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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당 [레이먼드 카버] 「레이먼드 카버(Raymond Carver, 1938~1988) 20세기 후반 미국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이자 시인. 1980년대에 미국 단편소설 르네상스를 주도했으며, ‘헤밍웨이 이후 가장 영향력 있는 소설가’, ‘리얼리즘과 미니멀리즘의 대가’, ‘체호프 정신을 계승한 작가’로 불린다. 1938년 5월 25일 오리건 주 클래츠케이니에서 태어나 1988년 8월 2일 워싱턴 주 포트 앤젤레스에서 폐암으로 사망했다. 1979년에 구겐하임 기금의 수혜자로 선정되었으며, 1983년 밀드레드 앤 해럴드 스트로스 리빙 어워드를 수상했다. 1988년에는 전미 예술 문학 아카데미 회원으로 선출되었고, 하트퍼드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의 작품들은 세계 20여 개국에 번역되어 널리 읽히고 있다.」
[깃털들]
직장에서 알게 된, 버드라는 친구가 있는데, 그가 저녁이나 함께 먹자며 프랜과 나를 초대했다. 나는 버드의 아내를 몰랐고 버드는 내 아내 프랜을 몰랐다. 그 점에서 우리는 공평했다. 하지만 버드와 나는 친구였다. 버드의 집에 아기가 있다는 사실도 나는 알고 잇었다. 버드가 저녁 식사에 초대했을 즈음, 아기는 생후 팔 개월 정도였을 것이다. 팔 개월이라니? 그 시간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도대체, 지금까지의 시간은 또 다 어디로 간 걸까? 버드가 시가 박스를 들고 출근한 날이 생각난다. 구내식당에서 버드는 내게 시가를 내밀었다. 트럭 스토어에서 파는 시가였다. 더치 머스터스. 그런데 한 개비마다 붉은 스티커가 붙여 놓고 ‘사내애랍니다’라는 글씨가 인쇄된 포장지로 싼 시가였다.
한 번도 버드의 아내를 만나지 못했지만, 전화기를 통해 목소리는 들어본 적이 있었다. 어느 토요일 오후였는데 하고 싶은 일이 하나도 없었다. 뭔가 재미있는 일이 없을까 해서 버드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 여자가 전화를 받고는 “여보세요”라고 말했다. 그 순간, 머릿속이 깜깜해지더니 그녀의 이름이 기억나지 않았다. 버드의 아내인데. 버드는 그녀의 이름을 꽤 여러 차례 내게 말했다. 하지만 그 이름은 한쪽 귀로 들어왔다가 다른 쪽 귀로 빠져나갔다.
나중에 직장에서 버드를 만났을 때, 내가 집에 전화했었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은 건 당연했다.
대단한 건 없어. 버드가 말했다. 우리는 구내식당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넷이서 먹을 거니까. 자네하고 자네 부인, 나와 올라. 멋 진건 전혀 아니고. 일곱 시 쯤에 와.
그날 저녁 TV를 보다가 내가 우리도 뭘 좀 가져가야 하지 않겠느냐고 프랜에게 물었다.
프랜은 버드를 잘 알지 못했고 알고 싶어 하지도 않았다. “우리가 와인 한 병쯤 가져갈 수 있겠지” 프랜이 말했다. 하지만 난 신경 안 쓸래. 와인이나 가져가든지.
왜 우리에게 다른 사람이 필요해? 꼭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우리에겐 서로가 있는데.
프랜이 머리칼을 빗질하는 저녁이면 우리는 지금 우리에겐 없지만 꼭 갖고 싶은 것들을 소리 내어 말하곤 했다. 새 자동차를 가질 수 있다면, 같은 게 우리가 소원 삼아 말했던 일들 중 하나다. 또 두 주 정도 캐나다로 여행을 갈 수 있으면 좋겠다고도 말했다. 반면에 우리가 원하지 않는 것 중에는 아이들이 있었다.
언젠가는 낳겠지, 라고 서로 말한 적은 있다.
어떤 밤에는 영화를 보러갔다. 어떤 밤에-는 그냥 집에서 TV를 봤다. 때로 프랜이 뭘 구워오면 우리는 나란히 앉아 남김없이 먹었다.
버드와 울라는 시내에서 20마일 정도 떨어진 곳에 살고 있었다. 우리가 이 도시에 산지도 벌써 삼 년이 넘었는데, 아쉽게도 프랜과 나는 교외로 나가본 일이 많지 않았다. 꼬불꼬불한 소로를 드라이브하는 맛은 좋았다. 상쾌하고 따뜻한 초저녁이었고, 우리는 목초지를, 가로장 울타리를, 낡은 축사로 천천히 이동하는 젖소 떼를 보았다. 우리는 울타리에 앉은 붉은어깨검정새들과 건초보관소 위를 선회하는 비둘기 들을 보았다. 정원 같은 것들이 있었고, 활짝 핀 야생화 무리가 있었고, 도로에서 멀찌감치 물러선 작은 집들이 있었다. 내가 말했다. “우리도 이런 곳에 집이 있으면 어떨까. 그건 부질없는 생각, 이뤄지지 않은 또 하나의 소망일뿐이었다. 프랜은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그것 참 그림 같은 풍경이라고 생각했고 프랜에게 그렇게 말했다. “깡촌이네.” 그녀가 말했다.
우리가 난데없이 끔찍한 울음소리를 듣게 된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그 집에 아기가 있다는 건 알았지만, 아기 우는 소리라기엔 너무 컸다.
이건 또 무슨 소리지? 프랜이 물었다. 그때, 콘도르만큼이나 몸집이 큰 녀석이 날개를 펄럭이며 나무 위에서 덮치듯 날아와 자동차 바로 앞에 내려앉았다. 녀석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버드의 옷차림을 보자 갖춰 입은 내 차림새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집사람이 저 빌어먹을 놈을 집안에 들여놓았거든. 아주 이제는 빌어먹을 식탁에서 밥도 드시고 빌어먹을 침대에서 잠도 주무실 기세라니까. 머리칼을 동그랗게 말아 올린 오동통한 여자가 거실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당신은 이가 참 예쁘네요, 프랜, 한눈에 알아봤어요. 하지만 제 이빨은 어릴 때부터 저렇게 비뚤비뚤했어요.
녀석은 머리를 세웠으나 어쩐지 비뚜름했고, 녀석의 붉은 눈동자는 우리를 향했다. 깃털이 몇 남지 않은 벗은 머리 위로 몇 인치 솟아 있었다. 꼬리에는 더 큰 깃털들을 세우고 있었다. 그 새는 식탁에서 몇 피트 떨어져 걸음을 멈추고는 우리를 넘겨다 봤다.
사람들이 괜히 저것들을 낙원의 새라고 하는 게 아니지, 버드가 말했다. 프랜은 바라보지 않았다. 그녀는 아기에게 온 주의를 다 쏟고 있었다. 그녀는 곤지곤지 맴맴을 하기 시작했는데, 아기도 조금은 좋아하는 눈 그녀는 그놈을 목까지 끌어당기고는 귀에다 대고 뭐라고 중얼거렸다. “알겠지?” 그녀가 말했다. 내가 말한 거 딴 사람에겐 말하기 없기다.
아기는 툭 튀어나온 눈으로 그녀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러더니 그 녀석은 손을 뻗어 제 손으로 잡을 수 있을 만큼 프랜의 금발머리를 한 웅큼 움켜잡았다. 공작은 식탁으로 더 가까이 걸어왔다 우리는 누구도 말하지 않았다. 우리는 그저 가만히 앉아 있었다. 아기 해럴드가 그 새를 봤다. 그놈은 프랜의 머리칼에서 손을 떼고 그녀의 무릎 위에 섰다. 그러고는 퉁퉁한 손가락으로 그 새를 가리켰다. 그놈은 껑충껑충 뛰면서 소리를 질렀다. 공작은 재빨리 식탁 주위를 돌아 아기에게 다가갔다. 그러고는 긴 목을 아기의 다리 위로 내밀었다. 그놈은 부리를 아기의 파자마 상의 아래로 밀어 넣고는 딱딱한 머리를 앞뒤로 흔들었다. 아기는 웃음을 터뜨리면서 발을 굴렀다.
이게 무슨 일이야. 그녀가 말했다 공작이 미쳐서 그래요 버드가 말했다. 저 빌어먹을 새는 자기가 새인 줄도 모른다는 거, 그게 제일 문제예요.
버드와 올라의 집에서 보낸 그날 저녁은 특별했다. 특별하다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그날 저녁, 나는 내 인생이 여러모로 썩 괜찮다고 느꼈다. 내가 느낀 걸 프랜에게 말하고 싶어서라도 나는 어서 둘만 있고 싶었다. 그 저녁에 내게는 소원 하나가 생겼다. 식탁에 앉아서 나는 잠시 두 눈을 감고 열심히 생각했다. 소원이란 그날 저녁을 절대 잊지 않겠다는 것, 혹은 다시 말해 그날 저녁을 놓쳐버리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그 소원은 실제로 이뤄졌다. 그리고 그렇게 된 것은 내게는 불행이었다. 하지만 물론, 당시에는 그걸 알 도리가 없었다. 지금 무슨 생각하는 건가, 잭? 버드가 내게 물었다. 뭐, 그냥 생각. 내가 대답했다. 나는 그를 보며 웃었다. 멍한 생각, 올라가 말했다. 나는 그냥 웃다가 머리를 저었다.
끔찍한 부부인데다 그렇게 못생긴 아기라니. 밤에 함께 TV를 볼 때면, 분명한 이유도 없이 프랜은 말하곤 했다. 게다가 그 냄새나는 새하며, 그녀는 말했다. 예수님, 그걸 어디다 써! 그렇게 딱 한 번 본 뒤로 다시는 버드와 올라를 만나지 못했는데도, 그녀는 종종 그런 식으로 말하곤 했다.
