두 개의 태권도 연맹(국제·세계)과 ATA, 준리도, GTA 등의 출현도 태권도 모국으로서의 입지를 위협하여 왔다.
태권도의 정체성 논쟁과 더불어 역사 논쟁이 있어 왔다. 과연 오래된 무예가 좋은 것인가? 오래된 것이 가치 있는 것은 골동품 밖에 없다. 왜냐하면 희소성으로 그 값어치가 크기 때문이다. 골동품의 현재 쓸모는 단지 관상용일 뿐 그 외에는 쓸모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무예가 오래되었다는 것은 박물관 무예 밖에 그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예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그 만큼 박물관에 가야한다는 소리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금 여기서 유통되는 무예가 되어야 살아 있는 무예가 된다. 태권도 역시 역사가 문제가 아니라 지금 사람들 사이에서 소통하고 그들이 필요로 하는 태권도의 역할을 하고 있느냐가 중요하다.
현실과 단절된 태권도는 죽은 박물관 속 태권도에 지나지 않는다. 태권도가 무예라고 그 밖의 논의에 대하여 문을 닫아버리면 현실 부적응으로 도태되고 만다. 중국의 태극권은 중국사람 누구나 공원에서 가볍게 그리고 즐겁게 행할 수 있는 부드러운 몸동작으로 체조와 같이 양생과 건강을 위한 신체활동으로 그 모습이 변화해가고 있다. 태권도가 세상의 변화에 둔감하고 무술로서의 태권도를 강조하고‘태권도는 무예’라는 주장만을 하게 되면 태권도는 싸움 기술에 불과할 뿐 더 이상의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1990년대 초반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25년 동안 태권도 역사 논쟁과 병행하여 태권도의 정체성에 관한 논의가 태권도학계에서 활발하게 전개되어 왔다. 이 논쟁에서 주로 다루어져 왔던 주제는“태권도는 무엇인가 스포츠인가?”,“태권도는 가라테(空手)의 아류인가 아니면 한국 고유의 전통무예인가?”,“태권도와 택견은 서로 밀접한 관련이 있는가, 전혀 무관한 행위양식인가?”,“태권도란 말은 손으로 때리고 발로 차는 형식을 가진 모든 무술 형식을 지칭하는 일반적 이름인 일반명사인가, 한국이라는 특수한 사회문화적 조건에서 자생적으로 발전한 특별한 무술형식을 지칭하는 고유한 이름인 고유명사인가?”등과 같은 물음들이다.
과연 태권도의 정체는 무엇일까? 혹자는 무예라고 하고, 다른 이는 스포츠라고도 하며, 무예스포츠라는 새로운 합성어를 만들어 물음에 답하는 이도 있다. 또 어떤 이는 가라테의 아류라고도 하고, 또 다른 이는‘택견의 전통을 계승하면서 발전한 한국의 전통무술’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리고 태권도란 단어의 성격과 관련하여 그것이 발과 손을 사용하는 모든 맨손 무술을 지칭하는 일반명사가 될 수도 있다고 주장하는 이도 있고, 그와 같은 태권도 개념의 확대 해석은 잘못된 것이며 태권도 한국이라는 특수한 사회문화적 환경 속에서 자라난 독특한 형식을 지닌 한국 고유의 무예를 지칭하는 개념이라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
태권도는 지난 50여 년간 줄곧 몸집 불리기에 주력해 왔다. 그 결과 국내에서뿐만 아니라 외국에서도 그 영역을 크게 확장할 수 있었으며, 지금은 완숙한 하위문화(subculture)로 자리 잡게 되었다. 그러나 21세기를 선도할 신체문화로서 자리매김을 하기엔 여전히 해결해야만 할 과제들이 산재해 있다. 특히 여기서 요구되는 것은 굳건한 상부구조, 즉 이념 체계이다. 이를 이루기 위하여 자신의 모습을 뒤돌아보고 확인하는 작업은 반드시 필요한 절차인 것이다. 송형석·이규형(2005)의“태권도의 정체성 논쟁이 태권도의 지속적 발전을 위하여 필수적으로 거쳐야만 할 통과의례라고 생각하고 있다.”라고 한 말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태권도의 정체를 규명하는 일은 태권도를 이론화하는 데 있어서 초석이 되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태권도의 정체를 규명하는 일과 관련하여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과제는 태권도의 개념을 명확하게 하는 일이다. 학문적 탐구의 대상으로서 태권도에 대한 뚜렷한 개념 규정 없이 태권도를 연구하는 일은 나침반 없이 망망대해를 항해하는 것과도 같다. 바른 항로를 따라 항해하기 위해서 나침반이 필요한 것처럼, 건전한 태권도 문화의 정착과 바른 태권도의 학문화 작업을 위해서는 먼저 태권도 개념에 대한 명료한 규정이 선행되어야 한다.
태권도학의 연구대상인 태권도를 개념적으로 명확히 규정해 주는 일은 태권도학의 연구 범위를 제한해 주는 작업일 뿐만 아니라 태권도학이 지향해야 할 학문적 방향성과 인간의 실천적 행위로서 태권도가 장차 지향해야 할 규범적 방향성을 탐색하는 작업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