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6 주일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수난 전날 당신의 제자들의 발을 씻으신 다음 두려움과 산람함 속에 빠진 당신 제자들을 위로하고 그들을 격려하시는 말씀들입니다.
“그리고 내가 아버지께 청하면, 아버지께서는 다른 보호자를 너희에게 보내시어, 영원히 너희와 함께 있도록 하실 것이다.”(“κἀγὼ ἐρωτήσω τὸν πατέρα καὶ ἄλλον παράκλητον δώσει ὑμῖν, ἵνα μεθ᾽ ὑμῶν εἰς τὸν αἰῶνα ᾖ”: 요한 14,16)
그리스어 동사 ‘παρακαλέω’(파라칼레오)는 ‘∼ 주위에’, ‘∼ 근처에’라는 의미를 지닌 그리스어 전치사 ‘παρά’(파라)와 ‘부르다’는 의미를 지닌 동사 καλέω’(칼레오)가 합해져서 이루어진 복합 동사로 ① ‘∼의 가까이에 부르다.’, ② ‘권고하다.’, ‘권면하다.’(1코린 4,16; 16,12; 2코린 10,1; 12,18), ③ ‘격려하다.’, ④ ‘위로하다.’(2코린 1,4; 7,6-7; 1테살 3,7), ⑤ ‘도와주다.’(협조하다.), ⑥ ‘보호하다.’, ⑦ ‘간청하다.’(beseech, appeal), ‘애원하다.’ (implore) 등의 다양한 뜻을 지닙니다.
이 동사에서 파생된 명사 ‘παράκλητος’(파라클레토스)는 요한복음서에서 성령을 가리키는 반면에(요한 14,16.26; 15,26; 16,7), 요한의 편지들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1요한 2,1). 일반적으로 이 단어는 법정에서 피고인을 돕는 변호사를 뜻합니다. “나는 믿음의 자녀인 여러분이 죄를 짓지 않게 하려고 여러분에게 이 편지를 씁니다. 그러나 혹 누가 죄를 짓더라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를 변호해주시는 분이 계십니다.”(1요한 2,1)
그러나 요한복음에서 이 단어는 ‘변호사’보다는 신자들이 어려움에 부딪치게 될 때 그들을 위로해주고 도와주고 보호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리고 내가 아버지께 청하면, 아버지께서는 다른 보호자를 너희에게 보내시어, 영원히 너희와 함께 있도록 하실 것이다.”(요한 14,16) “보호자,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 주실 것이다.”(요한 14,26) “내가 아버지에게서 너희에게로 보낼 보호자, 곧 아버지에게서 나오시는 진리의 영이 오시면, 그분께서 나를 증언하실 것이다.”(요한 15,26) “그러나 너희에게 진실을 말하는데, 내가 떠나는 것이 너희에게 이롭다. 내가 떠나지 않으면 보호자께서 너희에게 오지 않으신다. 그러나 내가 가면 그분을 너희에게 보내겠다.”(요한 16,7)
“너희는 그분을 알고 있다. 그분이 너희와 함께 머무르시고 너희 안에 계시기 때문”(“ὑμεῖς γινώσκετε αὐτό, ὅτι παρ᾽ ὑμῖν μένει καὶ ἐν ὑμῖν ἔσται”: 요한 14,17ㄴ)
여기서 우리는 두 개의 그리스어 전치사, 곧 ‘παρά’(‘~와 함께’), ‘ἐν’(‘~ 안에’)의 의미에 주목해야 합니다. 전치사 ‘παρά’는 어떤 한 장소에 영원히 머무르는 상태를 뜻하기보다는 상호간의 환대 또는 친교를 뜻하고, ‘ἐν’은 성령의 현존이 지니는 내재성을 표현합니다. 그러므로 성령은 그리스도 신자들이 하느님의 뜻에 충실할 수 있도록 ‘그들과 함께’ ‘그들 안에’ 머물며 그들을 도와주고 위로해주십니다.
“나는 너희를 고아로 버려두지 않고 너희에게 다시 오겠다.”(요한 14,18)
성경에서 ‘고아’는 단순히 부모 없는 아이를 뜻하지 않습니다. 사회적 약자이며 보호받지 못하는 이들의 상징인 고아는 ‘과부’와 ‘나그네’와 함께 하느님의 특별한 관심과 보호를 받는 이들입니다. 그래서 시편 저자는 하느님을 “고아들의 아버지, 과부들의 보호자”(시편 68,6)라 부르며, “주님께서는 고아와 과부를 돌보신다.”(시편 146,9)고 노래합니다.
“내 계명을 받아 지키는 이야말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나도 그를 사랑하고 그에게 나 자신을 드러내 보일 것이다.”(“ὁ ἔχων τὰς ἐντολάς μου καὶ τηρῶν αὐτὰς ἐκεῖνός ἐστιν ὁ ἀγαπῶν με· ὁ δὲ ἀγαπῶν με ἀγαπηθήσεται ὑπὸ τοῦ πατρός μου, κἀγὼ ἀγαπήσω αὐτὸν καὶ ἐμφανίσω αὐτῷ ἐμαυτόν”: 14,21)
‘지키다’로 번역된 그리스어 동사 ‘τηρέω’의 본래적인 의미는 ‘보존하다, 주의를 기울이다,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관찰하다.’입니다. 즉 예수님께서 주신 의무나 규칙이나 형식을 마지 못해 행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이 담긴 행동’, 즉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지키며 이를 사랑으로 마음으로 결속된 바를 사랑으로 실천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야고보 사도는 우리에게 “말씀을 실행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말씀을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야고 1,22; “그저 듣기만 하여 자기 자신을 속이는 사람이 되지 말고 말씀대로 실천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공동 번역」) 라고 권고합니다.
오늘 제2독서 베드로 사도의 권고 말씀으로 오늘의 강론을 갈무리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마음속에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거룩히 모시십시오. 여러분이 지닌 희망에 관하여 누가 물어도 대답할 수 있도록 언제나 준비해 두십시오.”(1베드 3,15)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