여전히 공장에서 나는 버드를 만난다. 우리는 함께 일하고 함께 점심 도시락 뚜껑을 연다. 내가 물어보면, 그는 내게 올라와 해럴드에 대해서 말한다. 조이는 무대에서 사라졌다. 어느 날 조이는 나무로 날아갔고, 그게 끝이었지. 내려오지 않더군. 아마도 나이가 들었으니까. 버드가 말했다. 그다음에는 올빼미들이 그 자리를 차지했어. 버드는 어깨를 으쓱해 봅니다. 우리는 여전히 친구 사이다. 그건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에게 말하는 것들에 대해 나는 신경 쓰게 됐다. 그가 그 사실을 느낀다는 것도, 그런 게 달라지기를 원한다는 것도 나는 안다. 나 역시 그랬으면 좋겠다.
진실은, 내 아이에게도 뭔가 음흉한 구석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건 말하지 않는다. 심지어 애 엄마와도 , 특히 그녀와는. 그녀와 나는 점점 말하는 횟수가 줄어들고 있는 게 사실이다. 대개 TV뿐이다. 하지만 나는 그 저녁을 기억한다. 어떻게 공작이 그 회색다리를 들어 올려 잰걸음으로 식탁을 돌아왔는지 떠올린다. 그 다음에는 내 친구와 그의 아내가 포치에 서서 우리에게 잘 가라고 말하는 장면을. 나는 우리 모두가 악수를 하고, 서로 포옹하고, 이런저런 말을 하던 장면을 기억한다. 운전해 나오는 동안, 차에서 프랜은 내게 가까이 앉았다. 그녀는 내 다리에 손을 올려놓았다. 그 상태로 우리는 내 친구의 집에서 우리 집까지 차를 몰고 돌아왔다.
[ 셰프의 집]
그해 여름, 웨스는 유레카 북쪽에 가구 일체가 구비된 셋집을 하나 구했다. 주인은 알콜중독이었다가 치료받은 경험이 있는 사람으로 셰프라고 불렀다. 그는 내게 전화해 어떻게 지냈든 다 잊어버리고 거기로 와 자신과 함께 살자고 말했다.
나는 당신이 좀 더 노력해 내가 원래 알고 있던 웨스로 돌아가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웨스와 함께 살기로 결정하고 나니, 내 친구에게 이별을 고해야만 했다. 친구는 너 지금 실수 하는 거야 라고 말했다.
그는 술을 끊으려고 애쓰고 있다구. 그게 어떤 건지 잊은 건 아니겠지?라고 말했다.
나는 여름 동안만 같이 있을거야. 그 다음에 보자구라고 말했다.
나는 어떻게 하고? 나를 위해서는? 이라고 그는 말했다. 돌아오지 마, 라고 그는 말했다.
셰프의 집에서 한 달을 지낸뒤, 나는 결혼반지를 다시 손가락에 꼈다.
웨스는 두 팔로 나를 꽉 껴안고 내가 여전히 자신의 여자가 맞는지 물어보곤 했다.
딸 셰릴은 오리건의 한 농장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고 있었다. 딸은 염소떼를 길러 그 젖을 내다팔았다. 꿀벌을 두고 꿀단지를 채우기도 했다. 셰릴에게는 셰릴만의 삶이 있었기 때문에 나는 그런 딸을 비난하지 않았다.
비비는 워싱턴에서 건초 만드는 일을 했다. 건초 시즌이 끝나면 아들은 사과농사를 지어보려고 계획하고 있었다. 애인이 있었기 때문에 아들은 돈을 모으고 있었다. 나는 편지들을 보내면서 늘 “사랑한다”라는 서명을 남겼다.
웨스는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바로 지금 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말했다.
아이들은 당신을 사랑해. 라고 내가 말했다. 아니야, 그렇지 않아. 라고 그가 말했다. 나는, 언젠가 아이들도 이해할 날이 올 거야, 라고 말했다.
[보존]
석달 전, 해고된 뒤로 샌디의 남편은 늘 소파에 앉아 있었다.
무슨 일거리가 생기겠지. 샌디가 말했다. 그녀는 힘을 실어주고 싶었다. 그러나 겁이 나는 건 그녀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늘 같은 곳에 머물러 있었다.
매일 신문이 배달되었다. 그는 1면에서 마지막 면까지 신문을 읽었다.
얻니가 이상해지고 있다는 걸 알았지만, 샌디는 여전히 그를 사랑했다.
프레온이 빠저나간거야 라고 말하면서 그는 닦는 일을 멈췄다. 원인은 그거야 프레온이 빠져나간 거라구. 전에 이렇게 고장난 냉장고를 본적이 있어.
그녀는 그를 가만히 바라봤다. 가보자. 어때? 밖에 한번 나가보는게 당신한테도 좋을거야. 가서 살 만한 냉장고가 있는지 없는지 살펴 볼수도 있잖아. 일석이조지 그녀가 말했다. 평생 경매에는 한 번고 안 가봤어. 그가 말했다. 이제 와서 그런 곳에 가 보고 싶지는 않아. 제발, 샌디가 물었다. 뭘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해? 재미있잖아요 몇 년 동안은 나도 안 가봤지만, 어렸을 때는 자주 갔었어.
경매 재미있어. 그녀가 말했다. 그렇겠지. 하지만 난 안 갈래.
우린 필요한 게 한두 가지가 이니야. 하지만 난 실직 상태라고 응? 난 경매에 갈거야. 그녀가 말했다. 당신이 가든지 말든지, 같이 가는게 당신에게 좋을 거야. 하지만 난 신경 안쓸래. 솔직하게 말하면 나한테는 중요하지 않은 일이야. 하지만 난 갈거야.
나도 같이 갈거야. 언제 내가 안 간다고 그랬어? 그는 그녀를 바라보다가 시선을 돌렸다. 그는 신문을 집어들고 광고를 다시 읽었다.
나는 경매의 기억자도 몰라. 하지만 좋아. 한번 해보도록 할게. 경매에 가서 냉장고를 사게 될 줄 누가 알았겠어?
아무도 몰랐지. 그녀가 말했다. 어쨌든 한번 해보자구. 오케이 그가 말했다. 좋아 그녀가 말했다. 그런데 진짜 가고 싶은 거지?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말했다. 일단 저녁을 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저 빌어먹을 돼지고기를 요리해서 밥을 먹자. 다른 것들은 좀 있어도 되니까. 조금 있다가 죄다 요리해버릴 테니까. 이 경매에 다녀와서 말이야.
바깥 거리로는 자동차 한 대가 지나가고 있었다. 근느 손을 들어 입술을 만졌다. 그녀는 그가 소파에 앉아 책을 집어드는 광경을 지켜봤다.
그렇게 그는 가만히 누워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두 팔이 몸 옆으로 내려가는 걸 그녀는 봤다.
그녀는 의자에서 일어나 조용히 거실로 걸어가 소파 너머를 바라봤다. 그의 눈은 감겨 있었다. 그의 가슴은 거의 느껴지지 않은 정도로 고요하게 오르내렸다.
아빠와 엄마가 이혼한 뒤부터, 그녀는 엄마와 함께 살게 되었고, 아빠는 그녀와 경매장에 다니던 일들이 그립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왔다.
어느 깊은 밤,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와 아빠의 죽음을 알렸다. 아빠가 산 바로 그 차의 바닥에서 일산화탄소가 새어나오고 있었고 그 때문에 아빠는 운전석에서 의식을 잃었다. ~~~~며칠이 지난 뒤 아빠는 차 안에서 발견됐다.
프라이팬에서 연기가 일었다. 그녀는 기름을 더 두르고 환풍기를 돌렸다. 지난 이십 년간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경매장을 그녀는 그날 밤 가보려는 셈이었다. 하지만 그전에 먼저 폭찹을 구워야 했다. 운이 나쁘게도 냉장고는 박살이 났지만, 덕분에 경매장에 가게 되어 그녀는 마음이 부풀어 올랐다. 그녀는 아빠가 그리웠다. 이제는 엄마마저도 그리웠다. 지금의 남편을 만나 함께 살기 시작하기 전까지만 해도 두 사람은 늘 다투기만 했는데도. 그녀는 레인지 앞에 서서 고기를 뒤집으며 아빠와 엄마를 그리워했다.
그리움에 사로잡힌 채, 그녀는 손잡이를 잡고 불에서 프라이팬을 들어냈다. 연기가 레인지 위 통풍구로 빨려 들어갔다.
와서 식사해. 오케이 그가 말했다.
그녀가 남편에게 다시 말했다. 그는 접시를 다른 손으로 옮겼다. 하지만 여전히 서 있었다. 그 순간, 그녀는 식탁 위에 물이 생겼다는 걸 알아차렸다. 물소리도 들렸다. 식탁에서 리놀륨 바닥으로 물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그녀는 남편의 맨발을 내려다봤다. 그녀는 맨발 옆에 고인 물을 쳐다봤다. 이런 이상한 광경을 보는 일은 남은 평생 한 번도 없을 거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하지만 그걸 어떻게 이해해야할지는 여전히 알 수 없었다. 립스틱을 살짝 바르고 외투를 챙긴 뒤, 경매에 가는 게 낫겠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렇지만 그녀는 남편의 발에서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그녀는 식탁 위에 자기 몫의 접시를 놓은 뒤, 그 맨발이 부엌을 떠나 거실로 돌아가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했다.
[칸막이 객실]
마이어스는 스트라스부르의 대학교에 다니는 아들을 만나기 위해 일등석 기차를 타고 프랑스를 지나가고 있었다. 그는 지난 팔 년 동안 그 아이를 보지 못했다. 이 기간, 마이어스와 아이 엄마가 각자의 길을 가기로 하고 아이가 엄마와 함께 산 이래, 둘 사이에는 전화도 단 한 장의 엽서도 오가지 않았다.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모습이 마이어스가 마지막으로 본 아들의 모습이었는데, 그때 부부는 격렬한 말다틈 중이었다.
