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꽃(Flower) 이야기
<10> 아일랜드의 슬픈 감자 이야기
6월 13일은 아일랜드 더블린(Dublin)시가 지정한 ‘몰리 말론(Molly Malone)의 날’이다.
‘더블린은 좋은 곳 아가씨들 예뻐 귀여운 몰리 말론 첫눈에 드네~~~’(아일랜드 민요 '몰리 말론')
고색창연한 더블린 시내 / 몰리 말론 동상 / 아일랜드 지도
위 아일랜드 민요 ‘몰리 말론’은 내가 대학 다니던 60년대 중반, 서울 종로 YMCA 기독교 회관에서 전석환(全石煥)님이 지도하던 싱어롱 와이(Sing Along Y)에서 배운 노래이다.
지금까지도 가사와 멜로디가 생생하게 기억되는 것은 그때 전석환님이 잠깐 언급했던, 노래에 얽힌 슬픈 사연 때문이었지 않았을까? 아일랜드(Ireland)도 감자에 얽힌 가슴 아픈 이야기가 있다.
슬픈 아일랜드의 역사와 몰리 말론(Molly Malone) 이야기를 되짚어 적어본다.
아일랜드(Ireland)는 잉글랜드(England)로 부르는 브리튼(Britain/영국) 섬 왼쪽 대서양의 작은 섬 이름이기도 한데 한때 ‘에이레 공화국’이라 불리기도 했던 나라이다. 총면적 85.000㎢ 정도이지만 섬 북단의 13.000㎢ 정도는 영국 땅이다.
아일랜드섬의 원주인은 켈트(Celt)족으로 오랜 전통과 독특한 문화를 자랑하지만, 바이킹의 침공, 잉글랜드(영국)와의 갈등 등으로 끊임없이 분쟁에 휘말렸던 곳이다.
아일랜드는 영국의 식민지였다가 1949년 잉글랜드 연방에서 완전 독립을 쟁취하지만 대부분 가톨릭인 아일랜드에 반하여 개신교 집단 거주 지역인 북아일랜드는 결국 영국 영토로 남게 된다.
가톨릭과 개신교의 갈등으로 국토가 결국 반 토막이 났고, 영국 식민지 통치를 받으면서 당했던 뼈아픈 고통이 지금까지도 뿌리 깊은 원한과 앙금으로 남아있다. 영국에 대항하여 테러도 서슴지 않는 아일랜드 공화국 군(IRA)은 지금까지도 양국의 걸림돌이다.
‘몰리 말론’은 아일랜드 전래 동화에 나오는 인물로 17세기 영국 식민지 시절,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Dublin)에 살던 아름다운 여성인데 가난 때문에 새벽에는 조개와 생선을 팔고 밤에는 몸을 팔다 병에 걸려 죽는다. 그 이후 안개가 자욱한 새벽이면 몰리의 유령이 손수레를 끌고 더블린 시내 골목길을 돌며 조개와 생선을 사라는 가냘픈 소리가 들리게 됐다는 전설이다. 허구(虛構)의 인물 ‘몰리’는 식민지 시절 궁핍했던 아일랜드를 상징한다.
한(恨)이 담긴 노래 ‘몰리 말론’은 아일랜드의 비공식 국가가 됐고, 무장 독립 투쟁을 벌이는 아일랜드 공화국군(IRA)의 ‘광복군가(光復軍歌)’ 역할도 한단다.
1988년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 시는 6월 13일을 ‘몰리 말론의 날’로 선언하고, 더블린의 트리니티 대학 앞에 몰리의 동상을 세웠다. (사진) 다음은 아일랜드 민요 ‘몰리 말론’의 가사이다.
In Dublin's fair city, Where the Girls are so pretty.
I first set my eyes, On sweet Molly Malone, As she wheeled her wheel barrow.
Through the streets broad and narrow, Crying Cockles and Mussels.
Alive alive o! Alive alive Crying Cockles and Mussels, Alive alive o!
더블린 시장은 좋은 곳, 그곳의 소녀들은 너무나 예뻐요.
내 눈은 처음 본 그녀 몰리 말론에게 빠져들었어요. 그녀는 리어카를 끌고
거리의 큰 길과 골목길을 누비면서 새조개와 홍합을 사라고 외쳤답니다.
살아 있어요! 싱싱해요! 새조개와 홍합이 살아서 싱싱해요.
아일랜드의 참혹한 식민지 박해역사는 아일랜드 대기근(영어: Great Famine, 아일랜드어: An Gorta Mor, An Drochshaol)으로 시작되는데 1845년에서 1852년까지 7년간 영국령 아일랜드섬에서 일어난 집단기근(集團饑饉), 역병(疫病)과 집단 해외 이주를 불러온 비극적인 사건이 그 정점이다.
1842년 미국 동부의 감자 재배는 대규모의 감자 역병(감자 마름병)으로 인해 쑥대밭이 되었다.
이 감자 마름병은 순식간에 북미 전역으로 확산된 뒤 다시 배를 통해 유럽으로 번지기 시작했다.
1847년 어느 날부터 갑자기 감자 마름병이 아일랜드 전역에 번지기 시작했는데 감자가 주식이던 아일랜드인 들은 감자 수확이 급감하자 하나둘씩 아사자(餓死者)가 생기기 시작했다. 이 대기근은 감자 마름병이 한 가지 원인이긴 하지만 더 큰 직접적인 원인은 영국인 지주들의 착취였다.
