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아, 드디어 은빛순례 현장순례의 마지막 종착지인 백령도에 간다.
DMZ 접경지역 순례의 종착지이기도 한다. 서울에서 서쪽지역을 따라 제주까지 갔다가 동쪽지역을 따라 강원도로, 그리고 동해바다를 바라보는 강원도 고성군에서 DMZ 접경지역을 따라 서해까지 온 것이다.
아침 일찍 인천항 여객터미널에서 박종렬 목사님을 비롯한 인천은빛들과 만나서 오전 7시 50분 발 하모니플라워호에 올랐다.
승객들 가운데는 군인들이 꽤 많은 것을 보면서 우리가 가고 있는 곳이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곳임을 실감한다.
배는 중간에 소청도와 대청도를 들린다. 그리고 백령도 도착
마중나온 예약버스를 타고 점심식사장소로 이동. 토속음식점인 <두메칼국수>에서 메밀칼국수와 만두처럼 생긴 짠지떡으로 점심식사. 그리고 휴식없이 바로 첫 번째 방문지인 두무진으로 출발했다.
차창밖 풍경이 우리네 시골마을 같으면서도 약간 낯선 느낌이 많다. 어디를 둘러봐도 하늘과 바다가 닿아있는 아름다운 섬이다. 그러나 꼼짝없이 철조망으로 둘러싸인 섬이기도 하다.
두무진 초입의 마을에 도착하니 두무진 안내판이 먼저 맞이한다.
두무진 명승의 바로 위쪽에 통일기원비가 있다. 북한 땅이 눈앞에 바로 보인다.
이곳 두무진은 백령도 최북단 해안에 있어 황해도의 서쪽끝인 장산곶과 불과 12km 거리다.
실향민의 아픔을 담아 세웠다는 통일기원비 앞에서. "한반도 평화, 피어라!"
이제 두무진 명승으로 내려간다. 인제순례 때 다리를 다친 이부영 은빛님이 함께 내려가지 못해서 안타까웠다.
두무진의 절경. 수억년이란 시간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지만, 그 세월 동안 파도와 놀며 저 모양이 되었단다. 파도와 바람의 작품. 바위마다 각각 이름이 따로 있다. 선대바위, 물개바위, 장군바이, 코끼리 바위 등 .
그중 선대바위는 '늙은 신의 마지막 작품'으로 칭송한 옛기록이 안내문에 있었다.
깨달음에 이른 양 눈은 시원하게 트이고, 마음이 경건해짐을 느낀다. 이 평화로움은 어디서 오나. 수억년의 시간 속에서 저렇게 닳고 깍이면서 다듬어진 풍광 앞에서, 우리는 얼마나 아프고, 얼마나 내려놓아야 평화의 바다에 닿을까,하는 상념도 함께 일렁인다.
.
천안함 46용사탑
이런 사진들을 보면 마음이 너무 아프고 힘들어짐을 느낀다. 이 청춘들이 공포, 날아가버린 꿈, 남아있는 가족들의 고통... 누군가의 희생을 기억한다는 것은, 다시는 이런 사건으로 칭송할 희생이 없는 나라를 만드는 것.
주차장 상점에서 국화꽃을 구입했다. 모두들 국화꽃 한송이에 추모의 마음을 담아 길을 오른다.
천안함사건에 대한 개요를 읽어보니, 2010년 3월의 일이다.
벌써 아홉번의 가을을 맞이했으나 아직도 생생한 충격이어서 바로 엊그제 같다.
위령탑에 국화꽃을 바치고 묵념을 올렸고 박종렬 목사님이 대표로 안식을 기원하는 기도를 해주셨다.
앞에 보이는 바다가 천안함 사건이 일어났던 곳이다.
어서 빨리 서해의 NLL 평화수역이 정착되어 이런 불행한 상황이 더이상 일어나지 않기를!
평화협정이 체결되어 평화공존체제가 확립되기를!
그래서 이곳도 철조망 울타리를 걷어내고, 자연과 바람과 파도와 더불어사는 평화로운 섬이 되기를!