이른 아침이라 스쳐가는 초록빛 들판으로 안개가 내려앉아 있었다.
기차가 밀라노를 떠날 때까지만 해도 칸막이 객실에 자신뿐이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전등을 끈 뒤, 잠이 찾아오기만을 기다리며 두 눈을 감고 어두운 칸막이 객실에 앉아 있었다.
기차는 바젤 외곽의 간이역에 멈췄다. 그 역에서 검은색 양복에 모자를 갖춰 쓴 중년 남자가 칸막이 객실로 들어왔다.
그는 잠들지 못하다가 이제 불과 몇 시간밖에 남지 않은 아들과의 만남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역에서 그 아이를 보게 되면 그는 어떻게 행동할까? 아들을 안아줘야 할까? 그로서는 그런 기대가 불편하기만 했다.
칸막이 객실의 문을 열었을 때 그는 자신의 외투가 옮겨졌다는 사실을 금방 알아차렸다.
구근거리는 가슴으로 그는 외투를 집어 들었다. 없어진 것은 아이에게 주려고 산 선물, 그러니까 로마의 한 가게에서 산 고가의 일제 손목시계였다. 그는 잃어버릴까봐 그 시계를 외투 안쪽 주머니에 간직하고 있었다. 그 시계가 없어진 것이다.
실례합니다만 그는 모자로 눈을 가리고 두 다리는 쭉 뻗은 채 의자에서 골아 떨어진 남자에게 말했다. 실례합니다. 남자는 모자를 바로하고 두 눈을 떴다. 그는 몸을 일으켜 세우고 마이어스를 쳐다봤다.
마이어스가 여기에 누가 들어오는 거 봤습니까? 라고 물었다. 하지만 그 남자는 마이어스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는 게 분명했다.
그는 소매를 걷어 남자에게 자기 손목시계를 보여줬다. 남자는 마이어스와 시계를 번갈아 봤다. 그는 혼란스러운 모양이었다.
마이어스는 다른 칸막이 객실 안을 살펴보면서 객차의 끝까지 천천히 걸어갔다.
만약 같은 객실의 남자가 시계를 가져간 게 아니라면 도둑은 이런 칸막이 객실 중 하나에 있을게 분명했다.
그때 갑자기 결국 자신은 아이가 보고 싶지 않은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그에게 들었다. 자신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깨달은 그는 충격을 받았고 잠시 그 비열함에 자신이 초라하다고 느꼈다.
갑자기 그리고 너무나 분명하게 자신에게 달려들던 그 순간의 아이 얼굴이 떠오르면서 쓰라림이 물결처럼 마이어스를 지나갔다. 그 아이는 마이어스의 청춘을 집어삼켜버렸고, 그가 연애해서 결혼한 젊은 여인을 신경과민의 알코홀 중독자로 바꿔놓고는 번갈아가며 병도주고 약도 줬다. 도대체 무슨 까닭으로 자신이 싫어하는 누군가를 만나려고 이 먼 길을 나섰단 말인가.
그는 칸막이 객실을 떠나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의 맞은편에 있던 남자가 하품을 하면서 창밖을 내다봤다. 그러고는 마이어스에게 눈을 돌렸다. 그는 모자를 벗고 손으로 머리칼을 빗어 넘겼다. 그리고 다시 모자를 쓰더니 벌떡 일어서서 짐칸에 놓여있던 가방을 끌어내렸다. 그는 칸막이 객실을 열었다. 하지만 나가기 전에 그는 몸을 돌리고 역 쪽을 가리켰다. “스트라스부르” 남자가 말했다. 마이어스가 얼굴을 돌렸다. 남자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가방을 들고 복도로 나갔다. 마이어스는 손목시계도 함께, 라는 걸 확실히 느꼈다. 하지만 그건 이제 그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그는 다시 한 번 차창 밖을 내다봤다. 역으로 들어가는 문 앞에 앞치마를 두르고 서서 담배를 피우는 사내가 보였다. 그 사내는 긴 치마를 입고 아기를 안은채 서 있는 여자에게 뭔가를 설명하는 승무원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
승무원 중 하나가 아기의 턱을 간질였다. 여자는 아래를 내려다보며 미소를 지었다.
여인은 떠나가는 그를 지켜봤다. 그녀는 얼굴 쪽으로 손을 들더니 손등으로 두 눈을 차례차례 훔쳤다.
그는 자신이 앉은 차창 쪽으로 뛰어오는 그 젊은 여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마이어스는 그녀가 창문을 두들기기라도 하는 듯 조금 물러났다.
칸막이 객실의 문이 열렸다. 바깥에 서 있던 그 젊은 남자가 객실로 들어와 문을 닫고 그에게 “봉주르”라고 말했다.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그는 작은 여행가방을 머리 위 짐칸에 던져 넣은 뒤 창 쪽으로 다가갔다. “파르도나 무아.” 그는 창문을 내렸다. “마리” 그가 말했다 . 젊은 여인은 웃는 듯 우는 듯 묘한 표정을 지었다. 젊은 남자는 그녀의 손을 끌어당겨 손가락에 입을 맞추기 시작했다.
마이어스는 고개를 돌리고 이를 악물었다.
그는 외투에서 신문을 꺼내 읽기 시작했다. 마이어스는 일어나 문을 열었다. 그는 복도의 끝, 객차들이 연결되는 지점까지 갔다. 그는 왜 기차가 멈췄는지 알지 못했다. 뭔가 잘못된 것 같았다. 그는 차창 쪽으로 움직였다.
그는 돌아서서 허겁지겁 객차의 끝으로 가서 원래 자기가 앉아 있던 객차로 넘어갔다. 그는 복도를 걸어 자신의 칸막이 객실로 갔다. 하지만 신문을 읽고 있던 젊은 남자는 없었다. 그건 그가 타고 있던 칸막이 객실이 아니었던 것이다. 번쩍 정신이 들며 그는 기차가 조차장에 있는 동안 자신이 타고 있던 객차를 떼어낸 뒤 다른 이등 객차를 연결시킨 게 분명하리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가 서 있는 칸막이 객차 안에 꽉 들어찬 몸집이 작고 살갓이 검은 사내들은 마이어스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언어로 빠르게 말하고 있었다. 그들 중 하나가 그에게 들어오라는 몸짓을 했다.
그는 어딘가로 가고 있었고. 그걸 알았다. 그리고 그게 잘못된 방향이라면, 조만간 그는 알게 되리라.
그는 의자에 등을 기대고 앉아 눈을 감았다. 사내들은 웃음을 터뜨리며 떠들었다. 그에게는 그 목소리들이 아득하게 느껴졌다. 마이어스는 자기 몸이 어딘가로 실려가고 있다는 걸 느끼는가 싶다가, 그렇게 뒤로 뒤로, 잠 속으로 들어갔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토요일 오후, 그녀는 쇼핑센터에 있는 제과점까지 차를 몰고 갔다. 갈피마다 케이크 사진들을 테이프로 붙여놓은 바인더를 훑어 본 뒤, 그녀는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초콜릿 케이크를 주문했다.
다음주 월요일이면 아이가 여덟 살이 된다고 그녀가 말하는 동안, 굵은 목의 늙은 빵집 주인은 묵묵히 듣기만 했다.
빵집 주인은 쾌활하지 않았다. ~~~ 그 사람 때문에 불편했고, 그녀는 그게 안 좋았다. ~~~그의 허접한 용모를 살피며 빵장사가 되는 일 말고 그의 삶에서 다른 걸 해보기라도 했을까 하는 의문을 가졌다. 그녀는 애 엄마에 서른세 살이었고...
그런데 그는 그녀에게 퉁명했다. 무례한 건 아니고, 다만 퉁명했다. 그녀는 그와 친해지려고 애쓰는 일을 포기했다.
월요일 아침, 생일 맞은 아이는 다른 아이와 함께 걸어서 등교하고 있었다. ~~~~걸어가던 아이는 교차로에서 인도 연석에 발을 헛디뎠고 곧바로 차에 치여 쓰러졌다.
아이는 선 채로 비틀거렸다. 넋이 나간 표정이었으나 멀쩡해 보였다. 욵너사는 기어를 넣고 떠나버렸다.
생일을 맞은 아이는 울지도 않았지만, 그게 무엇이든 뭐라고 말할만한 상태도 아니었다. 자동차에 부딪친 기분이 어떠냐고 묻는 친구의 말에도 아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갑자기 소파에 몸을 파묻더니 눈을 감고 축 늘어졌다. 아무리 깨워도 아이가 일어나지 않자, 그녀는 전화기가 있는 곳으로 달려가 남편 직장에 전화를 걸었다.
그는 병원에 전화했다. 하지만 아이의 상태는 마찬가지였다. 아이는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않았고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선생님, 애는 어떤가요? 하워드가 물었다. 도대체 정확하게 문제가 뭡니까? 왜 깨어나지 않는 건가요? 앤이 물었다.
아이는 괜찮습니다. 의사가 말했다. 따로 말씀드릴 진전은 없지만, 차차 좋아지리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잠시 후, 간호보조원 두 사람이 바퀴 달린 침대를 끌고 병실로 들어왔다.
그들은 종일토록 기다렸으나, 아이는 깨어나지 않았다.
우리 애 프랭클린은 지금 수술대 위에 있어요. 어떤 사람이 칼로 찔렀습니다. 죽이려고 했죠. 싸움에 휘말렸어요.