그들은 아일랜드인을 소작인으로 부리면서 밀과 옥수수 등 각종 곡식을 많이 수확했는데 수확물 대부분을 영국으로 실어가서 아일랜드인들은 항상 굶주림에 시달려야 했다. 결국, 그들은 감자로 연명할 수밖에 없었는데 감자 마름병으로 수확이 줄어들자 수많은 아일랜드인들이 굶어 죽게 된 것이다. 지주는 먹을 것조차 없는 아일랜드 소작인들에게 과중한 소작료를 내게 한 것이 아일랜드인들이 굶어 죽게 된 첫 번째 원인이었다고 한다.
아일랜드인들은 영국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묵살(默殺) 당했다. 당시 아일랜드를 지배하고 있던 ‘영국 아일랜드 연합 왕국’에서 일어난 대기근은 영국인 지주들의 지나친 착취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들은 하느님의 뜻이라느니, 아일랜드인 들을 더 풍요롭게 할 디딤돌이라느니 하면서 외면하였다. 심지어는 ‘멍청하고 게으른 아일랜드 사람들’ 기질 탓으로까지 돌렸다. 게다가 1848년에는 곡물법을 폐지하고 밀수입을 자유화하였다. 그리고는 군대를 동원해 강제로 아일랜드에서 생산한 밀을 영국 본토로 보냈다. 영국인 대지주들은 아일랜드인들이 세금을 내지 못하자 그들을 강제로 내쫓았고 쫓겨난 그들은 벨파스트에 있는 빈민구제기관으로 몰려들었다.
아일랜드 전역에서 굶주린 사람들이 벨파스트로 몰려들었는데 그들은 대부분 길거리에서 굶어 죽거나 전염병으로 죽었다고 한다.
당시 중동지역 오스만 제국의 술탄(Sultan) 압둘 메지드 1세는 구호를 위해 1만 파운드를 보내려 했는데, 영국 빅토리아 여왕은 자기가 2천 파운드만 냈으니 1천 파운드만 기부해 달라고 요구했다.
술탄은 이 요구에 응했지만 그 대신 식료품을 가득 실은 배 3척을 몰래 보냈고, 터키 선원들은 영국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이 구호품을 아일랜드에 전달했다고 한다. 당시 한 영국 언론인은 아일랜드의 참담한 현실을 다음과 같이 고발했다.
그의 글에는 영국의 착취, 외면, 억압으로 인한 아일랜드 민중들의 고통이 낱낱이 적혀있다.
‘이 세상에는 다른 나라의 통치를 받고 있는 나라는 수도 없이 많다. 또한 가난한 나라도 많고 거지들이 득실거리는 나라도 있다. 그러나 한명도 빠짐없이 전 국민이 거지들인 나라는 아일랜드 밖에 없을 것이다.’
‘이들의 모습은 인간의 살이 어떻게 뼈와 분리될 수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사람들은 밤마다 공포에 떨었다. 쥐들이 그들의 살을 파 먹었고 다음날 아침이면 많은 수의 사람들이 살점이 떨어져 나간 채 죽어있었다.’
‘어린이들의 배는 영양실조로 터질듯이 부풀어 올랐고, 전염병으로 인해 그들이 몸은 성한 곳이 없이 터져서 피가 흘러내렸다. 길거리에는 시체가 산을 이루고 있었고 마을은 황폐화되었다. 그들은 영국인 대지주의 집 앞에 모여들어 식량을 요구했으나 곧 영국군이 그들을 쫓아냈다. 그곳은 지옥과 같았다.’
또, 한 미국인은 다음과 같이 당시 모습을 썼다.
‘이 나라에는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어나가고 있다. 그러나 벨파스트 항에는 외국으로 가는 곡물이 더 많다.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미국에서 오는 옥수수를 실은 배 한 척이 구호선의 전부이다. 그 옆에는 영국으로 가는 수많은 곡물선이 있다.’
800여 년간 영국의 식민통치에 시달린 아일랜드는 전 국토가 황폐화 되었다.
거기에 더하여 영국의 착취와 대기근은 19세기에 발생한 인류 최대의 재앙으로 기록되고 있다.
아일랜드인들은 지금까지도 당시 영국인들의 착취와 횡포에 뿌리 깊은 원한을 품고 있다.
또 하나, 아일랜드의 슬픈 역사를 간직한 노래로 ‘아덴라이의 들판(The Fields of Athenry)’이 있다.
아덴라이의 들판 노래는 마이클이라는 한 젊은 아일랜드인과 그 가족이 당했던 가슴 아픈 사연을 담은 노래이다. 마이클은 굶주리는 어린 자식들에게 먹이려고 그 당시 악명 높았던 식민지 총독 트레벨리안(Charles Edward Trevelyan) 백작의 창고에서 약간의 옥수수를 훔친 죄목으로 감옥에 끌려가고, 급기야 먼 호주의 보타니 베이(Botany Bay) 감옥으로 보내진다. 한순간의 작은 절도죄로 생이별을 당하게 된 젊은 부부의 가슴 아픈 이야기이다.
By a lonely harbor wall, She watched the last Star fall.
As the prison ship sailed out against the sky.
For she lived to hope and Pray for her love in Botany Bay.
It's so lonely round the fields of Athenry.
쓸쓸한 부둣가에서 그녀는 죄수수송선이 항구를 떠나 하늘을 향하다 마지막 별이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보타니 베이'에 남긴 그녀의 사랑을 위해 희망과 기도를 포기하지 않는 그녀이었기에
'아덴라이'의 들녘은 더욱 외롭기만 하다.
그러나 현재 아일랜드(Irish Republic)는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나라 중의 하나로 꼽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