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래종인 양이 오스트레일리아에 경제적으로 큰 이익(때로는 손해)을 안겨주는 반면에
토끼오 여우는 전적으로 패해만 안겨주는 왜래종이다.
영국 개척자들에게는 오스트레일리아의 환경, 식물과 동물이 낯설기 짝이 없었다.
그들은 유럽의 친숙한 식물과 동물에 둘러싸여 살고 싶었다. 따라서 그들은 유럽의 많은 새들을 들여왔다.
그러나 오직 두종(집참새와 찌르레기)만이 널리 확산되었고
나머지 종들(검은 지빠귀, 노래지빠귀, 나무참새, 오색물방을 새, 방울새)은 일정한 지역을 벗어나지 않았다.
적어도 이런 외래종 새들은 큰 피해를 주지 않았다.
하지만 토기는 엄청난 수로 불어나 경제적으로 막대한 피해을 주고 있으며 ,
양과 소가 먹어야 할 초지의 풀을 거의 절반이나 먹어치우며 토양의 질을 떨어뜨리는 주범이 되었다 (사진 30)
또한 양을 방목하고 원주민의 화전을 억제하면서 서식지의 환경이 변한 탓도 있겠지만
유럽에서 건너온 토기와 여우의 등쌀에 오스트레일리아의 작은 토종 포유동물들이 멸종되거나 멸종의 위기를 맞고 있다.
여우들이 그들을 먹이로 삼기 때문이고 토끼들이 토종 초식 포유동물들의 먹이인 풀을 게걸스레 먹어치우기 때문이다.
유럽산 토기와 여우는 거의 동시에 오스트레일리아에 들어왔다.
영국의 전통적인 여우 사냥을 즐기기 위해 여우가 먼저 들어오고 토끼가 여우의 먹잇감으로 나중에 들와왔는지,
아니면 토끼를 사냥용이나 시골을 영국적인 분위기로 조성하겨고 먼저 들여왔는데
토끼의 수가 급속히 늘어나자 토끼의 개체 수를 조절하려고 나중에 여우를 들여왔는지 확실하지는 않다.
어떤 경우이든 토끼아 여우가 오스트레일리아의 환경에 엄청난 피해를 입힌 까닭에
그런 사소한 이유로 들여왔다는 사실 자체가 믿기지 않을 정도이다.
게다가 영국의 정착자들이 오스트레일리아에 토끼를 정착시키려고 기울인 노력은 더더욱 믿지지 않는다.
처음 네 번은 유순한 흰토끼를 방사햇지만 그 토끼들은 오스트레일리아의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죽었다.
이런 거듭된 실패에도 불구하고 영국 정착자들은
다섯 번째에 야생의 에스파냐 토기를 들여와 기어코 성공을 거두는 집착을 보였다.
토끼와 여우가 오스트레일리아 산양에 정착하면서 엄청난 부작용을 일으키자,
그제야 오스트레일리아 사람들은 경각을 갖고 토끼와 여우를 없에고 개체 수를 줄이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했다.
영우와의 전쟁에서는 독(毒)과 올가미가 동원되엇다.
오스트레일리아 사람이 아니더라도 얼마 전에 개봉된 영화
「토끼 울타리 Rabbit Proof Fence」를 본 사람이라면 기억하겠지만
그들은 광활한 초원에 긴 울타리를 치고, 울타리의 한쪽에서 토끼를 완전히 박멸시키는 전략가지 동원했다.
농부 빌 매킨토시는수천 개에 이르던 토기 굴을 그의 땅지도에 세밀하게 표시해 두고
하나씩 찾아다니면서 불도저로 밀어버렸다.
그 후에도 토끼 굴을 발견해서 토끼들이 활동하는 조짐이 보이면
그는 다이너마이트를 토끼 굴에 던져 넣어 폭발시켜 토끼들을 죽이고 토끼 굴을 막았다.
이런 식으로 그는 3,000개의 토기 굴을 파괴했다. 여기에 소요되는 엄청난 비용 때문에
오스트레일리아 사람들은 '점액종증(myxnmatosis)' 이라는
토끼 특유의 질병까지 수십 년 전에 수입하는 고육지책을 썼다.
이런 파괴적인 대책으로 처음에는 토끼의 개체 수가 90퍼센트까지 줄엇지만
나중에는 토기가 면역력이 생겼는지 그 수가 다시 증가하기 시작했다.
그 때문에 요즘에는 카리시 바이러스라는 다른 병원균을 이용해서
토끼의 개체 수를 억제하는 방법을 시도하고 있다.
영국 개척자들이 토기와 찌르레기에 정을 느끼고
오스트레일리아의 토종 동물인 캥거루와 수도자새의 모습을 낯설게 생각했듯이
오스트레일리아의 유칼립투스와 아카시아에도 편안함을 느끼지 못했다.
사실 그 나무들은 영국의 삼림에 흔한 나무들과 모양새와 색 심지어 잎 모양에서도 달랐다.
정착자들은 그런 색다른 풍경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농사를 짓기 위해서 나무들을 잘라냈다.
약 20년전까지도 오스트레일리아 정부는 농지를 확보하기 위해 땅의 개간 사업을 금전적으로 지원했을 뿐만 아니라
차지인(借地人)들에게 개간을 의무화시키기도 했다.
(미국에서 그렇듯이 오스트레일리아에서도 많은 농지가 농부의 소유가 아니라 정부의 소유이다.
간단힌 말해서 정부가 농부에게 농지를 임차해 주는 형식을 취한다.)
게다가 차지인들이 농지 개간을 위해 투입한 농기계와 노동력의 사용료를 세금에서 보상해 주었고,
땅을 임대하는 조건으로 개간을 해야 땅의 면적을 할당했으며,
차지인이 그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임대 계약을 철회했다.
농부들과 기업들은 천연의 초목으로 뒤덮이고 지속적인 영농에는 적합하지 않은 땅을 사들이거나 임차해서,
초목을 걷어내고 밀을 심어 한두 번 수확을 거둔 후에는 임차를 포기하는 식으로 상당한 이익을 거둘 수 있다.
다행히 요즘에는 달라졋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식물들이 회귀종이고 멸종 위기에 빠졌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농지 개간이 염화로 인한 토질 약화의 원인 중 하나로 여겨지면서
정부가 최근까지 농지 개간을 위해 농부들에게 감세 해택까지 주면서 토종 초목을 파괴했던 것을 후회하기에 이르렀다.
오스트레일리아 정부의 용역을 받아 농지 개간을 한 이유로
얼마나 많은 땅이 황폐화되엇는지를 조사하고 있는 생태 경제학자 마이크 영(Mike Young)은
젊은 시절 자기 아버지와 함께 땅을 개간하면서 가족 농장을 만들던 때를 내게 말해주었다.
마이크와 그의 아버지는 두 대의 트랙터에 굵은 쇠사슬을 연결시키고,
두 트랙터를 나란히 몰아가며 쇠사슬로 토종 초목을 걷어낸 땅에 곡물을 심었다.
그 대가로 그의 아버지는 세금을 크게 감면 받았다.
정부가 유인책으로 감세 정책만 동원하지 않았더라도
많은 땅에서 토종 초목이 사라지는 비극은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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