그녀는 자신과 같은 종류의 기다림이라는 상황에 처한 이 사람들과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그녀도 두려웠고, 그들도 두려웠다. 다들 그런 공통점이 있었다.
어떤 남자가 전화했어. 스코티에 관한 거라고 말했다구. 그녀가 그에게 말했다. 여보, 좀 쉬어. 당신에겐 휴식이 필요해. 나한테 전화했던 사람일거야 잊어버려.
기억 안 나. 그가 말했다. 그 차를 몰았던 사람이겠지. 사이코패스인데 스코티에 대해서 뭔가 알게 된 모양이지. 어쨌든 스코티와 나는 여기 있어.
어젯밤에 수술 받은 흑인 아이가 하나 있었죠. 맨이 말했다. 프랭클린이라는 이름이었는데. 가족들은 대기실에 있었구요. 그 어이 상태가 어떤지 궁금해서요.
카운터 뒤 책상에 앉아 있던 간호사가 들여다보던 차트에서 시선을 떼고 올려다봤다. 전화벨이 울리자 그녀는 수화기를 들었지만 시선만은 앤에게서 떼지 않았다.
그 아이는 사망 했어요 . 카운터에 서 있던 간호사가 말했다.
아이는 두 눈을 떴다가 다시 감았다. 아이는 두 눈을 떴다.
얘야. 스코티. 아빠가 말했다. 이 녀석아. 그들은 병상으로 몸을 기울였다. 하워드는 아이의 손을 잡고 토닥이다가 꽉 움켜잡았다.
아이는 그들을 바라봤지만, 알아본다는 느낌은 전혀 없었다. 그러더니 입이 벌어지는가 싶다가 두 눈은 굳게 감겼고. 폐 속에 더 이상 숨이 남아 있지 않을 때까지 아이는 신음을 내뱉었다. 그리고 아이의 얼굴은 편안해졌다. 아이의 입술이 벌어지면서 마지막 숨이 목구멍을 지나 앙다문 이빨 사이로 천천히 빠져나갔다.
의사들은 이를 히든 오클루전 이라고 불렀는데 백만 명당 한명 꼴로 발생하는 특이증상이라고 했다.
귀신같이 그 사실을 알아차리고 즉시 수술을 했더라면 아이를 살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럴 일은 거의 없었다.
집에서 그녀는 외투 주머니에 두 손을 넣은 채 소파에 앉아 있었다.
여보세요 그녀가 말했다. 수화기 저편에서 무언가 웅웅 거리는 소음이 들려왔다. 여보세요! 그녀가 말했다. 제발 이라고 그녀가 말했다. 누구세요 원하는 게 뭐예요? 당신 스코티 말이오. 당신을 위해 내가 그 애를 준비해놓았소. 그 남자 목소리가 말했다. 스코티를 잊어버렸소? 이 못된 새끼야! 그녀가 수화기에 대고 소리쳤다. 네가 어떻게 이런 짓을 할 수 있어, 이 못된 자식아. 스코티 말이오. 그 남자가 말했다. 스코티에 대해서 완전히 잊어버린 것 아니오? 그러더니 그 남자는 전화를 끊어버렸다.
하워드가 고함소리를 듣고 안으로 들어왔을 때. 그녀는 탁자 위에 두 팔을 올리고 거기에 얼굴을 묻고 울고 있었다. 그는 수화기를 집어 들고 신호음에 귀를 기울였다.
시간이 꽤 흘러, 자정이 되기 얼마 전, 그러니까 그들이 여러 일들을 끝마쳤을 때, 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당신이 받아와. 그녀가 말했다. 하워드. 그놈이야. 분명해. 그들은 부엌 식탁에 커피를 놓고 앉아 있었다. 하워드는 자기 커피 잔 옆에 작은 잔으로 위스키도 한잔 놓았다. 세 번째 전화벨이 울렸을 때, 그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그가 말했다. 당신 누구요? 여보세요! 여보세요! 전화는 끊어졌다. 끊었어. 하워드가 말했다. 누군지 모르겠지만.
그놈이야. 그녀가 말했다. 그 개자식 죽여 버릴 거야. 그녀가 말했다. 총으로 쏜 뒤에 버둥대는 꼴을 보고야 말 거야.
세상에. 앤. 그가 말했다.
무슨 소리 못 들었어? 그녀가 말했다.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 무슨 기계 같은게 웅웅대는 시끄러운 소리?
못 들었어. 정말이야. 그런 소리는 안 들렸어. 그가 말했다. 그럴만한 시간도 없었으니까. 라디오에서 나오는 음악 같은 건 있었어. 그래, 라디오를 틀어놓은 건 분명해. 그건 내가 들었거든. 도대체 무슨 일인지 모르겠네. 그가 말했다.
그녀는 머리를 흔들었다. 내 손에 잡히기만 해봐. 그러다가 뭔가가 떠올랐다. 그녀는 그게 누군지 알아냈다. 스코티, 케이크, 전화번호, 그녀는 식탁에서 의자를 뒤로 밀어내고 벌떡 일어섰다. 쇼핑센터까지 좀 태워다 줘. 그녀가 말했다. 하워드 무슨 말이야?
쇼핑센터 말이야. 누가 전화했는지 알겠어. 누군지 알겠다고. 빵집 주인. 그 못된 놈의 빵집 주인이야. 하워드. 스코티 생일에 쓸 케이크를 만들어달라고 했거든. 그놈이 전화한 거야. 우리 집 전화번호가 있으니까 계속 전화한 거지. 그 케이크 때문에 우리를 괴롭힌 거라고. 빵집 주인, 그 못된 새끼.
그들은 빵집 뒤쪽으로 돌아가 그곳에 차를 세웠다.
여보, 이 사람이 우리한테 전화한 거야. 그녀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러고는 맹렬한 기세로 그를 노려봤다. 내부 깊은 곳에서 타오르는 분노로 그녀는 자신이 원래의 자신보다, 거기 있는 남자들보다 크다고 느꼈다.
여기서 잠깐만 기다리시오. 빵집 주인이 말했다. 만든지 사흘이나 지난 케이크를 가지러 오셨다 이거지? 그거요? 나는 아줌마하고 싸우고 싶지 않아요. ㅅ아해가는 그 케이크는 저기 있소. 원래 부른 가격의 반값에 주겠소.
케이크가 더 필요해요. 그녀가 말했다. 그녀는 자신의 감정을 속에서 치밀어오르는 것을 진정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침착해졌다.
케이크 가져 갈거요, 말 거요? 나는 다시 일해야 하오, 빵장수들은 밤에 일하오.
앤이 말했다. 빵장수들, 전화질도 밤에 잘하죠. 이 못된 자식아. 그녀가 말했다.
빵집 주인은 밀대로 손바닥을 계속 두들겼다. 그는 하워드와 눈을 마주쳤다. 신경 좀 쓰세요, 신경 좀. 그가 하워드에게 말했다.
우리 아들은 죽었어요. 그녀가 냉정하고 침착한 목소리로 잘라말했다. 월요일 아침에 차에 치였어요.
너무하잖아. 그녀가 말했다. 너무해도 정말 너무하잖아. 하워드는 그녀의 잘룩한 허리 부분에 손을 얹으며 빵집 주인을 바라봤다. 부끄러운줄 아세요. 하워드가 그에게 말했다.
빵집 주인은 밀대를 조리대 위에 내려놓았다.
미안하다는 말을 해야겠소. 빵집 주인이 팔꿈치를 탁자 위에 올리며 말했다.
요약하자면, 더 이상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나도 모르겠다는 걸 알아줬으면, 뭐, 그렇다고나 할까요. 부탁이오. 그 남자가 말했다. 나를 용서할 마음이 생기는지 여쭤봐도 되겠소?
빵집 안은 따뜻했다. 하워든 s 탁자에서 일어나 외투를 벗었다. 그는 앤이 외투 벗는 것을 도왔다.
그는 오븐으로 가더니 몇몇 스위치를 껐다. 그는 컵을 찾아 전기 커피메이커에서 커피를 따랐다. 그는 크림이 든 종이곽을 탁자 위에 놓았고. 설탕 종지도 가져왔다.
아마 제대로 드신 것도 없겠죠. 빵집 주인이 말했다. 내가 만든 따뜻한 롤빵을 좀 드시지요. 뭘 좀 드시고 기운을 차리는 게 좋겠소. 이럴 때 뭘 좀 먹는 일은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될거요. 그가 말했다.
매일 오븐을 가득 채웠다가 다시 비워내는 일을 반복하면서 보내는 일이 어떤 것인지. 그가 만들고 또 만들었던 파티 음식, 축하 케이크들, 손가락이 푹 잠길 만큼의 당의. 케이크에 세워두는 작은 신혼부부 인형들, 몇 백, 아니, 지금까지 몇 천에 달한 것 들, 생일들. 그 많은 촟 불들이 타오르는 것을 상상해보라. 그는 반드시 필요한 일을 했다. 그는 빵집 주인이었다. 그는 자신이 꽃장수가 아니라 좋았다. 사람들이 먹을 것을 만드는 게 더 좋았다. 언제라도 빵 냄새는 꽃향기보다 더 좋았다.
이 냄새를 맡아보시오. 검은 빵 덩어리를 잘라내면서 빵집 주인이 말했다. 퍽퍽한 빵이지만 맛깔난다오.
그들은 이른 아침이 될 때까지, 창으로 희미한 햇살이 높게 비칠때까지 이야기를 나눴는데도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비타민]
나는 일자리가 있었고 패티는 그렇지 않았다. 나는 밤에 병원에서 몇 시간 정도 일했다. 변변찮은 일이었다. 적당하게 일하고, 여덟 시간 일했다고 카드에 사인하고, 간호사들과 술 마시러 갔다. 얼마 뒤, 패티는 일자리를 원했다. 자기의 자존감을 위해서라도 일자리가 필요하다고 그녀는 말했다. 그래서 그녀는 복합 비타민 방문판매 일을 시작했다.