할 수 있는 게 기도밖에 없다.
콩돌해안
두무진이 거대한 암석들이 침식되면서 신비한 모습이 되었다면, 여기 콩돌은 그 자식들이다. 두무진의 바위들 아래에도 이런 콩돌이 많았는데, 그 돌들이 바로 이 콩돌해안을 이루고 있는 것이라고. 그게 다시 사곶해변의 고운 모레로 연결되는 것이란다.(다음에 갈 곳이다.)
어떤 이는 바다를 보면서 생각에 잠기고, 어떤 이는 사진을 찍고, 어떤 이는 동심으로 돌아가 물수제비를 뜨고, 콩돌해안의 멋진 풍경을 찍는 이부영 선생님을 박종렬 목사님이 다시 카메라에 담고...
잠시 동안 각자 다양한 방식으로 콩돌해안을 즐겼다.
박종렬 목사님 인생샷! 깃발 많이 들어보신 듯 한데...
사곶해변
사곶해변은 앞에 말한 대로 두무진의 손자, 콩돌의 아들.
먼저 사곶해변을 제대로 볼 수 있는 조망대로. 위에서 내려다 본 사곶해변 천연비행장이다.
이 사곶해변의 모래는 시멘트가루처럼 부드러워 건축자재로는 쓸 수가 없지만, 일단 물이 빠지면 아주 단단해지는 규조토라고 한다. 그래서 한국전쟁 때 비행장으로 사용했으며, 이후 군부대 비행장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그래서 사곶해변 천연비행장으로도 불린다. 예전에는 통제지역이었으나 현재는 해제되어 일반인에게 개방되었다.
옆으로 호수와 농사를 짓는 들판이 보인다. 짧은 시간이지만 백령도를 다녀보니, 백령도는 어촌이 아니라 농촌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비옥해보이는 농토들이 곳곳에 넓게 펼쳐져 있다. 실제로도 어업에 종사하는 인구보다 농업에 종사하는 인구가 많다고 한다.
조망대에서 사곶해변으로 내려왔다.
사곶해변 도로변에 있는 <서해 최북단 백령도 표지석>. 인증샷 포인트다.
심청이와 몽은사
쇠기러기떼들이 떼를 지어 어디로 가는 것을 보니 우리도 집(?)으로 돌아갈 때인가 보다.
오늘 숙소인 몽은사로 갔다. 백령도에 있는 유일한 사찰인데, 전통사찰은 아니다.
백령도에 오기 전 백령도의 종교분포를 보면 주민의 90% 이상이 기독교신자라고 들은 바가 있다. 이 또한 분단의 상황과 관계가 깊다. 월남한 분들 가운데 기독교인들, 특히 목사님들이 많았고, 다른 많은 실향민들과 고향잃은 아픔을 함께 해온 것이다. 이런 분들의 성향은 다는 아니지만 대부분 반공주의에 입각해 있다는 이야기.
그런데 몽은사? 어디서 들었던 이름? 바로 심청전이다. 심봉사는 공양미 300석을 몽은사 화주승에게 약속했었지.
몽은사에서는 심청이선양사업도 하고 있었다. 심청전은 단순한 효행소설이 아니라고. 심봉사는 눈 먼 중생이요, 심청은 보살이요, 심봉사와 여러 맹인들이 눈을 뜬 것은 깨달음, 대중적 각성을 뜻한다는 해석이 흥미로웠다. 마당에는 불보살상 대신 코끼리가 모셔져 있다. 법당 뒷쪽 언덕에 있는 해수관음보살은 북녘땅을 바라보고 있다.
두무진 근처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돌아와 대화를 나누는 순례자들.
현장 걷기순례의 마지막 밤인지라 은빛순례와 한반도평화만들기에 대한 이야기들이 끝이 없다.
백령도 몽은사의 밤은 그렇게 깊어갔다. 오늘 밤에는 심청 크나큰 연꽃으로 솟아오르는 꿈을 꾸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