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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유교진흥원
해평들을 앞에두고 금오산을 업고있는 ‘영남유교문화원’을 보게 된 계기는 유한성 수석부회장 덕분이다. 국가 차원에도 하기 어려운 대 공사를 개인이 몇 10년에 걸쳐 하나 하나 목조 건축을 하고 있는 노진환 회장이 어떤 분일가?
유한성 수석부회장과 동승한 덕분에 김항회 대구화랑 회장의 자세한 설명도 들을 수 있었다. 노회장이 경주에 볼일이 있어 우리 일행의 방문과 때를 맞추어 해평으로 온다는 전갈이다. 뒤에 따라 오든 차들이 선두차인 우리 차를 놓치는 바람에 전화로 연결하여 10여분 도로에 기다렸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니 산 위에는 포크레인이 도로 정지 작업이 한창이다.
돈후문(敦厚門)을 통해 경모재(敬慕齋)에 들어서니 나무의 모든 칠은 옻칠을 한다는 설명이다. 산 위 여기저기에 많은 건축물들이 들어서서 현재 작업중이며 완성된 건축물과 헤일 수 없이 많다는 사실만 눈에 들어온다. 이틀전에 출판사에 일을 보러 다니다 걷기가 힘들어 오늘 상주행사에 참석할 수 있을가? 걱정을 하였는데 어제 하루 집에서 푹 쉬었더니 좀은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는데...막상 산 입구에서부터 바라보이는 거창한 건축물들을 구경하려니, 혹시나 걸음을 걷지 못하는 사태가 일어나지 않을가? 하는 걱정이 앞선다.
경모재를 지나 慶州盧公諱澔行蹟碑가 담 모퉁이에 있는데 뒷 행적을 촬영하고 싶지만 걱정이
앞서 그냥 지나쳤다.
경모재정초문
경모재는 하계 노진환공이 위선숭조사업의 일환으로 사재를 독연하여 1996년 병자에 그 고조와
증조께서 생졸하신 문동 백호등 자락 고허에 창건하였으니 고조 휘 호와 무과급제이신 증조 휘
상권 그리고 독립지사이신 당숙 휘 명일의 삼공을 추모 봉안한 곳이다. 목재는 경북 영양 일월산과
강원도 설악산에서 특별히 취한 것이며 기와는 경주 안강산인데 시공은 인간문화재 사팔구호인
김천시 황금동 오광선 대목장의 책임으로 이루어졌다. 현액 경모재는 일중 김충현 선생과 성균관
장 최근덕 선생이며 기문은 경북대 교수 김종택 선생과 국회의원 김덕 선생이니 오로지 빛을 더
했다할 만하다. 사우는 남향으로 장중수미한데 문호의 명명을 돈후로 함은 받들기를 예로써
하기를 다짐함이다. 원컨대 충효로 근본을 세우고 인성을 닦아 광거하며 선조의 높은 뜻을
실추함이 없기를 바랄 따름이다. 선조의 사적을 다스리고 가꾸는 것은 후곤의 도리이니 서로
효를 책하여 도와 덕이 경모재로 하여 더욱 우뚝하고 빛나기를 바라노라. 1997년 정축계월상한
해주 오동섭 서
목조건물 안은 아주 시원하단다. 아무리 더워도 방 안에만 들어서면 에어콘 바람보다 더 시원함을 느낀단다. 신발 벗고 들어 갔다. 천장도 올려보고 마루도 유심히 보았다.
벽에 걸칠 민화 3매가 놓여져 있다 한 눈에 霞溪 노진환 사모님 권정순 교수의 그림임을 알 수 있다.
권정순 교수는 한국 민화부분의 권위자로 민화의 계승과 발전을 통해 우리 전통미술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고 민족미술로서의 위상을 정립하며 국민정서 확립에 이바지하는 한국 민화연구소 소장으로 계명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멋쟁이 '영천최씨원당문중' cafe지기 서기님도 사진찍기 바쁘시다.
문짝에 옻칠하는 인부들의 작업이 한창이다.
모든 건물은 모두 ‘경모재정초문’에 밝혔드시 영양 일월산과 설악산에서 조달하는 목재를 사용했다는데,
화장실 만은 목재로 할 수 없다하여 나지막하게 흙으로 사진과 같이 특이하게 만들었다.
유교진흥원의 내막을 누구 보다 잘 아는 김항회 대구화랑 회장의 자세한 설명은 문화해설가 뺨치는 실력이다.
▲ "독립운동가들이 돈이 되는 것만 좇았다면 지금의 이 나라와 우리가 있었겠습니까." 독립운동가들의 서찰을 독립기념관에 전달한 김항회 대구화랑 대표가 자신의 화랑에서 1919년 당시 유림들이 작성한 격문을 보여주고 있다.