곧 그녀는 회사에서 승진했다.
오래지 않아 그녀는 자기 팀을 꾸려 쇼핑몰에 작은 사무실을 냈다. 하지만 그녀 밑에서 일하는 여자들은 항상 바뀌었다.
패티, 도나, 실라가 핵심 맴버였다. 패티는 인물이 좋았다.
어느 밤 실라가 패티에게 자기는 이 세상 그 무엇보다 패티를 사랑한다고 말했다.
패티 자신도 그녀를 사랑한다고 실라에게 말했다.
크리스마스 무렵이었다. 그즈음 비타민 사업은 상황이 꽤 좋지 않아서, 우리는 다들 힘을 낼 수 있도록 파티를 열기로 계획했다. 그때는 그게 좋은 생각처럼 보였다. 제일 먼저 술에 취해 정신을 잃은 사람은 실라였다. 서 있다가 정신을 잃고 쓰러진 그녀는 몇 시간이고 깨어나지 않았다.
패티하고 나, 그리고 누군가 한 사람이 그녀를 집 뒤의 포치까지 끌고가 간이침대에 눕히는 것으로 우리는 그녀에 대해서는 잊어버릴 수 있었다.
마음대로 하시지. 하지만 패티를 깨울 생각은 하지마. 이 레즈비언 갈보년아. 내가 말했다. 개자식. 그녀가 말했다.
그 뒤로 실라의 모습을 본 사람은 없었다. 적어도 비타민과 관련된 사람중서는, 어쨌든, 그녀는 유클리드 애비뉴 쪽으로 걸어가면서 우리의 삶에서 영영 사라졌다.
나는 팀의 또다른 핵심 멤버인 도나 때문에 몸이 달아 있었다. 그날 저녁 파티에서 우리는 듀크 엘링턴의 음악 몇 곡이 흐르는 동안 함께 춤을 췄다.
그 파티에 남자라고는 나 혼자 뿐이었고 여자는 모두 일곱 명이었는데, 나머지 여섯은 자기들 끼리 춤추고 있었다.
내가 부엌에 있을 때, 빈 잔을 든 도나가 들어왔다. 잠시나마 우리 둘뿐이었다. 나는 그녀를 살짝 안았다. 그녀도 나를 껴안았다. 루리는 거기 서서 서로 안고 있었다. 그때 그녀가 말했다. 안 돼요, 지금은 안 돼.
해가 바뀌고 한 주가량이 지났을 무렵, 패티와 나는 술을 마셨다.
그러다가 우리는 에리조나나, 그 비슷한 곳으로 이사를 가면 더 낫지 않겠냐고 예기했다.
잠잘 때도 나는 비타민 꿈만 꿔. 놓여나는 일이 없어.
나는 비타민 사라고 설득하는 꿈을 꿔. 그녀가 말했다. 밤이고 낮이고 나는 비타민만 팔고 있어. 빌어먹을, 무슨 놈의 인생이 이래. 그녀가 말했다.
일이 끝난 뒤에 내가 가는 곳이 있었다. ~~~오프브로드웨이라는 상호였다. 깜둥이 동네에 있는 깜둥이 술집이었다.
베트남을 떠나온 뒤로는 누굴 약 올릴 일이 있었어야지. 누런 새끼들 약 올리는 재미로 살았는데. 그는 큼지막한 입술을 안으로 당겨 이빨을 드러내며 웃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웃음을 그치고 쳐다봤다. 이 사람들한테도 그 귀를 보여줘. 베니가 말했다. 그는 탁자 위에 잔을 내려놓았다. 넬슨이 그 난쟁이 새끼들 귀를 잘라왔거든. 베니가 말했다. 지금 가지고 있어, 꺼네봐. 넬슨. 넬슨은 그냥 앉아 잇었다. 그러더니 외투 주머니 속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는 주머니에 든 물건들을 꺼냈다. 그는 열쇠 몇 개와 기침약 상자를 꺼냈다. 도나는 귀 따위는 보고 싶지 않아요. 웩, 정말 웩이에요. 정말 역겨워. 세상에 라고 말했다. 그녀는 나를 바라봤다. 우린 이만 가야겠어. 내가 말했다.
넬슨은 여전히 주머니 속을 뒤졌다. 그는 양복 상의 안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탁자 위에 놓았다. 그는 지갑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들겼다. 큰 걸로 다섯장이 들어 있어. 들어 보라구.
그는 찾던 물건을 꺼냈다. 은색 담배케이스였다. 그는 케이스를 열었다. 나는 그 안에 들어 있는 귀를 봤다. 귀는 깔아놓은 솜 위에 놓여 있었다. 말라버린 버섯처럼 보였다. 하지만 진짜 귀였다. 그 귀는 열쇠고리에 달려 있었다.
누런 세끼들한테서 내가 잘라냈지. 넬슨이 말했다. 그 세끼들은 이제 아무것도 듣지 못할거야. 기념품이 필요했거든. 카키는 열쇠고리에 메달린 귀를 돌렸다.
우리는 칸막이 자리에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우리를 쳐다봤다.
[신경써서]
그는 층계참에 멈춰 서서 주인 할머니의 거실을 들여다봤다. 할머니는 카펫에 등을 대고 누워 있었다. 잠든 것 같았다. 갑자기 그 할머니가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전화를 거는 곳]
j.P와 나는 프랭크 마틴이 운영하는 술 끊기 시설의 앞 포치에 있다.
우리는 여기 온지 이틀째에 불과하다.
그녀는 벽난로 주위에 담요를 펼쳐 장비를 늘어놓는다.
그는 그녀가 하는 일을 하고 싶었다. 그는 굴뚝청소부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그때는 그걸 말하지 않았다.
어젯밤에는 비가 내렸다. 골짜기 너머 연덕 쪽으로 구름들이 몰려와 층층이 쌓인다. J.P는 목을 가다듬고 언덕과 구름을 바라본다.
록시는 그와 데이트를 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조금씩 그는 둘이서 함께 일하는 것에 대해 말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사업상 록시는 아버지, 오빠와 함께 일했는데, 일도 딱 그만큼이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그렇게 결혼한다.
J.P의 장인은 동업자로 그를 받아들인다. 일 년쯤 지나자, 록시는 아이를 갖는다. 그녀는 굴뚝 청소를 그만 둔다.
그 즈음 J.P는 이십대 중반이다.
술버릇이 점점 세진다. 오랫동안 그는 그저 맥주만 마신다.
J.P 와 록시는 이제 진짜 싸우기 시작한다.
둘은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도 치고받고 싸웠다.
그럼에도 그는 계속 술을 마셨다.
어쨌든, 그는 그 사실 - 록시의 남자친구에 고나한 일-을 알게 됐고 돌아버렸다.
그는 술을 끊고 인생을 원래의 궤도로 되돌려놓을 방뻐을 찾기 위해 여기 프랭크 마틴의 치료센터에 왔다.
그날 오후 늦게 요란스레 현관문이 열리더니 가구의 두 남자 사이에 낀 J.P가 끌려들어왔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두 남자는 J.P 의 장인과 처남이었다.
맨 처음에는 아내가 나를 여기에 데려왔었다. 그때만해도 우리는 함께 제대로 살아보려고 노력하고 잇었다.
우리는 술을 마시고 음악을 들으며 폭풍우를 뚫고 프랜크 마틴의 치료 센터로 향했다.
밥 먹을 때가 되면 여기 사람들은 낡은 농장용 종을 울린다.
이분은 내 친구. J.P 가 아내에게 말한다. 여기는 내 아내. 록시. 록시는 내 손을 잡는다.
[기차]
그 연인의 이름은 미스 텐트, 그날 초저녁 그녀는 한 남자에게 총을 겨눴다.
그녀는 그의 뒤통수에 발을 올리고 그의 얼굴을 땅바닥에 처박았다. 그러고는 리볼버를 핸드백에 넣고 기차역까지 걸어서 돌아갔다.
그녀는 벽에 걸린 대형 시계에 시선을 뒀다. 그녀는 남자에 대해, 그리고 남자가 원하는 것을 손에 넣은 뒤 자신에게 어떻게 행동했는지에 대해 더 이상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가 무릎을 꿇고 앉았을 때 코로 낸 소리를 아주 오랫동안 기억하리라는 사실을 알았다.
대합실 문이 열렸다. 미스 텐트는 두 사람이 들어오는 동안, 그쪽을 힐끔 쳐다봤다. 한 사람은 하얀 실크 크라바트를 목에 두른 백발노인이었고 또 한 사람은 장밋빛 니트 드레스에 아이새도와 립스틱으로 화장을 한 중년 여인이었다.
이 사람들은 술을 너무 많이 마신 것 같아, 라고 미스 텐트는 생각했다.
좋은 저녁이오. 노인이 미스 텐트에게 말했다.
말수가 적으시군. 여인이 미스 텐트에게 말했다.
미스 텐트예요. 하지만 나는 댁을 몰라요. 미스 텐트가 말했다.
객차에 있는 몇 안 되는 승객들은 유리창 너머를 내다보다가 그 밤 시간에 승강장에 사람들이 서 있다가 기차에 올라타려고 하는 것을 보고 이상하게 여겼다. 무슨 일이 있기에 이 시간에 거기 있단 말인가?
그들은 진하게 화장을 한, 장미꽃 색깔의 니트 드레스를 입은 중년 여인이 계단을 밟고 기차에 올라타는 것을 보았다. 그녀 뒤로 여름 블라우스와 스커트를 입은 채 핸드백을 움켜쥔 아가씨가 올라왔다. 그 다음에 기차에 오른 사람은 노인으로 아주 천천히, 나름대로 위엄을 갖춰 움직이고 있었다. 노인은 백발이었고 하얀 실크 크라바트를 매고 있었지만, 신발이 없었다. 승객들은 당연히 이 세 사람이 동행이라고 추측했다. 그리고 이 밤에 그들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일이 행복한 일은 아니었을 거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승객들은 살아오는 동안 그보다 더 희한한 일들도 봐왔다.
차장은 철로를 살펴봤다. 그리고 그는 기차가 온 방향을 훑어봤다. 그는 팔을 들어 손전등으로 기관사에게 신호를 보냈다. 기관사는 그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눈금판을 돌리고 레버를 내렸다. 기차는 앞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천천히 움직였으나, 곧 속력을 내기 시작했다. 기차는 환한 객차 불빛을 노반에 흩뿌리며, 다시 어두운 시골 동네를 빠르게 통과할 수 잇을 때까지 점점 더 빨리 움직이기 시작했다.
[열]
칼라일은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6월 초 아내가 떠난 뒤로 여름 내내 옴짝달싹 할 수 없었다.
얼마 전까지는 칼라일에게 아이를 돌볼 사람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가 처음으로 연락한 베이비시터 테비는 뚱뚱한 열아홉 살 소녀로 대가족에서 컸다고 칼라일에게 말했다.
그는 자신의 삶이 새로운 시기에 접어들고 있다는 사실을 납득했다.
아일란은 칼라일이 성적표를 작성하고 잇을 때 집을 떠났다. 그녀는 서던 캘리포니아로 가 거기서 자신만을 위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겠다고 말했다. 그녀는 칼라일의 고등학교 직장 동료인 리처드 훕스와 떠나 버렸다.
거실에서는 다탁 주변에 앉아 있던 세 명의 십대 소년이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녀는 거실로 들어오는 칼라일을 도무지 믿을 수 없다는 듯 얼어붙은 채 쳐다봤다. 그 뚱뚱한 여자애의 부라우스는 단추가 풀려 있었다.
칼라일 씨 잠깐만요, 테비가 말했다. 설명해 드릴께요. 설명 필요 없어. 칼라일이 말했다. 빨리 여기서 꺼져 버려. 너희들 모두 던져 버리기 전에. 그는 아이들을 안고 있는 손에 힘을 줬다. 나흘 치는 계산해주셔야죠. 블라우스의 단추를 채우며 그 뚱뚱한 여자애가 말했다.
그날 저녁 아이들을 재우고 난 뒤, 그는 한 달 전부터 만나고 있는 같은 학교 동료 캐럴에게 전화했다.
이혼녀인 그녀는 아이 아버지가 자기 자동차에서 이름을 따온, 신경과민인 아들 닷지와 살고 있었다.
여름 동안 아일린은 아이들에게 몇 장의 카드들과 편지들과 자기 사진들과, 집을 나간 이후에 그린 펜화 몇 개를 보냈다.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한 그녀는 결혼에 동의하면서도 자기 재능으로 뭔가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리처드의 어머니 집에서 일했던 아줌마가 있어, 아마 그런 문제가 있을 것 같다고 얘기했더니 리처드가 여기저기 애쓰며 알아본 거야.
칼라일 씨인가요? 할머니 목소리였다. 저를 모르시겠지만, 저는 짐 웹스터의 부인입니다. 제가 연락드리기로 했는데.
웹스터 부인이시군요. 내일 아침에 저희 집으로 오실 수 있나요? 일찍, 일곱 시 쯤.
그날 오후 집으로 돌아와 보니 집안은 말끔하게 정리돼 있었고 아이들은 깨끗한 옷을 입고 있었다.
가을 학기도 중반이 지나고 웹스터 부인과 그가 보낸 시간도 벌써 육주에 가까웠다.
최근 들어서는 캐럴도 아들 닷지를 칼라일의 아이들과 함께 웹스터 부인에게 맡겨두고 두 사람은 교외에 있는 식당으로 저녁을 먹으러 가기도 했다.
칼라일이 아프기 시작한 건 바로 이 즈음이었다. 하룻밤 사이의 일인 것 같은데, 돌연 가슴이 조이고 머리가 아파왔다. 몸의 관절들이 뻣뻣해졌다.
그는 웹스터 부인에게 전화를 걸어 아이들과 좀 어딜 다녀와 달라고 부탁이라도 할까 생각했다.
아픈 상태로 두 번째 아침을 맞이 했을 때. 그는 간신히 전화를 걸어 병가를 신청했다.
칼라일 씨, 의사를 불러드릴까요? 아니에요 괜찮습니다. 그가 말했다.
몸이 불덩이에요. 그녀는 말했다. 열이 있어요. 괜찮아지겠죠. 칼라일이 말했다. 푹 자고나면 좋아지겠죠.
칼라일 . 그의 아내가 말했다. 다 알아, 어떻게 아느냐고는 묻지 마. 지금 일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거 다 알아. 당신 지금 아프지, 안 그래? 리처드도 계속 아팠어. 지금 뭔가 돌고 있는 중인가봐. 리처드는 배에 아무것도 못 집어넣고 있어.
칼라일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그녀가 일을 그만둬야 한다고 자신에게 말하려 한다는 걸 알게 됐다.
짐에게는 전처소생의 아들 밥이 있는데, 이 사람 나이가 올해 마흔이에요. 밥이 어제 전화해서는 오리건으로 와서 밍크 목장 일을 도와줄 수 없느냐고 말하더군요. 밍크를 키우는 일이라면 짐이 못할 일이 없을 거고, 장 보고 집 치우고 음식 만드는 것 같은 다른 필요한 일들은 내가 할 수 있겠지요. 우리한테는 참 좋은 기회예요.
웹스터 부인, 알아주셨으면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오랫동안 제 아내와 저는 서로 사랑했습니다. 이 세상 어떤 사람들보다도 더 많이 말입니다. 그 사랑에는 제 아이들도 포함되지요. 우리는 생각했어요. 아니, 알고 있었어요. 우리가 함께 나이가 들 것이라는 걸 말이죠. 우리가 원하는 일들을 둘이서 함께 할 것이라는 것도요. 그는 고개를 흔들었다. 이제 앞으로는 두 사람이 무슨 일을 하든지 간에, 각자 상대방 없이 할 수밖에 없다는 바로 그 사실이 그 순간 무엇보다도 슬픈 일 처럼 그에게 느껴졌다.
자자. 괜찮아요. 웹스터 부인이 말했다.
때로는 그렇게 다 말하는 게 좋을 때가 있어요.
여기 앉아요. 짐. 웹스터 부인이 말했다. 서둘 필요 없어요. 자 하던 이야기를 계속하세요. 칼라일 씨.
문에 서서 칼라일은 웹스터 부부와 악수했다. 잘 지내시오. 짐 웹스터가 말했다. 그는 모자챙을 만졌다. 행운을 빕니다. 칼라일이 말했다. 웹스터 부인은 그럼 아침에.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아침 일찍 환할 때 보자고 말했다. 중요한 일이 결정되기라도 한 듯 칼라일이 “알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노부부는 조심스레 보도를 따라 걸어 내려가 트럭에 올라탔다. 짐 웹스터는 대시보드 아래로 몸을 수그렸다. 웹스터 부인은 칼라일을 바라보며 손을 흔들었다. 바로 그때, 창가에 서 있을 때, 그는 그렇게 뭔가가 완전히 끝났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아일린과 관계된, 이전의 삶과 관계된 그 무언가가, 그녀를 향해 손을 흔든 적이 있었던가? 물론 그랬을 것이다. 그랬다는 것을 안다. 비록 지금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하지만 그는 이제 모든 게 끝났다는 걸 이해했고 그녀를 보낼 수 있다고 느꼈다. 그는 자신들이 함께한 인생이 자신이 말한 그대로 이뤄졌다는 것을 확신했다. 하지만 그 인생은 이제 지나가고 있었다. 그 지나침은 - 비록 그럴 수는 없을 것 같아서 그는 맞서 싸우기까지 했지만 - 이제 그의 일부가 됐다. 그가 거쳐 온 지난 인생의 모든 것들과 마찬가지로.
[굴레]
미네소타 번호판을 단 낡은 스테이션왜건이 창 너머 주차장으로 들어온다. ` [대성당]
그러니까 맹인이, 아내의 오랜 친구가 하룻밤 묵기 위해 찾아오고 있었다. 그의 아내는 죽었다. 때문에 그는 코네티컷에 사는 죽은 아내의 친척들을 방문하고 있었다. 처의 친척집에서 그는 내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십년 전 여름. 시에틀에서 그를 위해 일한 뒤로 그녀는 한 번도 그를 만나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와 맹인은 계속 연락하고 있었다. 그들은 말로 녹음한 테이프를 우편으로 주고받았다. 내게는 그의 방문이 달가울 리 없었다. 나로서는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다. 게다가 눈이 멀었다는 사실도 마음에 걸렸다.
그해 여름 시에틀에서 그녀는 일자리를 구하고 있었다. 돈이 한푼도 없었다. 그 여름이 끝나기 전에 결혼하기로 돼 있던 남자는 공군사관교육대에 있었다. 그 역시 한 푼도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를 살아했고. 그도 그녀를 사랑했다는 , 뭐 그런 이야기. 그녀는 신문에서 다음과 같은 걸 읽게 됐다. “구인- 맹인에게 책 읽어주는 일” ~~그 자리에서 채용됐다. 그녀는 여름 내내, 그러니까 맹인과 일한 것이다.
우리가 서로 사귀기 시작할 무렵, 그녀는 내게 그 시를 보여 줬다.
그녀는 그에게 공군 장교의 아내로 살아가는 일에 관한 시를 한편 쓰고 있다고 말했다
내 아내의 전남편인 장교는 이 기지에서 저 기지로 옮겨 다니며 근무했다.