경북지방에서 수집한 문인석들
경기지방에서 수집한 문인석들 (경북지방에 문인석에 비해 문인석의 크기가 크다)
십이지상 공원
송학정이건중수기(松鶴亭移建重修記)
己丑年九月 日 九世孫 鎭桓謹識
임진왜란전시관은 다른 전시관의 세멘 콘크리트조와 달리 목조로 건축하고 있다.
걷기가 힘들어 멀리서 임진왜란전적비 앞에서 기념촬영하는 동료들을 멀리서 줌으로 당겨 본다.
내려다 보이는 해평들과 봉황란동산(鳳凰卵東山:南齋작)이 아름다워
몇장 찍은 사진을 그냥 세장 다 올린다.
나무마다 거름을 주고, 지주목을 세우고 굵은 줄로 지탱시키는 노회장의 정성을 볼 수 있다.
남들보다 좀은 들 돌고 아장아장 내려왔다. 산들 바람에 어디선가 풍경소리가 들린다. 일행들은 아직 산위에서 내려 올 려면 시간이 걸린다.
처음 들어갔던 돈후문 우측에도 많은 건축물들이 보인다. 추측상 몇 백억은 족히 들어갔을 것 같다. 공사는 내년에 끝날지? 후내년에 끝날지?
먼저 내려 온 김에 화실이 있어 혼자 들어가 구경하였다. 곳곳에 촬영 금지 팻말이 보인다. 그래도 몇 장의 사진을 찍었다. 노 회장에게 그림 사진 불가라는 팻말이 붙었는데 공개하면 않되느냐고 물었더니 曰 "공개해도 괜찮습니다" 그래서 여기 몇장 올린다.
[경인년 호랑이 해를 맞아 권경순 교수가 들려주는 우리전통민화이야기]가 액자에 걸려 있는데
읽어 볼 시간도 없이 주인 없는 방에서 사진을 찍다 보닌 불안한 생각이 든다.
그러나 이 멀리 와서 그냥 가기는 너무 서운해서 노 회장에게 물어봐서 공개하지 말라면 그냥 간직하려고 찍었는데 승낙을 받았으니...
불안하게 찍다 보니 사진들이 바르지 못하고 삐닥삐닥하기만 하다. 하 하 (이해하시고 보세요~)
노회장이 소장한 전적을 알아보자
경상북도는 3월 3일자로 『선산 노진환 소장 전적(善山 盧鎭桓 所藏 典籍)』·『의성 오봉종택 소장 전적(義城 梧峰宗宅 所藏 典籍)』를 도지정 유형문화재로, 『수다사 건륭27년명 동종(水多寺 乾隆27年銘 銅鐘)』을 도지정 문화재자료로 지정 고시하였다.
노회장의 이력서
霞溪 노회장의 거소는 하계정사인데 현판은 一中 김충현 선생의 필체며, 화이문(和而門)이 정문이다. 옆 문으로 출입하자 노회장이 우리 일행을 맞는다.
인사를 하고 나니 뒤편을 구경하란다.
이층 열락당(悅樂堂) 옆에 장독대가 볼거리다. 장독대를 보자 얼른 홍일점 영천최씨 문중의 최태연 여사를 모델로 정하고 한컷. 찰칵. 찰칵
노회장의 방대한 계획과 의병장의 후손으로서의 긍지를 들으면서 그의 계획은 100년 대계가 아닌 천년 대계임을 느낀다.
떡과 약과를 대접 받고 마침 추연 선생의 후손 우광성님의 수원행 차 편이 있어 獐山 최재일님과 동승하게 된다.
그 동안 다른 바쁜 일이 있어 늦게 사진을 올렸다.
의병장의 후손으로 자부와 긍지를 갖는 멋스러운 우정이 있어 다음 기회에 한 번 더 올리기로 하고 ‘선양회’ 상주 총회의 기록을 마감한다.
선양회에 가입한 모든 문중에 즐거움이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
첫댓글 08년, 10년 두차래 노진환 회장님의 초대로 답사한 "영남유교문화원"의 공사가 많이 진행 되었군요.
개인의 私材로 건설되는 전통한옥,유교문화시설로는 당대 최고의 걸작으로 보입니다.
완공되면 다시한번 견학하고 싶은곳 입니다
소재지는 선산군 해평면이고 우리 카페에도 저가 답사기 올린 바 있습니다.
못가도 가본것 같이 사진 설명 곁들여주심에 감사... 그래도 직접 가보고 싶은걸...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