그 맹인의 입에서 내 이름이 흘러나왔다! 그러더니 이런 말이 들렸다. 그 사람에 관해 자네가 말한 바를 종합하자면, 이런 얘기가 될텐데.... 하지만 그 순간 노크 소리가 들려서 우린 중간에 멈춰야 했고, 그러고선 그 테이프를 다시 듣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바로 그 맹인이 우리 집에 잠을 자기 위해 오고 있다는 것이었다.
맹인의 아내에 대해서는 그다지 많은 얘기를 듣지 못했다. 그녀의 이름은 뷰라였다. 유색인종의 이름이다. 그 사람 아내가 니그로였어? 내가 물었다. 미쳤어? 아내가 말했다. 지금 돌아버린 거야, 뭐야? 그녀는 감자 하나를 집었다. 나는 그 감자가 바닥을 때린 뒤 레인지 아래로 굴러가는 것을 봤다.
뷰라는 아내가 일을 그만둔 그해 여름부터 그 맹인을 위해 일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뷰라와 그 맹인은 교회에서 두 사람만의 결혼식을 올렸다.
그 순간에도 뷰라의 임파선에는 암세포가 자라고 있었다.
뷰라의 건강 속도는 급속도로 나빠졌다. 그 맹인이 병상 옆에 앉아 그녀의 손을 꽉 잡고 있는 동안, 시에틀의 한 병실에서 그녀는 숨졌다.
아내는 역으로 그를 마중 나갔다.
그 맹인은 건강한 체격에 머리는 벗어지고 등에 짐이라도 짊어진 것처럼 어깨가 구부정한 사십대 후반의 남자였다.
맹인은 아마추어 무선기사이기도 했다.
그녀는 맹인을 바라보며 말했다. 로버트, 집에 TV가 있나요? 그럼, 두 내나 있는 걸, 컬러 TV하고 고물딱지 같은 흑백 TV.
TV 에 이제 대성당이 하나 나왔다. 그러더니 오랫동안 천천히 또 다른 성당을 보여줬다.
나는 가능한 한 오랫동안 말하지 않고 기다렸다. 그러다가 뭔가 말해야만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대성당 외부를 보여주고 있어요. 이무깃돌. 괴물처럼 만들어서 깍아 놓은 조각상들 말이죠. 아마 지금은 이탈리아에 있는 모양이네요. 이탈리아 맞네요. 이 교회의 벽에는 그림이 있어요. 프레스코화 말이군. 그렇지? 그렇게 묻고는 그는 술을 조금 들이켰다.
대성당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감이 있습니까? 그러니까 어떻게 생긴 건지 아시느냐는 겁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어요? 누가 대성당이라고 말하면 그 사람들이 무엇에 대해 말하는지 개념이 잡히느냐는 거죠. 말하자면 대성당이 침례교회 건물과 어떻게 다른지 아시느냐는 거죠.
그는 입 밖으로 연기를 조금씩 내뿜었다. 수백 명의 일꾼들이 오십 년이나 백 년 동안 일해야 대성당 하나를 짖는다는 건 알겠어. 그가 말했다. 물론 저 남자가 그렇게 말하는 걸 들은 거야.
TV에서는 이제 다른 대성당이 나오고 있었다. 독일에 있는 것이었다. 영국인의 해설 소리가 단조로웠다. 대성당이라, 맹인이 말했다. 그는 허리를 펴고 앉아 머리를 앞뒤로 돌렸다. 여보게 솔직하게 말하면, 그것밖에 나는 몰라. 방금 말한 것들, 저 사람에게 들은 것들. 하지만 자네가 설명해줄 수는 있겠지. 그렇게 해주면 좋겠는데. 자네가 알고 싶다니 말하네만. 솔직히 나는 감이 없다네.
나는 TV 화면의 대성당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한단 말인가? 그러나 바로 그 일에 내 목숨이 걸려 있다면 어떨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말하는 미친 사람에게 내 목숨이 달렸다면.
나는 화면이 전원 풍경으로 바뀔 때까지 대성당을 가만히 쳐다봤다.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나는 맹인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말했다. “먼저 대성당들은 아주 높습니다.” 나는 도움이라도 얻을까 해서 방안을 둘러봤다. “위로 치솟았어요. 높이. 아주 높이. 하늘을 향해서. 꽤 커서 지지물을 만들어놓은 대성당도 있어요. 말하자면 안 넘어지도록 받치는 거죠. 그걸 버팀도리라고 해요. 여러모로 고가다리 같다는 느낌이 들어요. 하지만 고가다리도 모르시겠지요? 어떤 대성당에는 건물 전면에 악마와 그 비슷한 것들을 조각해놓았어요. 어떤 테는 귀족과 귀부인이구요. 왜 그러느냐고 묻지 마세요. 내가 말했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몸의 상반신 전체가 앞뒤로 움직이는 것 같았다.
설명이 잘 안 되네요. 그렇죠? 내가 말했다.
그는 끄덕이다 말고 소파의 한쪽 끝에 몸을 기댔다.
내 설명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는 걸 난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처음과 마찬가지로 내가 말을 하기만을 기다렸다. 나를 격려하려는 듯.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또 무슨 말을 하면 좋을까 궁리했다. 대성당들은 정말 큽니다. 내가 말했다. 어마어마해요. 돌로 만들었죠. 때로는 대리석으로도요. 그 옛날에는 대성당들을 지으면서 사람들은 하나님에게 더 가까이 가고 싶었던 거죠. 그 옛날에는 모두의 삶에서 하나님이 중요한 일부분이었습니다.
죄송합니다. 나는 말했다. 이 정도로밖에는 제가 할 수 있는 설명이 없겠습니다. 이런 일은 잘 못하겠습니다.
괜찮네. 이 사람아. 맹인이 말했다. 그런데 말이야. 이런 질문을 한다고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네. 뭘 좀 물어봐도 되겠지? 예, 아니오 라고만 말하면 되는 간단한 질문이네. 그냥 궁금해서 묻는 거지. 따지는 건 아니야. 자네가 여기 주인이니까. 나는 그저 자네에게 그게 어떤 형태로든 신앙심이 있느냐고 묻고 싶은 거야. 이런 걸 물어보면 실례인가?
나는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그가 고갯짓을 볼 수는 없었다. 맹인에게는 윙크나 고갯짓이나 마찬가지다. “뭘 믿는 건 없다고 봐야겠죠. 아무것도 안 믿어요. 그래서 가끔은 힘듭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어요?
물론이네 그가 말했다 그렇습니다. 내가 말했다.
양해해주셔야만 할 것 같습니다. 내가 말했다. 대성당이 어떻게 생겼는지 가르쳐드리기가 어렵군요. 나한테는 재주가 없는 모양입니다. 제가 설명할 수 있는 건 이제까지 말 한 게 전부예요.
맹인은 내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처럼 머리를 수구리고 미동도 하지 않고 앉아 있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대성당이라고 해서 나한테는 뭐 특별한 게 아니거든요. 아무 의미도 없어요. 대성당들. 이렇게 늦은 밤 TV에서나 볼 수 있는 것일 뿐이죠. 그저 그런 것일 뿐이예요. 내가 말했다. 바로 그때 맹인이 목을 가다듬었다. 그래서 목에서 뭔가를 끌어올렸다. 그는 뒷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냈다. 그리고 말했다. 이해하네, 이 사람아. 별거 아니야. 걱정하지 말게. 그가 말했다. 그런데 말이야 내 부탁 좀 들어주겠나? 좋은 생각이 났어. 좀 두꺼운 종이를 가져오겠나? 펜이랑. 우리 뭘 좀 해야겠네. 같이 하나 그려보자구. 펜하고 좀 두꺼운 종이만 있으면 된다네. 자, 이 사람아. 어서 가져오게나. 그가 말했다.
다탁 위에 그 종이를 펼쳤다. 맹인은 소파에서 일어나더니 카펫 위 바로 내 옆에 앉았다. 그는 손가락으로 종이를 한번 흝었다. 그는 쇼핑백의 양쪽 면을 위아래로 만져봤다. 심지어 모서리까지, 그는 구석구석 손가락으로 더듬었다. 좋아 그가 말했다. 좋아, 같이 한번 그려 보자구. 그는 내 손, 펜을 쥔 손을 찾았다. 그는 내 손 위에 자기 손을 얹었다. 시작하게나, 이 사람아 그려봐. 그가 말했다. 그려봐. 뭘 하자는 건지 알게 될 거야. 내가 자네 손을 따라 움직이겠네. 괜찮아. 내가 말한 대로 시작해보게나. 좀 있으면 알게 될 거야. 그려 봐.맹인이 말했다.
그래서 나는 그리기 시작했다. 먼저 집처럼 생긴 네모를 하나 그렸다. 그건 내가 사는 집일 수도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 위에 지붕을 얹었다. 지붕의 양쪽 끝에다가 나는 첨탑을 그렸다. 바보짓. 멋지군. 그가 말했다. 끝내줘. 정말 잘하고 있어. 그가 말했다. 자네 인생에 이런 일을 하리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겠지. 그렇지 않나, 이 사람아? 그러기에 삶이란 희한한 걸세. 잘 알다시피. 계속해 멈추지 말고. 나는 아치 모양 창문틀을 그렸다. 나는 버팀도리를 그렸다. 나는 큰 문들도 만들었다. 멈출 수가 없었다. 나는 볼펜을 내려놓고 손가락을 쥐었다가 폈다. 맹인은 종위 위를 더듬었다. 그는 손가락 끝으로 종이 위. 내가 그려놓은 것을 죄다 만져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잘하는군. 맹인이 말했다. 나는 다시 볼펜을 잡고, 그는 손을 찾았다. 나는 끈덕지게 그렸다. 나는 그림 실력이 하나도 없다. 하지만 묵묵히 계속 그렸다. 아내가 눈을 뜨고 우리를 바라봤다. 그녀는 실내복 자락이 젖혀 진채로 몸을 일으키고 소파에 바로 앉았다. 지금 뭐하는 거예요? 가르쳐 줘요. 나도 알고 싶어요. 그녀가 말했다. 나는 그녀에게 대꾸하지 않았다. 맹인이 말했다. 우리는 지금 대성당을 그리고 있어. 나하고 이 사람이 만들고 있어. 더 세게 누루게나. 그가 내게 말했다. 그렇지 그렇게 해야지. 그는 말했다. 좋아, 이 사람. 이제 아는구먼. 진짜야. 자네가 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을 거야. 하지만 할 수 있잖아. 그렇지? 이젠 순풍에 돛을 단 격이네. 무슨 소리인지 알겠나? 조금만 더 하면 우리가 여기에 뭔가를 진짜 만들게 되는 거야. 팔은 아프지 않은가? 그가 말했다. 이제 거기에 사람들을 그려 보게나. 사람들이 없는 대성당이란게 말이 되겠어? 도대체 무슨 일이에요, 로버트? 지금 뭐하시는 거예요? 무슨 일이에요? 아내가 물었다. 괜찮아. 그가 아내에게 말했다. 이제 눈을 감아 보게나. 맹인이 내게 말했다. 나는 그렇게 했다. 나는 그가 말한 대로 눈을 감았다. 감았나? 그가 말했다. 속여선 안 돼. 감았습니다. 내가 말했다. 그럼 계속 눈은 감고. 그가 말했다. 이제 멈추지 말고 그려. 그는 말했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했다. 내 손이 종이 위를 움직이는 동안 그의 손가락들이 내 손가락들을 타고 있었다. 살아오는 동안, 내 인생에 그런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때 그가 말했다. 이제 된 것 같은데. 해낸 것 같아. 그는 말했다. 한번 보게나. 어떻게 생각하나? 하지만 나는 눈을 감고 있었다. 조금만 더 그렇게 눈은 감은 채로 있자고 나는 생각했다.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나는 생각했다. 어때? 그가 물었다. 보고 있나? 나는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다. 나는 우리 집 안에 있었다. 그건 분명했다. 하지만 내가 어디 안에 있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이거 진짜 대단하군요. 나는 말했다.
[Review]
팔년 전 부부간의 갈등으로 이혼한 사내가 그날 자신에게 덤벼들던 아들을 재회하기 위해 밀라노에서 스트라스부르 로 가는 열차의 칸막이 객실에 앉아있다. 이 어색한 만남이 그에게는 기쁨보다는 거북스럽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는 차라리 그 순간을 피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밤새 달린 기차는 아침이 되자 안개가 내려앉은 초록빛 들판을 달리고 있었다.
<칸막이 객실>은 관계가 단절된 곳이다. 그는 그곳에서 잠시 화장실을 다녀오는 동안에 아들에게 주려고 사서 코트에 넣어둔 고급 일제 시계가 없어진 것을 알았다. 옆 칸막이 사람들을 의심하지만 그들은 소통 할 수 없는 외국인들 이었다. 결국 사내는 이 사소한 일로 아들과 만나기로 한 역에 도착 했을 때, 만남을 포기했다.
그리고 그 열차가 다시 파리로 되돌아가기 때문에 그냥 그대로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잠시 기차에 무슨 일이 생기고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 다른 객실을 다녀온 사이 기차는 자신이 타고 왔던 칸막이 객실을 떼어내고 정작 자신은 알지 못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서로의 관계가 단절된 시간 속에서 보내는 고통스러움은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대하는 일이다. 열차가 터널을 지나는 것처럼, 엘리베이터를 탔을 때 불편한 이웃과 맞닥뜨리고 보내는 몇 초간의 시간은 길다. 그것은 견디는 시간이며, 무의미한 시간이며 또, 살아가면서 누구나 경험해야만 하는 시간들이다.
‘레이면드 카버(Raymond Carver, 1938~1988)‘에게 붙여진 수식어는 화려하다. 그는 20세기 후반 미국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이자 시인. 1980년대에 미국 단편소설 르네상스를 주도했으며, 헤밍웨이 이후 가장 영향력 있는 소설가, 리얼리즘과 미니멀리즘의 대가, 체호프 정신을 계승한 작가로 불린다.
넉넉지 않은 환경에서 성장한 카버는 문학수업을 하면서도 여러 직업을 전전하는 힘든 고비를 넘겼다. 무엇보다도 두 번의 가정 파탄과 , 말년에 그의 작품이 독자의 사랑을 받으며 많은 수상경력과 작가로서의 성공한 삶을 살았지만, 안타깝게도 쉰 살 짧은 생애를 마쳤다.
이 책의 표제 <대성당>에는 그의 여러 단편들이 함께 수록되어 있다. 카버는 이 책으로 퓰리쳐상 후보에 오르기까지 하였다. 이 책에 등장하는 맹인은 누군가의 집에 초청을 받고 하룻밤을 보내게 되었다. 아내가 오래전부터 맹인과 친하게 지냈다는 것이 사내에게는 못마땅한 일이다. 마지못해 함께 식사를 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텔레비전을 보는 시간은 서로에게 어색하기만 하다. 맹인은 맹인대로 그 어색함을 견뎌야 하고 사내는 또 통하지 않는 대화를 나누느라 애를 쓴다.
맹인은 맛있는 음식을 가려서 골라먹고, 사내가 권하는 마리화나도 서슴치 않았다. 사내는 맹인에게 집에 텔레비전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맹인은 천연덕스럽게도 칼러와 오래된 흑백 티비가 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아내는 소파에서 잠이 들고 텔레비전에서는 성당에 관한 프로그램이 나오고 있었다. 맹인은 지금 프로에 나오고 있는 성당에 관 이야기를 좀 더 자세히 말로 설명해 달라고 부탁했고, 결국에는 자신의 손을 그의 손에 포개어 놓고 그에게 종이 위에 성당의 모습을 그리도록 했다.
텔레비전이 컬러이든 흑백이든 맹인에게는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종이위에 굳이 그림으로 표현한다고 해서 맹인이 그 그림을 볼 수 있겠는가! 그림을 다 그리고 난 후 맹인은 사내에게 눈을 감아줄 것을 부탁했다. 그리고 절대로 눈을 뜨지말고 그림을 보라고 어처구니없는 말을 하는 대목에서 소설을 마친다. 레이먼드 카버의 글은 한마디로 인간관계의 단절과 회복의 기다림이다. 그러나 그 시간은 고통스럽고 답답하다. 카버는 지신의 삶에서 겪었던 여러 고통스러운 순간들을 소설 속에 담은 것 같다.
<기차>에서 방금 사내의 목을 밟고 권총을 겨누던 여인은 아무도 없는 간이역 기차 대합실에서 언제 도착할지도 모르는 기차를 기다리고 있다. 그때 대합실 문이 열리고 백발의 노인이 신발도 신지 않은 채 짙은 화장을 한 중년의 여인과 함께 들어왔다. 그들은 술에 취한 것 같았다. 무언가 사연이 있어 보였다.
그들은 무언가 떠들다가 혼자 앉아 있는 여인에게 무언가 말을 섞으려고 했다. 그러나 여인은 무관심했고 그때 기차가 들어온다. 기차에 있던 사람들의 눈에는 그들이 동행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 호기심도 잠시, 기차는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 깃털들 >은 별로 내키지 않는 부부초대를 받고 그 집에 도착했을 때, 그들의 삶의 모습은 자신들과 너무나도 달랐다. 못생긴 아내와 그가 자랑스럽게 여기는 팔 개월 된 아들은 세상에서 가장 못난 얼굴이었다. 그들이 낙원을 상징하는 커다란 공작새를 집안에 두고 기르고 있었다. 카버는 이 글속에 서로 다른 관계에서 보는 시각의 차이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 보존 >에서 직장에서 해고된 남편이 상황을 타계하지 못하고 홀로 거실 소파에 몸을 맡길 수밖에 없는 신세도 결국은 고립이다. 고장 난 냉장고 문제 하나 해결하지 못하는 그는 그동안 철저하게 고립된 현대 직장인들의 모습을 반영한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에서 여덟 살 생일에 교통사고 로 혼수상태에 빠진 아들이 깨어나기를 간절히 바라는 부모에게 기다림의 시간은 희망과 절망이 순차적으로 교차한다. 의사는 아이가 곧 깨어날 것이라며 자기 직업에서 터득한 상식의 선에서 환자를 대한다. 그러나 부모의 입장에서는 환자의 아주 작은 변화는 곧 생과 사의 상황과 맞닥 드린다. 카버는 이 글에서 또 한사람 빵가게 사장을 등장시켜서 서로 다른 인간상을 표현한다. 아들의 생일 케이크를 주문하러 빵가게에 찾아온 아버지와 권태로운 일상에 지친 빵가게 사장은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의 느낌이 다르다.
이 책에 수록된 레이먼드 카버의 글은 한마디로 인간관계의 단절과 회복의 기다림이다. 내용이 어둡고 조금은 답답하다. 어쩌면 작가 스스로의 삶에서 겪었던 모습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카버의 소설을 이렇게 단순한 시각으로 보기에는 무언가 석연치 않다. 독자들이 읽기에 조금은 싱겁고. 내포된 의미가 명쾌하지 않다. 쓰다만 느낌이 들고, 긴 소설의 한 마디를 잘라낸 것 같다. 그래서 독자는 "이게 뭐지?"라는 느낌을 갖게 한다. 누군가 글은 독자에게 절반을 내어 주어야 잘 쓴 글이라는 평을 듣게 된다고 했지만, 카버는 독자에게 많은 부분을 전가시킨다. |